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 13일 펜실베이니아 존스타운 유세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마스크를 벗어 던지고 있다. ⓒphoto 뉴시스
지난 10월 13일 펜실베이니아 존스타운 유세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마스크를 벗어 던지고 있다. ⓒphoto 뉴시스

코로나19 확산세가 좀처럼 가라앉지 않고 있다. 걱정스러웠던 인도가 폭발하기 시작했고, 비교적 안정적이던 영국·프랑스·독일도 다시 불안해지고 있다. 그런데 최악의 감염국은 여전히 미국이다. 전 세계 확진자의 21.1%와 사망자의 20.2%가 미국에서 발생했다. 한국전쟁과 베트남전쟁에서의 희생자를 합친 것보다 많은 22만명이 코로나19 바이러스로 목숨을 잃었다.

지난 4년 동안 목청껏 외치던 ‘아메리카 퍼스트’가 무색해져버린 형국이다. 미국의 방역이 대선 정국 정치에 휩쓸려서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린 탓이다. 우리도 안심할 수 없다.

22만명 사망, 최악의 감염국 미국

지난 10월 5일 저녁 7시 백악관 정원에서는 듣도 보도 못한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2층 발코니에 홀로 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근엄한 표정으로 누군가에게 정중하게 거수경례를 하고 있었다. 대단한 국가 행사의 한 장면처럼 보였다.

그런데 당시 정원에서는 텅 빈 대통령 전용 헬리콥터 마린-1이 이륙하고 있었다. 대통령이 자신을 월터리드 육군병원에서 백악관으로 데려다주고 기지로 돌아가는 빈 전용기를 엄숙한 경례로 환송하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마스크도 쓰지 않았다.

당시 트럼프 대통령은 코로나19에 감염된 상태였다. 질병예방통제센터(CDC)의 방역 수칙에 따르면, 일단 양성 판정을 받은 사람은 누구라도 음성으로 확인될 때까지 다른 사람들과 접촉할 수 없는 고립(isolation)상태로 지내야만 한다.(감염자와 밀접 접촉을 한 사람도 일정기간 격리(quarantine)상태로 지내야 한다.)

그런데 대통령이 코로나19 음성 판정을 받은 것은 백악관 환송 행사로부터 8일이 지난 8월 13일이었다. 산소 공급과 함께 렘데시비르·덱사메타손·항체치료제를 처방받고 있던 대통령이 방호복을 입은 경호원과 함께 SUV에 승차하여 병원 앞에 모여 있던 지지자들을 둘러보는 파격도 있었다. 대통령이 앞장서서 CDC의 방역수칙을 무시해버린 것이다.

어처구니없는 일은 그뿐이 아니었다. 이미 지난 9월 26일의 에이미 코니 배럿 연방대법관 지명 행사도 CDC의 방역수칙을 무시한 것이었다. 대통령 부부를 포함해서 180명이 백악관의 로즈가든에서 마스크도 쓰지 않고 자유롭게 밀접 접촉을 했다. 참석자들은 허풍스러운 허그와 요란한 악수도 마다하지 않았다.

결국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대통령 부부도 이 행사에서 코로나19에 감염된 것으로 추정된다. 대통령이 직접 주재한 화려한 백악관 행사가 상원의원·대학총장·대변인·언론인을 포함해 10여명을 감염시킨 부끄러운 ‘슈퍼 감염 이벤트’가 돼버리고 말았다.

그런데 백악관은 행사 참가자에 대한 적극적인 추적 검사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트럼프 대통령은 스스로를 코로나19 감염을 극복하고 돌아온 ‘강력한 지도자’로 부각시키고 있다. 자신의 감염이 스스로 자초한 것이었다는 부끄러움이나 자책감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가 없다.

CDC가 백신보다 더 효과적이라고 강조하는 마스크는 트럼프 대통령에게 오히려 ‘허약함’의 상징이다. 그래서 “마스크를 쓰고 다른 나라의 대통령·총리·독재자·왕·여왕을 맞이할 수는 없다”고 우긴다.

트럼프 대통령에게 마스크는 ‘좌파 민주당’의 상징이기도 하다. 언제나 마스크를 착용하고 조심스럽게 행동하는 대선 경쟁자 조 바이든에 대한 상식을 넘어서는 조롱은 대통령답지 않은 것이었다. 이제 트럼프 대통령은 대규모 대중 집회 자제, 마스크 착용, 사회적 거리두기와 같은 상식적인 방역 대책도 드러내놓고 거부하고 있다.

