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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83호] 2021.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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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키 커지고 사춘기 빨라지고… 뇌 수용체서 ‘스위치’ 찾았다

김형자  과학칼럼니스트 bluesky-pub@hanmail.net 2021-11-17 오전 10:03:39

뇌 수용체의 성장 조절 메커니즘에 유전적 결함이 생긴 사람은 키가 잘 자라지 않는다는 연구 결과가 나와 주목을 끌고 있다. 이런 사람은 사춘기도 늦게 접어들기 쉽다. 뇌 시상하부의 신경세포(뉴런)에 있는 멜라노코르틴3수용체(MelanoCortin3 Receptor·MC3R)가 이를 조절하는 마스터 스위치 같은 역할을 한다. 영국 케임브리지대·런던퀸메리대·브리스틀대와 미국 미시간대·밴더빌트대 등 공동연구진이 밝혀낸 연구 결과다.
   
   
   키 성장과 사춘기 성적 성숙 조절
   
   우리가 배가 고프거나 포만감을 느끼는 것은 호르몬 작용 때문이다. 위장과 뇌의 시상하부에서 분비되는 그렐린(ghrelin)이라는 호르몬은 뇌의 식욕 중추를 자극해 배고픔을 느끼게 하고 식욕을 증가시킨다. 지방조직에서 분비되는 렙틴(leptin)이라는 호르몬은 시상하부의 수용체에 작용해 식욕을 억제하며 지방을 소모한다. 렙틴은 신체에 저장된 지방의 양에 따라 혈액 속으로 분비되는데, 만일 저장된 지방이 줄어들면 렙틴의 분비가 줄어든다.
   
   이러한 호르몬이 작용하는 뇌의 시상하부에는 식욕을 촉진하고 억제하는 서로 다른 2개의 신경세포군이 있다. 시상하부의 중요한 생물학적 기능은 체온조절과 수분균형, 신진대사, 그리고 식욕조절이다. 시상하부의 촉진세포군은 NPY라는 신경전달물질을, 억제세포군은 멜라노코르틴(MC)이라는 펩티드를 분비해 식욕을 조절한다.
   
   멜라노코르틴은 5가지의 수용체(MC1R~MC5R)에 작용한다. 그중 식욕을 조절해 신체의 영양 상태에 관여하는 것은 멜라노코르틴4수용체(MC4R)와 멜라노코르틴3수용체(MC3R)이다. 특히 MC3R은 쥐의 실험에서 지방 축적을 조절해 체중을 제어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인간에서는 그 역할이 불분명했다.
   
   영국 케임브리지대를 비롯한 공동연구진은 MC3R의 정확한 기능을 알기 위해 연구를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놀랍게도 MC3R의 다른 역할이 발견됐다. MC3R이 신체 영양분의 특정 신호에 반응해 어린이의 성장 속도와 성적 성숙을 조절하는 호르몬 분비를 제어한다는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이 연구 결과는 국제학술지 ‘네이처’ 11월 3일 자에 실렸다.
   
