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세는 원래 GAFA(구글, 아마존, 페이스북, 애플)로 대표되는 빅테크가 수익이 발생하는 국가에 서버를 두지 않을 때 생기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구상됐다. ⓒphoto 뉴시스
디지털세는 원래 GAFA(구글, 아마존, 페이스북, 애플)로 대표되는 빅테크가 수익이 발생하는 국가에 서버를 두지 않을 때 생기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구상됐다. ⓒphoto 뉴시스

그동안 GAFA(구글·애플·페이스북·아마존)로 상징되던 실리콘밸리의 빅테크는 워싱턴과 그다지 사이가 좋지 못했다. 불과 한 달 전인 6월, 미 의회는 ‘독점사업금지법’을 발의했다. 미 하원은 지난해 민주당과 공화당 의원들로 구성된 초당적 반독점 소위원회를 구성했고 1년4개월 동안 디지털 시장 경쟁에 관해 조사했다. 당시 GAFA의 최고경영자들은 청문회에 출석해 진땀을 빼야 했다. 위원회가 제출한 기록을 토대로 만든 이 법안에 적용받을 대상은 시가총액 6000억달러 이상, 월 활성이용자 50만명 이상의 사업을 운영하는 기업이다. 현재 이 기준에 부합하는 곳은 GAFA밖에 없다.

이렇듯 긴장감이 흐르던 양 진영이 지금은 또 한편을 먹고 있다. 미국 정부는 적어도 세금 문제에서는 빅테크의 든든한 뒷배 노릇을 한다. 이들은 공동의 이슈를 해결해야 했다. 디지털세(Digital Tax) 문제다. 원래 해외 기업에 대한 과세는 고정사업장의 위치에 달렸다. 사업장에서 발생하는 수익에 과세하는 게 원칙이다. 그런데 지금은 산업의 모양새 자체가 과거와 다르다. 구글이나 넷플릭스 같은 플랫폼 기업은 전 세계를 무대로 엄청난 이윤을 거두고 있지만 이들은 사업장이 없다. 수익이 발생하는 국가에 서버조차 두지 않는다. 그렇다 보니 각국 정부가 거둬들이는 법인세는 턱없이 적다. 실례로 구글이 한국에서 올린 매출은 지난해에 약 5조원 정도로 추산된다. 하지만 그들이 내는 세금은 턱없이 적다. 2020년의 경우 구글의 한국 매출은 5조원 정도로 추산되지만 신고 매출액은 2200억원에 불과했다. 법인세 신고액 역시 고작 97억원이었다.

빅테크와 세금이라는 이슈는 유럽 주요 국가들의 감정을 자극했다. 그래서 그들은 ‘디지털세’라는 새로운 조세제도를 꺼내들었다. 마틴 샌드부 파이낸셜타임스 칼럼니스트는 ‘분개(憤慨)’라는 다분히 감정적인 단어로 설명했다. “막대한 수입에 비해 터무니없이 적은 세금을 내는 데서 오는 분개에서 디지털세가 시작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당연히 유럽의 타깃은 실리콘밸리의 기업들이었다. 빅테크들이 유럽 전역에서 큰 이익을 챙기고 있지만 정부 재정에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원성이 끊이지 않았다.

미국 정부가 디지털세를 막아선 이유

반대로 미국 정부는 빅테크에 더 많은 세금을 내라고 요구하는 유럽의 노력을 막아서고 있었다. 유럽이 요구하는 세금은 미국의 국고로 들어가는 돈이다. 다른 국가에 디지털세를 지불하지 않도록 돕는다는 건 미국 재정을 위해서도 중요했다. 독점을 두고 충돌하는 것과 별개로 이럴 때는 한편이어야 했다. 미 정치전문 매체 ‘폴리티코’가 전한 워싱턴의 분위기는 이랬다. “그들은 기술기업이 아니라 미국 기업이다. 전 세계에서 미국의 입지가 이렇게나 강한 산업은 다른 분야에서 상상하기 어렵다.”

디지털세에 대해 미국 정부는 팀으로 대응했다. 일단 스페인이나 프랑스처럼 디지털세를 곧 도입할 것처럼 움직이는 국가에는 수십억달러 규모의 보복관세를 부과하겠다고 공언했다. 주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썼던 방식이다. 빅테크 역시 이런 정부의 경고를 적극 활용했다. 유럽 각국의 정치권을 향해 “디지털세를 추진한다면 대서양을 사이에 두고 무역전쟁이 일어날 수 있다”고 흘렸다. 폴리티코는 “의회 보좌관, 무역단체 대표, 빅테크 임원 등의 멤버가 디지털세 문제에 대해 서로 메모를 공유하고 화상회의를 하며 정기적으로 논의했다”고 전했다. 조 바이든 정부와 트럼프 정부는 정치적 입장에서는 상극이었지만 디지털세 문제를 두고는 비슷한 입장을 취했다.

