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이 지난 2월 플라스틱 오염의 사례로 지목한 세르비아 팟펙코 호수. 플라스틱 쓰레기들이 호수를 뒤덮고 있다. ⓒphoto 뉴시스
유엔이 지난 2월 플라스틱 오염의 사례로 지목한 세르비아 팟펙코 호수. 플라스틱 쓰레기들이 호수를 뒤덮고 있다. ⓒphoto 뉴시스

재활용이 쉽지 않은 플라스틱을 완전 재활용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미국 애크런대 고분자과학대학 왕쥔펑 교수팀이 개발의 주인공이다. 이들은 다 쓰고 난 폐플라스틱을 원래 순수한 상태의 물질(원료)로 분해해 재활용할 수 있는 길을 열었다. 환경보호에 필수적인 연구팀의 재활용 플라스틱 연구는 지난 8월 18일(현지시간) 과학저널 ‘네이처 화학’에 실렸다.

재활용 플라스틱은 기계적 재활용과 화학적 재활용으로 나뉜다. 화학적 재활용은 어려운 기술이다. 작은 분자량의 단위체(monomer)로 만들어 다시 사슬을 합성해야 하기 때문이다. 단위체는 고분자를 형성하는 단위가 되는 분자다. 쉽게 말해 레고블록 한 개를 생각하면 된다. 플라스틱은 단위체를 중합(2개의 서로 다른 단위체와 결합하여 분자량이 큰 화합물로 생성)한 반복 구조의 고분자(polymer)다. 고분자는 분자량이 1만∼100만으로 크다.

열가소성 플라스틱인 폴리에틸렌(PE)과 폴리프로필렌(PP) 등은 고분자 사슬이 탄소(C)-탄소(C) 결합으로 이뤄져 화학적으로 안정된 구조다. 이 때문에 분해가 잘 되지 않는다. 탄소 원자의 긴 배열에 약간의 다른 원자들이 붙어 있어 이들을 화학적으로 재활용하려면 탄소 결합을 끊어 단위체인 에틸렌이나 프로필렌 원료로 만들어야 한다. 그러려면 수백 도의 고온이 필요하고 꽤 많은 반응 에너지를 투입해야 한다. 이 같은 과정에는 처음 석유에서 단위체 원료를 만들어낼 때보다 비용이 훨씬 더 많이 든다. 화학적 재활용이 어려운 이유다.

그래서 지금은 기계적(물리적) 재활용에 집중하고 있다. 기계적 재활용은 버려지는 플라스틱에서 오염물질을 씻어내고 다시 녹여 새로운 형태로 만들어내는 방식이다. 폐플라스틱을 회수하고 이를 분쇄 과정을 통해 알갱이 단위의 원료인 펠릿(Pellet) 형태로 만든 다음 해당 펠릿을 깨끗하게 세척한 후 비중 차이를 이용해 선별·분리 작업을 진행한다. 분리된 재료들은 기존 원료와 적당한 비율(20~50%)로 혼합해 플라스틱 소재로 만든다.

문제는 이런 과정을 거쳐 플라스틱 소재를 만들어도 염료나 유연제 등 이전에 사용된 각종 첨가제로 고분자의 질이 떨어지고, 아무리 깨끗이 세척한다 해도 불순물이 남는다는 점이다. 많은 처리비용도 기계적 재활용의 발목을 잡는 요소다. 플라스틱 소비 대국인 미국의 플라스틱 재활용률이 고작 10%에 불과한 것도 이런 점 때문이다. 대부분 방치되거나 소각되는 실정이다.

플라스틱은 종류가 다양하고 재질마다 재활용 공정이 다르다. 따라서 제품을 설계하는 단계에서부터 재활용을 어떻게 할 것인지 고려해 분자 복잡성을 최소화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왕쥔펑 교수팀은 고분자인 중합체를 원래 재료인 단위체로 다시 분해할 수 있도록 처음부터 설계해 플라스틱의 지속가능한 화학적 재활용의 실마리를 찾았다.

연구팀의 지속가능한 재활용 단위체 찾기에는 고성능의 컴퓨터가 동원됐다. 컴퓨터로 다양한 방법의 계산을 수없이 거듭한 끝에 적합한 이론적 단위체(원료)를 찾아냈다. 이후 이론적 단위체를 tCBCO(trans-cyclobutane-fused cyclooctene)라는 실제 단위체로 만들어내는 데 성공했다. 탄소 원자 8개가 고리를 이루는 1,5-사이클로옥텐(1,5-cyclooctene)과 트랜스-부탄(trans-butane)을 이용해 설계한 단위체다. 연구팀은 계속해서 이 단위체 원료를 중합 반응을 통해 고분자 합성에까지 성공시켰다.

