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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85호] 2021.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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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자본주의에 굴복한 차베스의 후계자들

우태영  자유기고가 wootaiyoung@hanmail.net 2021-11-28 오후 12:51:16

▲ 지난 11월 21일 실시된 베네수엘라 지방선거 때 부인, 손녀와 함께 투표장을 찾은 마두로 대통령. photo 뉴시스
베네수엘라 지방선거가 지난 11월 21일 실시됐다. 2017년 선거부정 등을 이유로 선거참여를 거부했던 야당도 이번 선거에 참여했고, 선거 감시를 위해 유럽연합(EU) 등이 국제선거감시단을 파견했다. 이번 선거에서는 수도 카라카스 시장과 주지사 등을 선출했는데 집권당인 니콜라스 마두로(60) 대통령의 통합사회주의당(PSUV·이하 사회당)이 모두 승리했다.
   
   그런데 이번 선거 기간에 이색적인 장면들이 주목받았다. 우고 차베스 전 대통령(재임기간 1999~2013)의 정당인 사회당 후보자들이 선거운동을 하면서 사회주의나 반제국주의 투쟁 대신 자본주의 정책을 강조하며 유권자들에게 한 표를 호소한 것이다. 차베스의 사회주의를 계승한다는 정당의 후보들이 뜻밖에 우선회를 한 것이다. 차베스에 이어 좌익 노선을 질주하던 마두로 대통령 역시 1년 전부터 차베스 정책의 근간을 흔드는 자본주의 정책을 추진 중이다. 이에 대해 서구 언론은 ‘마두로식 자본주의(Capitalism Maduro-style)’라는 평가를 내리면서 ‘차베스의 사회주의’가 종말을 맞고 있다고 파악하고 있다.
   
   베네수엘라 집권 사회당의 상징은 차베스의 얼굴과 혁명을 상징하는 붉은색 깃발이다. 구호는 ‘반미(反美)-반제국주의 투쟁과 빈민을 돕는다’는 내용이다. 그런데 이번 선거기간 동안 사회당 주요 후보자들은 붉은색을 사용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자본주의 정책을 선전했다고 미국의 블룸버그통신이 지난 11월 21일 보도했다. 경제붕괴로 인구의 90%가 빈곤선 이하로 추락한 이 나라 집권당의 새로운 득표전략이라는 분석이다. 자비에르 비아르도 베네수엘라 중앙대학 교수는 “차베스를 모르는 젊은 유권자들의 입맛에 맞추기 위한 온건 전략”이라며 “사회당의 이미지와 정체성의 변화”라고 설명했다.
   
   차베스의 후계자인 마두로는 여전히 ‘반제국주의 혁명’을 외친다. 그러나 마두로에 대한 지지도는 최근 실시된 여론조사에서는 14.7%에 불과했다. 결국 상당수의 여당 후보들은 사회주의 구호를 내려놓았다. 미란다 주지사에 재선 출마한 헥토르 로드리게스 후보는 자신을 “투쟁할 사람이 아니라 경제와 산업을 발전시키고, 일자리를 창출할 사람”이라며 한 표를 호소했다.
   
   사회당 후보들의 변신이 단순한 선거전략이라고 보기도 어려운 것이 올 초부터 마두로 대통령이 미국 달러화 사용, 연료 보조금 폐지, 카지노 허용 등 차베스 혁명의 근간을 흔드는 중요한 자본주의적 정책을 도입해왔기 때문이다.
   
   
   차베스 후계자도 달러 사용 등 허용
   
   마두로 대통령은 전임자인 차베스가 간택한 명실상부한 후계자이다. 차베스는 볼리바르 사회주의라는 남미형 사회주의를 추진한 것으로 유명하다. 빈곤을 추방하고 불평등을 해소한다며 주요 산업을 국유화한 것이 대표적 업적이다. 차베스는 국민들이 식량을 똑같이 구매할 수 있도록 2003년부터 기본식료품 가격통제를 실시하고, 5400만에이커의 대농장토지를 수용하여 분배하기도 했다. 또 주거, 의료, 복지, 교육 등의 무상지원을 실시했다. 차베스는 외환통제도 강화하여 외환의 국외 유출을 막고 개인의 외환 소유도 제한하였다. 차베스 집권 기간 고유가의 혜택을 받아 2003~2007년 사이 일시적으로 베네수엘라의 불평등이 잠깐 개선되기도 했다.
   