   지난 20세기 영국에서는 사람의 키가 평균 10㎝, 다른 국가에서는 최대 20㎝까지 커졌다. 하지만 그동안은 뇌가 신체의 성장을 조절하기 위해 어떻게 영양 상태를 감지하는지 정확히 이해하지 못했다. 연구진은 MC3R이 어린이의 키를 크게 할 뿐 아니라 사춘기를 빨리 시작하게 하는 주요 원인이라고 밝혔다. 만일 이 수용체가 제대로 활성화하지 않으면 키가 잘 크지 않아 사춘기도 늦게 접어드는 것으로 확인됐다. 한편 MC4R은 식욕조절에는 관여하지만 신체의 성장과 사춘기의 성적 성숙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진은 어떻게 이 같은 사실을 알아냈을까. 연구진은 먼저 영국UK 바이오뱅크에 등록된 남녀 50만명의 지원자 중에서 MC3R 유전자에 다양한 돌연변이를 가진 수천 명의 사람들을 찾아냈다. 이 가운데 동일한 돌연변이 유전자를 가진 여성 812명이 있음을 확인했다. 이 변이는 MC3R 기능의 극히 일부만 감소시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812명의 여성은 돌연변이가 없는 여성보다 평균 4.7개월 늦게 사춘기가 시작된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진은 이러한 현상이 어린이에게도 적용되는지 확인하기 위해 영국 ‘에이번 부모-자녀 종단연구(ALSPAC·Avon Longitudinal Study of Parent And Children)’ 참가자 6000명의 자료를 살펴봤다. 여기서 MC3R 유전자에 돌연변이가 있는 6명의 어린이를 확인했다. 이 6명은 변이가 없는 또래 아동들보다 어린 시절 내내 키가 작았고, 근육과 같은 ‘지방 제외 조직’의 양도 적었고 체중 역시 덜 나갔다. 하지만 지방의 양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 이러한 결과는 MC3R의 작용이 인생의 아주 초기부터 시작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 연구에서 확인된 812명의 여성과 6명의 어린이는 MC3R 유전자의 두 복제본 중 하나에만 돌연변이를 갖고 있었다. 극히 드물긴 했지만 두 복제본에 모두 돌연변이가 나타난 어린이는 키가 아주 작은 것은 물론 사춘기가 20세 이후에 나타났다.
   
   
   성장 촉진하는 약물 개발 가능
   
   연구진은 이러한 현상이 동물에서도 일어나는지 궁금했다. 미시간대의 로저 콘(Roger Cone) 박사팀은 생쥐를 대상으로 이를 확인하는 연구를 했다. 그 결과 정상적인 생쥐는 식량 부족 기간을 겪을 때 생식주기를 차단하지만, MC3R이 결핍되도록 설계된 생쥐는 그렇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신체 영양 상태에 반응해 성호르몬 생산을 조절하는 데 생쥐의 MC3R 역할이 입증된 것이다. 이는 동물계 전반에 걸쳐 나타난다.
   
   연구 공동저자인 스티븐 오라힐리(Stephen O’Rahilly) 케임브리지대 교수에 따르면 이번 발견은 뇌가 어떻게 영양분을 감지하고 이를 분석해 인간의 성장과 성적 성숙에 영향을 주는 잠재의식적 결정을 내리는지 보여준다. 따라서 영양분이 신체 성장과 사춘기의 성적 성숙에 영향을 미치는 뇌의 경로를 정확히 알아내면 지난 한 세기 동안 과학자들을 어리둥절하게 했던 ‘키가 점차 커지고 사춘기에 접어드는 나이가 어려지고 있는 세계적인 현상’을 설명할 수 있다고 오라힐리 교수는 말한다.
   
   연구진은 이번 발견이 근육량을 늘리려고 하거나 심각하게 성장과 사춘기 발달이 늦은 어린이들의 성장을 촉진하는 약물 개발로 이어질 수 있다고 확신한다. MC3R 유전자의 돌연변이와 관련해 신체 성장과 사춘기 발달이 지연되는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한 검사에서 약물로 치료가 가능하도록 바로 실질적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게 오라힐리 교수의 설명이다.
   
   또 만성질환으로 인한 허약함 때문에 고통받는 사람들의 건강을 개선하는 데도 크게 기여할 것으로 보인다. 만성질환은 근육을 포함한 ‘지방 제외 조직’의 손실로 이어지고 그로 인해 허약체질이 많이 나타난다. 이런 체질은 단백질이 풍부한 음료와 같은 간단한 영양보충제로는 잘 회복이 되지 않는다. 따라서 MC3R을 선택적으로 활성화하는 방법이 필요하다.
   
   연구진은 추가 연구를 통해 MC3R을 선택적으로 활성화하는 약물이 환자의 신체기능을 개선하는지, 지방 열량이 ‘지방 제외 조직’으로 전환하는 데 도움이 되는지를 알아볼 계획이다. 또 멜라노코르틴수용체는 성기능에도 관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어, 이 수용체에 작용해 성적욕구를 활성화하는 치료제를 개발하여 성욕저하장애를 겪는 여성들의 삶에 큰 도움을 줄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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