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 김종연 영상미디어 기자
ⓒphoto 김종연 영상미디어 기자

식물학자인 이유리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 ‘이력’에서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었다. 그는 ‘독학사’(컴퓨터과학 전공)가 된 후 고려대 생명과학부 3학년에 편입한 걸로 나와 있었다. 지난 9월 30일 서울대에서 만난 이 교수로부터 설명을 들어보니, ‘독학사(독학학위제)’는 대학을 다니지 않아도 스스로 공부하여 국가가 시행하는 시험에 합격한 사람에게 대학 학위를 인정해주는 국가 제도다.

이 교수는 1992년 2월 서울 강동구에서 고교를 졸업했다. 대학 진학을 바로 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 “집안 사정이 어려웠다”라고만 했다. 여고를 졸업하고 8년이 지난 2000년 고려대 학생이 되었다. 늦게라도 대학생이 된 건, 베트남전에 참전한 아버지가 ‘고엽제 후유의증’ 판정을 받았고 이 경우 자녀에 대해 국가가 대학 학자금을 지원하는 제도가 생긴 덕분이다.

‘독학사’가 박사가 되기까지

고려대에서 공부하고 2002년 포항으로 가서 포스텍 대학원에 진학했다. 포스텍 분자생명과학부 이영숙 교수의 지도를 받아 식물의 기공운동이나 뿌리털의 발달과정에서 인지질의 신호전달 메커니즘을 연구했다. 이후 스위스 로잔으로 박사후연구원 자리를 찾아갔다. 2009년 초 로잔대학 식물분자생물학과의 젊은 교수인 니코 겔트너(Niko Geldner) 실험실에 들어갔다. 박사 때 연구한 신호전달 주제를 더 발전시키고 싶었다.

세포에는 외부에서 들어오는 물질들이 있다. 세포가 외부 물질을 세포막을 통해 흡수하는 과정을 ‘세포 내 이입(endocytosis)’이라고 하며, 세포 내 이입을 통해 생성된 세포 내 소포(vesicles)를 ‘엔도솜(endosome)’이라고 한다. 이 교수는 “엔도솜 내로 삽입된 단백질들은 재활용(recycling)되거나 폐기처분된다. 그런데 엔도솜이 그거 말고 세포 기능에 뭔가 다른 중요한 걸 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동물세포에서 엔도솜이 뭔가 신호전달에 있어 허브 역할을 하는 것 같다는 연구가 당시에 나오고 있었다. 그래서 그걸 식물에서도 보고 싶었다. 식물에서는 그런 연구가 당시에는 없었다”라고 말했다.

니코 겔트너 교수 역시 식물세포 신호 연구자였다. 그는 브라시노스테로이드(Brassinosteroid) 호르몬의 신호 연구로 우수한 논문을 썼는데, 그 당시 브라시노스테로이드 호르몬의 수용체가 엔도솜에서 기능을 할 가능성을 제시하였다. 이유리 박사는 엔도솜의 기능을 연구하기에 브라시노스테로이드 호르몬의 수용체가 좋은 시작점이 될 것이라 생각했고, 그래서 로잔에 갔다. 그런데 이유리 박사보다 1주일 먼저 로잔에 도착한 다른 박사후연구원이 그 주제를 맡게 되었다. 겔트너 교수는 그 주제에 연구원을 더 투입할 생각은 없었고, 새로운 주제에 주목하고 있었다. 그 새로운 주제가 ‘카스파리 띠(Casparian Strip)’였다. 이유리 박사는 카스파리 띠 연구를 해야 했고, 그 결과 최상위 생물학 학술지인 ‘셀(Cell)’에 논문을 쓰는 성과를 2013년에 냈다.

이 교수로부터 당시 연구 관련 설명을 들어본다. “식물 잎은 큐티클이라는 지방성의 얇은 막으로 코팅되어 있다. 코팅되어 있기에 물방울이 잎 위에 떨어지면 잎 안으로 흡수되지 않고 쪼르륵 겉면을 흘러내리고 결국 지표면으로 떨어진다. 잎과 달리 뿌리는 물질을 흡수한다. 잎처럼 코팅이 되어 있으면 안 되고, 물이나 영양분을 먹어야 한다. 그러는 한편 원치 않는 물질은 들어오지 못하게 막아야 한다. 세포와 세포 사이를 비집고 들어오는 외부 유해물질을 차단해야 한다. 이 일을 하는 장벽이 ‘카스파리 띠’이고, 식물세포들 사이에 구축되어 있다. 독일 식물학자 로베르트 카스파리(Robert Caspary)가 1865년 식물뿌리 세포에서 카스파리 띠를 발견했다.”