   차베스의 이런 사회주의 실험에 대해 전 세계 좌파 인사들이 열광했다. 미국의 인권운동가 제시 잭슨 목사는 2005년 베네수엘라 의회에서 차베스가 “무질서와 불필요한 군사비 지출을 극복했으며, 토지개혁도 이루어냈다”고 찬양하였다. 힐러리 클린턴 대통령 후보의 경제고문으로도 활동했던 경제학자 조지프 스티글리츠도 2007년 차베스의 석유 수입 균등 분배정책은 혁명적이라기보다는 혁신적이라고 평가받아야 한다고 찬양하였다. 그는 “차베스는 빈민들에게 의료와 교육 복지를 구현하는 데 성공했다”며 “지속가능한 성장 못지않게 분배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영국 노동당의 제레미 코빈 당수는 2009년에 차베스가 “신자유주의를 강력히 거부하여 가난을 압도적으로 정복해나가고 있다”고 찬양했다. 미국 민주당의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은 2011년 “아메리칸 드림은 미국이 아니라 베네수엘라에서 실현되고 있다. 베네수엘라에서는 국민들이 평등하게 살고 있다. 미국과 베네수엘라 중에서 바나나공화국은 도대체 어디인가?”라고 되물었다. 우리나라에서도 일부 좌파 학자들이 차베스를 찬양했으며, 공영방송에서 차베스를 조명하는 다큐멘터리를 방영하기도 하였다.
   
   차베스의 볼리바르 사회주의 정책은 고유가 시절 차베스가 석유수출 대금을 독점적으로 사용할 수 있어 가능했다. 유가가 하락하여 석유 수입이 줄어들면 실행이 불가능해지는 정책이었다. 일시적 고유가를 바탕으로 한 차베스의 정책에 대해 상당수의 학자들이 포퓰리즘에 불과하다고 비판하는 이유다.
   
   
   재앙으로 변한 ‘차베스 사회주의’
   
   실제 빈민들을 위한 식료품 가격통제정책은 오히려 식품 가격 급등과 식료품 부족사태를 야기하였다. 가격통제와 외환통제 때문에 기업들은 식품을 수입할 수 없게 되었다. 유가하락으로 정부의 수입이 줄어들자 식품 수입도 감소하여 식품 부족사태가 발생했다. 차베스는 식품산업을 국유화하여 국내 생산을 증가시키려 하였지만 국유화는 생산성을 악화시켰고 생산량은 오히려 감소하였다.
   
   2011년에 카라카스의 식료품 가격은 가격통제 직전보다 9배나 비싸졌으며 수입식품인 식용유, 닭고기, 분유, 치즈, 설탕, 육류 등의 품귀사태가 빚어졌다. 차베스의 잘못된 정책으로 식료품 부족사태가 악화되었다고 학자들은 지적했지만 차베스는 ‘투기꾼들’ 때문이라며 가격통제를 더욱 강력하게 실시하였다.
   
   식료품 부족사태는 차베스 집권기간 내내 이어져 식료품 부족률은 2010년 10%, 2013년에는 20%를 기록했다. 그러자 차베스는 국영 슈퍼마켓 체인을 만들어 1만6600개의 상점을 운영하고 8만5000명을 고용하였다. 이를 통해 30~50% 싼 가격으로 식료품을 공급하려 했다. 그러나 국영 슈퍼마켓에는 식료품이 부족하기 일쑤였으며, 어쩌다 물건이 도착하면 사람들이 길게 줄을 늘어서는 일이 반복되었다.
   
   차베스는 주요 산업의 국유화를 추진하면서도 사유재산권은 보호한다고 주장했지만, 재정적자와 반기업적인 정책들로 외국인 투자가 사라지는 결과를 낳았다. 2013년 미국 월스트리트저널은 베네수엘라의 경제적 자유 수준을 177개국 중 174위로 평가했다.
   
   2010년부터는 과도한 보조금 지급으로 인한 극심한 재정적자로 복지정책 추진이 지속불가능해졌다. 차베스는 이에 대해서도 ‘투기꾼들’ 때문이라며 부유층을 상대로 ‘경제전쟁(economic war)’을 선포했다. 이 과정에서 선거부정, 언론탄압, 야당인사 체포 등이 자행돼 민주주의가 파괴되었다. 또 차베스 측근들과 군의 부패가 만연해졌고 부정 축적 재산의 미국 유출도 극심하였다.
   
