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청송군 진보면에는 지난 2008년부터 쓰레기소각장이 가동 중이다. 하루 처리 용량 10t 규모로 그리 크지는 않지만 청정한 시골마을에 들어선 쓰레기소각장에 대해 주민들이나 시민단체의 반대가 있었을 법하다. 하지만 이 쓰레기소각장은 그런 반대에 부딪힌 적이 없다. 오히려 국내외에서 견학을 오는 등 이 지역의 ‘명물’로 자리잡았다.

이 쓰레기소각장이 기존의 소각장과 차별화되는 것은 핵심 기술인 ‘플라스마 토치’ 방식에 있다. 섭씨 800도에서 쓰레기를 태우는 기존의 ‘스토커’ 방식이 아니라 1600도까지 온도를 높여 용융(熔融·녹여 섞음)시키기 때문에 가스까지 완전 연소시킨다. ‘슬래그’라고 불리는 찌꺼기도 남지 않고 쓰레기가 모두 분해돼 무기물만 남는다. 논란이 돼온 다이옥신 같은 유해물질도 나오지 않는다. ‘스토커’를 거친 쓰레기 재와 찌꺼기를 다시 ‘플라스마 토치’로 없애는 소각장은 다른 나라에도 있으나 쓰레기를 처음부터 ‘플라스마 토치’에 넣어 용융하는 소각장은 청송 소각장이 세계 최초다.

작년 9월 대덕연구개발특구에 들어선 한국형 차세대 초전도 핵융합 실험장치인 ‘KSTAR’. ⓒphoto 핵융합연구소
작년 9월 대덕연구개발특구에 들어선 한국형 차세대 초전도 핵융합 실험장치인 ‘KSTAR’. ⓒphoto 핵융합연구소

벤처기업인 애드플라텍이 개발한 이 ‘플라스마 토치’ 방식의 쓰레기소각장은 곧 부산에도 들어설 예정이다. 부산 강서구 송정동 20만㎡의 폐기물매립장에 청송의 10배 규모로 플라스마 쓰레기소각장이 건립된다. 이 매립장을 소유하고 있는 한국교원공제회와 애드플라텍을 인수한 GS칼텍스는 이곳에 플라스마 소각장을 짓기로 얼마 전 양해각서를 체결했다. 교원공제회 조경제 개발부장은 “부산 매립지에 플라스마 쓰레기소각장이 건설되면 세계 최대 규모가 될 것”이라며 “쓰레기 소각과 함께 플라스마 분해 과정에서 만들어지는 수소와 일산화탄소 혼합가스를 용융한 발전설비도 건설해 매각장에 들어설 태양광발전, 풍력발전과 함께 신재생에너지 복합발전 클러스터를 만들 계획”이라고 말했다.

플라스마, 생활 속으로

플라스마가 우리 생활 속으로 들어오고 있다. 물질의 제4의 상태인 플라스마를 응용한 각종 신기술이 세상을 속속 바꿔놓고 있다. 공해를 줄이고 쓰레기를 태우고 심지어 피부를 재생하는 데까지 플라스마가 쓰이고 있다.

경북 청송군 진보면에 있는 ‘플라스마 토치’ 방식의 쓰레기소각장.
경북 청송군 진보면에 있는 ‘플라스마 토치’ 방식의 쓰레기소각장.

플라스마는 초고온에서 원자가 쪼개져 원자핵과 전자로 분리된 상태를 말한다. 일반적으로 물질은 원자의 운동에너지가 증가함에 따라 고체·액체·기체 등 세 가지 상태를 이룬다. 그런데 기체의 온도가 섭씨 2000도쯤으로 올라가면 가스 분자가 쪼개져 원자 상태가 되고 약 3000도에서는 전자가 원자로부터 떨어져 나온다. 이렇게 전기적인 방전으로 인해 생기는 전하를 띤 양이온과 전자들의 집단을 플라스마라고 한다. 기체보다 훨씬 자유로운 상태이며, 흔히들 고체·액체·기체에 이어 물질의 제4의 상태라고 말한다. 이 상태에서 핵융합 반응이 일어나게 된다.

