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연구진이 개발한 3D 인공심장. ⓒphoto 유튜브
이스라엘 연구진이 개발한 3D 인공심장. ⓒphoto 유튜브

코로나19에 비견될 일은 아니지만, 2015년께 멕시코와 남미 국가 중심으로 심각한 바이러스 감염증이 퍼졌던 일이 있다. 문제가 됐던 건 모기를 통해 감염되는 지카바이러스(Zika Virus)였다. 정상적인 성인이라면 크게 영향받을 바이러스가 아니지만, 주목받은 이유는 따로 있었다.

남미 국가들에서 원인 모를 소두증(小頭症) 기형아가 잔뜩 태어났는데, 이들을 출산한 산모 중 다수가 지카바이러스에 감염된 상태란 게 밝혀졌기 때문이다. 보건당국에선 정밀조사에 들어갔지만 연구는 쉽지 않았다. 지카바이러스를 감염시켜 연구할 수 있는 동물이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일반적인 바이러스는 감염을 일으키는 숙주에 대해 높은 수준의 특이성을 가진다. 돼지에게 병을 일으키는 아프리카돼지열병이 사람에게 감염을 일으키지 않는 것처럼 사람에게 해로운 바이러스라고 돼지에게 병을 일으키진 않는다. 인류에겐 무척 다행스러운 일이지만 해당 질병을 연구하는 과학자라면 난제다. 사람한테 인위적으로 감염을 유도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그렇다고 동물에 실험해봐야 바이러스가 감염을 일으키지 않으니 해당 바이러스가 어떤 작용을 하는지 제대로 파악하기 힘들다.

차선책은 있다. 인간의 세포를 일부 떼어 페트리 접시에 잘 배양한 다음, 거기에 바이러스를 투입해 반응을 살펴보는 것이다. 안타깝게도 지카바이러스는 그런 방법도 통하지 않았다. 소두증은 태아 시기에 뇌가 제대로 발달되지 않아서 생기는 복합적인 질병이다. 그러니 성인 뇌세포를 조금 떼어 키우는 방법으로는 제대로 된 연구를 하기 어려웠다. 꼬박 2년이 지난 2017년에 들어서야 뇌의 구조를 본뜬 입체적인 인공장기 덕분에 지카바이러스의 작용이 어느 정도 규명됐다. 오가노이드를 이용한 뇌 연구는 바이러스에 대항하면서 주목받기 시작한 셈이다.

입체 구조의 ‘미니’ 장기 오가노이드

인간의 장기는 여러 종류의 세포가 복잡하게 섞여 있는 다층적인 구조를 가진다. 얼핏 생각하기에 복잡할 것으로 여겨지는 뇌와 같은 신경계만 그런 게 아니라, 비교적 단순할 것 같은 위나 장 같은 곳도 마찬가지다. 장기의 안감과 겉감을 구성하는 표면 세포들은 물론이고, 장기를 움직이게 해주는 내부의 얇은 근육층, 소화액을 분비하는 분비세포 등의 세포가 모두 종류가 다르다. 장기의 구조를 인간이 정확하게 모사하기란 무척 까다롭다. 그래서 아주 단순화된 형태의 ‘미니’ 장기를 만든 게 바로 오가노이드(organoid)다.

제 기능을 하는 온전한 장기라고 보긴 힘들지만, 구조가 실제 인간의 장기와 유사해 인체를 대상으로 하는 연구를 진행하기에는 큰 무리가 없다. 가령 지카바이러스와 같이 인간에게만 감염을 일으키는 다수의 바이러스가 오가노이드를 이용한 연구 덕분에 최근에야 베일을 벗는 중이다. 흔히 굴 등의 해산물을 날것으로 잘못 섭취했을 때 설사와 탈수, 발열 등을 일으키는 노로바이러스(norovirus)도 장을 통해 감염을 일으킨다는 ‘추정’만 있었지, 이를 실제로 관찰을 통해 확증하게 된 것도 오가노이드 덕분이었다.

