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바이러스 ⓒphoto newscientist.com
코로나19 바이러스 ⓒphoto newscientist.com

코로나19의 혼란이 다시 찾아왔다. 영국의 알파,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베타, 브라질의 감마, 인도의 델타, 페루의 람다, 미국의 엡실론 등등 세계가 변이 바이러스의 출몰로 직격탄을 맞고 있다. 현재 가장 이슈가 되고 있는 인도발 델타 변이는 높은 감염성과 빠른 전파력이 특징이다. 백신 접종을 완료한 사람들조차 돌파감염이 될 정도다. 심지어 이보다 전염력이 강한 델타 플러스까지 발견돼 델타 변이가 점점 지배 변종이 되어가고 있다. 대체 코로나19 바이러스는 왜 자꾸 변이를 만들어내는 것일까.

‘선택압’ 작용으로 변이 가속화

변이는 바이러스의 생존전략이자 최대 무기다. 코로나는 단백질로 구성된 외피(껍질) 안에 유전물질 RNA만 가진 RNA 바이러스다. RNA 바이러스는 화학적 구조가 DNA 바이러스보다 안정적이지 못해 변이가 운명처럼 자연스러울 수밖에 없다.

코로나19 바이러스 RNA는 2만9800개의 유전자 염기서열로 구성되어 있다. 염기서열은 총 4종류의 염기인 A(아데닌), T(티민), G(구아닌), C(사이토신)가 배열되고, 이때 A와 T, C와 G가 짝을 맞춰 쌍을 이룬다. 이렇게 정상적으로 이뤄진 염기서열을 그대로 복제하여 자손을 번식시켜야 하는데, 복제 과정에서 염기서열이 잘못 맞춰지는 실수가 종종 생긴다. RNA 바이러스는 DNA 바이러스와 달리 중합효소에 이런 실수를 수정하거나 교정하는 기능이 없어 변이가 더 빈번하게 나타난다.

바이러스 변이의 진짜 문제는 백신 대량 접종 이후다. 백신으로 인체에 강한 면역이 생성되면 바이러스에 선택압(selective pressure)이 작용하기 때문이다. 선택압이란 다양한 형질 중 환경에 적합한 형질이 선택되도록 하는, 자연상에 존재하는 가상의 압박을 말한다. 예를 들어 추운 환경에 노출된 집단은 생존에 더 유리하도록 선택압이 작용해 개체들이 체온을 더 잘 유지할 수 있게 만든다.

바이러스 입장에서 볼 때 백신이나 치료제는 생존을 위협하는 위기일 수 있다. 바이러스가 선택압을 받으면 숙주(宿主)의 면역을 회피하려고 변이를 가속화시킨다. 바이러스는 숙주를 떠나서는 생존할 수 없기 때문에 숙주인 인체에서 잘 생존하도록 전파력을 높이고 면역반응이나 백신을 회피하는 쪽으로 자신의 유전자를 끊임없이 변화시킨다. 코로나19 바이러스의 변이가 계속 재현되는 이유다. 결국 바이러스 변이는 일종의 바이러스 진화 현상인 셈이다.

그런데 지난 8월 9일(현지시각) 미국 밴더빌트대 의대 제임스 크로(James Crowe) 교수팀이 바이러스 변이의 선택압이 아닌, 항체 반응 연구를 선택압에 초점을 맞춰 생명과학 학술지 ‘셀 리포트’에 발표해 세계적 관심을 끌고 있다. 연구팀은 연구를 통해 코로나19에 감염된 적이 있거나 백신을 맞은 사람들이 공유하고 있는 항체 클론형(public clonotype) 27개를 찾아냈다. 클론은 유전적으로 동일한 형질을 가진 세포집단이나 개체를 말한다. 이를테면 유전적으로 동일하게 복제된 DNA(RNA) 조각이나 개체를 의미한다.