핵융합은 원자핵 몇 개가 합쳐지면서 에너지를 방출하는 현상을 말한다. 태양은 초고온의 플라스마 상태인 중심에서 수소원자핵들이 융합해 헬륨원자핵으로 바뀌는 과정에서 엄청난 양의 에너지를 생산한다. 이것이 지구의 모든 생명체가 살아 숨 쉬게 하는 태양에너지의 비밀이다. 태양은 99% 이상이 플라스마 상태이다. 장마철 하늘을 가르는 번개 역시 플라스마 상태다.

과학자들이 플라스마에 집착해온 첫 번째 이유는 무한 청정의 핵융합에너지를 만들어내는 열쇠가 여기에 있기 때문이다. 과학자들은 지난 반세기 동안 에너지의 무한 보고인 태양의 핵융합 반응을 지구상에서 실현하기 위해 노력해왔다. 그런데 핵융합으로 에너지를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섭씨 1억도 이상으로 뜨거운 플라스마를 어떻게 가둬두느냐가 최대의 관건이다. 이를 위해 연구자들이 개발해낸 것이 토카막(tokamak)이라 불리는 장치이다. 토카막 은 지구자기장의 14만배에 이르는 강력한 자기장의 힘을 이용해 플라스마를 가두는 거대한 도넛 모양의 장치로, 빙글빙글 돌아가며 플라스마를 가둔다. 이 토카막 장치에서 초고온의 플라스마를 얼마나 오랫동안 붙잡아두면서 제어할 수 있는지가 핵융합 반응의 성공 여부를 가른다.

핵융합발전 성공 땐 전기 무한생산

플라스마와 핵융합은 우리나라도 연구에 전력하는 분야다. 지난해 9월 대덕단지에 들어선 한국형 차세대 초전도 핵융합 실험장치인 ‘KSTAR(Korea Super conducting Tokamak Advanced Research)’가 핵융합발전을 향해 첫발을 내디딘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높이가 10m에 이르는 이 초대형 연구시설은 세계에서 6번째로 건설된 것으로, 이를 통해 수소가 안정적으로 핵융합을 일으킬 수 있는 플라스마 기술을 확보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쉽게 말해 태양의 핵융합을 지구상에 실현하기 위해 만든 실험 장치로, ‘땅 위의 인공태양’이라고도 불린다.

과학자들은 2045년경이 되면 핵융합발전 기술이 완성돼 인류가 전기를 무한대로 생산하는 시대가 열릴 것으로 보고 있다. 이 핵융합발전의 연료는 바닷물에서 얻는 삼중수소와 중수소로, 과학자들은 삼중수소 300g과 중수소 200g만으로 고리 원자력 발전소 1호기가 4일 동안 생산할 수 있는 200만㎾의 전기를 얻을 수 있다고 보고 있다. 바닷물 1리터로 석유 300리터의 에너지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이 과학자들의 계산이다. 인류가 핵융합발전기술만 완성하면 무궁무진한 바닷물을 활용해 에너지 걱정에서 해방될 수 있다는 얘기다. 발전의 원료를 바닷물에서 쉽게 구할 수 있기 때문에 온실가스도 거의 발생하지 않고 석유고갈과 지구온난화도 동시에 해결할 수 있다.

하지만 이 핵융합발전은 아직 오랜 기간을 기다려야 그 결실을 맛볼 수 있다. 꼭 성공한다는 보장도 없다. 그래서 핵융합 관련 연구기관들은 당장 플라스마를 써먹을 수 있는 다양한 분야를 연구해 왔고 플라스마를 산업용으로 활용하기 시작했다.

저온 플라스마 산업용으로 활용

산업용으로 활용되는 플라스마는 섭씨 1억도가 넘는 초고온이 아니라 수천∼수만 도에서 1000도 이하에 이르는 ‘저온’ 플라스마다. 과학계에서 플라스마를 활용한 환경산업으로 가장 역점을 두는 것이 자동차의 배기가스를 줄이는 일이다. 자동차 배기가스에 포함돼 있는 유해화합물인 낙스(NOx)와 삭스(SOx)가 배출되는 통로에 플라스마 발생장치를 부착하면, 배기가스가 통과하면서 낙스와 삭스가 무해한 물질로 분해된다. 유해가스를 수증기와 산소로 바꿔주는 것이다. 플라스마의 전자가 배기가스 분자에 충돌하면서 화학반응으로 오염물질을 분해하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지난해 8월 대덕연구개발특구에서 열린 ‘2009 주니어 닥터 프로그램’에 참가한 학생이 ‘플라스마 볼’을 만져보고 있다.
지난해 8월 대덕연구개발특구에서 열린 ‘2009 주니어 닥터 프로그램’에 참가한 학생이 ‘플라스마 볼’을 만져보고 있다.

