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대 빙산인 A-76. ⓒphoto 유튜브
세계 최대 빙산인 A-76. ⓒphoto 유튜브

남극 대륙의 론 빙붕(氷棚)에서 세계 최대의 빙산이 바다로 떨어져 나왔다. 길이 170㎞, 폭 25㎞, 면적 4320㎢에 달하는 어마어마한 규모의 빙산이다. 제주도 면적(1847㎢)의 2배가 훌쩍 넘고(2.3배), 스페인의 마요르카섬(3640㎢)보다 더 큰, 현존하는 빙산 중 가장 큰 빙산이다. 이전에는 웨들해에 있는 면적 약 3338㎢의 A-23a가 가장 큰 빙산이었다. 과거와 달리 최근엔 거대한 얼음층이 쪼개지는 식으로 빙산이 떨어져 나온다. 빙붕에서 이 같은 빙산이 계속 떨어져 나오는 이유는 무엇일까.

론 빙붕 서쪽 일부분 떨어져 나가

지난 5월 20일(현지시각), 유럽우주국(ESA)은 남극 웨들해에 있는 론 빙붕의 서쪽 부분 일부가 떨어져 나갔다고 밝혔다. 빙붕에서 빙산이 분리된 모습은 ESA의 인공위성 코페르니쿠스 센티넬-1이 포착했고, 영국 남극조사단 소속 해양학자 케이스 마킨슨이 이를 처음 탐지했다. 현장 연구자들의 발길이 닿지 않은 남극의 위험한 변화를 위성이 한눈에 파악한 것이다. 위성의 눈은 대륙의 중심에서부터 바다와 맞닿은 가장자리까지 남극 전역을 향하고 있다.

론 빙붕에서 떨어져 나온 빙산의 이름은 ‘A-76’이다. 빙산의 이름은 남극 사분면(0-90W) 가운데 어디에서 몇 번째로 분리된 빙산인지를 토대로 숫자가 순차적으로 붙는다. A-76의 경우 남극 A사분면에서 76번째로 떨어져 나온 빙산임을 의미한다. 만약 이 빙산이 깨져서 다시 여러 조각으로 분리되면 각각에 알파벳이 추가된다. 예를 들어 A-76이 다시 3조각으로 분리된다면 각각에 A-76a, A-76b, A-76c로 표현한다.

여기서 잠깐 빙하, 빙상, 빙붕, 빙산이 어떻게 다른지 정리하고 나가자. 우리에게 가장 익숙한 단어인 빙하는 눈이 겹겹이 쌓여 다져져서 만들어진 두꺼운 얼음층이다. 극지방이나 알프스산맥 같은 고산지대에서는 눈이 거의 녹지 않고 계속 쌓인다. 두껍게 쌓인 눈은 무게에 눌려 눈 사이의 간격이 치밀해지고, 오랜 기간 쌓여 눌리면 마치 퇴적물이 쌓여 암석이 생성되듯 거대한 얼음층이 형성되는데, 이것이 빙하다.

빙하는 다시 빙상과 빙붕으로 구분된다. 빙상은 땅을 넓게 덮고 있는, 그러니까 전부 육지 위에 펼쳐진 얼음덩어리다. 보통 면적이 5만㎢ 이상인 거대한 얼음 평원으로, 주로 남극과 그린란드에 펼쳐져 있다. 빙붕은 빙하나 빙상이 바다를 만나 이루고 있는 수십~수백m 두께의 거대한 얼음덩어리다. 대륙에서 다량의 얼음, 즉 빙하나 빙상 층이 중력에 의해 흘러내리다가 바다를 만나게 되면 밀도 때문에 가라앉지 못하고 해수면을 따라 퍼지게 된다. 이때 이 얼음층이 해수면을 덮으면서 넓고 두꺼운 얼음 면을 이루게 되는데 이것이 빙붕이다. 따라서 민물로 이뤄진 빙붕은 바닷물이 꽁꽁 얼어 만들어진 해빙(sea ice)과는 근본이 다르다.

빙붕에서 떨어져 나와 바다에 둥둥 떠다니는 것이 바로 빙산이다. 빙붕은 기온 상승으로 생긴 균열에 얼음보다 무거운 물이 들어가면 틈새가 더욱 벌어지는 원리로 붕괴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남극의 빙붕은 매우 급속한 속도로 붕괴되고 있다. 빙붕의 붕괴보다 더 심각한 문제를 유발하는 것은 빙상이 녹는 것이다. 빙상이 녹으면 해수면 수위가 올라가 지구 전체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 남극 대륙은 약 97%가 얼음으로 덮여 있다. 지구 위에 존재하는 얼음의 약 90%를 차지하는 양이다.

