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5일 카자흐스탄 최대 도시 알마티에서 경찰과 대치 중인 시위대. ⓒphoto 뉴시스
지난 1월 5일 카자흐스탄 최대 도시 알마티에서 경찰과 대치 중인 시위대. ⓒphoto 뉴시스

소련 붕괴 이후 독립한 중앙아시아의 자원부국 카자흐스탄에서 신년 벽두부터 대규모 시위사태가 발생해 국제적 긴장이 조성되고 있다. 지난 1월 2일 연료비 인상에 대한 불만으로 시작된 시위는 미국 미디어 VOX의 표현대로 “누가 무엇을 하는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1월 12일 현재 수백 명이 사망하고 1만여명이 체포되는 사태로 번졌다. 또 러시아군이 진입하여 미·러 간의 지정학적 경쟁으로까지 확대되는 양상이다. 서방과 러시아의 전문가들은 사태의 원인을 놓고 외부세력 개입이나 내부 권력투쟁 등을 지적하는 등 분석이 한창이다.

카자흐스탄 사태는 지난 1월 2일 정부가 자동차연료로 많이 쓰이는 액화천연가스(LPG)의 가격을 2배 인상하면서 시작되었다. 이에 항의하는 시위가 서부에서 시작돼 여러 도시로 확산되었다. 1월 4일 시위가 무장폭도들과 경찰 간의 총격전으로 변하자 5일 카심 조마르트 토카예프 대통령은 가스값 인상을 취소하는 한편 내각을 총사퇴시켰다. 그러나 시위는 더욱 확대되었다. 1월 5~6일에는 인구 200만명의 최대 도시인 알마티에서 시위대가 정부 건물들을 장악했다. 은행, 대형 쇼핑센터, 상점 등이 약탈당하고 불에 탔으며 알마티국제공항도 파괴되었다. 시위대의 요구도 경제적 차원에서 정치적인 것들로 변화되기 시작했다. 러시아 언론들은 시위대가 최고권력자인 누르술탄 나자르바예프 전 대통령의 퇴진, 의회해산 등을 요구했다고 보도했다. 30년 집권한 나자르바예프는 대통령직에서 퇴임했음에도 여전히 커다란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주요 공직도 그에게 충성하는 인물들이 차지하고 있다. 또 석유산업이나 금융부문 등도 그의 친인척들이 장악하고 있기 때문에 부패 스캔들도 끊이지 않는다.

소련 붕괴 이후 러시아 군 개입은 처음

토카예프 현 대통령은 지난 1월 5일 나자르바예프를 안보회의 의장직에서 해임하고 자신이 겸임하기로 했다. 그는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하면서 러시아가 주도하는 집단안보조약기구(CSTO)에 시위 진압을 도와달라고 호소했다. CSTO에는 러시아와 카자흐스탄, 벨라루스, 타지키스탄, 아르메니아, 키르기스스탄 등 6개국이 가입하고 있지만 실질적으로는 러시아에 군투입을 요청한 것이다. 러시아는 다음 날인 1월 6일 2500명가량의 공수부대 병력을 투입하였다. 토카예프는 1월 11일에는 “사태가 안정되었다”며 “러시아군은 이틀 뒤부터 철수를 시작하여 10일 이내에는 완전히 철수할 것”이라고 말했다.

카자흐스탄 내무부에 따르면 이번 사태로 1월 11일까지 1만명 이상이 구금되었다. 사망자에 대한 공식 통계는 아직 없지만 스푸트니크 카자흐스탄통신은 지난 1월 9일 164명이 사망했다고 보도했다. 우크라이나 뉴스는 알마티에서만 어린이 2명을 포함 103명이 사망했다고 보도했다. 토카예프 대통령은 이번 사태가 카자흐스탄 역사에 ‘알마티 비극’으로 기록될 것이라며 “독립 30년 내에 가장 커다란 위기였다”고 말했다. 그는 또 평화롭게 시위한 사람들의 정치적인 요구는 충족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카자흐스탄 시위 사태의 실상은 여전히 미스터리이다.

러시아군이 구소련 공화국의 국내 사태에 개입한 것은 소련 붕괴 이후 30년 만에 처음이다. 카자흐스탄 사태 이전 키르기스스탄에서도 시위대에 의한 정부 붕괴 사태가 수차례 발생한 적이 있었지만 당시 러시아는 키르기스스탄 정부의 개입 요청을 거부했다. 지난해 벨라루스 민주화 시위 당시에도 러시아는 개입하겠다는 위협만 가했을 뿐 직접 군대를 파병하지는 않았다. 이러던 러시아가 이번에 카자흐스탄에는 직접 군대를 파병한 것이다. 당연히 미국은 강력하게 반발했다.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은 지난 1월 6일 “러시아가 다른 국가에 발을 들이면 쉽게 나오지 않는다는 것은 최근 역사에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이라며 우려를 표명했다.

