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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78호] 2021.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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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자의 세상 읽기]엉터리 ‘통합 수능’의 치명적 부작용들

이덕환  서강대 화학과 명예교수 duckhwan@sogang.ac.kr 2021-10-14 오후 5:02:38

▲ 2022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앞두고 마지막 모의평가가 열린 지난 9월 1일 전북 전주시 전주성심여자고등학교에서 3학년 수험생들이 진지한 모습으로 모의고사를 치르고 있다. photo 뉴시스
문과(인문계)가 추락하고 있다. 올해부터 떠들썩하게 도입되는 무늬만의 ‘문·이과 통합형 수능’이 사실 문과생들에게 일방적으로 불리한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대학을 들어간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도 아니다.
   
   졸업 후의 취업난은 훨씬 더 심각한 문제다. 기업이 신입사원의 80%를 이공계 출신으로 채우고 있다. ‘디지털 전환’ 때문에 이공계 출신을 우대할 수밖에 없다고 한다. 인문계는 신입사원의 ‘다양성’을 고려해서 채용하는 양념이라는 기업도 있다. 궁지에 몰린 인문계 학생들이 ‘코딩’ 과목 수강에서 출구를 찾겠다고 야단들이다.
   
   
   짝퉁 수능의 기만적인 ‘통합형’
   
   올해 수능에서는 ‘문과’(인문계)와 ‘이과’(이공계)로 나누던 ‘가’형과 ‘나’형의 구분이 없어진다. 모든 수험생이 같은 문제를 풀고, 점수도 함께 산출한다는 것이 교육부의 주장이다. 겉으로는 교육부의 수능에서 공교육의 고질적 병폐로 지적되어왔던 문·이과 구분이 없어지는 것이다. 그런데 정말 수험생들이 모두 똑같은 과목의 시험을 치르는 것은 아니다. 국어·수학 성적의 25%에는 학생들이 적성과 진로에 따라 고르는 ‘선택과목’의 표준점수가 반영된다. 탐구(사회탐구·과학탐구·직업탐구)에서도 자신이 원하는 과목을 선택할 수 있다.
   
   입시 현장은 난장판이다. 지난 9월에 실시된 모의고사의 분석 결과에 따르면, 수학 1등급의 83.2%와 2등급의 79.8%가 ‘미적분’이나 ‘기하’를 선택하는 이과생들이다. ‘확률과 통계’를 선택한 문과생들이 이과생들에게 크게 밀리고 말았다는 것이다. 국어의 사정도 다르지 않다. ‘화법과 작문’을 선택한 수험생이 1등급을 받은 비율은 18.4%였고, 2등급을 받는 비율도 절반을 밑도는 43.4%에 지나지 않았다. ‘언어와 매체’를 선택한 수험생들이 1등급을 싹쓸이해 버렸다는 뜻이다. 지난 6월에 치른 모의고사의 결과도 크게 다르지 않았고, 11월의 수능에서도 상황이 변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 입시 전문기관들의 공통된 전망이다.
   
   문제는 충분히 예상되던 것이었다. ‘수능(대학수학능력시험)’은 1993년 통합교과적 출제로 종합적 이해와 논리적 사고로 상징되는 ‘대학 수학능력’을 평가하겠다고 도입한 것이다. 문·이과 구분 없이 모든 학생들이 언어·수리·탐구·영어 시험을 치렀고, 교과목을 선택할 이유는 없었다.
   
   그런 수능이 1995년부터 과거의 ‘학력고사’와 조금도 다르지 않은 ‘누더기 짝퉁 수능’으로 변질되어 버렸다. 적성·진로를 고려하고, 학습부담을 줄여준다는 주장은 핑계였다. 사실은 통합교과적 출제의 어려움과 교과 이기주의에 포획된 학교 현장이 문제였다. 결국 그동안 수면 아래 감춰져 있던 짝퉁 수능의 해묵은 문제가 이번 통합형에서 드러나게 된 것이다.
   
   내용과 성격이 전혀 다른 선택과목들의 ‘난이도’를 공정하고 합리적으로 조절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사실 난이도를 조절한다고 짝퉁 수능의 공정성과 합리성이 보장되는 것도 아니다. 서로 다른 선택과목의 시험을 치르는 수험생들의 수학능력이 통계적으로 같아야 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표준(변환)점수’가 선택과목 성적의 직접적인 비교를 가능하게 만들어준다는 입시 전문가들의 일방적인 주장은 국민 기만적인 것이다. 평균이나 분산(分散)을 근거로 한 단순한 통계적 ‘변환’으로 공정하고 합리적인 비교가 가능해지는 것이 절대 아니다. 그런 발상은 마치 수험생의 ‘키’와 ‘몸무게’를 비교하거나, ‘사과’와 ‘김치’의 맛을 비교하겠다는 것처럼 어처구니없는 것이다.
   