론 빙붕에서 떨어져 나온 A-76 빙산은 스페인 마요르카섬보다 크다. ⓒphoto 뉴시스
론 빙붕에서 떨어져 나온 A-76 빙산은 스페인 마요르카섬보다 크다. ⓒphoto 뉴시스

A-76은 웨들해 표류 중

A-76은 현재 웨들해에서 표류하고 있다. 대부분의 빙산은 빙붕에서 떨어진 뒤 곧바로 먼 바다로 이동하면서 녹아내린다. 하지만 웨들해는 수심이 얕아 빙산이 오래도록 머무르는 경우가 많다. 2017년 라르센 C 빙붕에서 떨어져 나온 A-68도 그중의 하나다. A-68은 길이 160㎞, 얼음 두께 300m, 면적이 5800㎢로 역대 세계 최대의 빙산으로 기록됐다. 크기가 얼마나 컸던지 ‘작은 나라’로 불렸을 정도다. A-68은 빙붕에서 떨어져 나온 뒤 2년간 웨들해에 머물렀고, 빙산의 크기 변화도 거의 없었다.

그러다가 2019년부터 웨들해에서 탈출해 남아메리카와 남극 대륙 사이의 드레이크해협으로 이동을 시작했다. 얼음덩어리도 급격히 쪼개지기 시작했다. 처음엔 A-68에서 3개의 조각이 떨어져 나와 각각의 얼음덩어리에 A-68a, A-68b, A-68c 등의 이름이 붙여졌지만 그 수가 계속 늘어나 최근 A-68이 점점 더 작아지면서 빙산이 아닌 그냥 얼음덩어리가 되었다. 세계에서 가장 큰 빙산이었던 A-68이 쪼개지고 또 쪼개지다가 결국 최후를 맞은 셈이다.

지난해에는 A-68a가 영국령인 남대서양 사우스조지아섬 연안까지 접근하면서 섬과 충돌하거나 앞바다에 머물 가능성이 커져 위기감마저 감돌았다. 사우스조지아섬은 야생동물의 낙원인데, 섬에 거대한 빙산이 충돌하거나 바닷길을 막으면 펭귄과 바다표범처럼 먹이(물고기나 크릴새우)를 찾아 먼 거리를 이동해야 하는 동물들에게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빙산이 육지 포식자들의 사냥 범위에 치명적인 셈이다. 다행히 A-68a 빙산은 지구온난화로 높아진 따뜻한 바닷물, 대서양의 높은 기온, 강한 대서양 파도의 영향으로 또다시 여러 조각으로 나뉘면서 빠르게 녹아 자취를 감췄다.

A-76은 기후변화와 무관

과학자들은 온난화의 영향을 알 수 있는 지표의 하나로 남극 얼음에 주목하고 있다. 남극 얼음의 융해 현상이 온난화의 진행을 가장 잘 나타내는 지수의 하나이기 때문이다. 남극은 지구의 건강도를 알려주는 바로미터다. 남극의 빙산이 녹고 있다는 것은 지구가 건강하지 못하다는 증거다. 그렇다면 이번의 A-76이 론 빙붕에서 떨어져 나온 것도 지구온난화로 인한 기후변화 때문일까.

영국 남극조사단의 빙하학자들은 A-76 빙산의 분리는 기후변화 때문이 아니라 자연 순환의 일환이라고 설명한다. 빙붕에서는 일정한 간격을 두고 주기적으로 얼음덩어리가 쪼개져 나가는데 A-76 또한 주기가 되어 떨어져 나간 자연현상이라는 것이다. 주기적인 붕괴 현상에서 나오는 얼음덩어리의 크기치곤 거대하지만 말이다.

영국 남극조사단의 빙하학자들은 또 A-76이 곧 두세 조각으로 더 쪼개질 것으로 보고 있다. 다만 A-76은 분리 전에도 육지가 아닌 바다 위에 떠 있었기 때문에 이로 인해 해수면이 상승하진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렇더라도 빙산이 어디로 이동해서 사라지느냐에 따라 주위에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에 주의 깊게 관찰해야 한다는 게 그들의 설명이다.

김형자 과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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