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치가 한국 고유의 식품임을 알리는 민간외교사절단 ‘반크’의 홍보물. ⓒphoto 반크
김치가 한국 고유의 식품임을 알리는 민간외교사절단 ‘반크’의 홍보물. ⓒphoto 반크

김치의 중국어 표기를 ‘신치’(辛奇의 중국어 발음)로 바꾼다는 문화체육관광부의 훈령을 철회해달라는 청와대 국민청원이 올라왔다. 우리의 고유명사를 중국에서도 이해할 수 없는 한국식 신조어로 변경할 이유가 없고, 김치에도 ‘신기(辛奇)’라는 해괴한 별명이 생길 수도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요즘 ‘서울’은 중국에서 ‘수이(首爾)’라는 엉뚱한 이름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런데 국민들의 반응이 뜨뜻미지근하다. 보름이 지났지만 고작 1만1686명이 청원에 동의를 했을 뿐이다. 김치가 정체불명의 ‘맵고 신기한’ 음식으로 전락해버릴 수도 있는 위험한 상황이다.

우물 안 개구리식 제안

‘신치’ 청원의 발단은 지난 7월 22일 문체부가 발표한 훈령 개정이었다. 문체부가 그동안 ‘외국어 번역 지침’에서 김치의 중국어 표기로 인정해왔던 ‘파오차이(泡菜)’를 삭제해버리고, ‘신치(辛奇)’를 새로 내놓은 것이다. 이미 국내 포털의 중국어 사전에는 김치를 ‘辛奇(xīnqí)’로 설명하고 있다. ‘신치찌개’를 파는 식당도 등장했다.

그런데 정작 중국의 반응은 신통치 않다. 김치의 중국어 번역·표기는 중국인이 결정할 문제이지, 우리나라 정부가 함부로 왈가왈부할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맵고 신기하다’를 뜻한다는 ‘신치’가 사실은 중국어의 조어법에도 맞지 않는 엉터리라는 지적도 있다.

신치가 김치에 대한 중국 소비자들의 이해도를 높여줄 것이라는 문체부의 기대도 공허한 것이다. 현실적으로 중국에 수출하는 김치에 ‘신치’를 단독 표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중국에서 유통·판매되는 식품에는 제품의 ‘진실 속성’을 소비자들에게 친숙한 명칭으로 표기해야 한다는 중국의 식품안전국가표준(GB) 때문이다. 상품명의 외국어 표기가 한자보다 클 수 없다는 규정도 있다.

사실 신치는 문체부의 작품도 아니다. 엉뚱하게도 농림축산식품부가 8년 전에 내놓았던 실패작이었다. ‘기’와 ‘김’의 소리를 적을 수 없는 중국어의 현실을 고려해서 무려 4000개의 중국어 발음과 중국의 8대 방언을 분석·검토했고, 주중 한국대사관과 전문가의 의견을 수렴해서 신치라는 해괴한 ‘농축식품부식’ 신조 중국어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중국·대만·홍콩에 상표권까지 출원했지만 결과는 도무지 신통치 않았다. 그런데도 농축식품부는 올해 초에도 김치의 중국어 번역 후보 16개를 놓고 재검토했다고 한다. 역시 신치만큼 ‘적절한’ 중국어 번역을 찾지 못했다는 농축식품부의 주장이다.

신치가 아니더라도 문체부가 이번에 개정한 훈령은 수준 이하다. 역시 우리의 전통 음식인 ‘순대’와 ‘선지’는 신치와는 정반대로 우리말 발음을 강조해서 ‘sundae’와 ‘seonji’로 표기하도록 정해버렸다. 그동안 사용하던 ‘blood sausage’와 ‘blood cake’가 외국인에게 혐오감·거부감을 준다는 것이 알량한 명분이다. 그런데 영어 사전에서 ‘sundae’는 우리의 순대와는 거리가 먼 아이스크림이다. 영어를 사용하는 소비자들은 우리의 순대를 아이스크림으로 혼동하도록 만들어버린 것이다.

동북공정에는 당당하게 맞서야

우리의 김치가 중국의 파오차이에서 유래된 것이라는 중국의 엉뚱한 음식 동북공정에는 단호하고 당당하게 대처해야 한다. 신치가 대안이 될 수는 없다. 김치와 파오차이의 역사 논쟁도 무의미하다. 김치의 역사성을 증명할 현실적인 방법도 없고, 세계가 그런 주장에 귀를 기울여줄 가능성도 없다. 일본은 자신들이 직접 만들었던 고(古)지도의 독도 표기도 인정하지 않고 있다. 중국은 다를 것이라고 믿을 근거가 없다.

