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예나 우주센터에 있는 수퍼컴퓨터. ⓒphoto 뉴시스
독일 예나 우주센터에 있는 수퍼컴퓨터. ⓒphoto 뉴시스

지난 8월 11일 영국 포츠머스대학의 물리학과 멜빈 봅슨(Melvin Vopson) 교수는 앞으로 150~350년 사이에 지구상의 디지털 비트의 수가 원자 수를 넘어설 것이라는 계산 결과를 미국물리진흥협회 학술지 ‘AIP 어드밴시스’에 발표했다. 지금 추세로 디지털화가 계속된다면 세상은 디지털 비트와 컴퓨터 코드가 지배할 것이고, 앞으로 컴퓨터 기술이 빠르게 발전할 것을 감안한다 해도 대규모 ‘컴퓨터 농장’에 저장될 정보는 지구보다 더 많은 공간이 필요하다는 예측이다. 이쯤 되면 보이지 않는 위기이다. 과연 디지털 비트는 인류를 위협할 재앙으로까지 치달을까?

세상은 무엇으로 구성되어 있을까. 기본적으로 말하면 원자다. 원자들이 모여 분자를 이루고, 분자들이 결합하여 물질이 되고, 이들이 모여 기관이 되고 생명체가 된다. 우리가 들이마시고 내쉬는 공기, 우리를 감싼 옷과 머무는 집, 교통수단들도 모두 원자라는 기본단위체로 이루어져 있다. 즉 우리는 물리적 입자로 이루어진 물질세계에 살고 있다.

하루 25억GB, 디지털 정보 연 20% 성장

그런데 불과 반세기 만에 인간은 또 하나의 세상을 만들었다. 바로 디지털 세계다. 이 세계의 기본단위는 비트(bit)다. 비트는 0과 1, 단 2개의 수만 활용되는 이진법으로 표현된다. 전기가 통하는지 여부를 결정하는 스위치, 빛의 온·오프(On·Off), 전압의 고저 등 다양한 방식의 기기들이 비트를 활용해서 세상을 표현한다. 이를 통해 무게도 나가지 않고, 변화도 일어나지 않는 완전히 새로운 비트 원자를 얻게 된 것이다. 따라서 디지털 정보를 나타내는 비트는 액체와 고체, 기체, 플라스마에 이어 제5의 물질 상태가 되었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매체미학자 빌렘 플루서(Vilem Flusser)는 현실세계가 원자의 배열이 만들어낸 가상이라면 모니터를 통해 보는 디지털 세계 역시 픽셀(pixel)과 그 배열이 만들어낸 가상이라고 말한다. 이들의 차이는 단지 기본단위의 크기와 집적도의 차이일 뿐이라는 것. 지금 지구의 모든 물질은 물리적 원자와 디지털 정보로 재분배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디지털 세계가 만들어내는 하루 정보량은 얼마나 될까. IBM에 따르면 약 25억GB(기가바이트), 즉 20조비트라는 어마어마한 양이다. 봅슨 교수에 따르면 오늘날 존재하는 전 세계 데이터 양의 90%가 지난 10년 동안에 만들어졌고, 이러한 디지털 정보의 성장은 멈출 수 없을 것 같아 보인다고 한다. 특히 요즘 코로나19 대유행으로 재택근무와 스마트폰 사용이 늘면서 정보를 사용하고 생성해내는 양이 더욱 가속화하고 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이 추세로 정보량이 계속 늘어나면 어떻게 될까. 현재의 데이터 저장 밀도를 감안할 때 2025년의 전 세계 데이터 양은 175ZB(제타바이트)에 이를 것이라고 미국 저장장치업체 시게이트(Seagate)는 예측한다. 2018년의 33ZB에 비해 5배나 증가한 수치다. 만일 이 데이터를 블루레이 디스크에 저장해 쌓는다면 지구에서 달까지 거리보다 23배나 높은 두께가 될 것이다.