토카예프 대통령은 러시아에 파병을 요청한 가장 큰 이유로 “외부의 테러리스트들이 개입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러시아 측도 같은 주장을 펴고 있다. 콘스탄틴 코사체프 러시아 연방위원회 부의장은 러시아 미디어 베도모스치와의 1월 7일 인터뷰에서 “외부의 과격한 이슬람주의 세력이 개입했다”고 주장했다. “시위는 어떤 경제적·정치적인 목적을 지닌 것이 아니라 국가전복 및 국권탈취를 목표로 하는 폭동이자 쿠데타였다.… 잘 훈련된 전사들이 군중을 조종하였다. 카자흐스탄의 국가로서의 존립에도 위해가 되는 사태였다. 국가로서의 존립이 불가능해지면 지역 전체에 위협이 된다.” 러시아 국립국제관계대학(MGIMO)의 안드레이 카잔체프 교수는 “이슬람주의자들에게 세뇌당한 청년들”이 사태를 일으켰다고 주장했다. “청년들의 조직문화에는 범죄조직의 가치와 이슬람주의가 공존한다. 그들은 대도시 대중운동의 중심이 되었다”는 설명이다. 그는 또 카자흐스탄 특유의 ‘유목민 정서’를 시위 원인으로 꼽았다. “카자흐스탄 풀뿌리 수준에서는 ‘유목민 민주주의(nomadic democracy)’ 전통이 강하다. 카자흐스탄에서 강력한 권위주의적 통치는 비정상적”이라는 것이다. 그는 시위 원인을 전·현직 대통령인 나자르바예프-토카예프의 이중권력 체제에서 찾기도 했다. “탈중앙화된 청년 이슬람주의 테러리스트들의 조직문화가 나자르바예프-토카예프 이중권력의 권위주의 체제로 인한 피로감과 사회경제적 피로감을 덮쳤다.… 이번 시위의 특징은 뚜렷한 야당지도자들이 없다는 점이다. 폭동은 민초 수준에서 일어났으며, 당국은 협상할 상대조차 없다. 카자흐스탄의 정치엘리트들은 이러한 사태에 준비가 되지 않았으며 혼란스러워하고 있다. 폭동 발생 직전까지도 엘리트들은 (전·현직 대통령의) 두 개의 권력으로 분열되어 있었다. 과거에 시위대를 무자비하게 진압했던 보안군이 무력해진 것도 이 때문이다.”

“엄청난 권력투쟁이 진행 중”

전·현직 대통령의 갈등이 사태의 원인이라는 점에는 서방 측 언론들도 동의하고 있다. 미국 CNN은 카네기재단의 폴 스트론스키 연구원의 말을 인용, “엘리트들 사이에서 엄청난 권력투쟁이 진행되고 있다”며 “결과를 예상하기는 어렵다”고 보도했다.

나자르바예프는 소련 붕괴로 독립한 카자흐스탄에서 1990년 4월부터 대통령으로 재임했다. 2007년 의회는 그에게 무제한으로 대통령에 선출될 수 있도록 허용하였다. 2015년 나자르바예프는 97.75%의 지지로 5번째로 대통령에 선출되었다. 그의 임기는 2020년까지였다. 그런데 2019년 3월 집권 30년을 맞아 돌연 사임을 결정했다. 그리고 다음 대선까지 토카예프 상원의장이 대통령 권한대행이 되었다.

그러나 나자르바예프가 사임한다고 권력을 완전히 내려놓은 것은 아니었다. 그는 권력이양을 이전부터 신중하게 준비하였다. 2000년에 초대 대통령을 ‘엘바시(Elbasy·국가지도자)’로 칭해 종신토록 국가가 경호하고 명예를 보장하는 등 초대 대통령의 특별한 지위를 정한 헌법안을 통과시켰다. 사임 1년 전에는 안보회의법도 통과시켰다. 안보회의 의장은 헌법상 ‘엘바시’로 지정된 초대 대통령이 종신토록 유임한다는 내용이었다. 카자흐스탄에서 안보회의는 국가안보 및 법과 질서 유지를 위해 군과 경찰의 활동을 포함한 일체의 정부 활동을 조정하는 헌법기관이다. 안보회의 의장은 대통령 못지않은 권한을 행사한다. 이 같은 나자르바예프의 권력이양 방식에 대해 종신집권을 꾀하는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연구한다는 보도가 나오기도 하였다.