‘카스파리 띠’의 비밀

이 교수에 따르면 동물세포와 식물세포는 세포막(membrane)으로 외부와 구분된다. 식물에는 세포막 말고도 세포를 보호하는 구조가 하나 더 있는데 바로 세포벽(cell wall)이다. “세포막이 안쪽에 있는 막이라면, 세포벽은 식물세포의 외벽이다. 세포벽은 셀룰로스와 리그닌과 같은 물질로 구성된다. 세포벽이 생각하는 것보다는 단단하지 않다. 세포벽의 일정한 영역에 카스파리 띠가 있고, 세포들을 서로 스크럼을 짠 것처럼 서로 단단히 연결시키고 있다. 나의 과학적인 질문은 이랬다. 카스파리 띠가 세포벽의 중간쯤에 떡하니 있는데, 그 위치는 누가 정하는가? 즉 세포벽의 특정 위치에만 카스파리 띠를 어떻게 만드는가? 세포와 세포 사이에 다리가 놓이는 것인데, 그러려면 시작 지점을 정해야 한다. 그 일을 하는 건 어느 단백질인가? 일종의 다리 건설 공사인데, 다리 건설이 잘되어 가는지를 확인하는 작업은 누가 할까?”

이 띠가 구성되는 과정을 이해하기 위해선 먼저 무엇으로 구성되었는지를 알아야 했다. 이 교수는 같은 실험실에 있던 박사과정 학생과 함께 그 띠가 리그닌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걸 밝혔다. 이유리 박사과정 연구원은 그 이후 리그닌을 만드는 단위 물질인 ‘모노리그놀(monolignol)’을 세포 밖에서 처리해 보았다. 모노리그놀은 리그닌이라는 조직을 만드는 레고 블록 1개에 해당한다. 시중에서 구입할 수 있는 물질이다. 당시 이 교수가 연구했던 식물은 ‘애기장대’. 애기장대는 키가 커봤자 30㎝가 안 되고 꽃은 흰색이다. 이유리 교수의 서울대 연구실 바로 옆 521호 ‘식물배양실’에서 본 애기장대가 바로 그 모양이다. 애기장대는 식물학자가 사랑하는 대표적인 모델식물이다.

4년에 걸친 연구 ‘셀’에 실리다

리그닌이 되는 원료(모노리그놀)를 세포 주변에 두루 쳤으나, 리그닌은 세포와 세포 사이의 ‘카스파리 띠’가 들어서는 위치에만 생겼다. 그러니 ‘다리’를 만드는 일꾼이 어디에나 있는 건 아니고, 지정된 위치가 따로 있다는 의미였다. 이 교수는 “일꾼이 특정한 공간에 있다는 게 중요하다는 걸 먼저 확인했다”라고 말했다.

다음으로는 ‘일꾼’이 누구인가를 확인해야 했다. 결합체를 만드는 단백질 효소에는 두 개가 있었다. 라카아제(laccase) 효소와 페록시다아제(peroxidase)였다. 실험 결과 애기장대의 카스파리 띠 형성 과정에서는 페록시다아제 효소가 리그닌 다리를 만드는 ‘일꾼’인 것으로 확인됐다.

세 번째 질문은 다리가 들어설 자리에 세포는 일꾼을 어떻게 보낼까였다. 세포막에 특정 단백질이 존재해서, 그 단백질이 일꾼인 페록시다아제 효소를 보내는 건 아닐까라고 생각해 보았다. CASP(Casparian Strip Protein)라는 단백질을 로잔대학에서 같은 실험실의 박사후연구원이 찾아낸 바 있다. 하지만 그는 CASP가 왜 있는지, 그게 무슨 일을 하는지를 몰랐다. 이유리 박사후연구원은 ‘카스파리 띠’가 생길 때 CASP가 중요하다는 걸 규명했다. 결국 리그닌으로 ‘카스파리 띠’가 생기는 세포의 신호전달 경로(pathway)를 모두 밝혔다. 이게 학술지 ‘셀’에 실린 2013년 논문 내용이다. 이 교수의 설명을 들어보니, 고통과 인내심이 필요한 연구가 아닐 수 없었다. 무려 4년이 걸린 연구였다. 이 교수는 “연구가 재밌었다”라고 표현했다.