유해 배기가스인 탄화수소, 일산화탄소를 이산화탄소와 수증기로 바꿔주는 기존의 디젤산화촉매(DOC) 장치는 고가의 백금이 촉매로 사용된다. 또 소모재인 백금 촉매를 다 쓰게 되면 DOC 장치를 통째로 바꿔줘야 한다. 하지만 플라스마 반응기를 장착하면 장치에 쓰이는 백금의 양을 84%까지 줄이면서 똑같은 효율로 배기가스를 처리할 수 있다. 플라스마 반응기를 장착한 배기가스 저감장치는 현재 경유차 등에 쓰이고 있다.

쓰레기소각장에도 플라스마 발생장치(토치)를 설치하면 굴뚝에서 배출되는 유해가스를 말끔히 제거할 수 있다. 기존 쓰레기소각장에서 나오는 매연에 공해물질이 많이 들어 있는 것은 물질이 완전히 연소되지 않은 상태로 배출되기 때문이다. 주로 선천성 기형아나 각종 암을 일으키는 다이옥신과 같은 맹독성 화학물질이 뿜어져 나온다.

물질이 연소한다는 것은 산소와 결합하는 화학반응이다. 지구 대기의 5분의 1은 산소다. 그러나 대기 중에 존재하는 산소는 두 개의 산소원자가 결합돼 만들어진 산소분자 상태로 존재한다. 산소분자는 매우 안정된 상태여서 다른 물질과 잘 결합하지 않는다. 하지만 원자 상태의 산소는 화학적 활성도가 높아 다른 원소와 잘 결합한다. 따라서 어떤 방법으로든 공기 속의 산소분자를 분리해 산소원자를 만들어낸다면 공해물질을 배출하지 않고 물질을 완전히 소각할 수 있다. 그것이 바로 플라스마 상태이다.

공기를 이온화해 플라스마 상태를 만들면 여기에는 많은 양의 산소분자 이온이 포함된다. 이 산소분자 이온이 전자와 재결합하면 두 개의 산소원자가 만들어지고, 산소원자는 주위의 물질과 쉽게 결합하게 돼 완전 연소가 가능하다. 플라스마 토치는 이러한 원리로 독가스를 완전 분해한다. 따라서 가장 이상적인 폐기물 처리장치로 꼽힌다.

질병치료·피부재생… 응용 분야 수두룩

플라스마를 사용하거나 응용할 수 있는 분야는 수두룩하다. 플라스마를 발생시켜 만든 활성수를 채소에 뿌려 일시적으로 성장을 멈추게 해 출하시기를 조절하거나, 과일이나 꽃에 분무해 신선도를 오래 유지하려는 연구도 진행되고 있다. 심지어 플라스마를 응용해 병든 조직을 제거하거나 상처를 소독하는 등 의료분야에도 적용시키려 하고 있다. 텅스텐 바늘에 고주파 전압을 걸어 소자를 만들면 손에 닿아도 위험하지 않은 저온의 이온화 기체가 생성되어 세포를 제거하거나 상처를 아물도록 할 수 있다.

플라스마를 이용한 ‘플라스마 피부 재생술(PSR)’도 뜨고 있다. 이 치료법은 플라스마가 피부에 직접 접촉하지 않고 피부 속 조직에만 전달돼 표피를 손상시키지 않으면서 각종 얼굴주름과 잡티, 검버섯, 여드름 흉터, 넓은 모공 등을 동시에 개선할 수 있다는 게 특징이다.

플라스마는 국가적인 차원의 R&D 대상이기도 하다. 국가핵융합연구소(소장 이경수)는 지난 3월 16일 전북 군산시 군장산업단지 내에 6만여㎡ 규모로 융복합플라스마 연구센터를 지을 계획이라고 발표했다. 플라스마 응용기술을 반도체, 디스플레이, 환경, 에너지 등에서 상용화하는 거점으로 키우겠다는 것이다. 우선 태양전지, 수소생산, 대기 및 토양오염 처리를 3대 상용화 원천기술 개발분야로 선정했고 반도체, 디스플레이, OLED(유기발광다이오드) 등으로 응용분야를 확대해 나간다는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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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자 과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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