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영덕 한국화학연구원 책임연구원이 지난 1월 14일 정부세종청사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서 ‘광사태 현상’을 세계 최초로 발견했다고 밝히고 있다. ⓒphoto 뉴시스
서영덕 한국화학연구원 책임연구원이 지난 1월 14일 정부세종청사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서 ‘광사태 현상’을 세계 최초로 발견했다고 밝히고 있다. ⓒphoto 뉴시스

국내 연구진이 외국 과학자들과 함께 세계 최초로 ‘나노입자 광사태 현상’을 발견해 지구촌 과학자들의 주목을 끌고 있다. 나노입자에 작은 빛을 쪼이면 물질 속에서 빛이 연쇄적으로 증폭돼 더 큰 빛에너지를 대량 방출하는 현상이다. 한국화학연구원 의약바이오연구본부 서영덕·남상환 박사팀과 미국·폴란드 연구팀이 연구의 주인공이다. 이들의 연구는 국제학술지 ‘네이처’ 표지 논문으로도 게재되었다. 네이처를 통해 과학적 성과를 인정받은 광사태 현상이란 무엇이고 또 연구팀은 어떤 방법으로 이 현상을 밝혀냈을까.

빛에너지 광변환 효율 40%까지 높여

지난 1월 14일, 공동연구팀은 ‘툴륨(Tm)’이라는 원소를 특정한 구조를 가진 나노입자로 합성하면 에너지가 작은 약한 세기의 빛을 쪼여도 물질 내부에서 연쇄적으로 증폭 반응을 일으켜 에너지가 큰 강한 세기의 빛을 방출하는 ‘광사태 현상’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빛을 증폭한다’는 것은 간단히 말하면 빛의 힘을 강하게 만드는 것을 말한다. 다시 말해 어떤 물질을 구성하는 원자와 분자를 자극하여 빛 등의 전자파를 에너지로서 꺼내는 것을 말한다.

물질에는 각각의 고유한 에너지 레벨이 있어서 증폭되었을 때 방출되는 빛의 에너지도 각각 일정한 값을 갖는다. 방출되는 빛의 파장이 물질마다 달라지는 것은 그 때문이다. 분자와 원자는 각각 일정한 에너지 레벨에서 안정되어 있다. 그런데 밖으로부터 자극을 받으면 에너지 레벨이 높은 상태가 된다. 이때의 분자와 원자는 매우 불안정하기 때문에 에너지 레벨이 낮은 안정 상태로 돌아가려고 빛을 방출한다.

보통 나노입자가 빛에너지를 흡수하면 일부는 열에너지로 소모하고 남은 에너지를 방출한다. 소모한 만큼 덜 방출하기 때문에 처음 흡수한 빛에너지보다 작은 에너지를 내보내는 게 일반적이다. 이를 하향변환이라고 한다. 이러한 하향변환 현상과 달리 일부 원소의 어떤 나노입자에서는 흡수한 빛에너지보다 더 큰 에너지의 빛을 방출한다. 이를 상향변환이라고 한다. 쉽게 옥수수의 크기에 비유하면 지름 1㎝인 옥수수 알갱이들이 뻥튀기 기계 안에 들어갔는데 몇 개의 알갱이가 2〜3㎝로 커져서 나오는 격이다.

상향변환 나노물질은 작은 에너지의 빛을 집중시켜 주는 렌즈 역할이 가능하다. 햇빛을 한 점에 집중시켜 종이를 태울 정도의 에너지를 얻는 돋보기처럼 말이다. 빛 알갱이인 광자가 나노입자 내부에서 서로 결합하면서 광자의 수는 적어지지만 더 큰 에너지를 가진 상태로 방출된다. 상향변환에서는 작은 에너지를 사용해도 되기 때문에 시료에 손상을 입히지 않는다. 문제는 효율이다. 기존 상향변환 나노물질은 광변환 효율이 1% 이하로 매우 낮아 실생활에 활용하기 어려웠다. 광변환 효율이란 들어간 빛의 양 대비 나온 빛의 양을 뜻한다.

국내 연구팀은 미국 컬럼비아대 제임스 셕 교수 연구팀 등과 공동으로 이런 걸림돌을 해결할 방법을 찾아냈다. 연구팀은 먼저 상향변환 특성이 있는 물질인 툴륨(Tm)이라는 원소를 독특한 원자 격자 구조의 나노입자로 만들었다. 그런 다음 이 나노입자에 작은 에너지의 빛을 약한 세기로 쪼였다. 그러자 나노입자 내부에서 기존에 관측되지 않던 연쇄 증폭 반응이 빠르게 일어나면서 빛에너지가 더 커져 최대 40%나 강한 빛을 만들어냈다.