이 교수는 2014년 한국에 왔다. 기초과학연구원(IBS) 식물노화수명연구단(단장 남홍길) 소속 연구자가 되었다. IBS식물노화수명연구단은 대구경북과학기술원(DGIST)에 있었고, 이유리 박사는 연구단 내 곽준명 교수(DGIST) 그룹에서 일했다. ‘식물의 노화와 수명’ 연구단이니, ‘노화’ 연구를 해야 했다. 남홍길 연구단장이 이끄는 그룹은 잎이 어떻게 노랗게 되며 죽어가는지 그 과정을 연구했다. 곽준명 교수는 “우리는 노화된 잎의 마지막 단계인 잎이 떨어지는 걸 연구하자”라고 했다.

애기장대는 잎이 안 떨어지고 꽃은 떨어진다. 이유리 교수는 애기장대 꽃잎이 떨어지는 메커니즘을 연구하기로 했다. 스위스 로잔에서의 연구는 카스파리 띠를 만들기 위해 세포가 일꾼을 보내 리그닌을 차곡차곡 쌓는 메커니즘을 들여다본 것이었다. 반면 IBS에서의 연구는 꽃을 떨구기 위해 특정 위치를 어떻게 잘 알고 가위단백질을 보내며, 또 어떻게 매끄럽게 잘라내는지를 규명하는 것이었다. 이 연구가 2018년 또다시 최상위 생명과학학술지 ‘셀’에 발표된다.

이 교수가 가졌던 과학적인 질문은 이랬다. “가위단백질이 엉뚱한 데를 자르면 안 된다. 떨어져나갈 꽃과 남아있을 풀의 경계선을 가위단백질이 자르며 이동할 텐데, 어떻게 해서 필요한 부분만 자르며, 또 멈출지를 알까?”

꽃이 잘려나가는 곳을 ‘절단 영역(Abscission Zone)’이라고 한다. 가위단백질이 가위질을 해서는 안 될 지역에는 단단한 ‘리그닌’이 자리 잡고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단단한 게 있으면 가위가 잘 안 들어가지 않을까라는 발상이었다. 확인해 보니 그건 아니었다. 그럼 뭘까?

‘절단 영역’에 있는 세포들은 오래도록 잠을 잔다. 그러다가 떨어져나가야 하는 시기라고 생각하면 세포가 커졌다. 원래 크기보다 2~3배 성장했다. 그리고 세포는 세포벽을 분해하는 효소(가위단백질)들을 세포 밖으로 만들어 내보냈다. 세포분해 효소는 다양했다. 과학적인 질문이 또 생겼다. 세포는 이 세포분해 효소들로부터 스스로를 어떻게 보호할까? 이 교수의 설명을 들어본다.

정밀한 가위질 만드는 리그닌

“꽃잎처럼 떨어져나가는 조직 쪽에 있는 절단 영역 세포를 SEC(Secession Cell), 반대편인 몸 쪽에 남게 되는 절단영역 세포를 REC(Residium Cell)라고 이름 붙였다. SEC와 REC를 살펴보니 SEC가 만든 가위단백질은 세포 밖으로 나가고, REC가 만든 가위단백질은 세포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 REC는 가위단백질을 밖으로 내보내지 않음으로써, 자기 자신을 보호하고 있었다. 그런데 안 쓸 가위를 왜 만들어내느냐? 그건 모른다. 식물학자가 아직 모르는 게 많다. 이 과정은 SEC와 REC 두 종류의 세포에서 만들어내는 가위단백질에 형광으로 표지를 해서 확인했다. 특정 형광색을 띤 가위단백질이 세포 밖으로 나가는지, 나가지 않는지를 보면 알 수 있었다.”

이 교수에게는 또 하나의 질문이 있었다. 떨어져나가는 SEC 쪽에 리그닌이 있었다. 리그닌 블록을 만드는 단백질(CAD4, CAD5)들과 블록을 조립하는 단백질(페록시다아제와 라카아제)들이 보였다. 여기서 리그닌은 무슨 일을 하는 것일까? 사람들이 예상한 게 있었다. 꽃이나 잎이 떨어지면 그 자리에 난 상처가 빨리 아물어야 한다. 딱지가 빨리 생겨야 하는데, 그를 위해 필요한 것 중 하나가 리그닌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었다.

이 교수는 리그닌을 염색해서 봤다. 꽃봉오리가 생겼을 때는 리그닌이 없으나, 꽃이 떨어질 때는 리그닌이 생겼다. 그리고 꽃과 함께 SEC 바깥을 감싸던 리그닌들은 버려졌다. 리그닌이 하는 일을 알기 위해서는 역으로 리그닌이 없는 경우에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를 보면 된다. 이 작업을 위해 리그닌이 안 생기는 유전자 변형 애기장대를 만들었다. 리그닌을 만드는 일을 하는 유전자를 망가뜨렸다.

