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8년 EU가 독자적 위성항법시스템인 ‘갈릴레오 프로젝트’를 위해 쏘아올린 인공위성 ‘지오베-B’. ⓒphoto 조선일보 DB
지난 2008년 EU가 독자적 위성항법시스템인 ‘갈릴레오 프로젝트’를 위해 쏘아올린 인공위성 ‘지오베-B’. ⓒphoto 조선일보 DB

러시아 국방부가 지난 2월 26일 글로벌위성항법시스템(GNSS·Global Navigation Satellite System)인 글로나스(GLONASS) 구축을 위해 23번째 통신위성(GLONASS-K)을 정상궤도에 쏘아 올렸다. 글로나스는 우리에게 친숙한 미국의 위성위치확인시스템 GPS와 동일한 러시아판 GPS다. 러시아는 GNSS 완성을 위해 올해 중 24개의 인공위성과 2개의 예비위성을 모두 지구궤도에서 운영할 예정이다.

글로벌위성항법시스템은 지구를 도는 인공위성의 네트워크 정보를 이용해 지상에 있는 목표물의 위치와 고도, 속도를 알아내는 장치다. 미사일 유도 같은 군사적 용도나 항공기·선박·자동차 등의 항법장치에 이용되는데 그중 대표적 시스템이 미국의 GPS다. 러시아는 글로나스, 유럽은 갈릴레오(Galileo), 중국은 베이더우(北斗·영문명 COMPASS), 일본은 준천정(準千頂·QZSS)이라고 부른다.

미국·러시아·유럽 등 우주강국들의 ‘제2의 우주전쟁’이라고 할 수 있는 ‘GPS 개발 경쟁’이 치열하다. 세계는 왜 이토록 위치 확인에 관심을 쏟으며 경쟁을 벌이고 있는 것일까? 이는 미국에만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는 위험에서 벗어나 국가 안전 보장을 확고히 하기 위함이다. 미국은 전세계를 대상으로 GPS(Global Positioning System) 서비스를 공짜로 제공하고 있고 세계 여러 나라가 이를 이용하고 있다. 미국은 GPS 운용에 매년 7억5000만달러(약 7040억원)의 비용을 쓰고 있다.

미국의 GPS 차단 우려해 러시아 독자 구축

GPS는 원래 미국 국방부가 미사일을 유도하기 위해 1978년부터 구축한 군사용 네트워크다. 크루즈 미사일이 목표를 정확하게 타격하고 CIA요원이 적지에서 임무를 수행하는 데 이르기까지 미국 우주전략의 근간이 GPS다. 최대 3m 이내의 물체를 추적할 수 있다.

그런데 1983년 대한항공 007기 격추사건 이후 레이건 대통령의 지시로 군사기밀에서 해제되어 공공용으로 용도가 변경되었고 1996년 GPS의 상업용 잠재력을 깨달은 클린턴 행정부가 정보통신 인프라로 성격을 재규정하면서 GPS 좌표값이 본격적으로 민간에 개방되기 시작했다. 서울의 시내버스가 탑승거리에 따라 승객의 버스요금을 자동으로 계산하고, 차량의 내비게이션 장치가 지름길을 찾아주며, 비행기나 선박이 안전한 항로를 따라 항해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이 GPS 신호 덕분이다.

GPS의 오차율은 군사용이 3m, 민간용은 15m이다. 이는 실제로 차가 도로 위에 있지만 GPS상에서는 15m 앞에 있는 강에 빠졌다고 인식할 수도 있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만일 미국이 오차범위를 조작해 100m쯤으로 더욱 확대한다면 어떻게 될까. 항공기가 공중에서 충돌하거나 미사일이 엉뚱한 곳에 떨어지는 등 GPS를 바탕으로 운영되는 각종 항법 체계가 단번에 무너질 것이다. 군사적으로 적을 무너뜨리기 위해 미국이 달리 마음을 먹을 수도 있다는 얘기다.

