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의 LNG 복합화력발전소. ‘탈원전’은 태양광, 풍력의 간헐성 보완을 위한 LNG 설비의 폭발적 증가로 빛이 바래 버렸다. ⓒphoto 뉴시스
울산의 LNG 복합화력발전소. ‘탈원전’은 태양광, 풍력의 간헐성 보완을 위한 LNG 설비의 폭발적 증가로 빛이 바래 버렸다. ⓒphoto 뉴시스

우리도 ‘2050년 탄소중립(Net-zero)’을 선언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이미 유럽연합 등 120여개국이 2050년 탄소중립을 선언·검토하고 있고, 중국도 ‘2060년 탄소중립’을 선언했다고 한다. 이제 우리도 서둘러 탄소중립의 실천 의지를 분명히 하고, 이행 전략을 공고히 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만 ‘녹색성장과 글로벌 목표 2030을 위한 연대’(P4G)를 주제로 우리가 내년에 서울에서 개최하는 정상회의도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이 반기문 국가기후환경회의 위원장의 절박한 요구다.

거부할 수 없는 저탄소 사회

온실가스 배출량을 감축하는 일은 이제 아무도 거부할 수 없는 전 지구적 당위가 돼버렸다. 2016년에 발효된 파리기후변화협약의 당사국인 우리도 예외일 수 없다. 당장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2050년까지의 온실가스 배출량 감축의 구체적인 전략을 담은 ‘2050년 장기저탄소발전전략(LEDS)’을 UN에 제출해야만 한다.

그런데 우리는 2030년까지 배출량 전망치(BAU)의 37%를 감축하겠다는 약속조차 지키지 못하고 있다. 화려했던 ‘녹색 성장’의 꿈은 화려한 정치적 수사(修辭)로 오염된 속 빈 강정으로 변질되어 역사 속으로 사라져버렸다. 위험한 원전과 더러운 석탄을 포기하겠다는 ‘탈원전’도 태양광·풍력의 간헐성 보완을 위한 LNG 설비의 폭발적인 증가로 완전히 빛이 바래버렸다.

실제로 UN환경계획(UNEP)은 우리의 2030년 예상 배출량이 줄어들기는커녕 오히려 목표 대비 15%나 늘어날 것으로 예측했다. 우리가 국제사회에서 ‘기후악당’으로 알려지게 된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다.

‘탄소중립’의 목표는 나무랄 수 없는 것이다. 탄소중립은 화석연료의 사용을 최대한 억제하자는 ‘저탄소(low carbon)’와 이미 배출한 이산화탄소를 다시 회수하는 ‘상쇄(offset)’의 균형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사실 화석연료를 통째로 거부하는 탈탄소(carbon-free)는 화석연료를 기반으로 발전해왔던 인류 문명의 역사를 송두리째 부정하는 비현실적인 환상일 뿐이다.

그렇다고 탄소중립이 말처럼 쉬운 일일 수는 없다. 단순히 ‘탄소중립’을 외친다고 목표가 실현되는 것은 절대 아니다. 물론 정부의 확고한 정책 의지와 국민적 합의가 필요하다. 그러나 탄소중립은 근원적으로 탄탄한 기술력과 함께 충분한 경제력을 갖춘 선진국에만 용납되는 목표라는 사실이 훨씬 중요하다.

기술에 대한 폭넓은 이해가 반영되지 않고, 경제적 부담에 대한 고민이 빠진 탄소중립의 꿈은 현실적으로 아무 의미가 없는 것이다. 화려한 말잔치에 현혹되어 기후악당으로 전락해버린 경험을 절대 잊지 말아야 한다.

‘생태’ 중심의 패러다임에 대한 환상은 매우 위험한 것일 수 있다. 생태계가 평화롭고 조화롭다는 인식은 지극히 제한적인 것이다.

