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상 0.01%를 차지하는 인간의 생태계 파괴.
지구상 0.01%를 차지하는 인간의 생태계 파괴.

인류가 만들어낸 물질의 총질량이 올해 처음으로 지구상의 생물 총질량을 넘어섰다는 연구가 발표돼 주목을 끌고 있다. 인류가 등장한 이래 만들어진 플라스틱, 콘크리트, 금속, 도로, 건물 등의 인공물 총질량은 약 1조1000억t으로, 자연이 만들어낸 모든 생물의 총질량을 넘어서는 수치이다. 이는 이스라엘 바이츠만과학연구소의 론 밀로(Ron Milo) 교수가 이끄는 연구진이 지난 12월 9일 국제학술지 ‘네이처’에 게재한 연구 결과다.

인류세 도래 알리는 증거

인류는 끊임없이 인공물을 생산해낸다. 플라스틱을 비롯해 여러 합성 재료로 완전히 새로운 물질을 만들어 도로와 건물 등 지구의 ‘풍경’을 만들어왔다. 밀로 교수는 이 같은 인공물들이 지구에 얼마나 넘쳐나며 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궁금했다. 그래서 1900년부터 현재까지 전 세계의 생물량과 인공물 총질량의 변화 추정치를 조사했다.

생물들의 총질량을 추정하는 수단으로는 각 생물체에 있는 탄소를 측정해 비교하는 방법을 썼다. 광대한 지역을 스캔하는 인공위성 원격감지나, 현미경으로 많은 유기체를 밝혀내는 유전자 배열 기술을 사용한 수백 개의 연구 데이터들을 분석자료로 활용했다. 인공물은 인간이 만든 고체 형태의 무생물로 규정했다. 이를테면 나무를 가공해 만든 목재는 인공물로 다루고, 인간이 만든 식량이나 유전자 재조합을 통한 새로운 가축은 생물량에 포함시켰다.

연구팀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1900년의 인공물은 생물 총질량의 3%를 차지한 데 반해, 이후 20년마다 약 2배씩 급격하게 늘어 올해의 인공물 총질량은 약 1조1000억t으로 나타났다. 이는 생물 총질량 약 1조t을 뛰어넘은 것이다. 인공물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건물과 도로를 합친 총질량은 지구촌 생물량 중 가장 많은 나무의 총질량 9000억t을 이미 넘어섰고, 플라스틱 총질량도 80억t으로 전 세계의 육상동물과 해양동물을 합친 총질량 40억t보다 2배나 많다고 연구팀은 밝혔다.

인공물을 구성하는 성분 또한 건물을 구성하는 모래, 자갈 같은 골재와 콘크리트가 압도적이었다. 이번의 인공물 총질량 약 1조1000억t은 인공물 쓰레기를 포함하지 않은 양이다. 이미 소각된 쓰레기나 재활용된 것을 뺀 더 이상 사용하지 않는 쓰레기의 양을 합친다면 인공물 총질량은 벌써 2013년에 생물 총질량을 넘어서며 전환점을 지났다.

인공물 생산량의 증가율은 특히 제2차 세계대전 직후부터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때부터 거의 매년 5% 이상 증가했다. 2020년 현재 인간이 만들어내는 인공물은 연간 약 300억t. 이를 수학적으로 계산한다면 지구촌의 모든 사람이 자신의 체중만큼 매주 다른 인위적 물질을 만들어내는 정도라고 연구팀은 설명한다.

2049년 3조t 예상

인공물의 급격한 증가를 감안할 때 인위적 구조와 물질의 지배는 더 이상 멈출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현재의 추세가 계속되면 2040년에는 폐기물을 포함한 인공물 총질량이 지금보다 약 3배로 많아져 3조t을 넘을 것으로 밀로 교수는 추산했다.

이 같은 결과는 현 지구의 상태가 ‘인류세(Anthropocene)’로 변화하고 있다는 과학자들의 주장에 대한 상징적 경계선을 보여준다고 밀로 교수는 말한다. 인류세는 1995년 노벨 화학상 수상자인 네덜란드의 대기화학자 파울 크루첸(Paul Crutzen)이 2000년 지질학회의에서 제시한 개념이다. 인류세의 ‘Anthropocene’는 인류를 뜻하는 ‘Anthropo’와 시대 혹은 시기를 뜻하는 ‘cene’의 합성어로, 인류로 인해 빚어진 지구의 지질시대라는 의미이다.

