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파리과학인문대 에마뉘엘 포르트 교수팀이 구현한 ‘공중에 거꾸로 매달려 떠다니는 배’. ⓒphoto 네이처
프랑스 파리과학인문대 에마뉘엘 포르트 교수팀이 구현한 ‘공중에 거꾸로 매달려 떠다니는 배’. ⓒphoto 네이처

영화 ‘캐리비안의 해적-세상의 끝’에는 동전의 앞뒷면을 뒤집듯, 항해하던 배를 거꾸로 뒤집어 순식간에 저승에서 이승으로 돌아오는 장면이 등장한다. 중력의 법칙을 거스르는 뛰어난 상상력이다. 그런데 실제로 배가 액체 바닥에서 거꾸로 떠 있는 현상이 실험에서 발견돼 세계의 과학자들이 놀라움을 금치 못하고 있다. 마술이나 일종의 착시가 아닌, 자연법칙을 벗어난 이 현상은 대체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진동의 힘으로 액체를 공중부양시켜

지난 9월 3일 프랑스 파리과학인문대(PSL) 에마뉘엘 포르트(Emmanuel Fort) 교수팀은 공중에 거꾸로 매달려 떠다니는 배를 구현했다고 국제학술지 ‘네이처’에 밝혔다. 물리법칙을 이용해 실험실에서 액체를 공기 중에 띄우고 그 액체 밑바닥에 배의 바닥이 붙어 거꾸로 배가 둥둥 떠다니게 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일반적으로 모든 배는 부력을 이용해 무거운 물 위를 떠다닌다. 부력은 액체나 기체와 같은 유체 속에 잠긴 물체에 작용하는 유체의 힘이다. 다시 말해 지구 중심 방향으로 작용하는 중력의 반대 방향인 위쪽으로 작용하는 힘이다. 바닷물에 뜬 배에 물의 부력이 위쪽으로 작용해 배가 뜨고, 공기의 부력이 위쪽으로 작용해 열기구를 뜨게 한다. 부력이 중력보다 클 때는 밀어 올리는 힘이 더 강해 물체가 위로 떠오르고, 부력이 중력과 같으면 물속에 정지해 있고, 부력이 중력보다 작으면 물체는 바닥으로 떨어져 가라앉는다.

아르키메데스의 부력 원리에 따르면, 부력은 잠긴 물체의 부피가 클수록 크게 작용한다. 부피는 ‘물체가 차지하고 있는 공간의 크기’를 말한다. 부피가 작은 돌은 가라앉고, 가볍지만 공기를 채운 부피 큰 튜브가 물에 뜨는 이유다. 그런데 이러한 상식적 원리를 뒤엎고 포르트 교수팀은 배를 액체 밑으로 거꾸로 뜨게 한 것이다. 전기로 발생시킨 자기력의 반발력으로 레일에서 낮은 높이로 부상하여 달리는 자기부상열차처럼 어떤 외부 힘이 작용하지 않으면 물체를 공중에 떠 있게 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포르트 교수는 어떻게 이런 현상을 연출해냈을까. 바로 ‘진동의 힘’을 이용했다. 교수팀은 먼저 실리콘 오일이나 글리세롤과 같은 끈적한 액체를 투명 수조에 붓고 밀폐한 다음 주사기로 가운데에 공기를 밀어넣었다. 그 뒤 수조 안의 액체를 공중부양시키기 위해 수조를 위아래로 격하게 흔들어 진동을 가했다.

일반적인 상황을 생각하면 수조 속 공기는 밀도가 낮기 때문에 중력으로 액체 실리콘 오일이나 글리세롤이 바닥으로 떨어진다. 그러나 격렬한 진동이 수조에 가해지면 특이한 일이 벌어진다. 떨어지는 것을 멈추고 중력을 거스른다. 진동은 액체가 떨어지지 않도록 액체 아래의 공기를 압축하기 때문에 공기 밀도가 높아져 떠받치는 힘이 강해 수조를 뒤집어도 아래로 쏟아지지 않는다. 교수팀은 약 0.5L의 액체를 수조 중간쯤의 공중에 20㎝ 면적까지 띄우는 데 성공했고, 액체의 위와 아래 공간은 공기층이 갇힌 상태로 만들었다.