오가노이드가 사용되는 연구는 바이러스만이 아니다. 가장 대표적인 분야가 항암제 연구다. 기존의 항암제 개발 단계에서는 암세포를 낱개로 떼어낸 후 항암제를 처리해 효과가 있는지를 관찰하는 식으로 진행됐다. 그런데 정작 인체에 존재하는 암세포는 특유의 입체구조를 가져, 낱개로 떨어진 개별 암세포와는 다른 특징을 가진다. 그렇다고 인간에게 발생하는 특이한 형태의 암세포를 동물에 그대로 재현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보니 개발 중이던 항암제가 정작 실제 암 환자에게 사용되었을 때는 효과를 보지 못하는 경우들이 왕왕 발생했다.

그렇지만 최근 암세포의 체내 구조를 본뜬 오가노이드가 다양하게 만들어지면서 동물 실험이나 낱개의 암세포가 아닌 암세포 오가노이드를 대상으로 다양한 항암제 후보물질들이 시험을 거치고 있다. 비용이 많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몸속의 실제 암과 유사한 입체구조를 모방해 개발 단계부터 실패 가능성을 줄일 수 있는 혁신적인 기술인 건 분명하다. 그런데 오가노이드 연구가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방향은 단순히 연구를 원활하게 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오가노이드 연구가 지향하는 건 실제 인간 장기를 배양하는 것이다.

현재까지 의료는 약물, 시술 혹은 수술 등을 통해서 질병 상태를 개선하는 정도에 그쳤을 뿐, 실제로 대규모 손상이 발생한 조직을 치료하지는 못하고 있다. 예컨대 암 등으로 장기를 통으로 절제하는 수술을 받을 경우, 해당 장기가 수행하는 기능을 약물 등으로 어느 정도 벌충할 수는 있어도 잘려 나간 장기를 재생할 수 있는 방법은 마땅치 않다. 그런데 오가노이드 연구가 진척돼 실제 장기와 유사한, 그리고 더 큰 규모의 조직을 배양하는 데 성공한다면 연구용 ‘미니 장기’가 아닌 실제로 기능할 수 있는 장기를 배양하는 것도 가능해진다. 영화에서나 나오는 인체를 복구하는 재생의학(regenerative medicine)의 실현이다.

인간 장기를 배양하는 재생의학으로

물론 영화에서 묘사하는 인체 복구는 아직 도래하지 않은 먼 미래의 이야기다. 그런데 현재의 오가노이드 기술 수준에서도 조직을 부분적으로 수복하는 사례는 학계에 꾸준히 보고되고 있다. 염증성 질환으로 손상된 장에 장 오가노이드를 투입하자 장 조직이 다시 복구된 결과를 증명한 연구도 있고 피부 조직을 이용해 만든 오가노이드로 손상된 피부를 복구하는 기술을 개발하는 회사도 존재한다. 여기에 최근 기술적으로 가능성이 증명된 3D 바이오프린팅 기술이 결합하면, 3D 프린터와 유사한 방식으로 세포를 층층이 쌓아 완성된 형태의 장기를 키워낼 수도 있는데 불가능보다는 가능의 영역에 좀 더 가까운 기술이다.

이런 기술적 토대가 마련된다면 현재도 4만명이 넘는 장기이식 대기자들의 숨통이 조금이나마 트일 수 있다. 가령 신장이 망가져 투석을 받던 사람들이 기약 없이 신장이식을 기다리는 대신 신장 조직을 모사한 오가노이드를 이용해 망가진 신장을 복구하는 게 가능해지는 식이다. 폐나 심장 혹은 각막처럼 뇌사자의 숭고한 장기기증 외에는 다른 방식으로 공급되기 어려운 주요 장기에서 문제를 겪는 환자들도 활로를 찾을 수 있다. 코로나19로 모두가 mRNA 백신 기술에만 관심을 두는 지금이지만 눈 돌려야 할 다른 분야가 많다는 걸 잊어서는 안 된다.

박한슬 약사·‘오늘도 약을 먹었습니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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