백악관만 그런 것이 아니다. 코로나19 양성 판정을 받은 상원의원이 실내에서 진행된 연방대법관 청문회에 직접 참석했다. 마스크도 쓰지 않고 장시간 열변을 토하는 모습은 소름 끼치는 장면이었다. 동료와 국민에 대한 최소한의 배려도 찾아볼 수 없는 독선이었다.

사실 미국이 감염 대국의 오명을 뒤집어쓴 것은 ‘셧다운’ 완화를 요구한 지난 6월의 대통령 지시 때문이라고 해도 크게 틀리지 않는다. 코로나19에 대한 공포 때문에 자신의 최고 치적인 경제를 망쳐버릴 수 없다는 것이 대통령의 주장이었다. 어린 학생들은 코로나19를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엉터리 주장도 서슴지 않았다. 결국 맹목적으로 대통령의 지시를 따랐던 ‘레드’(공화당) 지역에서는 감염이 급격하게 확산되고 말았다.

상황은 생각보다 훨씬 심각하다. “물러서서 대기하라(Stand back and stand by)”는 트럼프 대통령의 토론회 발언을 자신들의 거친 행동에 대한 묵인과 지지로 인식한 극우 무장단체·민병대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미국 연방수사국(FBI)이 미시간주지사의 납치와 주정부 청사와 의사당 공격을 모의한 ‘울버린 워치맨’ 단원 13명을 전격 체포하는 일도 벌어졌다.

다음 달 11월 치러지는 대선 직전에 주지사를 납치해서 ‘반역죄’로 단죄하는 모의를 실행에 옮기고 있었다는 것이다. 민주당 소속의 그레첸 휘트머 주지사가 강력한 셧다운과 마스크 착용 의무화와 같은 방역 정책을 밀어붙인 것이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반역’이라는 게 그들의 인식이다. 세계 최고 수준의 모범적인 민주주의를 구가하던 미국이 이제는 무장 민병대의 민란을 걱정해야 하는 황당한 입장이 돼버렸다.

뒷전으로 밀려나버린 과학

미국이 처음부터 과학과 방역을 외면했던 것은 아니었다. 지난 1월 21일 중국에서 입국한 첫 감염자가 확인되었을 때만 해도 자신감이 넘치고 당당했다. 오히려 어려움을 겪고 있는 중국의 지도자를 ‘유능하고 투명하다’고 치켜세우는 여유도 있었다.

트럼프 대통령이 지금도 자랑하는 ‘중국인 입국 금지’도 사실은 겉으로만 요란한 반쪽짜리 조치였다. 감염 지역을 여행하고 귀국하는 미국인에 대해서는 감염 여부를 파악하기 위한 최소한의 노력도 없었다. 더욱이 실제 미국 전역에 확산된 코로나19는 중국이 아니라 유럽에서 유입된 것으로 밝혀졌다. 당시 감염 상황이 빠르게 악화되고 있었던 유럽으로 통하는 대문은 활짝 열어두고 있던 것이 훨씬 더 심각한 문제였다는 뜻이다.

기술적으로도 문제가 있었다. 우리가 지난 2월 4일에 개발했던 분자(유전자) 진단키트를 생명공학 최고 선진국인 미국은 제때에 개발하지 못했다. CDC가 뒤늦게 개발한 진단키트도 민간 기업이 대량 생산을 하는 과정에서 어처구니없는 오염 사태로 폐기해야만 했다. 본격적인 진단은 5주나 지연되고 말았다. 민간 기업이 개발한 항체 진단키트도 품질이 엉망이었다.

어쨌든 지난 3월 13일 국가 비상사태를 선포할 때만 해도 미국의 기개(氣槪)는 가상했다. 부통령을 단장으로 하는 ‘코로나19 대응단’의 면모도 화려했다. CDC와 FDA(미국식품의약국) 정도가 아니었다. 국립보건원(NIH)의 국립알레르기·전염병연구소(NIAID) 소장을 36년이나 역임하면서 미국 최고의 공중보건 전문가로 전 국민의 신뢰를 받고 있는 앤서니 파우치 소장도 대응단에 참여했다. 연방정부의 공중보건 최고책임자인 의무감(Surgeon General)도 있었고, 연방재난관리청과 국토안전부도 있었다. 그야말로 세계 최강·최고의 ‘아메리카 퍼스트’ 진용이었다.

