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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과학자의 세상 읽기]  발암물질 공포와 파라켈수스의 ‘용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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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80호] 2021.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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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자의 세상 읽기]발암물질 공포와 파라켈수스의 ‘용량’

이덕환  서강대 명예교수 duckhwan@sogang.ac.kr 2021-10-27 오후 1:50:07

▲ 지난 10월 29일 ‘용산미군기지 온전한 반환과 세균실험실 추방을 위한 서울대책위’와 ‘불평등한 한·미 SOFA 개정 국민연대’를 비롯한 시민사회단체가 서울 종로구 청계광장에서 발암물질 범벅, 미군기지 오염 규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발암물질에 대한 소비자들의 공포가 도를 넘어서고 있다. 발암물질을 한 번이라도 먹거나 만지기만 해도 당장 암에 걸린다고 겁을 내는 소비자들이 적지 않다. 발암물질이 조금이라도 들어있는 제품·음식·환경요인은 철저하게 경계해야 한다고 야단법석이다. 언론과 전문가들이 소비자들의 불안을 부추기고 있다. 특히 의학·식품·환경 분야의 전문가들이 그렇다. 그렇다고 모든 소비자들이 발암물질을 두려워하는 것은 아니다. 과학적으로 인체 발암성이 확인된 1군 발암물질을 조금도 무서워하지 않는 소비자들도 적지 않다.
   
   
   ‘용량’이 독을 만든다
   
   화학물질은 인체에 위험할 수 있다. 실제로 ‘독성학의 아버지’로 알려진 르네상스 시대의 독성학자 파라켈수스는 ‘모든 것이 독(毒)’이라고 했다. 건강에 꼭 필요한 설탕과 같은 탄수화물이나 소금도 너무 많이 먹으면 문제가 생긴다. 심지어 의사가 처방하고 약사가 조제한 약(藥)도 복용법을 지키지 않으면 치명적인 독이 된다.
   
   파라켈수스는 “용량(dose)이 독을 만든다”는 말을 남기기도 했다. 아무리 좋은 약이라도 너무 많이 먹으면 독이 되고, 아무리 치명적인 독이라도 충분히 적은 양을 섭취하면 오히려 약이 될 수도 있다는 뜻이다. 맹독성의 비상(砒霜)이나 봉독(蜂毒·꿀벌의 독)을 약으로 쓸 수 있었던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다.
   
   인체에 독성이 나타나기 시작하는 ‘용량’을 정확하게 파악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뱀독·복어독·말벌독·버섯독처럼 즉각적이고 분명한 급성 독성이 나타나는 경우에는 그나마 나은 편이다. 장기간에 걸쳐 반복·지속적인 노출에 의해 발생하는 만성 독성의 경우에는 사정이 다르다. 용량은커녕 인과관계를 밝혀내기도 쉽지 않다. 인체에서 일어나는 생리작용이 워낙 복잡하기 때문이다.
   
   만성 독성이라고 함부로 무시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대표적 만성 질병인 암은 우리나라에서 사망 원인 1위의 고약한 질병이다. 2020년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인구 10만명당 160.1명이 암으로 사망했다. 2위의 심장질환보다 2.54배나 높은 수준이다. 나이 든 노인만 암에 걸리는 것도 아니다. 고의적 자해(자살)에 밀려 2위를 차지한 10대·20대·30대를 제외한 모든 연령대에서 암은 단연코 사망 원인 1위다. 폐암·간암·대장암·위암·췌장암순으로 사망률이 높다.
   
   암이 치명적이라는 현실이 달라지고 있다. 5년 이상 생존하는 ‘암 생존율’이 1995년 42.9%에서 2018년 70.3%까지 올라갔다. 갑상선암의 생존율은 99.3%에 이른다. 우리나라의 암 생존율은 세계 1위다. 암을 치료하는 수술·항암제·방사선요법 등의 치료기술이 놀랍게 발전한 결과다.
   
   치료기술만 발달한 것이 아니다. 암의 조기진단에 필요한 MRI(자기공명영상)·PET(양전자단층촬영)·내시경 등의 진단기술도 크게 발전했다. 암은 초기에 발견하면 5년 생존율이 100%에 가까울 정도로 치료할 수 있다. 건강보험에서도 암의 조기진단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발암 1군 화학물질은 54종뿐
   
   조기진단과 함께 생활환경에서 발암 요인을 제거해 암 발생 위험을 예방하는 능력도 빠르게 향상되고 있다. WHO(세계보건기구) 산하의 IARC(국제암연구소)가 1970년부터 발표하고 있는 ‘발암물질 목록’이 바로 그런 노력이다. 소비자들에게 공포를 부추기는 것이 아니라 정부와 전문가들의 예방 노력을 도와주는 것이 목적이다.
   
