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코로나19 사망자가 5만명을 넘어선 지난 4월 23일(현지시각)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정례 코로나19 TF 브리핑에서 살균제로 코로나19 치료를 검토해보라고 말해 미국이 발칵 뒤집혔다. 트럼프 대통령의 과학적 근거가 없는 충동적 발언에 대해 각계각층에서 반박과 비난이 쏟아졌다. ⓒphoto 뉴시스
미국의 코로나19 사망자가 5만명을 넘어선 지난 4월 23일(현지시각)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정례 코로나19 TF 브리핑에서 살균제로 코로나19 치료를 검토해보라고 말해 미국이 발칵 뒤집혔다. 트럼프 대통령의 과학적 근거가 없는 충동적 발언에 대해 각계각층에서 반박과 비난이 쏟아졌다. ⓒphoto 뉴시스

“만약 사람 몸에 엄청난 양의 자외선이나 빛을 쪼이면 어떨까? 소독약(disinfectant)을 인체에 주입하거나, (소독약으로) 세척하는 방법이 있을까? 소독약을 폐 속으로 넣는다면 흥미로울 것이다.”

누가 보더라도 과학 상식을 완전히 벗어난 엉터리 망언이다. 자외선은 피부암을 일으키고, 강한 빛은 독재자들이 좋아하는 고문의 수단이다. 락스는 피부에 닿는 것마저 조심해야 한다. 그런 망언이 미국 전역에 생방송되었고, 무려 500만명이 유튜브 채널을 통해 시청했다. 하찮은 시정잡배의 농담이 아니다. 놀랍게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백악관 기자회견에서 진지하게 내놓은 공식 발언이다.

미국의 최고 세포면역학자인 데보라 벅스 코로나19 조정관이 유탄을 맞았다. “열이나 빛으로 코로나19를 치료했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있느냐?” 대통령의 난데없는 질문에 브리핑에 배석했던 벅스 박사는 “잘 모르겠다”고 얼버무릴 수밖에 없었다. 미국의 기업들은 부랴부랴 소독약의 섭취를 금지한다는 긴급 경고를 내놓아야만 했다. 세계에서 가장 많은 노벨 과학상 수상자를 배출하고, 세계 최고의 보건의료 체계를 갖춘 과학강국에서 하루가 멀다 하고 벌어지는 황당한 일이다. 하루가 멀다 하고 쏟아내는 트럼프의 망언을 들어보자.

트럼프의 인식과는 너무 다른 미국의 현실

“(연방)정부가 모든 것을 통제하고 있다. 일부 (민주당 계열의) 주지사들과 가짜뉴스가 문제일 뿐이다.” 이런 트럼프의 인식은 미국의 현실과 달라도 너무 다르다. 현재 미국은 단연코 세계 1위의 감염 대국이다. 무려 530만명이 감염되고, 17만명이 사망했다. 전 세계 감염자의 25.9%와 사망자의 22.5%가 미국에서 발생했다. 지금도 매일 15만명의 확진자와 1000여명의 사망자가 발생한다. 코로나19 검사를 위해 하루 종일 줄을 서서 기다려야 하고, 그마저도 일주일을 기다려야 결과를 알 수 있는 나라는 미국뿐이다. 확진자에 대한 추적도 하지 않는다.

“치료제와 백신을 몇 달 안에 개발할 것이다.” 중국의 감염 상황을 강 건너 불 보듯 즐기던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3월 13일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하면서 자신만만하게 강조했다. 그런데 무려 26년이나 국립알레르기전염병연구소 소장을 맡고 있는 앤서니 파우치 소장의 생각은 달랐다. “치료제는 몰라도 백신 개발에는 적어도 1년6개월이 걸리고, 그마저도 확실하게 예단할 수 없다”는 옹색한 해명을 해야만 했다.

“검사(testing)가 문제다. 검사를 너무 많이 하면 당연히 감염자가 늘어난다. 제발 검사를 줄이자고 하고 싶다.” 진단키트를 이용해서 검사를 한다고 없었던 감염자가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정부가 감염자를 찾아내지 않는다고 코로나19의 확산이 줄어들고, 입원자·사망자가 줄어드는 것도 아니다. 직접 검사를 담당하고 있는 주지사들의 입장은 정반대다. 검사에 투입할 수 있는 연방정부의 지원이 아직도 턱없이 부족하다고 야단들이다. 전문가들도 검사를 더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미국의) 방역 정책은 환상적이고, 대단하고, 놀랍고, 엄청나고, 보기 드문 것이고, 세계 최고다.” 대선을 앞둔 트럼프 대통령의 엄청난 착각이다. 본격적인 감염이 시작되기도 전에 중국을 차단했다고 자랑하는데, 현재 미국에 번지고 있는 코로나19 바이러스는 대부분 유럽에서 유행하는 C형(G계열)이다.