실제 지구 생태계의 속살은 믿기 어려울 정도로 거칠고 위험하다. 약육강식(弱肉强食)과 적자생존(適者生存)이 생태계를 지배하는 기본 원리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인류가 지구 생태계에서 영원히 번성할 것이라는 기대는 보장된 것이 아닐 수도 있다. 영국의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이 ‘행성 이주설’을 주장했던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었다. 첨단 기술을 위한 적극적인 투자와 노력만이 우리의 미래를 지켜줄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탄소중립에 대한 환상은 금물

진정한 탄소중립을 위해서는 에너지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반드시 필요하다. 에너지의 소비는 우리가 어떠한 경우에도 절대 포기할 수 없는 필요악이다. 그리고 우리의 편익을 위해 사용하는 에너지는 자연환경과 생태계에 적지 않은 부작용을 발생시킬 수밖에 없는 것도 명백한 진실이다. 우리에게 편익을 가져다주면서 환경에는 아무 피해도 주지 않는 ‘친환경적 에너지’는 현실에서는 기대할 수 없는 불로초나 암브로시아와 같은 것이다. 신재생 에너지의 친환경성은 환상일 뿐이라는 뜻이다.

어떠한 에너지도 완벽하지 않다. 대표적인 친환경 에너지로 알려진 태양광·풍력은 간헐성 보완을 위해 LNG 발전이 반드시 필요하다. 화석연료인 LNG가 친환경 연료라는 주장도 믿을 것은 아니다.

엄청난 양의 온실가스와 함께 초미세먼지의 원인물질인 질소산화물을 쏟아내는 것이 LNG의 진짜 모습이다. 태양광·풍력에 의한 숲과 농지의 훼손도 만만치 않다. 농지에 태양광을 설치하면 수확량이 20% 감소한다. 숲과 농지가 이산화탄소 상쇄에 가장 현실적인 대안이라는 사실도 중요하다.

‘수소경제’도 아직은 비현실적인 꿈이다. 수소가 우주의 75%를 차지하는 청정 연료라는 광고는 황당한 가짜뉴스다. 우주에서 수소를 가져올 수 있는 현실적인 기술이 없기 때문이다.

지구에 남아 있는 수소를 활용하는 일도 간단치 않다.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의 비용이 필요하고, 강릉에서 일어났던 폭발 사고의 위험을 감수해야만 한다. 고온의 수증기를 이용한 LNG의 개질(改質)에서 배출되는 이산화탄소와 질소산화물의 양도 절대 무시할 수 없다.

탄소중립을 위해 반드시 석탄을 포기해야만 하는 것도 아니다. 석탄은 앞으로도 상당한 기간 동안 지구상에서 가장 값싼 연료로 활용될 수밖에 없다.

특히 경제적으로 어려운 국가에서는 석탄이 유일한 에너지원일 수밖에 없다는 사실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런 나라에 우리의 첨단 석탄 화력 기술을 수출하는 일을 마다할 이유가 없다. 다만 석탄을 연소시키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미세먼지를 줄이고, 온실가스를 포집하는 기술을 개발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력을 확보하고 있는 원전은 우리가 절대 포기할 수 없는 소중한 보물이다. 특히 원전은 온실가스를 배출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탄소중립에 가장 적절한 에너지원일 수밖에 없다. 물론 원전의 사고 위험은 걱정해야 한다. 원전의 안전 가동을 위한 기술을 개발하고, 제도를 마련하는 것이 합리적인 대안이다. 위험하다고 포기하자는 주장은 지나치게 패배주의적인 것이다.

‘탈원전·탈석탄과 신재생 올인’으로는 진정한 탄소중립의 꿈을 달성할 수 없다. 현재의 기술인 화석연료와 원전의 합리적인 믹스에 대한 고민이 훨씬 더 중요하다.

특히 우리가 이미 확보하고 있는 기술은 어느 것도 함부로 버릴 수 없다. 물론 미래의 기술인 신재생에 대한 더욱 적극적인 투자와 노력도 필요하다. 탄소중립을 달성하기 위한 정책은 ‘국민정책참여단’에 맡겨둘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국민이 원하는 기술을 뚝딱 개발해주는 요술방망이는 어디에도 없기 때문이다.

이덕환 서강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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