   표준점수만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다. 해마다 ‘물수능’과 ‘불수능’을 오락가락하는 수능의 난이도 역시 수험생들을 절망시키고 있다. 수능 출제기관의 무책임한 엉터리 분석 때문에 아까운 목숨을 버리는 수험생도 있었다. 출제범위를 교육과정으로 제한하고, EBS 교재를 출제에 반영하라는 교육부의 지침도 반(反)교육적이다. 해마다 반복되는 출제 오류와 교육적으로 아무 의미가 없는 ‘킬러 문항’도 수능에 대한 사회적 신뢰를 떨어뜨리는 요인이다.
   
   
   ‘통합’이 아니라 ‘구분 폐지’
   
   문·이과 통합형 수능은 정부의 강력한 ‘역사 바로 세우기’에서 파생된 흉물이다. 청소년들이 6·25전쟁을 ‘북침’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어느 언론사의 2013년 6월 어설픈 여론조사가 발단이었다. ‘민족의 혼’을 지키기 위한 역사 교육을 강화하라는 대통령의 불호령이 엉뚱하게 문·이과 통합형 교육과정으로 변질되었다. 교육과정에 ‘한국사’만 필수로 끼워 넣는 일은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결국 ‘사회’와 ‘과학’의 외형적 균형을 명분으로 내세워야만 했다.
   
   ‘문과’와 ‘이과’의 구분은 19세기 말 화혼양재(和魂洋才)를 외치던 일본이 만들어낸 기형적인 교육제도다. 일본·한국·중국·대만에서만 볼 수 있는 황당한 제도이기도 하다. 학생들의 적성과 진로를 존중해주고, 학습부담을 줄여준다는 것은 국민을 기만하기 위한 궤변이다. 사실은 사회적 비용을 절감하기 위해 학생들에게 반쪽짜리 교육을 제공하는 것도 모자라 평생 지워지지 않는 낙인을 찍어주겠다는 고약한 꼼수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문과와 이과의 구분은 생각처럼 분명한 것이 아니다. 국어·사회가 ‘문과’이고, 수학·과학이 ‘이과’라는 인식은 설득력이 없다. 민주화된 과학기술 시대를 살아가야 할 학생이라면 누구나 국어·수학·사회·과학에 대한 상당한 수준의 상식을 갖춰야 한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이 ‘문과’와 ‘이과’로 구분되어 있는 것도 아니다. 은행원·경영자·국회의원·대통령에게는 이과적 소양도 문과적 소양만큼이나 중요하다. 문과 출신이라서 과학을 모른다는 정치인의 거만한 인사말은 몹시 부끄러운 것이다.
   
   ‘문과’와 ‘이과’는 함부로 ‘통합’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고등학교의 ‘사회’와 ‘과학’을 하나로 합치는 것은 불가능하다. 수능의 ‘가’형과 ‘나’형을 없애는 것이 문·이과 통합일 수도 없다. ‘이공계 기피’나 ‘인문계 추락’은 기형적인 낙인찍기식 교육제도가 만들어낸 황당한 사회문제다. 인문계의 낮은 취업률이 어제오늘의 새로운 문제도 아니다.
   
   학생들의 선택권과 학습부담 경감을 핑계로 내세우는 억지스러운 문·이과 구분의 ‘폐지’가 목표가 되어야 한다. 이공계 진학을 위한 수학·과학 교육을 근본적으로 뜯어고쳐야 한다. 수학 문제풀이와 어설픈 과학 개념 대신 수학적 논리와 과학의 문명적 가치를 가르쳐야 한다.
   
   현대 과학기술이 인간성을 말살하고 환경을 파괴한다는 반(反)문명적 문학 작품으로 가득 채워진 ‘국어’와, 역사·지리·정치·경제·법학으로 파편화되어버린 ‘사회’도 획기적으로 통합·융합시켜야 한다. ‘윤리’는 교실이 아니라 가정과 사회에서 배워야만 하는 과목이다.
   
   대학의 칸막이를 없애는 노력도 필요하다. 인문학은 인간에 대한 것이고, 자연과학은 자연에 대한 것이라는 구분은 의미가 없다. 자연에 대한 현대 과학적 이해가 빠진 인문학이나, 인간에 대한 이해가 전제되지 않은 자연과학은 의미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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