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척추동물계의 천재로 불리는 문어. ⓒphoto 셔터스톡
무척추동물계의 천재로 불리는 문어. ⓒphoto 셔터스톡

문어의 뇌와 다리의 연결성이 새롭게 밝혀졌다. 지금까지 알려진 문어의 생태는 다리에 자체적으로 사고하는 능력이 있어 뇌를 없애도 다리 동작이 가능할 만큼 독자적 역할을 한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최근 일본 오키나와과학기술대학원대학교(OIST)의 타마르 구트닉(Tamar Gutnick) 박사팀이 “문어의 뇌와 다리는 우리의 생각보다 훨씬 더 깊게 연결되어 있다”고 밝혀 과학자들의 이목을 끌고 있다.

각각의 문어 다리 자율적으로 학습?

문어는 우리가 생각하는 보통 동물의 구조와는 너무 다르다. 동물은 대개 좌우 대칭형이지만 문어는 머리-발로 끝나는 방사형이다. 문어·오징어·낙지 등을 두족류라고 부르는 이유다. 또 특이하게 심장이 3개인 데다 머리와 다리 사이에 뇌가 위치한다. 8개의 다리에는 1000개가 훨씬 넘는 빨판이 달려 있고, 그 하나하나를 손처럼 사용할 수 있다.

연체동물인 문어는 두 가지 측면에서 능력이 뛰어나다. 하나는 우리의 눈과 똑같지는 않지만 매우 유사하게 영상을 받아들이는 망막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문어는 감금 상태에서 빠져나오는 길을 찾는 데 강하다. 교묘하게 어항의 작은 틈새를 빠져나와 물탱크 위로 올라가기도 한다.

문어는 ‘무척추동물계의 천재’라고 불릴 만큼 지능이 높다. 보통 강아지 정도의 지능을 가지고 있어 주변의 도구나 환경을 활용할 줄 안다. 훈련받은 녀석은 다리로 병뚜껑을 열 수도 있고, 반복 학습에 의해 물체를 집는 일도 가능하다. 학습능력이 뛰어나 한 번 어떤 문제를 해결하면 기억해 뒀다가 비슷한 문제가 생겼을 경우 쉽게 해결한다. 심지어 포유동물의 특권이라고 여겨지는 ‘장난’도 친다. 개와 같은 반려동물처럼 자신에게 따뜻하게 대해준 사람은 머릿속에 기억하여 살갑게 굴고, 낯선 사람이 접근하면 경계한다.

또 하나 놀라운 점은 뇌의 제어 아래 움직이는 사람의 팔다리와 달리 문어의 다리는 자발적으로 움직인다는 것이다. 8개의 다리를 다양한 각도로 자유자재로 움직이는 것에 뇌가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문어 다리에는 5000만개의 뉴런으로 구성된 정교한 신경계가 빨판이 있는 면의 반대쪽에 위치하고 있고, 각각의 다리엔 뇌의 통제 없이도 자체적으로 움직이는 신경세포가 있어 다리가 잘린 후에도 살아 있을 때처럼 자율적으로 움직인다. 다리에 뇌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간단한 운동신경 프로그램이 내장돼 있어, 뇌와 분리되어도 일정 시간 동안 독자적인 움직임을 계속하는 셈이다.

문어는 전체 신경세포의 3분의 2가 다리에 있을 정도다. 그래서 일부 과학자들은 문어를 두고 머리와 8개의 다리를 합쳐서 총 9개의 뇌를 지닌 생물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문어의 뇌는 단지 다리가 얼마나 이동하느냐와 같은 단순한 명령을 내릴 뿐 그 후엔 다리에 있는 지능이 스스로 움직임을 조절하고, 각각의 다리가 알아서 학습도 한다는 게 동물학자들의 생각이다.

이렇게 이상한 문어의 다리와 뇌 능력이 최근 동물행동학계에서 이슈다. 문어의 특징이라고 굳어져온 정설과 다소 다른 특징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구트닉 박사팀에 따르면 문어의 다리와 뇌는 9개의 뇌를 가진 것처럼 완전히 독립적으로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뇌가 학습한 정보를 통해 ‘영리한’ 8개의 다리를 움직인다는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문어가 가진 고유 감각 수용기(receptor·적합 자극을 직접 수용하는 세포)를 통해 알아냈다.

