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케임브리지대 거든연구소와 오스트리아 분자생명공학연구소 팀이 생쥐를 모델로 개발한 레드투온코(Red2Onco) 시스템. 암세포와 정상세포를 다른 색깔로 표지한 후 두 세포를 추적할 수 있도록 했다. ⓒphoto Scitechdaily.com
영국 케임브리지대 거든연구소와 오스트리아 분자생명공학연구소 팀이 생쥐를 모델로 개발한 레드투온코(Red2Onco) 시스템. 암세포와 정상세포를 다른 색깔로 표지한 후 두 세포를 추적할 수 있도록 했다. ⓒphoto Scitechdaily.com

38년째 한국인 사망원인 1위를 기록하고 있는 암. 국제 연구진이 암세포로 자랄 초기 돌연변이 세포와 정상세포에 동시에 색을 입혀 암세포를 잡아낼 기술을 개발해 화제다.

겉으론 정상처럼 보이는 세포들이 어느 날 갑자기 암세포로 돌변하여 나타나기 때문에, 초기 암세포의 발생 시작을 알기 위해선 무엇보다 암세포와 정상세포를 구별하는 게 중요하다. 이는 새로운 암 치료법을 연구하는 데 실마리가 될 수 있다.

최근 국제학술지 ‘네이처’에는 빨간색과 노란색을 입힌 얼룩덜룩한 세포의 모습이 등장했다. 빨간색은 생쥐의 초기 암 돌연변이 세포, 노란색은 정상세포다. 영국 케임브리지대 거든연구소와 오스트리아 분자생명공학연구소 팀이 생쥐를 모델로 개발한 레드투온코(Red2Onco) 시스템을 적용해 암세포와 정상세포를 다른 색깔로 표지한 후 두 세포를 추적할 수 있도록 한 연구다. 레드투온코 시스템은 같은 조직 내에서 초기 암세포와 주변의 정상세포들을 동시에 다른 형광 단백질로 표지하는 기술이다.

세포는 아무 처리 없이는 눈에 잘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형광으로 염색을 한다. 색을 입혀 세포에서 일어나는 현상들을 들여다보기 위함이다. 형광물질은 빛에너지(전자기파)를 흡수해 그 일부를 인간의 눈으로 지각할 수 있는 빛(가시광선)으로 복사해 내뿜기 때문에 주변보다 더 밝은 색으로 보이게 된다. 형광펜이 색연필 색보다 훨씬 눈에 잘 띄는 이유다.

암세포가 발생한 초기에는 면역세포가 암세포를 공격해 제거한다. 하지만 암이 진행되면 면역세포도 힘이 달려 결국 암세포가 증식해 종양이 점점 커진다. 임상적으로 암이 발견될 만큼 암세포가 분열하고 증식하는 경우 최소 10억개의 종양세포가 생기는데, 인체의 정상적인 면역기능은 종양세포 1000만개 정도는 파괴할 능력을 갖추고 있다. 따라서 면역세포만으로는 암세포가 완전히 제거될 수 없다.

그동안 암세포는 종양에만 존재하는 것으로 여겨왔다. 과학자들이 주로 종양의 암세포에만 매달려 연구해온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런데 최근 암세포로 분화되기 이전 단계의 ‘씨앗 세포’인 초기 암 돌연변이 세포(초기 암세포)가 정상조직에도 존재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과학자들에 따르면 나중에 암을 일으키는 씨앗 세포의 유전적 돌연변이는 실제로 암 진단이 내려지기 수십 년 전에 생길 수 있다. 오래전에 뿌려진 암의 씨앗이 오랜 세월 동안 서서히 자라 결국 암 종양으로 발달한다는 의미다.

암은 세포 속 유전자가 돌연변이를 일으켜 생기는 유전자 질환이다. 그렇기에 암을 조기발견하거나 치료 후 재발과 전이를 막으려면 이 씨앗 세포를 정확히 찾아내 뿌리 뽑는 것이 중요하다. 씨앗 세포는 재생과 분화 능력이 강하다. 문제는 초기 암세포와 정상세포가 조직학적으로 차이가 거의 없다는 점이다. 때문에 정상조직에 둘러싸여 있는 초기 돌연변이 세포를 관찰하는 일이 쉽지 않다. 기존에도 정상세포에 있는 암세포를 검출할 방법들을 찾았지만 암의 종류나 사람에 따라 효율이 다르게 나타나 보편적으로 사용되지 못했다.