지구의 지질시대는 크게 선캄브리아대, 고생대, 중생대, 신생대로 구분된다. 각 지질시대는 지질학적 변동이나 생물학적인 변화 등에 따라 나뉜다. 이를테면 중생대 백악기와 신생대 제3기는 공룡 멸종 이전과 이후로 나눈 것이다. 지금은 지구 역사상 비교적 안정적 기후를 가진 신생대 제4기 홀로세(Holocene Epoch)로, 홀로세가 시작된 것은 마지막 빙하기(플라이스토세 빙하기)가 끝난 약 1만1700년 전부터다. 지질학자들은 홀로세를 끝내고 새 지질시대인 인류세 진입을 공식화하자는 움직임을 구체화하고 있다.

그렇다면 전체 생물 가운데 지구에서 인간이 차지하는 비율은 어느 정도일까. 고작 0.01%에 지나지 않는다. 남극의 크릴새우나 흰개미와 같은 수준이다. 비록 인간이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 중 0.01%를 차지하는 존재이지만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력은 실로 엄청나다. 모든 생명체 위에 군림해 있고 다른 생명체들을 멸종으로 이끄는 지배적 위치에 놓여 있다.

매주 자신의 체중만큼 인위적 물질 생산

지구상에서 가장 비중이 높은 생물체는 식물이다. 지구상에 살아 있는 모든 생명체의 82%나 되며 초목 특히 숲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다음은 박테리아로 모든 생명체의 13%에 이른다. 지하 깊숙한 곳에 있는 박테리아의 경우 총질량 파악에 불확실한 면이 있지만, 그럼에도 전체적인 개요를 파악하는 데는 탄소 측정방법이 유용했다고 연구팀은 밝히고 있다. 나머지 5%는 동물이다. 이 가운데 해양생물 질량은 1%밖에 되지 않는다. 바다가 지구 표면적의 70%에 이른다는 점을 고려할 때 엄청난 불균형이다. 결국 식물을 포함해 대다수 생명체는 육지에 기반을 두고 있는 셈이다.

생물 질량은 대체로 정체되어 있다. 반면 인공물의 질량은 계속 증가 중이다. 인공물이 빠르게 증가하는 이유는 농업, 벌목, 각종 개발 등으로 생태계 파괴가 가속화하기 때문이다. 약 1만년 전 인간 문명을 태동시킨 농업혁명이 시작된 이후 삼림 벌채와 토지 이용으로 전 세계 식물이 빠르게 파괴되었다. 자본주의 씨앗을 뿌린 산업혁명은 생태계를 파괴한 자리에 도시를 건설하고 각종 공장을 구축했다.

지구상의 동물도 지난 50년 사이에만 약 절반이 사라진 것으로 나타났다. 모든 대륙에서 인간의 식량이나 쾌락을 위해 극단적으로 야생 포유류를 도살하고 경우에 따라 말살했다. 현재 포유동물 가운데 야생에서 서식하는 동물은 불과 4%에 불과하다. 바다에선 3세기에 걸친 포경으로 해양 포유동물의 5분의 1만이 살아남은 상태이다. 그나마 인간이 유일하게 개체 보전을 지켜준 생명체는 가축뿐이다. 농장을 지어 닭, 오리, 돼지 등을 사육해 식량으로 대체했기 때문에 보전이 가능했다. 현재 가금류는 모든 조류의 70%, 돼지 등 가축은 모든 포유류의 60%를 차지하고 있다.

이 같은 생물 질량의 불균형 추세는 지구의 탄소 순환과 인간 건강에도 영향을 미친다. 밀로 교수는 지구상에서 인간이 얼마나 불균형적 상황을 초래했는지 이번 연구 결과에서 분명하게 드러났다며 인간의 지배적 지위가 아닌 책임 있는 역할을 기대한다는 바람을 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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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자 과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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