대통령이 직접 전 세계로 생중계되는 일일 브리핑에 나섰다. 주말과 휴일도 없었다. 그런데 당장이라도 코로나19를 지구상에서 박멸시켜줄 것 같은 기세는 온전한 착각이었다. 첫날부터 6개월 이내에 ‘치료제와 백신’을 개발할 것이라는 허풍이 쏟아져 나왔다.

모든 것을 민주당 주지사·시장과 가짜뉴스 탓으로 돌리는 대통령을 설득하지 못했던 코로나19 대응단은 힘을 잃어버릴 수밖에 없었다. 결국 백악관의 일일 브리핑은 대통령의 재선을 위한 선거유세로 변질되고 말았다.

이제 미국에서는 코로나19에 대한 과학적 방역도 사라져버렸다. 대통령이 CDC 소장의 마스크의 효능에 대한 상식적인 의회 답변을 공개적으로 “오해에 의한 실언”이었다고 단언해버렸다. 대통령도 인정해주지 않는 방역 전문가들에게 더 이상의 역할을 기대할 수는 없는 상황이다.

엄청난 정치적 압력 속에서 허겁지겁 개발하고 있는 백신도 걱정스럽다. 소비자가 신뢰하지 않는 ‘나쁜’ 백신은 나쁜 바이러스보다 더 나쁠 수 있는 것이 현실이다. 충분한 검증을 거치지 못한 설익은 백신도 걱정스럽지만, 온전한 백신을 맹목적으로 거부할 수밖에 없는 소비자의 난처한 입장도 걱정스럽다.

오로지 자신의 재선만을 노리는 어설픈 정치가 코로나19의 감염을 걷잡을 수 없는 상황으로 만들어버린 셈이다.

K방역도 걱정스럽다

사실 우리가 미국의 방역 실패를 주목하는 이유는 따로 있다.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불안한 상황에서 혹시라도 우리의 ‘K방역’에 숨겨져 있을지 모르는 문제를 찾아내서 바로잡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야만 하루라도 빨리 코로나19의 망령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우리의 K방역도 ‘정치적 오염’을 걱정할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 우리의 ‘민주주의’와 ‘투명성’과 진단키트에 대한 ‘긴급사용승인’이 K방역 성공의 열쇠였다는 강경화 외교부 장관의 외신 인터뷰는 궤변이다. 세계 최초로 진단키트를 개발한 생명공학 벤처들의 노력보다 식약처의 행정처리가 더 중요했다는 주장은 소가 들어도 웃을 이야기다.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걱정하는 외신기자의 관심을 애써 무시하는 동문서답도 부끄러운 것이다.

지난 6월에 정해놓은 ‘사회적 거리두기 기준’은 보건복지부 장관의 장난감이 아니다. ‘2.5단계’는 기준에 없는 것이었고, 신규 감염자가 50명을 넘는데도 ‘1단계’를 밀어붙인 것도 황당한 일이다. 지킬 의지가 없는 기준은 처음부터 만들지 말았어야 했다. 신규 감염자 100명이 감염 확산의 경향을 판단하는 매직넘버도 아니다. 신규 감염자가 두 자릿수이면 안심해도 되고, 세 자릿수이면 걱정해야 하는 것이 절대 아니다.

오히려 8월에 1.62%까지 떨어졌던 국내 치명률이 1.76%까지 올라가고 있다는 사실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전 세계의 치명률은 지난 7월 7.2%에서 2.85%로 빠르게 줄어들고 있다.

우리 국민의 해외여행은 자제시키면서 외국인에게는 대문을 활짝 열어놓는 것도 납득할 수 없다. 지금도 64개국이 우리 국민의 입국을 제한하고 있다. 9월까지 해외 유입에 의한 감염비율이 13.6%나 되고, 매일 감염자의 20~30%가 해외 유입인 상황은 절대 가벼운 것이 아니다. 코로나19가 들불처럼 번지고 있는 상황에서 방역의 전담기관인 질병관리본부를 질병관리청으로 개편해버린 것도 쇼로 보였다. 아무리 좋은 떡이라도 먹일 때가 따로 있는 법이다.

무엇보다 방역을 핑계로 헌법에 보장된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일은 절대 용납할 수 없다. 국민의 기본권은 대통령이나 복지부 장관이 떡 주듯이 나눠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정부가 광화문에 ‘차벽’을 세운 진짜 이유가 따로 있을 것이라고 의심하는 국민이 적지 않다. 코로나19를 여당에 굴러들어온 ‘선물’로 착각해서는 절대 안 된다.

이덕환 서강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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