당초 토카예프도 대통령직 취임 일성으로 “엘바시의 의견은 전략적 결정을 하는 데 최우선으로 중요하다”며 나자르바예프의 권력을 인정하는 발언을 했다. 그는 또 카자흐스탄의 수도 이름을 아스타나에서 나자르바예프의 이름인 ‘누르술탄’으로 바꾸고, 모든 도시의 중앙로 이름도 ‘나자르바예프’로 바꾸도록 하였다. 이는 소련 시절 모든 도시의 중앙로를 ‘레닌거리’로 명한 것을 연상시키는 우상화작업이었다.

지난해 8월 모스크바를 방문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회동한 토카예프 카자흐스탄 대통령(왼쪽). ⓒphoto 뉴시스
지난해 8월 모스크바를 방문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회동한 토카예프 카자흐스탄 대통령(왼쪽). ⓒphoto 뉴시스

대통령직만 내려놓고 우상화작업 몰두

여기서 보듯 토카예프는 제한적으로만 권력을 획득했다. 그러자 정치엘리트들은 누구에게 충성해야 할지 집중할 수가 없었다. 일반 시민들도 절반의 정권이양을 그리 심각한 변화라고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러시아 언론들은 전했다. 당초 나자르바예프의 후계자로 가장 유력했던 인물은 나자르바예프의 조카인 사마트 아비시였다. 정보기관인 국가보안위원회(KNB) 제1부의장인 사마트는 나자르바예프의 동생인 사티발다의 아들이다. 사티발다는 34세 때 자동차 사고로 사망했다. 2013년 나자르바예프는 당시 38세의 사마트를 러시아 푸틴에게 데려가 후계자로 소개했다고 카자흐스탄 언론들도 보도한 바 있다. KNB 제1부의장직은 사마트 전에는 나자르바예프의 맏사위가 맡았던 요직이다. 사마트는 카자흐스탄과 러시아의 정보기관학교를 나왔으며 현역 중장이다. 2018년 12월 카자흐스탄의 한 정치학자가 텔레그램 채널을 통해 차기 대통령 후보에 대한 여론조사를 벌인 적이 있었다. 600명이 참가한 당시 조사 결과 사마트가 1위, 토카예프가 2위였다. 그다음이 나자르바예프의 장녀인 다리가 상원의원, 국립은행을 운영하는 나자르바예프의 사위 티무르 등이었다. 나자르바예프의 가문은 이처럼 카자흐스탄의 군, 정보기관, 금융, 석유사업 등을 모두 차지하고 있다. 이 때문에 이행기 권력이라고 평가되는 토카예프와의 갈등도 심각했다.

나자르바예프의 권력을 인정하면서 순종하는 듯하던 토카예프의 반란이 결국 이번 사태의 원인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CNN은 토카예프가 민심을 활용하여 이번에 나자르바예프에 선제공격을 가했다고 전했다. 팬데믹으로 실업이 늘고 물가가 급등하여 국민들이 살기가 점점 더 어려워지는 상황에서 부패한 나자르바예프 가문에 대한 원성이 자자해지자 선제공격을 날렸다는 것이다. 지난 1월 5일 나자르바예프를 안보회의 의장직에서 해임하고 자신이 겸임한 것, 나자르바예프가 임명한 총리를 해임한 것, 수도를 ‘누르술탄’이라고 부르지 않기로 결정한 것 등이 이의 방증으로 해석된다. 정보기관 KNB의 수장인 마시모프 해임도 중요하다. 분석가들은 1월 4일 마시모프가 토카예프에게 와서 나자르바예프의 신뢰를 잃었다면서 “당신의 시간은 끝났다”고 전했다고 지적한다. 하지만 바로 다음 날 토카예프는 마시모프를 해임하고 자신의 경호실장을 KNB 수장으로 임명했다. 토카예프를 지지하는 한 정치학자는 마시모프 등이 테러리스트들의 도움으로 “알마티를 수도로 만들려 하였다”는 주장도 폈다. KNB가 선동가들을 은밀하게 양성하고 외국의 테러리스트들의 잠입을 방조했을지 모른다는 주장이다. 고위직들이 직접 쿠데타에 가담했다는 주장도 했다. 그는 “마시모프가 KNB를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진 괴물로 만들었다”며 쿠데타를 음모한 고위인사들에 대한 “신속한 숙청이 진행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카자흐스탄의 최고권력자인 나자르바예프 전 대통령. ⓒphoto 뉴시스
카자흐스탄의 최고권력자인 나자르바예프 전 대통령. ⓒphoto 뉴시스