동물들은 각기 구조와 모양이 다른 다양한 수용기를 가지고 있다. 이 기관은 특정한 물리·화학적 자극을 감지한다. 이를테면 사람이 발을 보지 않고 걷거나 눈을 감은 채 손가락으로 코를 만질 수 있는 것은 바로 감각 수용기의 작용 때문이다. 동물의 수용기는 사람의 수용기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민감해 빠르고 정확하게 감각을 감지해낸다.

구트닉 박사팀은 문어 다리들이 감지하는 2가지 감각 정보를 알아보기 위한 실험을 했다. 다리의 위치와 움직임을 감지하는 감각, 그리고 질감을 느끼는 촉각 정보다. 문어의 뇌와 다리의 연관성을 정확히 밝히기 위해서다. 연구팀은 불투명한 Y자 모양의 미로를 만든 다음 두 군데 출구 중 한 곳에만 음식을 두고 문어가 어떻게 행동하는지 실험했다. 이때 음식이 없는 곳은 그물로 막아 먹을 수 없게 했다.

뇌의 학습 정보 각각의 다리에 전달해

실험에는 6마리의 지중해 문어가 참가했다. 실험이 시작되자 문어는 재빠르게 출구에 다리를 넣어 음식을 찾아 나섰다. 자신의 다리가 보이지 않는 경우에도 음식을 얻기 위해 각각의 다리를 넣었다 뺐다 하는 행동을 이어갔다. 미로 속에서 6마리 중 5마리가 다리를 밀거나 빼기를 반복하면서 어디로 넣어야 성공할 수 있는지 계속 학습해 나갔다. 이는 문어의 고유 수용기가 섬세한 감각을 가지고 있음을 나타내는 증거라고 구트닉 박사는 말한다. 그렇기에 문어는 먹잇감을 사냥하거나 위험한 상황을 피할 때 재빨리 판단을 내릴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사람의 수용기 수준까지는 아니지만 말이다.

이어 연구팀은 문어 다리들이 질감을 느끼는 촉각 실험을 실시했다. Y자 모양의 미로에 한쪽은 거친 면의 튜브를, 그리고 다른 한쪽에는 매끄러운 튜브를 놓고 이 중 하나를 선택하면 음식을 먹을 수 있게 했다. 이를테면 어떤 때는 매끄러운 튜브 쪽에 음식을 놓기도 하고, 또 바꿔서 거친 면의 튜브 쪽에 음식을 놓기도 했다.

이 실험 역시 문어 6마리 중 5마리가 어떤 질감을 선택했을 때 음식을 먹을 수 있는지 학습하는 데 성공했다. 각각의 다리를 사용해 왼쪽이나 오른쪽이라는 방향 개념 없이 오직 질감만으로 올바른 경로 탐색을 학습했다. 시행착오를 통해 문제 해결 방법을 익혀 나간 것이다. 이때 특이한 것은 음식과 질감과의 정확한 연관성을 학습한 문어가 이전에 사용하지 않던 다리까지 사용해 미로를 탐색했다는 사실이다.

이에 대해 구트닉 박사는 ‘문어 다리들이 어떤 작업을 배워나갈 때 감지기를 통해 각각 자율적으로 학습할 수 있다’는 기존 이론과 맞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설명한다. 이번 실험은 뇌의 중심부에서 학습 과정을 거치고, 그 학습한 정보를 각각의 다리에 전달함을 나타낸다는 것이다. 반면 뇌가 올바른 미로를 선택하는 데 필요한 정보는 다리에서만 감지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 연구 결과는 국제학술지 ‘커런트 바이올로지’에 게재됐다.

연구팀의 연구에도 불구하고 문어의 학습 정보가 뇌의 어느 부분에 저장되는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사람의 뇌와 완전히 달라서 아직도 연구할 게 많은 문어의 뇌. 그 비밀을 푸는 데 더 많은 동물학자의 선전을 기대한다.

김형자 과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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