재활용 플라스틱을 개발한 미국 애크런대 고분자과학대학 왕쥔펑 교수(왼쪽). 그가 ‘네이처 화학’에 공개한 분자식. ⓒphoto uakron.edu
재활용 플라스틱을 개발한 미국 애크런대 고분자과학대학 왕쥔펑 교수(왼쪽). 그가 ‘네이처 화학’에 공개한 분자식. ⓒphoto uakron.edu

열에도 강한 새로운 고분자 합성

연구팀이 합성한 고분자는 기존 플라스틱의 특성인 열에 대한 안정성과 기계적 특성이 뛰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기계적 특성은 물질이 뒤틀리거나 파손되지 않고 구부려질 수 있는 굴곡 특성, 재료를 잡아당겼을 때 그 재료가 파괴될 때까지의 응력(본래 모양을 지키려는 물체의 힘)을 표시하는 인장 강도, 충격을 받았을 때의 저항 강도를 나타내는 충격 강도 등을 말한다.

연구팀의 고분자는 370℃의 고온에서도 분해되지 않을 만큼 열에도 강했다. 또 탄소와 염소로 이뤄진 화합물인 클로로포름(CHCl3) 같은 용매를 사용하면 90% 이상이 단위체로 분해될 만큼 화학적 특성이 우수하다. 이렇게 얻은 단위체 원료를 다시 사용해 중합하면 새 플라스틱이 만들어지는데, 이 과정이 수차례 반복되어도 새로 태어난 플라스틱의 물성은 떨어지지 않는다. 폐플라스틱에서 처음과 같은 고품질 원료를 쉽게 뽑아낼 수 있다는 이야기다.

새로운 고분자의 기계적, 화학적 특성을 부여하는 역할은 사이클로부탄(cyclobutane·C4H8)이 담당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사이클로부탄은 사용 후의 폐플라스틱이 단위체 원료로 분해되는 데도 참여해 고분자 사슬을 끊는 데 영향을 준다. 사이클로부탄의 사슬 양쪽 끝은 사이클로부탄이 결합하여 사슬이 계속 이어지면서 구조화되는데, 사슬은 열에 안정적이면서 산과 염기 처리에도 견딘다. 만약 고분자의 물성(物性)을 변화시키고자 할 때는 사이클로부탄을 다른 물질로 바꿔주면 가능하다고 연구팀은 설명한다. 연구팀은 또 화학적 재활용에서는 연구팀의 새 플라스틱과 다른 유형의 플라스틱 불순물이 포함돼도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점도 보여줬다. 예를 들어 화학결합 구조가 다른 플라스틱 빨대와 CD 케이스 조각, 색깔이 있거나 투명성이 다른 플라스틱 쓰레기를 섞어 처리해도 새 플라스틱의 분자만 분리해낼 수 있기 때문에 플라스틱 원료를 일일이 선별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플라스틱의 단열성 차이에도 불구하고 재활용률을 100% 가깝게 끌어올릴 수 있다는 것으로, 이는 기계적 재활용을 더 이상 신경 쓸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그야말로 완벽하게 재활용할 수 있는 플라스틱이 개발된 셈이다.

연구팀의 완전 재활용 플라스틱의 핵심은 폐플라스틱을 재활용하는 데 그치는 게 아니다. 이 기술을 바탕으로 새로운 경제 가치와 비즈니스를 창출해 ‘지속가능한 생태계’를 이뤄내는 진정한 순환경제를 실현하는 것이 목표다. 고무와 플라스틱에 모두 사용할 수 있는 연구팀의 새로운 합성 고분자는 순환형 재활용의 드문 예이다. 왕쥔펑 교수는 플라스틱 재활용의 걸림돌을 제거한 특수 화학결합을 가진 새 고분자가 현재 사용 중인 고분자를 대체할 후보가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왕쥔펑 교수팀의 혁신적 신기술은 플라스틱을 일회용이 아닌 거의 무한한 수명을 가진 재료로 변형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이제 남은 일은 상용화다. ‘플라스틱 재활용의 경제학’을 바꿀 수도 있는 연구팀의 차세대 플라스틱 보급에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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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자 과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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