실제로 미국은 1991년 이라크전 당시 작전지역에서 GPS 이용을 막기 위해 미군을 제외한 다른 사용자들의 GPS 수신기의 오차범위를 100m 이상으로 높여 무력화시키는 등 군사적으로 이용한 사례가 있다. 미국은 또 필요할 때는 언제든지 목표 지역 상공에서 GPS 신호를 차단할 수 있는 기능을 탑재한 GPS-3 시스템을 2012년까지 구축할 계획이다. 세계 각국이 독자적인 글로벌위성항법시스템을 갖추려는 이유는 이처럼 미국의 정책에 따라 GPS 먹통 사태가 올 수 있다는 위기의식 때문이다.

러시아가 자체적으로 글로나스를 구축하려는 이유 또한 미국이 유사시 시스템 접근을 차단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글로나스는 옛 소련 시절의 시스템을 재건하려는 것이다. 옛 소련은 1982년 글로벌위성항법시스템 구축을 시작해 1991년 24개의 위성을 모두 띄우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소련 붕괴 후 유지·보수에 실패해 2001년에는 8개의 위성만 남게 됐다. 그러던 중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재건에 나서면서 지난 10여년간 자체 위성 위치정보시스템 구축에 힘을 쏟고 있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러시아 영내에서 군사나 민간 목적으로 글로나스를 운용하려면 18기의 위성이 필요하다. 하지만 러시아는 한 발 더 나아가 세계 전역을 커버하기 위해 24개의 인공위성을 쏘아 올리려는 중이다. 올해 안으로 추가 위성 발사가 완료되면 미국의 GPS에 맞서는 러시아 자체 위성 위치정보시스템이 구축되는 것은 물론 인공위성을 이용한 미사일 표적 조준이 가능해진다.

24개 인공위성 필요

미국의 GPS 인공위성 개념도
미국의 GPS 인공위성 개념도

인공위성이 없으면 GPS도 없다. GPS에서는 모두 24개의 인공위성에서 발신하는 전파(마이크로파)를 수신자의 수신기에서 수신하여 수신기의 위치를 결정한다. 24개의 GPS 인공위성이 약 2만㎞ 상공에서 하루에 두 번씩 지구 둘레를 돌며 지구상의 수백만 개 GPS 단말기에 1초마다 위치값을 송신하고 있다. 그렇다면 GPS에서는 왜 24개의 인공위성을 필요로 하는 것일까.

24개의 인공위성들은 2만㎞ 상공의 6개 회전궤도상에 각 60도마다 4개가 배치되어 일정한 간격을 두고 돌고 있다. 지구상의 어떤 위치에서도 4개 이상의 위성이 보이도록 설계돼 있다. 이는 지구가 평면이 아니라 둥근 입체 모양이어서 위치 하나를 찾기 위해서는 4개의 GPS 위성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기본적으로 위치 측정은 GPS 수신기의 삼각측량법에 의해 이뤄진다. 2차원에서의 삼각측량법을 실제 환경인 3차원 공간상에 적용한 것으로 이해하면 된다. 2차원상에서 삼각 측량법은 위치를 알고 있는 두 점을 각각 a와 b라 하고 미지의 한 점을 x라고 했을 때 a, b의 위치, 그리고 이 두 점과 x 사이의 거리를 이용해 미지의 점 x의 위치를 구하는 방법이다. 3차원상에서는 위치를 알고 있는 세 개의 점이 필요한데 이 점에 해당하는 것이 GPS 위성이다. 따라서 최소한 세 개의 인공위성이 필요하다. 그러나 시계가 완전히 정확하지 않기 때문에 오차를 보정하고자 보통 네 개 이상의 인공위성이 보내오는 정보를 모아 정확한 시간과 거리를 측정해 현 위치를 결정한다.