리그닌을 없애니 세포의 한 개 층만을 가위질하고, 또 매끄럽게 잘라내던 가위단백질의 솜씨가 엉망이 되었다. 가위단백질이 여러 개 층의 세포들 주변을 마구 가위질했고, 그 결과 예쁘게 잘라지지 않고 잘린 부위가 너덜너덜했다. 이건 리그닌이 가위단백질(예를 들면 펙티나아제·pectinase)이 정밀한 잘라내기를 하는 데 중요하다는 걸 말하고 있었다.

과학적 질문은 계속 나왔다. 왜 식물은 깔끔하게 절단을 하려고 할까? 이 교수는 “남은 세포에는 매끈한 단면이 중요하다. 딱지를 예쁘게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래서 확인 작업을 했다. 꽃이 떨어져나가고 잘린 부위의 상처에 보호층이 어떻게 생기는지를 봤다”라고 말했다. 보호층은 큐티클이라는 기름으로 코팅하는 작업이다. 표면이 매끈하지 않으면 박테리아 침입에 더 취약하다는 걸 확인했다.

이 교수는 “한 가지 더 밝힌 게 있다”라고 했다. 큐티클은 식물의 표피세포만이 만든다고 그때까지 사람들은 생각했다. 하지만 표피(epidermis)가 아니라 안에 있는 세포, 즉 내피(endodermis)도 큐티클을 만들어내는 걸 이 교수는 확인했다. 그는 “성장한 식물에서는 내피세포가 표피세포로 바뀌지 않는다는 게 정설이었다. 나의 실험 결과, 꽃이 떨어져나가면서 밖으로 노출된 세포(REC)는 자신이 갑자기 최외곽에 위치하게 되자 표피세포로 바뀌었다. 큐티클을 생산한 게 그 증거다. 세포의 정체성이 바뀐 것이다. 세포의 운명이 바뀌었다”라고 말했다. 연구는 5년 가까이 걸렸다.

잎의 내부 설계 연구 중

‘셀’에 논문이 나오고 얼마 되지 않아 서울대 생명과학부에 교수채용 공고가 있었고, 이때 지원하여 서울대 교수가 되었다. 이 교수에 따르면, 서울대 생명과학부는 교수 모집 때 최근 5년의 연구를 갖고 평가한다. ‘셀’ 논문이 서울대 교수 임용에 크게 작용했다. 이 교수는 “서울대 교수가 되기에 충분한 연구자들이 많은데, ‘타 대학 출신인데 서울대에 어떻게 지원하느냐’라고 말하는 걸 봤다. 나 같은 사람도 서울대 교수가 됐는데”라고 말했다. ‘나 같은 사람’이라니…. 이유리 교수는 남들보다 10년 가까이 늦게 공부를 시작했고, 불리한 조건에서 최상위 생명과학학술지에 두 편이나 논문을 발표한 바 있다. 지나친 겸손이 아닐 수 없다.

생명과학 연구는 보통 4년 이상씩 시간이 걸린다. 서울대 교수로 일하면서 진행한 연구를 논문으로 낸 건 아직 없다고 했다. 새로운 연구 주제 중 하나는 잎 내부 설계다. 식물은 이산화탄소(CO2)를 호흡하고, 이산화탄소를 잎에 있는 세포들에 모두 공급해야 한다. 잎의 세포와 세포 사이가 일부 떨어져 있어야 세포들이 모두 이산화탄소에 노출될 수 있다. 모든 세포에 이산화탄소가 가려면 잎이 만들어질 때 ‘내부 공간 설계’가 중요하다. 이 교수는 “세포와 세포 사이에 필요한 공간을 어디에 어떤 크기로 만들어야 하는지를 보고 있다”라고 말했다. 예컨대 “물 위에 사는 수상식물 중 개구리밥이 있다. 개구리밥은 에너지를 얻기 위해 필요한 이산화탄소 말고도, 몸을 물에 띄우는 데 필요한 부력을 만들어내는 공간이 잎 안에 추가로 필요하다. 그걸 공부하고 있다”라고 이 교수는 말했다.

이 교수는 서경배과학재단의 연구 지원을 2019년부터 5년간 받고 있다. 도전적인 생명과학 주제를 가진 연구자를 대상으로 서경배과학재단은 상당한 액수의 연구비를 지원한다. ‘식물세포 구조와 세포의 운명 간의 관계를 규명한다’가 그의 연구 주제다. 동물세포와 구별되는 식물세포의 대표적 특징 중 하나인 세포벽이 하는 일을 더 알아내고자 한다고 이 교수는 말했다.

최준석 선임기자
저작권자 © 주간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