현직 대통령을 지지하는 푸틴

토카예프가 대담한 행동을 취한 것은 러시아 푸틴에게 보험을 들었기 때문이라고 서방 측 연구자들은 분석하고 있다. 토카예프의 군투입 요청에 러시아가 바로 응답함으로써 푸틴이 그의 뒤를 봐주고 있다는 사실을 과시했다는 것이다. 지난해 12월 28일 이미 러시아의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푸틴이 나자르바예프와 토카예프를 접견했을 때에도 푸틴은 토카예프와만 양자회담을 갖고 사진을 찍었다. 1월 5일 이후에도 푸틴이 토카예프와는 대화했다고 크렘린은 발표했지만, 나자르바예프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토카예프는 지난 1월 11일 러시아군의 조속한 철수를 약속하고 공익펀드 조성을 지시하며 나자르바예프에 대한 공격을 이어갔다. “초대 대통령 덕분에 국제적 기준에서 보더라도 아주 이익을 많이 본 회사들과 부자들이 생겨났다. 나는 이들이 카자흐스탄 국민에게 감사를 올리고 국민들을 체계적이고 정기적으로 도울 때가 되었다고 믿는다.” 그는 정부에 기부금을 낼 기업들을 선정하고 기부금 액수도 정할 것을 지시했다. 펀드의 명칭도 ‘카자흐스탄 국민들에게’라고 정했다. 그는 또 관리들과 의원들의 봉급을 5년간 동결하라고 지시했다.

그러나 토카예프가 권력을 완전히 장악했다고 보는 언론은 거의 없다. 러시아의 분석가들조차도 시위 사태의 재발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코메르산트는 “이번 시위의 특징이 네트워크적이라는 것”이라며 “시위 지도자가 없기 때문에 당국이 협상할 수도 없다”고 분석했다. 이 미디어는 또 “카자흐 시민들이 합법적으로 시위할 제도적인 변화나 정치개혁이 없으면 사태가 재발할 가능성은 매우 크다”고 전망했다. 미국 카네기재단의 스트론스키도 “러시아가 카자흐스탄 권력투쟁을 종식시킬지는 의문”이라며 “카자흐스탄의 중산층은 러시아에 의존하는 것은 반대한다”고 말했다.

러시아군 끌어들이자 미국의 경고 이어져

나자르바예프는 러시아-미국-중국 등과 모두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였다. 그런데 이번 시위 사태를 거치면서 토카예프는 러시아에 밀착하며 미국의 강력한 반발을 사게 되었다. 토카예프는 지난 1월 11일 외부세력의 개입을 또다시 주장하며 “조만간 전 세계에 테러리스트들의 공격 증거를 보여주겠다”고 공언했다. 그러나 미국은 러시아와 토카예프에 대한 경고를 지속적으로 보내고 있다. 1월 7일 토카예프가 정부군에 “시위대를 경고 없이 사살하라”고 명령한 데 대해 미 국무부 네드 프라이스 대변인은 “인권 위반이 발생하여 사상자가 일어날 가능성을 우려한다”며 카자흐스탄 당국에 자제를 촉구했다. 프라이스 대변인은 1월 12일에도 러시아군의 “조속한 철수”를 요청했다.

독립 이후 태어난 카자흐스탄 청년들은 러시아에 적대적이며 민족주의 성향이 강하다고 러시아 언론들은 우려하고 있다. 아직은 러시아어가 공용어이지만 나자르바예프는 2017년 카자흐어도 2025년까지는 라틴 알파벳으로 표시하도록 법을 제정했다. 러시아어 사용금지 운동도 맹렬하게 전개되어 왔다고 러시아 미디어 베도모스치가 최근 전했다. ‘언어경찰’이라고도 불리는 카자흐민족주의자들이 공공기관들을 순찰하며 사람들에게 카자흐어를 사용하도록 요구하며 비디오로 녹화할 정도라고 이 미디어는 보도했다.

러시아군을 불러들여 권력을 장악한 것으로 보이는 토카예프가 넘어야 할 난제들이 너무 많아 보인다.

우태영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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