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창원시가 개발한 ‘나온나앱’은 5억원이 넘는 예산이 제작에 들어갔지만 폐기대상이 됐다. ⓒphoto 셔터스톡
경남 창원시가 개발한 ‘나온나앱’은 5억원이 넘는 예산이 제작에 들어갔지만 폐기대상이 됐다. ⓒphoto 셔터스톡

정부 부처와 지방자치단체·공공기관들의 무분별한 앱(애플리케이션) 개발은 과거부터 사라져야 할 악습으로 지목됐다. ‘보여주기식 공공(公共)앱’에 수십억원 이상의 세금이 반복적으로 낭비되고 있어서다. 등장할 때는 ‘대국민 서비스’를 내걸고 우르르 등장하지만 외면받거나 존재조차 알리지 못한 앱들이 적지 않게 방치되거나 사라지길 반복하고 있다.

인천시 남부교육청이 1150만원을 들여 개발한 ‘남부창의체험자원지도(CRM) 앱’을 한번 보자. 지난해까지 2년 연속 그 누구도 다운로드하지 않았다. 인천시 옹진군에서 2997만원을 들여서 개발한 ‘옹진군청 재난예경보시스템’도 마찬가지. 다운로드 실적이 ‘0건’이다. 개발비가 저렴하다 보니 방치해두는 걸까.

좀 더 비싼 앱이라고 해서 상황이 좋아 보이진 않는다. 노인 안심 귀가와 자녀 위치 확인 서비스를 제공하는 ‘서산 안심지기’라는 공공앱이 대표적이다. 서산시가 2년 전 1억4800만원을 들여 만들었는데, 한 해 유지비만 약 1700만원이 드는, 나름 대형 앱이다. 하지만 이 앱은 2년간 3300회 정도만 다운로드됐을 뿐이다.

지금까지 소개한 공공앱들은 모두 올해 행정안전부의 공공앱 성과 평가에서 폐기대상으로 분류됐다. 행안부는 누적 다운로드 수·이용자 수·사용자 만족도·업데이트 최신성 등을 항목별로 평가해 100점 만점 중 70점 미만을 폐기대상으로 정한다.

346개 공공앱 중 128개가 폐기대상

없애기로 결정난 앱은 이것뿐만이 아니다. 지난 9월 29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한병도 의원이 행정안전부로부터 제출받은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전국 17개 시·도와 교육청이 개발한 공공앱 346개 가운데 128개가 성과 측정 결과 폐기대상인 것으로 나타났다. 3개 중 1개꼴로 폐기대상으로 지정된 셈이다. 폐기대상 앱 제작비를 모두 합치면 약 30억원에 달한다.

폐기대상 앱 중 개발비가 가장 많이 투입된 앱은 2017년 경남 창원에서 개발한 ‘나온나앱’이다. 명칭부터 무엇을 위한 앱인지 직관적이지 못한 이 앱은 증강현실(AR), 가상현실(VR) 등 첨단 ICT 신기술을 창원 관광지와 접목해 볼 수 있도록 하는 게 목적이다. 제작비로만 약 5억6000만원이 들어갔지만 지난해 다운로드 수는 1996회, 누적 다운로드도 6000회가량에 그쳤다.

비슷한 조사 결과는 또 있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서범수 국민의힘 의원이 전국 228개 광역·기초지자체에서 예산 3000만원 이상을 들여 제작한 공공앱 현황을 파악했다. 다운로드 수 기준을 1만건으로 잡았는데, 보통 앱 산업계에서는 다운로드 1만건이 넘어야 어느 정도 시장성을 확보한 것으로 인정한다. 다운로드 1만회는 앱 유지의 바로미터이자 서비스 수요를 어느 정도 파악하고 진행한 것으로 이해하면 된다.