과학자들이 진동을 통해 물체를 공중부양시킨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가까운 예로는 2013년 스위스 취리히 연방공과대학(ETH)의 기계공학자 디모스 포울리카코스 연구팀이 음파의 진동을 이용해 공기 중에 액체, 커피가루 등의 물체를 띄우고 그것을 비교적 자유롭게 좌우 방향으로 옮기거나 회전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또 1978년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한 러시아의 물리학자 표트르 레오니도비치 카피차는 진자의 진동주기를 이용해 진자(추)가 거꾸로 설 수 있게 했다. 포르트 교수팀은 카피차의 이 이론을 적용하면 고체인 추처럼 액체인 물도 공중부양시킬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것이 맞아떨어진 것이다.

교수팀의 실험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지금까지 다른 과학자들이 해본 적 없는, 공중부양한 액체층의 바닥에 배를 거꾸로 띄우는 실험에 도전했다. 이번에도 진동으로 압축된 밀도 높은 공기의 위로 미는 힘에 의해 배가 아래로 떨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배는 3D(입체) 프린터로 찍어낸 플라스틱 재질의 모형을 사용했다. 동시에 공중에 뜬 액체의 윗면에도 똑같은 배를 띄워보기로 했다.

놀랍게도 실험은 성공이었다. 액체 윗면에 배가 뜨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영화에서처럼 액체층의 바닥에도 배가 거꾸로 붙어서 뜨는 현상이 일어났다. 부력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모습이 연출된 것이다. 실험실에서 실험 과정을 지켜보는 연구원들조차 혹시 순간 속임수가 아닐까 여겼을 정도로 기이한 현상이 눈앞에 펼쳐졌다.

진동 커지면 큰 배도 거꾸로 뜰 수 있어

포르트 교수팀은 모형의 배가 거꾸로 뜨는 것 또한 부력 때문이라고 말한다. 상식적으론 중력에 의해 배가 아래로 떨어져야 하는 게 맞지만, 액체에 잠긴 배는 그 잠긴 만큼 액체의 부력이 배를 뜨게 만든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액체 아래 공기의 위로 미는 힘과 부력, 이 두 힘이 균형을 이루면서 배가 액체의 바닥에서 거꾸로 떠다니는 이상한 광경을 만들어낸다는 것이 교수팀의 설명이다.

공중부양 현상은 진동의 횟수가 많을수록 효과적이다. 포르트 교수에 따르면 진동의 힘으로 실제의 배도 물 아래쪽으로 뜨게 할 수 있다. 만일 지속적으로 격하게 충분히 흔들 수 있는 진동 기계시스템이 있다면 선박이든 요트든 배의 크기에 제한 없이 거꾸로 뜰 수 있다는 것이다. 단 ‘물의 점도’가 해결돼야 한다. 예를 들어 바닷물의 경우 잔물결이 없는 끈적한 액체로 채워야 액체의 균형 상태가 깨지지 않는다. 교수팀이 점도가 높은 액체를 실험에 사용한 것도 바로 액체가 조금이라도 흔들리지 않게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서다.

그렇다면 배를 거꾸로 뜨게 하는 이 같은 연구는 어디에 쓰려고 하는 것일까. 일정한 진동은 떠다니는 물체에 작용하는 힘을 변화시킨다. 따라서 거꾸로 물체를 뜨게 하는 현상을 통해 물 아래 잠긴 플라스틱 입자와 같은 물체를 빠르게 운반하고, 물에서 오염물질을 분리하는 데도 응용할 수 있다고 포르트 교수는 설명한다.

교수팀은 앞으로 더 큰 용기에 더 많은 액체를 사용해 실험을 할 예정이다. 수영장만 한 용기에 기름이 아닌 충분한 점성을 가진 시럽 등을 사용해 더 큰 배를 떠오르게 한다는 계획이다. 수직 진동이 유발하는 반중력 효과 덕분에 향후 실험 또한 틀림없이 성공할 거라는 기대감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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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자 과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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