4개의 GPS 장치 원리는 번개가 쳤을 때 소리가 도착할 때까지의 시간을 재 얼마나 먼 곳에서 번개가 발생했는지 알아내는 것과 비슷하다. 위성이 하나만 있다면 내가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장소를 확인할 수 없다. 예를 들어 1월 1일 오전 7시의 서울 모습을 찍고 싶은데 그때 위성이 미국 뉴욕 위에 있다면 서울을 촬영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그러나 24개 위성을 한꺼번에 이용하면 세계 어느 곳이라도 실시간 관측이 가능하다. GPS 연결용으로 많은 위성을 쏘아 올리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유럽은 민간 전용 네트워크 구축

GPS가 먹통이 될 때를 대비해 유럽연합(EU)은 2002년부터 ‘갈릴레오’라는 새로운 위성항법시스템을 추진해 왔다. 하지만 재원 조달의 어려움과 유럽연합 회원국 간 이견 등으로 제자리걸음을 해오다 2005년 12월 첫 위성인 ‘지오베(GIOVE)-A’를 발사했고, 2008년에 지오베-B와 지오베-A2 위성을 발사했다. 갈릴레오 위성항법시스템은 군사용으로 개발된 미국의 GPS나 러시아의 글로나스와 달리 민간 전용이라는 데 의미가 크다.

유럽연합은 갈릴레오 위성 30개를 2014년까지 쏘아 시스템을 구축할 예정이다. 유럽연합이 자체적으로 민간 네트워크를 구축하려는 목적은 만약에 미국 GPS 시스템이 이틀간 고장이 날 경우 유럽의 수송 분야에 2억유로 이상의 손실을 입을 만큼 의존적인 상태에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개발 비용이 만만찮아 이스라엘·모로코·사우디아라비아·우크라이나 등 유럽이 아닌 나라들도 함께 참여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2006년에 협정을 체결했다.

위성항법시스템 위성 총 131개

나브스타 위성항법장치가 탑재된 미국의 군사위성 델타2 로켓.
나브스타 위성항법장치가 탑재된 미국의 군사위성 델타2 로켓.

중국판 GPS도 가속 중이다. 중국은 2000년부터 베이더우 시스템 구축을 시작했는데 현재 5개의 위성으로 중국 영토를 커버하는 1차 시스템을 가동 중이다. 군사용으로만 사용하고 있다. 미국에 의존하지 않는 중국판 GPS를 만들려는 중국의 목적은 항공모함의 건조와 운용을 위해서다. 항공모함과 미사일 구축함, 그리고 함재기와의 밀접한 데이터 링크는 독자적인 GPS 시스템이 없이는 무용지물이나 다름없다. 따라서 유사시 미국이 GPS 시스템을 조절하면 중국의 항공모함 운용은 큰 혼란에 빠지게 된다.

중국은 2012년까지 10여개의 위성을 쏘아 올려 네트워크를 구축해 아시아태평양 지역을 커버하고 2020년까지는 5개의 정지위성과 30개의 궤도위성을 배치해 지구 전역의 위치정보를 서비스할 방침이다.

일본도 지난해 9월 준천정위성시스템을 구성할 첫 위성을 성공적으로 발사하면서 탄력이 붙고 있다. 글로벌 규모는 아니지만 지역항법 서비스로서 3기의 위성과 GPS 시스템이 결부돼 일본의 모든 지역에 대한 고정밀 위치정보를 제공하려는 게 목적이다.

인도 정부 또한 2006년 5월 인도판 GPS인 IRNSS의 개발 계획을 발표했다. 2012년에 7개 위성으로 구성된 시스템을 완료할 예정인데 3개의 위성이 정지궤도에 위치하고 적도면에서 29도 경사각을 가진 지구동기궤도에 4개의 위성이 배치될 예정이다.

2013년경에는 글로벌위성항법시스템으로 약 131개의 위성들이 우주공간을 움직인다. 북한의 미사일 위협이 계속되고 있는 마당에 우리도 미사일 요격 시스템을 최대한 빨리 구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언제까지 우리 항공기와 무기의 이동경로를 미제 GPS로만 살펴봐야 하겠는가.

김형자

과학칼럼니스트. 월간 과학잡지 Newton 전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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