정보의 전력량은 어떨까. 약 130년 뒤 디지털 정보 생성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전력이 현재 지구상에서 생산되는 총전력량과 같아질 수 있다고 봅슨 교수는 말한다. 이는 정보량의 전력 수요가 전문가들의 예측보다 훨씬 빨리 지구의 한계에 도달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지구촌 데이터센터가 소비하는 전기량은 이미 전 세계 전력 생산의 1%를 넘어섰다.

데이터센터는 각종 데이터를 모아두는 시설로 서버를 적게는 수백 대, 많게는 수만 대를 동시에 운영한다. 전기 사용량이 많은 데다 계속 가동해야 하기 때문에 ‘전기 먹는 하마’라고 불린다. 따라서 데이터센터의 가장 큰 관심사는 전력 절감이다. 데이터의 폭증으로 인해 데이터센터를 운영하는 데 들어가는 에너지는 갈수록 막대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한편 봅슨 교수의 계산에 따르면 정보량은 매년 수십%씩 증가하는 중이다. 만약 디지털 데이터 생산의 연간 성장률이 계속 20%씩 높아진다면 350년 후엔 정보의 총량이 지구의 모든 원자 수보다 많아진다. 또 만약 매년 50%씩 강력한 성장률을 보인다면 150년 뒤 비트의 수가 지구상의 원자 수와 같아질 것이라는 분석이다.

봅슨 교수는 미래의 기술 발전으로 비트의 크기가 원자 크기와 비슷해진다 하더라도 디지털 정보의 양이 지구 전체보다 더 많은 공간을 차지하게 될 것이 분명하다고 말한다. 현재 1비트는 고성능 데이터 메모리에서 약 25제곱나노미터를 차지한다. 비트라는 말은 1948년 미국의 응용수학자 클로드 새넌(Claude Shannon)이 처음 사용했다. 미국의 저명한 통계학자 존 튜키(John Tukey)가 ‘바이너리 디지트(binary digit)’라고 적은 메모를 보고 이를 축약해서 ‘비트(bit)’라고 명명했다.

2245년 지구 질량의 절반이 디지털 정보로

디지털 정보량이 지구의 원자 수보다 많아지면 세상은 어떻게 될까. 이는 보이지 않는 정보 재앙으로 이어질 수 있음을 의미한다고 봅슨 교수는 말한다. 디지털 정보에도 질량이 있기 때문에 막대한 정보가 지구 질량을 위협할 수 있다는 것. 비트는 스핀과 전하가 없는 일종의 추상 입자다. 하지만 정보를 생산하거나 저장할 때 필요한 에너지에 해당하는 특정 질량을 가진다. 이를테면 하드디스크에 정보를 기록하면 미미하지만 질량이 증가하고, 그것을 측정할 수 있다는 게 봅슨 교수의 설명이다.

그에 따르면 정보 콘텐츠도 기존의 물리이론으로 다룰 수 있다. 아인슈타인의 특수상대성이론에서 질량-에너지 등가 관계를 나타내는 유명한 E=mc2 방정식(모든 에너지는 그에 상당하는 질량을 가진다)을 디지털 정보에도 적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를 적용할 경우 2245년에는 지구 질량의 절반이 디지털 정보 질량으로 변환될 수 있다고 그는 계산했다.

디지털 정보는 지구를 조금씩 변화시키는 과정에 있다. 인류 역사를 근본적으로 뒤바꾼 농업혁명, 산업혁명에 이어 디지털혁명이라는 거대한 물결이 우리에게 밀물처럼 밀려오고 있고, 이미 체험하고 있는 것처럼 우리는 정보의 홍수 속에 빠져 있다. 선별되지 않은 정보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면서 어떤 정보가 올바른 것인지조차 분간하기 어려울 때도 많다.

그렇더라도 우리가 데이터를 이용하려면 서버의 하드 드라이브와 같은 실제 공간이 필요하다. 따라서 언젠가는 상상을 초월할 비트 수의 질량, 이를 저장할 공간, 이를 위해 필요한 에너지가 지구의 한계를 초과할 지점에 도달할 수 있기 때문에 지금부터라도 이에 대비해야 한다고 봅슨은 경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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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자 과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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