   
   ‘투기꾼’들과의 전쟁 선포
   
   경제전문가들은 베네수엘라 정부의 사회복지에 대한 과도한 재정지출과 기업들에 대한 규제강화로 차베스 말년에 경제가 붕괴하고 하이퍼인플레이션(hyperinflation)과 극심한 빈곤이 초래되었다고 비판한다. 차베스가 2013년 사망하고 마두로가 집권했는데, 학자들은 차베스가 계속 집권해도 경제난은 지속되었을 것이라고 강조한다.
   
   마두로 집권 이후 베네수엘라 국민의 20%인 560만명이 국외로 탈출했다. 2020년 조사기관 엔코비(Encovi)에 따르면 이 나라 국민의 90%는 빈곤선 이하의 삶을 살고 있다. 베네수엘라 국민 1인당 단백질 소비량은 2013년 마두로 집권 직후보다 2019년에는 60%나 하락했다. 같은 기간 동안 닭고기 소비는 82%, 달걀 소비는 66%나 각각 줄었다고 베네수엘라를 전문으로 다루는 토리노캐피털이 지난 8월 발표했다.
   
   유엔 식량농업기구 보고서에 따르면, 현재 베네수엘라 국민의 3분의1은 식품을 사놓을 여유가 없다. 하루 종일 굶고 지내는 날이 많다는 사람이 전체 국민의 11%나 된다. 2019년 유엔식량계획은 베네수엘라 5세 이하 어린이의 6.3%는 영양실조, 13.4%는 성장장애, 30%는 빈혈이라고 발표했다. 15~49세 여성의 24%가 빈혈이다.
   
   마두로의 사회당 정부는 갈수록 국내 생산이 줄어들고 석유 수출도 줄어드는 상황에서 엄청난 복지비용 마련을 위해 “아이들에게 사탕을 나누어주듯” 볼리바르화만 신속하게 찍어내 뿌려댔다. 그리고 차베스처럼 미 달러화는 “제국주의 도구”라며 일반인의 소유를 금지시켰다. 또 볼리바르화와 달러, 유로 등 외환과의 교환비율을 통제하려 시도했지만, 볼리바르화의 가치만 급락하였다. 오히려 국민들의 달러화 사용만 급증했다. 모바일폰 충전비용은 1달러이고, 아이스백은 10달러에 거래되었다.
   
   마침내 2019년 마두로는 ‘미 제국주의의 도구’인 달러화 사용금지 정책을 포기했다. 세계 최악의 인플레로 볼리바르화가 가치를 상실했다는 사실을 뒤늦게 받아들인 것이다. 이는 민간 경제에 호기였다. 사업가들은 이 나라에 없는 물품들을 수입하기 시작했다. 이 정책으로 비어 있던 슈퍼마켓의 진열대에는 다시 상품들이 등장했다고 AP통신이 보도했다. 상인들은 처음에는 가격표를 달러화로 표시하는 것을 두려워하였다. 정부가 탄압할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얼마 후에는 “모든 것이 분명해졌다. 나는 달러화를 사용하고 있으며 물건이 더 잘 유통되고 있다”고 토리노캐피털의 두아르테 연구원은 말했다. 현재 이 나라 상거래의 60% 이상은 달러화로 이루어진다고 그는 설명했다. 월스트리트저널도 “베네수엘라 정권이 제국주의의 통제수단이라며 불법화했던 미국 달러화가 현재는 사실상 국가통화(national currency)의 역할을 하고 있다”고 최근 보도했다.
   
   
▲ 올 초 베네수엘라에 새로 등장한 민영 주유소. 마두로 대통령은 국영 주유소 50개를 민간업자들에게 넘겼다. photo 뉴시스

   달러 사용 허용 후 상품 수입 시작
   
   베네수엘라 정부 통계에 따르면 원자재와 식량 수입에서 민간기업이 담당하는 부분이 2019년 25%에 불과했으며 국가가 75%를 담당했다. 그런데 2020년에는 이 수치가 완전히 역전되어 민간기업이 92%를 담당하고 있다. 덕분에 마두로 정부는 엄청난 재정적자를 일부 보전할 수 있게 되었다고 블룸버그는 설명했다.
   
