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9월 5일 서울 역삼동 ‘더 라움’에서 열린 리니지2M 미디어 쇼케이스 ‘2nd IMPACT’에서 엔씨소프트 김택진 대표가 키노트 발표를 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2019년 9월 5일 서울 역삼동 ‘더 라움’에서 열린 리니지2M 미디어 쇼케이스 ‘2nd IMPACT’에서 엔씨소프트 김택진 대표가 키노트 발표를 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NC를 둘러싼 외부 반응이 냉담합니다. 게임은 물론 NC에 대한 비판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NC가 위기에 빠졌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 대한 사우 여러분들의 걱정과 제안을 계속해서 보고, 듣고 있습니다. CEO로서 NC가 직면한 현재 상황에 무거운 책임감을 느낍니다.”

‘택진이형’ 김택진 엔씨소프트 대표가 추석을 앞둔 지난 9월 17일 직원들에게 이메일을 보냈다. CEO가 이메일 보낸 게 뭐 그리 대단한 일인가 싶지만, 일부 직원들은 놀랐다고 했다. 보통 김 대표의 메시지는 메일함이 아닌 언론을 통해서 접해왔다. 한 직원은 “이 회사 다니면서 CEO의 이메일을 보는 건 처음”이라고 말했다. 주변에서도 비슷한 반응이 적지 않았다고 한다.

한국 게임계를 이끄는 덩치 큰 기업 세 곳을 보통 ‘3N’이라고 부른다. 엔씨소프트(NCSOFT), 넥슨(NEXON), 넷마블(NETMABLE)의 머리글자인 ‘N’을 땄다. 엔씨소프트는 이 3N을 앞에서 이끄는 행동대장 같은 존재다. 그런 곳에서 지금의 상황을 매우 엄중하게 바라본다고 했다. 과거에도 시장은 여러 차례 NC의 위기를 언급한 적이 있지만 그때마다 엔씨소프트는 실적으로 정면돌파해왔다. 이번은 뭐가 달라서 대표 이메일까지 날아온 걸까.

일단 주가가 기록적으로 하락했다. 특히 신작이 출시된 직후부터 하락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보통 게임사의 신작은 주가 상승의 소재인데 엔씨소프트의 신작은 급락의 소재가 됐다. 지난 8월 25일 83만7000원이던 주가는 이틀 뒤인 8월 27일 65만9000원까지 하락했고, 그 이후로도 반등하지 못한 채 50만원대 후반에서 정체 중이다. 불과 한 달이 채 안 된 사이 30% 가까이 빠졌다. 시가총액 기준으로 증발한 돈이 5조4000억원이다. 어지간한 중견 게임사 여러 곳이 날아간 격이다.

하락의 시초가 된 지난 8월 26일 0시, 엔씨소프트는 MMORPG(다중접속역할수행게임) 블레이드앤소울2(블소2)를 정식으로 출시했다. 블소는 엔씨소프트의 대표작 중 하나로 무협의 세계를 주요 스토리라인으로 잡으며 호평을 받았던 IP(지적재산권)이다. 이번에 내놓은 블소2는 9년 만에 나온 후속작이다. 엔씨소프트 측은 블소2의 성공에 상당한 자신감을 내비쳤다. “블소2가 리니지M 정도의 성과를 낼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리니지는 완벽한 게임”

1998년 9월 첫 유료서비스를 시작한 ‘리니지’는 지금의 엔씨소프트를 만들어낸 IP이다. 속편이 속속 출시되며 이제는 스마트폰으로도 즐기는 게임이 됐는데, 지금도 엔씨소프트를 먹여살리고 있다. 블소2와 비교가 된 리니지M은 PC에서 즐기던 리지니의 핵심 요소를 모바일로 옮긴 게임이다. 엔씨소프트의 2020년 매출 2조4162억원 중 리니지M이 담당한 몫이 8287억원에 달한다. 리니지M의 그래픽 업그레이드 버전인 리니지2M의 2020년 매출도 8496억원이다. 이 두 가지 리니지 조합은 엔씨소프트가 지난해 올린 매출의 약 70%를 담당했다. 이 정도 성과를 냈으니 엔씨소프트 내에서 리니지라는 게임은 ‘완벽한 게임’이며 건드릴 수 없는 무언가로 통한다. 그런 게임과 비교됐으니 블소2에 거는 기대의 크기를 짐작할 만했다.