중국도 자신들의 주장이 억지라는 사실은 분명하게 알고 있다. 사실 배추나 무와 같은 야채를 식초나 소금에 절인 음식은 김치나 파오차이만이 아니다. 야채 절임은 전 세계의 모든 음식 문화에서 가장 흔하게 찾아볼 수 있다. 전 세계의 모든 채소 절임이 파오차이에서 유래되었다는 주장은 중국의 유치한 문화 우월주의적 억지일 뿐이다.

더욱이 중국은 2020년 국제표준기구(ISO)에 등록한 자신들의 문서에도 파오차이의 국제표준이 ‘김치에는 적용되지 않는다’고 분명하게 밝혀두었다. 우리 ‘김치’의 국제표준은 파오차이보다 9년이나 앞선 2001년 국제식품규격(CODEX)에 등록해놓았다. 1990년대에 시작된 일본과 벌였던 ‘기무치’ 논란 덕분이었다. 중국이 함부로 거부할 수 없는 명백한 증거가 존재한다는 뜻이다.

그렇다고 중국의 황당한 음식 동북공정에 손을 놓고 있을 수는 없다. 무의미한 역사 논쟁보다 현재 김치에서 전 세계의 소비자를 설득할 수 있는 유별난 특징을 찾아내야 한다. 우리 김치가 중국의 파오차이를 비롯한 다른 채소 절임과 근본적으로 다른 음식이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확인해줘야 한다.

김치는 단순히 매운 채소 절임이 아니다. 고추·마늘·생강·파 등의 다양한 양념과 함께 젓갈을 사용한다. 김치는 농산물과 수산물이 어우러진 독특한 절임 음식이다. 우리나라의 김치 이외에는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고유한 자랑거리다. 저온에서 유산균으로 발효시킨다는 사실도 다른 채소 절임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특징이다. 숙성의 정도에 따라 김치의 맛이 깊어지는 것도 유별나다. 저장 방법도 특이하다. 일정한 온도가 유지되도록 땅에 묻은 독에 저장하는 전통적인 방법도 그렇고, 전 세계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김치 냉장고’도 마찬가지다.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된 ‘김장’도 중국의 파오차이와는 분명하게 구분되는 별난 특징이다.

중국의 소비자들은 김치를 ‘한궈 파오차이(韓國泡菜)’나 ‘리바이차이(辣白菜·매운 파오차이)’ 등으로 부른다. 우리 음식에 대해서만 그런 것이 아니다. 독일의 사워크라우트(Sauerkraut)와 뷔르스트(Würst)는 ‘독일식 파오차이’와 ‘독일식 샹창(香肠)’이라고 부른다. 일본도 다른 나라 음식을 일본식으로 부른다. 김치를 ‘기무치(キムチ)’라고 부르고, ‘찌개’를 ‘나베(なべ·鍋)’라고 한다. 그렇다고 일본의 소비자들을 ‘혐한’이라고 흥분할 이유가 없다.

우리도 다르지 않다. 베트남의 ‘퍼(Pho)’를 ‘쌀국수’라고 부르고, 독일의 ‘뷔르스트’를 ‘독일식 소시지’라고 부른다. 일본의 ‘라멘(ラーメン)’을 ‘라면’으로 바꿔 부르고, ‘오뎅(おでん)’은 ‘어묵’으로 순화시켰다. 중국이 우리의 ‘식품공전’에 해당하는 식품안전국가표준에 ‘김치’를 독립적으로 포함시켜줄 것을 기대할 수는 없다. 우리의 식품공전에서도 ‘파오차이’나 ‘아사즈케’를 따로 구분하지 않는다.

중국 소비자들에게 우리가 만든 김치를 수출하는 전략은 기업의 몫이다. 음식 문화에 대한 상식도 갖추지 못한 경직된 관료주의는 오히려 걸림돌이 될 뿐이다. 어쨌든 김치를 신치로 바꾸자는 패배적이고 부끄러운 관료주의적 발상은 당장 폐기해야 한다.

이덕환 서강대 화학과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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