영국과 오스트리아 연구진이 개발한 레드투온코 시스템은 기존의 효율을 훨씬 뛰어넘는 수준이다. 레드투온코 시스템을 이용하면 단일 돌연변이 세포에서 종양 유전자가 시작되는 지점의 추적은 물론 정상조직에 있는 초기 암 돌연변이 세포까지 찾아낼 수 있다. 또 초기 암 돌연변이 세포와 정상세포를 정확히 추적해 암세포가 주변의 정상세포와 어떻게 경쟁하고 상호작용해 세력을 확장해 나가는지 확인이 가능하다.

종양의 암세포와 그 주변의 정상세포, 면역세포 등을 모두 일컬어 ‘종양 미세 환경’이라고 한다. 종양 미세 환경은 암세포가 잘 증식할 수 있도록 조성된 환경을 말한다. 암세포, 정상세포, 면역세포들은 암의 발생부터 진행, 전이까지 깊숙이 관여하는데, 암 환자의 상태에 따라 또는 하나의 종양이라도 부위에 따라 종양 미세 환경이 달라질 수 있다. 즉 암세포끼리 서로 소통하는 환경이 되고, 암세포를 공격해야 할 면역세포의 성질이 바뀌어 오히려 증식을 돕는 일이 일어난다. 이 같은 미세 환경을 통해 종양이 면역계를 피하도록 진화하기 때문에 수술하고도 암이 재발하는 경우가 생긴다.

새로운 암 치료법 기대

연구진은 레드투온코 시스템을 이용해 생쥐의 초기 대장암 세포에 빨간색, 정상세포에는 노란색을 입혔다. 그 결과 대장암 관련 유전자(KRAS·PI3K)에 돌연변이가 있는 세포, 즉 초기 대장암 세포가 주변의 미세 환경을 바꾸고, 정상세포로 자랄 줄기세포의 성장을 막는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주변 정상 줄기세포의 분화를 억제해 정상조직의 줄기세포를 잃게 하고, 암 돌연변이 줄기세포가 다시 확장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다른 장기로 전이까지 하도록 만든다는 것이다. 정상세포와의 경쟁에서 승리를 이끌어낸 대장암 돌연변이 세포는 정상세포보다 훨씬 빠르게 증식했다. 초기 암세포가 암 발생 이전 단계부터 주변 정상세포의 작용을 조금씩 멈추게 하는 셈이다.

연구진은 레드투온코 시스템이 대장암뿐 아니라 폐암, 신장암 등 여러 종류의 암에도 효과적으로 결합하는 것을 확인했다. 사실 세포나 조직에 색을 입혀 동태를 살피는 방법은 오래전부터 연구되어 왔다. 하지만 암세포와 정상세포만을 콕 찍어 나타내는 형광물질을 찾아내는 것은 생각만큼 쉬운 작업이 아니다. 예를 들어 세포핵은 일반 염색법인 헤마톡실린으로 남색을 입히고, 세포질은 에오신을 이용해 담홍색으로 염색시킬 수 있다. 단순히 두 가지를 구분해 염색하는 것도 쉽지 않은데 암세포나 정상세포, 면역세포, 림프구 등 수많은 종류의 세포 분포 속에서 한 종류의 세포만 표지하는 것은 일반 염색법으로는 한계가 있다.

더구나 형광 분자는 어디에든 잘 들러붙는 성질이 있다. 그런 특성 탓에 다루기가 매우 까다롭다. 연구진은 이런 분자를 하나하나 합성해 수만 개의 형광물질을 만든 다음 그중 목표로 하는 세포의 단백질에만 잘 들러붙는 최적의 물질을 찾아낸 것이다.

연구진의 기술은 암 조기진단은 물론 암이 나타나기 전인 종양 줄기세포 단계에서도 암 발병을 사전에 파악할 수 있는 방법이다. 논문의 제1저자인 염민규 케임브리지대 연구원은 자신들의 이번 연구가 암세포끼리 소통하거나 암세포와 정상세포끼리 상호작용하는 것을 막는 새로운 개념의 암 치료법을 연구하는 데 초석이 될 것이라고 강조한다. 이제 악성(종양)으로 변하기 전에 초기 돌연변이 세포를 찾아내는 기회의 창이 열렸으니 다양한 종류의 암이 치료되길 기대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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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자 과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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