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프린스턴대 포레스트 메거스 교수팀이 만든 ‘냉방 튜브’ 설치 집 모형. 벽과 천장에 냉방 튜브를 설치한 다음 17도의 차가운 물을 흐르게 한다. ⓒphoto newatlas.com
미국 프린스턴대 포레스트 메거스 교수팀이 만든 ‘냉방 튜브’ 설치 집 모형. 벽과 천장에 냉방 튜브를 설치한 다음 17도의 차가운 물을 흐르게 한다. ⓒphoto newatlas.com

최근 경기도 파주 스타벅스 야당역점에서 발생한 코로나19 집단감염의 원인이 에어컨 바람으로 추정되는 가운데, 에어컨을 대체할 냉방기술이 등장해 화제다. 에어컨처럼 바람을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 복사열을 이용해 문을 열어놔도 냉방이 가능한 장치가 개발된 것이다. 미국 프린스턴대의 포레스트 메거스 교수팀이 개발의 주인공이다.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대학, 미국 UC버클리, 펜실베이니아대학, 스위스 취리히연방공대 싱가포르 분원도 이 연구에 참여했다.

복사열 뺏는 ‘냉방 튜브’ 기술

냉방 방식에는 크게 두 가지가 있다. 대류냉방과 복사냉방이다. 대류냉방은 흔히 우리가 사용하는 에어컨이나 선풍기와 같은 기기를 이용하여 바람의 이동을 통해 공기를 차갑게 만들어 냉방하는 방식이다. 세계 과학자 239명이 발표한 연구에 따르면 에어로졸 전파는 에어컨 바람의 공기 흐름에 따라 최대 48m 떨어진 사람에게도 바이러스 전파가 가능하다.

반면 복사냉방은 복사열을 이용해 벽면이나 천장으로 차가운 냉각수를 이동시켜 공간을 차갑게 만들어주는 방식이다. 복사열은 공기 같은 다른 매개체를 통하지 않고 열이 직접 전달되는 현상이다. 열에너지가 전자기파 형태로 온도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전달된다.

메거스 교수팀은 이 중 복사냉방에 주목해 일명 ‘냉방 튜브(Cold Tube)’라는 솔루션을 개발했다. 직사각형 벽 또는 천장 패널의 배열을 통해 냉각수를 흘려서 벽을 차갑게 만들고, 복사를 통해 더 뜨거운 표면에서 더 차가운 표면으로 열을 자연스럽게 끌어들이는 방식을 적용한 냉방시스템이다. 사람으로부터 직접 방출되는 열을 흡수하여 작동한다.

예를 들어 사람이 냉방 튜브가 설치된 벽 패널 옆이나 천장 아래에 서 있다고 하자. 이때 온도가 높은 사람의 열은 사람 몸보다 차가운 벽이나 천장 패널에 빼앗겨 시원함을 느끼게 된다. 열복사에 의해 몸의 열기가 벽 쪽으로 빠져나가는 것이다. 겨울에 난로 근처에 있으면 따뜻함을 느끼는 것도 복사열의 이동 때문이다. 바닥에 따뜻한 공기를 흘려보내 몸을 따뜻하게 하는 한국 고유의 난방방식인 온돌은 복사열을 이용한 대표적인 예다.

메거스 교수팀의 냉방 튜브는 지난해 덥고 습한 싱가포르에서 테스트를 거쳤다. 에어컨을 작동시키는 대신 ‘냉방 튜브’를 설치해 더위를 식힐 수 있는지 알아보았다. 교수팀은 먼저 벽과 천장에 냉방 튜브를 설치한 다음 그곳으로 17도의 차가운 물을 흐르게 했다. 그 뒤 냉방 튜브가 설치된 방에서 실험 참가자들이 냉방을 체험하도록 하고 반응을 관찰했다. 밖에서 계속 공기가 유입되도록 출입문은 열어놓았다. 그 결과 55명의 참가자 중 79%가 시원하거나 쾌적한 느낌을 받았다고 답했다.

냉방 튜브는 에어컨처럼 공기를 차갑게 만드는 방식이 아니다. 다시 말해 실내 공기의 온도와 습도와는 독립적으로 작동하기 때문에 온도나 습도가 낮아지지 않고 그대로다. 메거스 교수팀이 싱가포르에서 냉방 튜브를 가동했을 때의 실내 온도는 30도이고 습도는 65%로 확인됐는데, 이는 냉방 튜브를 가동하기 전과 똑같은 환경이다. 공기의 흐름은 초속 0.26m에 불과했다. 공기가 차갑게 되지 않아도 인체의 복사열이 냉각수가 흐르는 벽과 천장 쪽으로 빼앗기기 때문에 우리 몸이 시원하다고 느끼는 것이다.

