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미국 세인트루이스에 몰아친 한파. ⓒphoto 뉴시스
지난 2월 미국 세인트루이스에 몰아친 한파. ⓒphoto 뉴시스

라니냐(저수온 현상)가 올겨울 기상이변을 불러일으킬 전망이다. 미국 국립해양대기청(NOAA)은 라니냐가 12월부터 본격적으로 발생해 내년 2월까지 지속될 확률이 87%에 달한다며 주의보를 발령했다. NOAA의 마이크 할퍼트(Mike Halpert) 부국장은 라니냐의 발생으로 동태평양의 바다 수온이 낮아지면서 기온과 강수량에 영향을 미쳐 올해는 혹독하게 춥고 눈이 많이 내리는 북반구의 겨울이 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한파·홍수·가뭄… 곳곳서 라니냐 징후

지구는 대기와 해류의 순환을 통해 열에너지가 이동하여 평형 상태를 유지한다. 적도 지역 동태평양도 남아메리카 페루의 열대 연안 해역에서 대기 대순환의 하나인 무역풍이 불어 연안 해수가 외해로 이동하고 심층의 찬물이 올라와 평소 20℃ 정도의 수온을 유지한다. 이런 정상적 상태를 깨뜨리는 두 가지 상반된 기후 패턴이 바로 라니냐와 엘니뇨다.

라니냐(La Nina)는 스페인어로 ‘여자아이’라는 뜻으로, 동태평양의 월평균 해수면 온도가 평소보다 0.5℃ 이상 낮은 상태가 최소 5개월 이상 지속될 때 선포된다. 최대 3~5℃ 떨어지기도 한다. 동태평양은 태평양을 동서로 나눌 때 동쪽에 위치하는 부분이다. 아메리카와 오세아니아 쪽에 붙어 있고 대서양과 연결된다. 미국 연안, 폴리네시아 천해, 파나마운하 서부도 동태평양의 범주에 들어간다. 하와이도 여기 포함된다.

그럼 라니냐 현상은 왜 발생할까. 동태평양에 평소보다 강한 무역풍이 발달하기 때문이다. 이 무역풍이 적도를 따라 서쪽으로 불면서 따뜻한 남미 태평양의 물을 서쪽 아시아 쪽으로 밀어내고, 따뜻한 물이 밀려난 그 자리에 바다 깊은 곳의 차가운 물이 더 많이 솟아올라와 채우는 용승(upwelling)이 생기면서 해수 온도가 낮아진다. 용승류에는 각종 먹이가 풍부하게 들어 있어 라니냐가 발생하면 세계 최대 어장 가운데 하나인 페루 앞바다가 황금어장으로 변한다.

반대로 무역풍이 약해지면 용승이 약해지고 적도 태평양의 서쪽으로부터 고온의 해수가 역류해와 동태평양 해수면 온도가 평소보다 높아진다. 이것이 엘니뇨(El Nino) 현상으로, 스페인어로 ‘남자아이’라는 뜻이다. 엘니뇨가 발생하면 평소보다 동태평양의 수온이 0.5℃ 이상 높아지고, 심할 때는 5℃까지 오른다. 즉 라니냐와 엘리뇨는 해수면 온도 변화라는 점에서 같은 현상이고, 다만 온도가 마이너스(-)냐 플러스(+)냐의 차이일 뿐이다.

라니냐가 발생하면 지구촌에는 어떤 현상이 나타날까? 동태평양의 해수면 온도가 떨어지면 서태평양의 대기순환이 바뀌어 두 태평양 인근 지역에 심각한 기상이변이 발생한다. 먼저 열대 중앙 태평양과 동태평양이 예년보다 비가 적게 내린다. 남아메리카의 페루·칠레 지역이 건조한 날씨로 가뭄에 시달려 산림과 초지가 바싹 마르고 산불 위험성이 커진다. 반대로 인도네시아와 필리핀 등 서태평양의 동남아시아 지역에는 열대성 저기압이 발달하거나 진입해 예년보다 비가 더 많이 내려서 홍수사태가 잦아지고 심할 경우 해일까지 일어날 수 있다. 호주의 여름은 더 습하고 폭풍우가 몰아치는 경향이 있다.