자료에 따르면 다운로드 1만건 미만을 기록해 충분조건조차 채우지 못한 앱은 총 87개나 됐다. 총개발비용을 다운로드 수로 나눈 ‘1인당 개발비용’을 산출했을 때 다운로드당 10만원 이상인 앱이 42개였다. 이런 결과는 전국 지자체가 만든 공공앱 352개 중 제작비 3000만원 이상인 앱 138개를 선정해 조사한 건데, 3000만원 미만 앱으로 범위를 확대한다면 성적이 부진한 공공앱은 더욱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관계자들은 공공앱 개발의 붐을 박근혜 정부에서 펼쳤던 ‘정부 3.0’에서 찾는다. 공공정보와 데이터들을 국민에 제공한다며 벌였던 정부 사업에 편승해 당시 정부 부처에서는 공공앱을 확장하는 분위기가 있었다. 문화체육관광부 관계자의 얘기다. “당시에는 행정안전부가 각 부처별로 공공앱을 몇 개나 가지고 있는지, 용도가 무엇인지, 다운로드 숫자라든지, 업데이트를 자주하는지 여부 등을 관리하는 분위기였다. 그러다 보니 부처별로 필요하다면 일단 만들어 보자는 분위기가 있었다.”

다만 관리되지 않고 폐기되는 앱에 대한 지적이 매년 되풀이되자 정부 부처의 앱 개발 붐은 잦아든 분위기다. 반면 지자체나 공공기관의 경우는 사각지대다. 선거가 있거나 기관장 교체가 있을 때 앱 개발이나 개편이 일어나는 경우가 흔하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뭐든지 필요해서 만드는 게 상식이지만 공공앱은 그 필요성을 고민하는 과정을 생략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수년 전 앱 개발에 직접 참여했던 서울시 관계자는 “무(無)에서 새로운 걸 창조한다는 게 재미있을 것 같아 기대했는데 막상 해보니 금방 사람을 질리게 만드는 프로젝트였다”고 말했다.

“앱 만들었는데 예산이 왜 필요해?”

그가 참가했던 프로젝트에서 쉽게 이해되지 않았던 부분은 중복된 앱 기능이었다. ‘이미 이런 비슷한 기능의 앱이 나와 있는데 왜 문제 삼지 않을까.’ 세상에 새로운 것은 없는 법이다. 공공에서 아무리 머리를 짜낸들 이미 심각하게 포화된 앱 시장에서는 비슷한 민간 앱을 찾을 수 있다. 자기 비즈니스를 하기 때문에 더욱 치열하게 준비해 내놔도 성공 확률이 극히 낮은 게 앱 시장이다. 그런데 공공앱은 그런 민간의 고민과 비교했을 때 미안한 수준의 기획을 갖고 개발부터 진행한다.

앞선 관계자는 “공공앱을 새로 만들려면 이미 있는 앱들을 조사한 뒤 유사하거나 중복되는 부분들에 대해서 미리 검토하는 작업이 필요한데, 그런 부분을 등한시하는 경향이 있었다. 시작 단계부터 그런 식으로 해서는 민간에 통하는 서비스가 만들어질 리 없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민간과 달리 공공의 KPI(핵심 성과 지표)는 매출과 같은 양적 지표가 아니다. 앱을 만든 뒤 유발되는 효과를 매우 단선적으로 바라본다. 일단 앱을 만들어냈다는 결과 자체가 필요하다. 작품을 만들었다면 앱에 관해 보도자료를 뿌리고 이벤트를 진행하면 앱을 둘러싼 1차적인 스케줄은 모두 끝난다. 굳이 앱을 활성화하려고 노력하거나 사용자를 늘리기 위해 힘쓸 이유가 없다. 행안부 관계자는 “앱은 사후관리가 중요한데 유지·보수가 제대로 되지 않은 채 그냥 방치된 앱은 매년 되풀이되는 정비 대상이다”라고 말했다,

공공기관 조달사업을 여러 차례 따낸 한 앱 개발 외주업체 대표는 어이없는 장면도 몇 번 목격했다. 한 공공기관에서 기관장이 교체된 뒤 이 업체는 앱 개발 발주를 따냈다. 보통 공공기관과는 연 단위로 계약을 맺는다. 첫해 계약은 보통 개발 이슈다. 그리고 유지·보수에 관한 계약은 뒤에 따로 진행하는 게 통상적이다.

그런데 앱 개발이 끝난 뒤 유지·보수에 관해 담당자가 예산을 올리자 기관장이 “이미 앱을 만들었는데 예산이 왜 필요하냐”고 되물었다고 한다. 그는 공공이 사후관리에 관한 인식을 바꾸지 않는 한 공공앱의 폐기 문제가 해결되기 어렵다고 봤다. “네이버나 카카오도 처음부터 좋은 앱이 아니었다. 끊임없이 유지·보수를 해가며 지금의 앱처럼 점점 변해간 건데 공공에서는 그런 메커니즘을 잘 이해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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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회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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