   베네수엘라 국민들은 마두로가 금지한 미국 달러화를 어떻게 소유하게 되었을까? 베네수엘라 가구의 40%는 탈출한 가족들이 해외에서 보내준 달러화로 생계를 유지한다. 이 금액은 지난해 기준 40억달러에 달했다고 카라카스에 있는 경영자문회사 에코노아날리티카(Econoanalitica)가 분석했다. 달러 표시 상품 가격도 급상승하고 있다. 달러화가 더 이상 희귀하지 않기 때문이다. 5인 가족용 식품세트에는 밀가루, 닭고기, 치즈 등이 들어 있는데, 달러화 표시 가격이 2년 전보다 4배나 올랐다.
   
   그러나 베네수엘라의 많은 국민들은 볼리바르로 월급을 받는다. 인플레이션 때문에 볼리바르화는 받은 그날로 휴지조각이 된다. 이런 사람들은 슈퍼마켓에 상품이 등장해도 살 수가 없다. 최저임금을 아무리 올려도 한 달 1~2달러 수준이다. 이 돈으로는 닭고기 1㎏도 살 수 없다. 마두로 정권은 지난 10월 100만볼리바르를 1볼리바르로 교환하는 사상 최대비율의 리디노미네이션(redenomination)을 실시했다. 현재 100만볼리바르는 미화 25센트의 가치에 불과하다. 돈 가치와는 무관하게 지폐에서 0을 여섯 개 그냥 지워 화폐의 단위를 변경한 것뿐이다. 중앙은행도 “볼리바르의 가치를 높이려는 목적이 아닌 단순히 사용을 간편하게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사회당 정권은 2008년에도 0을 세 개, 2018년에는 0을 다섯 개 지웠다.
   
   경제의 달러화(dollarization)에 이은 마두로식 자본주의의 또 하나의 충격조치는 차베스의 상징과도 같았던 연료 보조금을 사실상 폐지한 것이다.
   
   베네수엘라는 세계에서 석유매장량이 가장 많은 나라이지만, 미국의 제재 등으로 생산 및 정유시설이 낙후되어 생산이 격감하였다. 차베스 집권 초창기에는 하루 250만배럴을 생산 수출했지만 지금은 겨우 50만배럴만 생산해 국내 수요도 충족하지 못한다. 휘발유나 경유 등은 이란으로부터 수입하지만 물량이 극도로 부족하다. 그동안 1500여개의 구식 주유소에서는 리터당 5000볼리바르에 휘발유를 팔았다. 미화 0.3센트도 안 되는 가격이다. 국민들은 기름을 파는 주유소가 있으면 몇 시간씩 줄을 선다.
   
   마두로는 올 초 주유소 50개를 민간업자들에게 넘겼다. 화려하게 단장한 민간 주유소에서는 언제든 휘발유를 리터당 미화 50센트에 판다. 싸 보이지만, 이 나라의 최저임금은 한 달에 미화 1달러이다. 민간 주유소를 400개로 늘리는 게 마두로의 목표이다.
   
   
▲ 베네수엘라 볼리바르화는 가치가 하락해 달러로 교환할 때 뭉칫돈을 갖고 가야 한다. photo 유튜브

   카지노 영업도 허용
   
   마두로는 카지노 영업도 적극적으로 허용하고 있다. 좌파정권은 그동안 카지노와 도박을 엄격하게 금지했다. 그런데 현재 이 나라에는 30개의 카지노가 허가를 받아 영업 중에 있으며, 12개는 곧 개장할 예정이라고 월스트리트저널이 지난 11월 18일 보도했다. 벨라지오, 베이워치, 호텔 두바이 등의 이름이 붙은 카지노들을 육군장성들이 운영한다.
   
   세계 최대의 석유매장량과 아름다운 풍광으로 남미에서 가장 잘사는 나라였던 베네수엘라를 가장 가난한 나라로 만든 차베스의 ‘21세기 사회주의(Socialism of the 21st century)’가 이제는 막을 내리는 것일까.
   
   자본주의 정책으로 경제회복 조짐은 확실하지만 아직 약하다는 평가가 많다. 이 나라는 여전히 지난 20년 동안의 잘못된 경제운용으로 비틀거리고 있다. 대부분의 국민들은 달러를 쉽게 구할 수도 없다. 워싱턴DC에 있는 국제재정기구의 세르지 라나우 부소장은 “베네수엘라 국민 대부분은 극심한 빈곤과 극단적인 고통 속에 살고 있는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올해 베네수엘라의 경제성장률을 0.3%, 2022년에는 1.3%로 예측한 그는 오랜 고통 후에 약간의 경제성장이 긍정적이긴 하지만, 국민들의 일상생활과 정권의 자신감은 “전혀 연결이 되지 않는 상황”이라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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