미국과 유럽의 갈등에서 전환점이 생긴 건 지난 4월부터다. 바이든 정부는 디지털세 협상을 활성화하기로 했고 새로운 제안을 내놓는다. 매출과 영업이익이 일정 규모 이상인 기업을 대상으로 모두 세금을 받자고 제안했다. 대상은 연결 매출 200억유로 이상, 이익률 10% 이상인 글로벌 다국적기업이었다. 유럽 주도의 디지털세가 미국의 기술기업들을 타깃으로 삼은 것이라면 미국은 “우리 빅테크들이 포함된다면 유럽의 주요 기업들도 포함돼야 한다”고 반격한 셈이다.

삼성전자·하이닉스에 미친 구글의 나비효과

애초 디지털세는 ‘구글세’라고 불렸다. 데이터로 영업하는 기술기업에 적용하기 위해 설계됐던 조세제도다. 반대로 미국의 제안은 ‘글로벌 법인세’의 형태를 띤다. 기본 모양부터 서로 다르다. 그런데 미국의 수정안은 지난 6월 개최된 G7 정상회의에서 논의됐고 다국적기업들이 본사가 위치한 곳이 아닌, 실제 매출·수익이 발생한 국가에 세금을 내도록 하는 글로벌 조세제도 개편 계획에 합의했다. 조세 회피를 막자는 대의명분이 통했다. G7의 합의는 7월 초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의에서 130개국의 동의를 이끄는 시발점이 됐다. 그리고 이런 국제적 동의는 미국에 중요한 무기가 됐다.

동의를 얻자 미국은 유럽 압박에 나섰다. “조세제도 개편을 이뤄냈는데 빅테크들이 디지털세까지 내는 건 차별”이라고 주장했다. 의회도 지원사격을 했다. 미 상원 재무위원장인 론 와이든 상원의원은 “이런 차별적인 세금(디지털세)을 없애는 게 바이든 정부가 완수해야 할 일”이라고 말했다.

지난 7월 12일 재닛 옐런 미 재무장관은 직접 유로그룹 회의가 열리는 벨기에 브뤼셀로 날아갔다. 디지털세 철회 또는 연기를 요구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왔는데, 같은 날 EU(유럽연합)는 G20이 글로벌 법인세 합의에 도달할 때까지 디지털세 도입을 연기하기로 결정했다. 애초 미국의 수정 제안에도 EU는 역내 연매출이 5000만유로 이상인 모든 기업을 대상으로 그들이 판매하는 온라인 상품·서비스에 0.3%의 세금을 부과하는 디지털세를 강행하려고 했다. 하지만 국제적 합의가 이뤄진 글로벌 조세개편 계획이 우선이라는 미국의 명분을 고려해 일단 디지털세 문제를 10월까지 연기하기로 했다.

미국과 유럽이 ‘세금’을 놓고 싸운 결과는 테크 분야를 넘어 다른 업종으로 법인세가 확대되는 결과를 낳았다. 국내 제조업에도 불똥이 튀었다. 구글세라고 불리던 디지털세는 빅테크만의 족쇄가 아니다. 조세제도 개편 계획에 영향을 받게 되는 글로벌 기업은 약 100개 정도인데 그 업종도 다양하다. 여기에는 우리 기업도 포함된다. 삼성전자는 기준을 넘기에 과세 대상이 확실시되고 SK하이닉스도 이익률에 따라 적용 대상이 될 수 있다. 게다가 제조업의 매출은 플랫폼 기업의 매출 구조보다 단순해서 과세하기 쉽다. 국내 기업들이 글로벌 법인세라는 그물에 갇혀버린 꼴이 됐다.

득실 계산은 해봐야겠지만 국내 기업이 느끼는 영향이 크지 않을 거라는 시각이 적지 않다. 정연우 대신증권 리서치센터 상무는 “새로운 국제 조세 체계의 도입 시계가 빨라지면서 일부 글로벌 기업의 법인세 부담 증가가 예상되지만 직접적 영향은 제한적일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10월 최종 합의까지 여러 기준점에서 변화가 생길 수 있다는 건 변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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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회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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