그런데 오픈 첫날의 성적은 그야말로 참담했다. 모바일게임 매출 1위인 카카오게임즈의 ‘오딘’을 제치고 일 평균 매출 30억~40억원 정도를 기록할 거라 기대했지만 첫날인 8월 26일 애플 앱스토어 매출 순위는 10위로 부진했고 다음날에도 5위를 기록해 순위 지표에서 저조한 성적을 거두었다. 리니지M, 리니지2 레볼루션, 리니지2M은 각각 7시간, 8시간, 10시간 만에 애플 앱스토어 매출 순위 1위에 올랐었다. 이에 비하면 한참 부족한 성적이다. 성종화 이베스트증권 애널리스트는 “이 정도면 일매출은 10억원 내외에 불과한 수준이다”라고 분석했다. 주가의 폭락은 신작이 거둔 충격적인 성적 때문이었다.

왜 이렇게 됐을까. 엔씨의 게임은 유저들의 지갑으로 유지된다. 그런데 이 지갑이 닫혔다. 블소2가 만들어낸 위기는 이전 사건들이 복합적으로 얽혀 있다. 먼저 ‘린저씨(리니지하는 아저씨)’를 이해해야 한다. 과거 게임 폐인처럼 불렸던 린저씨들은 이젠 부자의 상징으로 인식된다. 리니지에서는 얼마나 많은 현금을 캐릭터에 쏟아붓느냐 하는 ‘현질’이 캐릭터의 강함을 결정한다. ‘페이투윈(Pay to Win)’으로 만들어낸 강함, 그리고 이를 활용한 PK(플레이어 킬링)가 리니지의 핵심이다. 이 세계 내에서는 1억원을 퍼부어도 하수에 불과하다. 상위권 캐릭터의 투자액은 20억원이며 리니지M 최상위권 캐릭터는 100억원 이상 썼을 거라는 게 이 바닥 정설이다. 단위가 다른 이런 현질은 엔씨소프트 게임의 젖줄이다. 리니지M과 리니지2M은 지난 수년간 모바일게임 매출 1~2위를 독식해왔다. 그런데 엔씨소프트 스스로 이런 구도에 균열을 냈다는 지적이 많다.

제도권 엘리트들의 게임 진입

올해 1월 엔씨소프트는 ‘리니지M’의 문양 시스템 과금을 낮추는 개편을 했다. 리니지M은 캐릭터의 스탯을 올리는 문양 시스템이 있는데, 문양 하나를 완성하는 데 보통 4000만원 이상이 들어가는 것으로 알려졌다. 리니지라는 게임은 기본 구도가 ‘혈맹’이라는 커뮤니티 세력 간의 대결이다. 그래서 종종 회사 측에서는 헤비과금러(현질을 많이 하는 사람)와 소과금러의 격차를 줄여주는 업데이트를 해왔다. 문제는 엔씨소프트가 실시한 개편으로 헤비과금러들이 수천만원씩 들여가며 완성하던 문양을 훨씬 적은 돈으로 완성할 수 있게 됐다는 점이다. 약 70억원 정도를 투자한 것으로 알려진 한 유저가 공개적으로 “개편을 취소하지 않으면 무차별적으로 PK(다른 플레이어를 죽이는 행위)를 하겠다”고 선언하는 등 상위 유저들이 반발했고 결국 엔씨소프트는 2월 1일 시스템을 이전으로 되돌렸다.

시스템은 되돌렸지만 개편된 문양 시스템에 지불한 유저들의 현금을 어떻게 환불해줄 것인가라는 문제가 남았다. 유저들은 당연히 돈을 냈으니 돈으로 받길 원했는데 엔씨소프트는 자신들의 뜻을 고수해 게임 내에서 쓰이는 현금성 재화인 ‘다이아’로 돌려주려고 했다. 이를 둘러싼 불만과 반목이 여러 달 동안 계속됐고 돈을 쓴 유저들을 오히려 무시하는 듯한 엔씨소프트의 처사에 헤비과금러들을 중심으로 ‘개돼지해방전쟁’이라고 불리는 불매운동과 트럭 시위 등이 벌어졌다. 게임사와 유저들의 신뢰가 깨진 경우인데, 게이머들은 이 사건을 ‘문양 시스템 롤백 사태’라고 부른다.

갈등으로만 보이는 이 사건에는 엔씨소프트를 이끌었던 BM(비즈니스 모델)에 관한 반감이 자리한다. 린저씨들의 현질은 엔씨소프트의 실적과 주가를 받쳐왔다. 현질을 높이는 게임 내 방법으로 가장 손쉬운 건 좋은 아이템이 뽑힐 확률을 희박하게 만들어서 투입되는 돈을 늘리는 것이었다. 리니지를 두고 도박이라는 얘기가 나온 까닭이다. 2018년 김택진 대표가 국정감사에 불려갔던 것도 확률형 아이템에 대한 사회적 문제가 제기됐기 때문이다. 당시 김 대표는 “아이템이 유저들에게 공정하게 나누어질 수 있도록 하는 기술적 장치”라고 항변했다.