광변환 효율이 한 번에 40%까지 높아질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한 것은 세계에서 처음이다. 기존 나노물질의 경우 빛 알갱이가 100개 들어가 대략 1개 정도 나왔다면 연구팀이 만들어낸 나노입자는 100개를 흡수하면 40개 정도가 큰 에너지의 빛으로 나오는 수준인 셈이다. 이를테면 1㎝의 옥수수 알갱이 100개가 들어가면 2〜3㎝인 알갱이가 1개 나오던 기존의 효율에 비해 40개가 나오는 셈이다. 이 같은 빛의 연쇄 증폭 현상을 눈사태에 비유해 연구팀은 ‘광사태’라고 이름 붙였다.

연구팀은 광사태 현상을 활용해 빛으로 보기 힘들 정도로 아주 작은 25㎚(나노미터·10억분의 1m) 크기의 물질을 높은 해상도로 관측하는 데 성공했다. 빛을 이용해 관측할 때는 가시광선 파장대인 400~700㎚보다 작은 물질을 보기 어렵다. 하지만 연구팀의 광사태 현상은 약한 빛을 쪼여도 강한 빛을 방출하기 때문에 해상도가 높아진 것이다. 이는 작은 물질을 보는 초고해상도 현미경으로 활용할 수 있음을 보여준 연구라고 서영덕 책임연구원은 말한다.

한국화학연구원의 광사태 발견을 표지 논문으로 다룬 국제학술지 네이처.
한국화학연구원의 광사태 발견을 표지 논문으로 다룬 국제학술지 네이처.

신약 개발, 태양전지 등 활용 무궁무진

광사태 나노입자는 빛을 활용한다면 어디에나 적용할 수 있다. 연구팀에 따르면 이번 연구 성과는 빛을 활용하는 모든 산업과 기술에 광범위하게 쓰일 수 있기 때문에 미래 신기술로 활용될 가능성이 크다. 빛의 흡수 효율이 핵심인 차세대 태양전지는 물론 자율주행차 부품 개발, 인공위성 등 첨단 사물인터넷(IoT)용 센서, 빛을 활용한 광유전학 연구나 광소재, 디스플레이 관련 산업 등 활용 분야가 무궁무진하다.

현재 연구팀은 약한 세기의 LED 빛으로도 광사태 현상을 일으키기 위한 후속 연구를 진행 중이다. 이를 통해 다양한 분야에서 상용화 가능성을 높일 계획이다. 먼저 화학연구원 내 페로브스카이트 태양전지 연구팀과 함께 전지 효율을 높이는 응용연구를 진행하기로 했다.

페로브스카이트는 태양광을 전기로 바꾸는 태양전지로, 기존 실리콘 태양전지보다 좁은 파장대의 빛을 흡수해 효율이 낮다. 하지만 광사태 나노입자를 활용해 페로브스카이트 태양전지가 흡수하지 못하는 긴 파장의 빛인 근적외선을 흡수하여 더 큰 에너지의 짧은 파장대로 변환하고, 이를 페로브스카이트 태양전지에 쬐어주면 전지의 효율을 높일 수 있을 것이라는 게 서영덕 책임연구원의 설명이다. 광원으로 작은 에너지의 적외선을 사용하기 때문에 시료에 손상을 주지 않는다.

연구팀은 또 광사태 나노입자를 이용해 살아 있는 세포 내부의 모습까지도 자세하게 들여다봄으로써 신약을 개발하거나 질병을 진단하고 내시경 등 광센서 응용기술을 발전시킬 계획이다. 실험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광학현미경은 약한 빛이나 열 때문에 살아 있는 세포 내부의 모습을 오랜 시간 볼 수 없다.

한편으론 임신 진단키트 형태의 바이러스 진단키트 등 형광물질을 쓰는 체외진단기기를 비롯해 레이저 수술 장비, 항암 치료와 피부미용 마이크로 레이저 기술 등에도 적용 가능성을 찾을 계획이다. 실용화가 뛰어난 광사태 나노입자의 연구 개발은 기존의 산업, 의료, 신재생에너지 등의 분야를 더욱 새롭게 발전시키면서 과학사에 획기적인 한 페이지를 더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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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자 과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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