실내 공기를 외부 공기로 계속 희석하면 공기를 통한 바이러스 감염도 막을 수 있다. 냉방 튜브는 환기와 함께 체온도 낮춰 코로나 바이러스가 전파될 위험 없이 시원한 여름 나기에 적합하다. 냉방 효과 또한 에어컨을 대체하기에 충분할 만큼 크다는 게 교수팀의 설명이다. 이들의 연구 결과는 지난 8월 18일(현지시각) 국제학술지 ‘미국립과학원회보(PNAS)’에 발표되었다.

복사냉방은 여러 냉방시스템 중에서도 가장 진보된 형태다. 공기보다 열용량이 큰 물을 동력으로 사용하기 때문에 기존 에어컨 방식에 비해 에너지 절감 효과가 크다. 교수팀의 냉방 튜브는 에어컨 에너지 소비량보다 최대 50%를 줄일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공기를 차갑게 만드는 에어컨은 엄청난 양의 에너지 사용으로 냉방비용이 많이 들고, 창문을 열어 외부에서 계속 뜨거운 공기가 들어오면 냉방 효과가 떨어진다. 특히 환경 친화적이지 않다. 반면 복사냉방은 상대적으로 높은 온도(15~20도)의 냉수로도 냉방이 가능해 지역 냉열원이나 지중열 등 재생에너지를 효과적으로 이용할 수도 있다.

사실 복사냉방은 새로운 기술이 아니다. 수십 년 동안 건축물에 적용되어 온 기술이다. 최근 세계의 일부 건축물에 실제로 복사냉방 시스템이 적용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복사냉방은 공기 자체를 냉각하는 방식이 아니라서 냉방 튜브 벽 사이의 공기가 습해져 물방울이 맺히는 ‘결로’ 현상이 생긴다. 예를 들어 한여름 시원한 음료수 캔을 냉장고에서 꺼냈을 때 캔 표면에 물방울이 맺히는 것처럼 따뜻한 공기가 차가운 벽에 부딪히면서 공기 속 수분이 물방울로 맺힌다. 벽에 물이 맺히면 벽지에 곰팡이가 필 뿐 아니라 결로가 심하면 건축물에 막대한 피해를 가져온다. 이러한 치명적 단점을 해결하지 못해 그동안 복사냉방 기술은 상용화에 어려움을 겪은 게 사실이다.

대표적 단점인 결로 현상 해결

교수팀의 냉각 튜브는 이 결로 현상 문제를 깨끗하게 해결했다. 벽 속에 냉각수가 흐르는 관로를 설치한 후 외벽에 결로가 맺히지 않도록 폴리에틸렌 소재의 특수 박막을 개발해 냉각 패널을 감싼 것이다. 그러면서도 복사 현상은 그대로 일어나도록 했다. 그 결과 물방울이 맺히는 이슬점이 23.7도였음에도 벽에 물방울이 전혀 맺히지 않았다.

단 냉방 튜브는 에어컨에 비해 설치비가 비싸다는 게 단점이다. 일반적으로 건축물을 지을 때는 난방시스템 하나만을 구축한다. 냉방은 에어컨이나 선풍기를 구비하면 간단하게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복사냉방을 선택하게 되면 처음부터 냉방시스템도 동시에 구축해야 한다. 따라서 초기 투자비용이 많이 든다. 하지만 에어컨에 비해 에너지 소비량을 최대 절반까지 줄일 수 있어서 유지비 절약으로 초기 투자비용을 회수할 수 있다.

연구팀은 2022년까지 냉방 튜브를 상용화하는 것이 목표다. 현재는 에어컨이 필수품이지만 앞으론 에어컨보다 효율이 높고 건강에 도움이 되는 복사냉방 장치가 주목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북미의 가정과 사무실, 그리고 앞으로 복사냉각이 크게 필요할 것으로 예상되는 개발도상국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지역에서 냉방 튜브가 에어컨을 대신하게 될 것이라고 메거스 교수는 말한다. 연구팀의 냉방 튜브가 상용화될 경우 냉방시스템 시장에 어떤 새로운 바람이 불게 될지 기대된다.

키워드

#과학
김형자 과학칼럼니스트
저작권자 © 주간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