경쟁심을 건드리는 것도 BM의 한 요소다. 한 게임사 사업부 관계자는 “엔씨소프트 게임은 BM이 절대적인 자극 요소다. 업데이트를 통해 헤비과금러에게 상대적으로 위기감을 조성해 더 많은 돈을 투입하게 만든다. 따라잡힐 수 있다는 위협은 더 많은 현질을 하도록 유도하는데, 이런 BM은 다른 게임사들 역시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비슷한 형태로 적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한국 게임의 획일화를 이끌었다는 비판에서 엔씨소프트는 자유롭지 못하다. 리니지로부터 시작한 이 BM은 엔씨 내 다른 모든 게임에도 비슷하게 적용된다. 젊은 세대를 끌어들이겠다고 만든 게임 ‘트릭스터M’은 ‘귀여운 리니지’라는 회사의 설명대로 과금정책이나 운영 콘셉트가 리니지와 거의 흡사하게 출시됐다. 이 탓에 리니지를 잘 모르던 게이머들도 엔씨소프트의 BM을 알게 되는 계기가 됐다.

그리고 등장한 블소2 역시 부족한 게임성, 리니지식 과금체계의 틀을 벗지 못했다. ‘무협의 냄새를 가진 리니지’라는 평가가 나왔다. 게다가 3만3000원의 ‘시즌 패스’를 끊지 않으면 자원조차 얻을 수 없는 구조 탓에 리니지보다 더하다는 얘기가 나왔다. “대형마트에 돈 쓰러 가는데 입장료 3만3000원을 내고 들어가야 하는 꼴”이라는 혹평이 나왔다.

엔씨소프트도 과거에는 다양한 시도를 했던 때가 있었다. 2010년 서비스가 종료된 엑스틸 같은 3인칭 슈팅 게임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이런 작품들은 영 성적이 신통치 못했다. 그러다 보니 결정권자들은 자신들이 가장 잘 해왔던 방식을 선호하기 시작했다. 엔씨소프트를 퇴사한 한 관계자는 이를 게임기업 내 구조적 문제로 본다. “원래 게임은 너드(특정 분야에 관심이 많은 매니아) 문화 속에서 꽃피는데 그렇게 성공해 대기업이 된 게임사에는 점점 제도권 엘리트들이 입사하게 되고 이들이 점점 주류가 되는 경우가 많다. 특히 게임 출시에 들어가는 자본이 요즘은 수백억원 단위로 커지다 보니 리스크 관리가 중요해졌다. 게임성과 사업성이 충돌하는 지점인 경우 점점 안전을 강조하는 사업성 위주의 모델이 우위에 서는 경우가 많다. 엔씨소프트 같은 경우는 리니지라는 성공 모델이 있으니 새로운 게임을 기획할 때도 ‘리니지처럼만 하면 성공한다’는 게 계율처럼 뒤따른다.”

“엔씨식 과금, 유저들에게 환영 못 받아”

엔씨소프트에 켜켜이 쌓인 불만, 그로 인해 생긴 부정적 전망은 그 어느 때보다 심각하다. “주가가 더 떨어져야 정신 차릴 것”이라는 이야기를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지금의 분위기는 김택진 대표가 언급한 ‘냉담한 외부 반응’과 맞닿아 있다. 정호윤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현재 매출 1위를 기록하고 있는 오딘과 엔씨소프트의 게임 사이에는 과금 모델 차이가 크지 않지만 블소2의 다운로드 수가 크지 않은 것은 엔씨소프트 유저들의 떠나간 민심 탓이다. 엔씨소프트식 게임 디자인 및 과금 모델이 더 이상 유저들에게 환영받지 못한다는 것이 이번 블소2를 통해 극명하게 확인됐다”고 지적했다.

결국 엔씨소프트가 기댈 곳은 돌고돌아 또다시 리니지다. 올해 안에 리니지W가 나올 예정인데 김택진 대표는 이 게임을 ‘마지막 리니지’라고 언급한 바 있다. 다만 리니지식 BM이 강하게 저항받는 상황에서 과금체계에 변화가 없다면 성공 가능성 역시 그 어느 때보다 낮아진다는 게 문제다. 그렇다고 착하게(?) BM 구조를 짤 경우 매출이 변변치 않을 수 있다는 두려움이 있다. 엔씨소프트의 딜레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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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회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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