   화학물질의 발암성을 확인하는 일은 쉽지 않다. 직접적인 인체 실험은 어느 나라에서도 용납되지 않는다. 결국 시험관에서의 세포 실험이나 쥐·어류 등을 이용한 동물 실험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산업현장에서 발생하는 집단발병에 대한 역학(疫學·epidemiology)조사의 결과도 유용하다. 언론에 떠들썩하게 소개되는 전문가들의 발암성 관련 소식은 제한적인 세포·동물 실험의 결과를 지나치게 과장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세포·동물 실험은 언제나 믿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실험이 어렵거나 부정확해서가 아니다. 동물의 종(種)에 따른 차이를 예측할 수 없기 때문이다. 위생적으로 매우 열악한 시궁창에서 멀쩡하게 생존하는 쥐에게 독성을 나타내지 않는다고 우리가 안심할 수는 없다. 반대로 쥐에게 암을 일으킨다고 해서 반드시 사람에게도 암을 일으키는 것은 아니다.
   
   IARC가 인체 발암성이 확인된 ‘1군(Group 1)’으로 분류하는 화학물질은 고작 54종뿐이다. 인공적으로 생산한 합성 화학물질은 모두 발암물질이라는 주장은 명백한 가짜뉴스다. 실제로 IARC가 분석하는 화학물질의 절반은 어떠한 발암성도 확인할 수 없는 ‘3군(Group 3)’으로 분류된다.
   
   화학물질만 인체에 암을 일으키는 것도 아니다. 간염 바이러스를 비롯한 7종의 바이러스, 헬리코박터와 같은 박테리아, 간흡충(간디스토마)을 비롯한 3종의 기생충도 암을 일으킨다. 사람들이 여전히 좋아하는 술·담배·젓갈·숯불·아플라톡신·미세먼지·가공육·자외선도 1군 발암물질이다.
   
   1군 발암물질이라고 누구에게나 무차별적이고 즉각적으로 암을 일으키는 것은 아니다. 세포의 유전물질인 DNA에 손상이 발생해야만 하는데 손상이 쉽게 일어나는 것도 아니다. 인체에는 DNA의 손상을 방지·복구하는 메커니즘이 마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1군 발암물질의 독성도 천차만별이다. 매년 흡연에 의한 폐암으로 사망하는 사람은 100만명이 넘고 개방형 연소(부엌)에서 발생하는 연기에 의한 폐암으로 사망하는 사람도 수백만 명에 이른다. 과음에 의한 간암 사망자도 60만명이 넘는다.
   
   그런데 똑같이 1군으로 분류되는 가공육의 과다 소비로 목숨을 잃는 사람은 한 해에 3만명을 넘지 않는다. 인체 발암성이 확인되지 않은 ‘2A군’과 ‘2B군’으로 분류된 물질을 ‘발암물질’이라고 호들갑을 떨 이유는 없다. 오히려 발암물질에 대한 지나친 공포 때문에 건강을 해칠 수도 있다는 뜻이다.
   
   인체나 동물에서 발암성이 확인된 발암물질을 애써 섭취·흡입할 이유는 없다. 그렇다고 치명적인 급성 독성을 일으키는 뱀독이나 화학무기처럼 공포에 떨어야 하는 것도 아니다. 발암성은 장기간에 걸쳐서 지속적이고 반복적으로 노출되는 경우에만 나타나는 것이기 때문이다.
   
   IARC에서 ‘1군’으로 분류하는 발암물질은 정부·기업이 엄격하게 관리한다. 독성물질이 포함된 제품의 생산·유통을 관리하는 ‘허용기준’을 실제 독성이 나타나는 파라켈수스의 ‘용량’과 혼동해서는 안 된다. 정부가 허용기준을 정할 때는 파라켈수스의 용량은 물론 현실적인 기술적 한계와 함께 소비자의 경제적 부담도 고려한다.
   
   제품의 생산과정에서 발암물질을 제거하는 기술이 충분히 개발되지 않았거나, 그런 기술을 활용하기가 경제적으로 지나치게 부담스러운 경우에는 소비자들에게 위험을 정확하게 알려주는 것만으로 만족해야 한다. 실제 선택은 소비자들의 몫이 될 수밖에 없다.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면 심하게 다칠 수 있다는 이유만으로 세상의 돌부리를 모두 없애버려야 한다는 주장은 비현실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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