한편 북아메리카, 유럽, 동북아시아 지역이 더 춥고 눈이 많이 내리는 기후 패턴을 보인다. 평소보다 더 많이 솟아오른 바다 밑의 차가운 물이 제트기류를 북쪽으로 이동시키기 때문에 캐나다와 미국 북부 지역이 일반 겨울보다 더 심한 폭설이 내리고 강추위가 찾아온다. 뉴욕시의 적설량은 평균 29.8인치(75.652㎝)지만, 라니냐가 발생하면 32인치까지 올라간다.

가장 큰 위협은 허리케인(태풍)이다. 라니냐가 카리브해와 적도 부근 대서양에서 윈드시어(wind shear)를 감소시켜 허리케인 활동이 증가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윈드시어는 풍속과 풍향이 급격히 바뀌는 현상으로, 대기의 아랫부분과 윗부분의 바람 차이를 의미한다. 윈드시어가 작다는 것은 대기 상층과 하층 바람 차이가 거의 없어 태풍 구름이 만들어지기 쉬운 조건이 형성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강한 바람이 다양한 지형지물과 부딪힌 뒤 하나로 섞이는 과정에서 만들어진 소용돌이 바람이라서 북미 지역의 허리케인 시즌을 연장시킨다.

아시아 에너지난 더욱 가중시킬 듯

라니냐가 발생한 페루 연안 동태평양과 무려 1만㎞나 떨어진 북반구의 한반도는 어떤 영향을 받을까. 물론 페루·인도네시아 등 적도 부근 열대 지역에 자리 잡은 나라들과 비교가 되지 않겠지만, 한반도도 기상이변을 겪는다. 호수에 돌을 던지면 물결이 호수 전체로 퍼져 나가듯 열대 태평양의 기상이변도 연쇄적으로 지구촌 곳곳에 기상이변을 일으킨다.

한반도는 평년보다 기온이 낮은 추운 겨울이 예상된다. 특히 초겨울에는 강수량과 적설량이 적고 기습한파가 닥칠 가능성이 높다. 1970년대 이후 발생한 라니냐를 통계적으로 분석해보면 우리나라 여름철은 더운 편이었고, 9월에 비가 많이 왔으며 겨울은 강추위가 찾아왔다. 그런 점에서 올해 한반도 기상은 전형적인 라니냐 영향이 두드러지는 편이다. 물론 한반도의 기상을 라니냐 단 하나의 원인으로 단정 지을 수는 없다. 한반도의 겨울은 시베리아 고기압이 어느 정도 발달하느냐, 티베트에 눈이 얼마나 쌓였느냐 등에 따라 추운 정도가 달라진다.

열대 태평양의 바닷물이 다시 차가워지는 것은 1년 만의 일이다. 라니냐가 꼭 주기적으로 발생하는 것은 아니지만 평균 4~5년에 1번, 때로는 8~9년에 1번 발생하기도 하는데 이처럼 연이어 발생한 사례는 드물다. 엘니뇨나 라니냐 현상은 태양 활동주기가 지구 대양 시스템에 변화를 유발하는 영향을 주어 발생한다고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라니냐가 발생할 때마다 지구촌 곳곳에 매번 같은 현상이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라니냐의 강도나 발생 위치에 따라 조금씩 달라질 수 있다. 실제로 지난해 발생한 라니냐는 북반구에 비교적 온화한 겨울을 가져왔다. 일시적으로 지구를 냉각시키는 효과는 있었지만 온실가스에 의한 지구온난화의 영향으로 그 효과가 상쇄될 만큼 약한 라니냐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올해의 라니냐가 혹한을 몰고 온다면 아시아 지역의 에너지 위기는 더욱 악화될 것이다. 특히 전 세계 에너지 소비 1위인 중국의 타격이 크다. 이미 중국과 일부 아시아 국가들은 코로나19 봉쇄 완화 이후 에너지 가격 급등, 전력 부족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라니냐까지 덮칠 경우 겨울 난방 수요가 급증하면서 에너지 대란은 더욱 가중될 것이다.

키워드

#과학
김형자 과학칼럼니스트
저작권자 © 주간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