턱없이 부족하다던 인공호흡기(respirator)를 너무 많이 생산해서 이제는 천덕꾸러기가 돼버렸다. 공병대를 동원해서 허겁지겁 만들었던 뉴욕시의 치료소와 연방정부가 떠들썩하게 파견했던 병원선(病院船)은 텅텅 비어 있다.

“어린이는 완전한 면역력을 가지고 있다. 학교 문을 열지 못할 이유가 없다.” 물론 아무 근거도 없는 억지다. 감염된 어린이들 중에서 치명적인 다기관염증을 일으키는 가와사키증후군이 확인되었고, 10세 이상의 청소년은 성인과 같은 정도의 전파력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도 과학으로 파악됐다. 더욱이 기저질환을 가진 교사·학부모·가족도 걱정해야 한다.

“하이드록시클로로퀸이 특효약이다. 더 이상 잃을 것이 없지 않은가. 왜 못 먹는가?” 트럼프 대통령 자신이 하이드록시클로로퀸을 복용했다. 미국의 대통령이 ‘더 이상 잃을 것이 없다’고 외치는 모습은 몹시 낯설다. 전 세계의 의료 전문가들이 경악했다. 말라리아 치료제에 의한 심혈관계 부작용을 걱정해야 한다는 것이 공통된 경고다. 식품의약품안전처(FDA)·질병통제예방센터(CDC)·의무감(Surgeon General)의 입장도 마찬가지다.

“개인적으로는 알지 못하지만, (그녀는) 매우 존경받는 의사이고, 대단한 여성이다.” 트럼프가 구설에 오른 스텔라 임마누엘을 칭찬한 이후 트위터는 관련 동영상을 삭제해버렸다. 코로나19에 대한 인포데믹(정보감염)을 걱정하는 기업의 자발적인 자정(自淨) 노력이라고 한다. 실제로 카메룬 출신으로 나이지리아에서 의학교육을 받은 것으로 알려진 임마누엘이 대법원 청사 계단에서 쏟아낸 발언은 당혹스러운 것이었다. ‘악령(demon)의 정자(精子)’와 ‘외계인의 DNA’를 들먹이는 주장은 누가 들어도 상식과는 거리가 먼 망언이었다. 그런 인물을 존경한다는 대통령의 주장은 위험을 무릅쓰고 방역에 헌신하고 있는 과학자와 의료진에 대한 도를 넘는 모욕이다.

“그렇다. 어쩌겠는가.(It is what it is.)” 하루에 1000명의 미국인이 사망하고 있다는 기자의 반복된 지적에 트럼프 대통령이 깊이 숨겨둔 속내를 드러냈다. “마스크를 쓰고 대통령·수상·독재자·왕·여왕을 맞이할 수는 없다”던 고집은 말이 그렇다는 것이었을 뿐이다. 코로나19만 두려운 것이 아니다. 11월 대선을 앞둔 그의 입장에서 ‘폭도(thug)’로 변해버린 유권자들도 걱정스러울 것이다.

“(코로나19는) 저절로 사라질 것이다. 기적처럼 사라질 것이다.” 여론조사에서 ‘졸리는 조(sleepy Joe)’에게 밀리고 있는 것이 분명해진 상황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며칠 전 힘없이 내뱉은 말이다. 훗날 트럼프 대통령의 수많은 코로나19 공식 발언 중에서 유일하게 과학적 진실에 비교적 가까운 직감(instinct)이 담긴 것으로 평가될 수 있는 발언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과학에 대한 몰상식과 거부감은 코로나19를 통해서 처음 드러난 것이 아니다. 사람은 한정된 에너지를 가지고 태어나기 때문에 건강 유지를 위한 운동은 불필요한 낭비이고, 어린이에게 백신을 접종하면 자폐증이 발생한다는 것이 그의 평소 소신이라고 한다. 그런 트럼프가 코로나19 백신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는 모습은 역설적이다. 전 세계가 걱정하는 기후변화도 중국이 만들어낸 엉터리 환상이라는 것이 미국 대통령의 소신이다.

우리 정치인들이 쏟아내는 망언도 만만치 않다. 원전·석탄은 위험하고, 더러워서 버려야 하고, 태양광·풍력·수소만 써야 하고, 4대강은 무조건 악(惡)이라고 한다. 과학 상식이나 과학적 합리성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가 없다.

이덕환 서강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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