변이 없는 보존영역 식별 항체가 열쇠

연구팀은 또 27개의 항체 클론형 중 2개에서 특이한 점을 발견했다. 코로나19 바이러스 표면의 스파이크 단백질에 변이가 잘 일어나지 않는 ‘보존영역(conserved part)’이 있고, 2개의 항체 클론형이 이 영역을 식별할 줄 안다는 것이다. 이 보존영역을 식별하는 항체 클론형이 발견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스파이크 단백질은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우리 몸의 세포로 침입할 때 가장 먼저 접촉하는 부분으로 감염의 ‘핵심 키’ 역할을 한다. 바이러스의 표면에 가시처럼 뾰족뾰족 돋아난 스파이크 단백질은 세포 표면의 수용체 ACE2에 결합하는 방법으로 세포 안에 침입해 감염시킨다.

그렇다면 연구팀이 발견한 27개의 항체 클론형과 이 중 2개가 스파이크 단백질의 보전영역을 식별할 수 있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한마디로 바이러스 변이에도 강한 백신과 항체 치료제 개발의 열쇠가 될 수 있음을 뜻한다고 크로 교수는 말한다.

우리 몸에서 항체를 만드는 주역은 면역세포로 불리는 ‘B세포(B림프)’다. B세포는 바이러스와 결합하여 자극을 받으면 다수의 동일세포로 분열한 뒤 성숙 과정을 거쳐 형질세포(plasma cell)로 변한다. 형질세포가 된 이 B세포가 항체를 만들어낸 다음 혈액과 림프계로 방출해 바이러스의 세포 감염을 막는 중화항체가 된다. 이때 일부 B세포는 기억 B세포로 전환돼 바이러스의 정보를 저장했다가 나중에 똑같은 항원이 다시 들어오게 되면 그때 항체를 방출한다.

중화항체는 감염성 질환을 일으킬 수 있는 바이러스 등이 인체에 침입했을 때 생물학적으로 미치는 영향을 중화하여 세포를 방어하는 항체를 말한다. 침입자 항원을 공격하여 항원의 운동성을 약화시키거나 독성을 중화시키는 작용을 한다. 무력화 작업이 안 될 경우 침입자를 가두어 버리기도 한다.

이번에 연구팀이 발견한 27개 공유 항체 클론형은 대부분 코로나19 바이러스 표면의 스파이크 단백질을 표적으로 하는 중화항체다. 문제는 스파이크 단백질의 항체 회피 능력이다. 항체의 표적이 되는 스파이크 단백질 일부분이 항체를 피해 자주 변이를 일으켜 항체가 바이러스를 잘 찾지 못하게 한다. 때문에 기존 항체의 공격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특히 유전 형질이 같은 항체 클론형을 많은 사람이 공통적으로 갖게 되면 스파이크 단백질의 변이 선택압이 높게 작용할 수 있다고 크로 교수는 말한다. 예를 들어 대개의 항체가 어떤 한 가지 구조 단백질을 겨냥해 공격한다면 바이러스는 그 단백질이 없는 형태로 변할 수밖에 없다. 이는 백신 접종자와 코로나19 감염자가 늘어날수록 기존 항체에 대항할 수 있는 변이 바이러스가 나타날 가능성이 높아짐을 의미한다. 크로 교수를 비롯한 바이러스 전문가들은 기존 코로나19 바이러스보다 감염력이 2.5배 강한 델타 변이도 이들 항체 클론형이 선택압 역할을 해 발생한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그렇기에 연구팀이 스파이크 단백질의 보존영역을 식별하는 항체 클론형을 발견한 일은 상당히 중요하다. 보존영역을 식별하는 항체는 변이의 영향을 덜 받기 때문에 보존영역을 표적으로 집중 공략할 백신이나 항체 치료제를 개발하면 코로나19 바이러스 변이를 차단할 가능성이 높다. 결국 코로나19 바이러스의 진짜 ‘아킬레스건’은 스파이크 단백질의 보존영역이었던 셈이다. 크로 교수팀의 연구가 변이 바이러스를 막는 백신과 치료제 개발에 큰 도움이 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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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자 과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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