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텔아비브대 디노 레비 교수가 개발한 거짓말탐지기는 찰나의 얼굴 근육 움지임을 감지하는 ‘전극 삽입 스티커’를 붙여 거짓말을 탐지한다. ⓒphoto 게티이미지
이스라엘 텔아비브대 디노 레비 교수가 개발한 거짓말탐지기는 찰나의 얼굴 근육 움지임을 감지하는 ‘전극 삽입 스티커’를 붙여 거짓말을 탐지한다. ⓒphoto 게티이미지

사람의 미세한 얼굴 근육의 움직임으로 거짓말을 가려내는 새로운 개념의 기술이 개발돼 주목받고 있다. 얼굴에 붙인 전극으로 근육의 변화를 읽어내 거짓말을 판별하는 시스템이다. 얼굴 근육은 의식적 통제가 100% 되질 않는다. 아직 초기 단계의 연구라서 완벽하지는 않지만 현존하는 안면인식 방식의 기술로는 최고 수준의 정확성을 달성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거짓말할 때의 두 가지 근육 반응

우리가 거짓말을 할 경우 느끼는 긴장감은 자율신경에 의해 지배된다. 자율신경은 소화기관의 운동처럼 인간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반응하는 신경이다. 사람이 밥을 먹으면서 ‘나는 절대 소화하지 않을 테야’라고 아무리 의지를 드높여도 위와 장은 음식을 소화한다. 위장 운동이 자율신경계에 의해 움직이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아무리 강심장이라도 거짓말을 하면 혈압이 높아지고 맥박이 빨라진다. 높아지는 정도가 다소 작을 수는 있어도 변화가 없거나 오히려 낮아지는 일은 없다.

현재의 거짓말탐지기(polygraph)는 이런 자율신경계의 각종 반응을 기록해 진술의 진위를 가려내는 도구다. 하지만 이 같은 물리적 도구는 거짓말을 하지 않았어도 겁이 많고 신경이 예민한 사람에게도 반응이 일어난다는 점과, 의식적으로 연습하면 혈압이나 맥박과 같은 생리작용을 어느 정도 조절할 수 있기 때문에 문제점이 있다. 따라서 대부분의 나라에서 신체반응에 전폭 의지하는 거짓말탐지기의 결과를 직접 증거로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그동안 과학자들은 거짓말탐지기를 보완할 방법을 찾기 위해 많은 연구를 해왔다. 그러던 중 이스라엘 텔아비브대 행동신경과학자 디노 레비(Dino Levy) 교수팀이 현재 쓰이는 거짓말탐지기를 대체할 수 있는 대안을 찾아냈다. 사람의 의지와 무관하게 객관적으로 거짓말을 판별할 수 있는 방식인 안면근육 반응 포착 기술이다. 레비 교수에 따르면 얼굴 근육의 움직임은 40~60ms(밀리초·1ms는 1000분의1초)라는 눈 깜짝할 사이에 사라지는데 이런 찰나의 움직임을 감지하는 ‘전극 삽입 스티커’를 붙여 거짓말을 탐지한다. 이 시스템은 기존의 안면근전도(sEMG) 기술보다 감지력이 더 뛰어난 웨어러블 전극이다.

연구팀은 48명의 실험 참가자를 대상으로 거짓말하는 실험을 진행했다. 입 주변의 큰 광대근인 볼 근육과 눈썹 사이 근육인 추미근에 전극 삽입 스티커를 붙인 상태에서 실험이 진행됐다. 보통 볼 근육은 미소 지을 때, 추미근은 찡그릴 때 쓰이는데, 사람들이 거짓말을 할 때는 무의식적으로 눈에 띌 듯 말 듯 눈썹이 올라가고 볼 근육의 움직임이 커진다. 또 숨기려고 하면 할수록 근육 활성화는 더욱 두드러진다는 게 레비 교수의 설명이다. 우리가 입으로 온갖 말을 하고 밥을 먹고 하다 보니 얼굴 아래쪽 근육은 조작이 가능하지만 얼굴 위쪽은 조작하기 어렵다고 레비 교수는 말한다. 결국 눈썹이나 볼 근육의 경련이 거짓말을 알려주는 지표인 셈이다. 하지만 얼굴 근육의 변화를 측정하고 수집하고 인식하는 것은 또 다른 기술이다.

연구팀은 참가자들을 두 사람씩 짝을 지어 서로 마주 앉게 한 뒤 ‘거짓말을 하는 역’과 ‘거짓말을 밝히는 역’을 맡게 했다. 2명 중 한 사람에게 헤드폰을 착용하게 하고, 자신이 들은 ‘선’ ‘나무’ 같은 간단한 단어를 짝꿍에게 전해주면서 때로는 맞는 말(진실)을, 때로는 일부러 틀리게 말(거짓)을 하도록 지시했다. 이를테면 거짓말을 안 할 때는 자신이 들은 대로 발성하지만 거짓말을 할 때는 ‘선’ 대신 ‘나무’라고 발언하고 ‘나무’ 대신 ‘선’이라고 바꿔 말하는 식이다. 반면 헤드폰을 끼지 않은 짝꿍은 상대방이 언제 거짓말을 하는지 맞히도록 했다. 연구팀은 한쪽의 실험이 끝나고 나면 반대로 역할을 바꿔서 반복 실험을 했다.

실험 결과 ‘거짓말을 밝히는 역’의 참가자들은 대부분 상대방의 거짓말을 눈치채지 못했다. 어떤 사람은 거짓말을 잘 가려내기도 했지만 어떤 사람은 전혀 거짓말을 분별하지 못해 사람에 따라 편차가 22~73%로 심했다. 인정하기 어려운 유의미한 결과가 나타난 것이다.

반면 얼굴 근육 움직임 패턴을 학습한 연구팀의 거짓말 탐지 알고리즘은 성공률이 무려 73%나 되었다. 실험 참가자들이 성공적으로 자신의 짝을 속일 수 있었던 거짓말도 바로 잡아냈다. 이 알고리즘은 정확성과 속도가 핵심이어서 거짓말을 자연스럽게 하고 있어도 미세한 근육 신경의 변화를 포착해 거짓말을 가려냈다. 머신러닝 알고리즘이 훈련되지 않은 인간 탐지기보다 거짓말을 훨씬 더 잘 간파했다는 게 레비 교수의 설명이다. 이 연구 결과는 국제학술지 ‘뇌와 행동(Brain and Behavior)’에 발표됐다.

전극 없이 거짓말 식별하는 게 목표

연구팀은 이번 연구에서 실험 참가자들이 거짓말을 할 때 움직이는 얼굴 부위가 각각 다른 것을 확인했다. 어떤 참가자는 볼 근육을 미세하게 움직이고 또 다른 참가자는 눈썹 사이의 근육을 비뚤어지게 자꾸 움직였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천하의 사기꾼도 이와 똑같은 변화의 모습을 절대 복제하지 못한다. 다만 우리가 그걸 육안으로 구별하지 못할 뿐이다. 볼과 눈 두 개의 반대 역할을 하는 근육이 자신의 거짓말에 반응하는 이유는 여전히 불분명하다.

물론 거짓말을 할 때 움직이는 근육이 두 부위만은 아니다. 전문가들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표정의 변화에 거짓말의 단서가 가장 많고, 다음이 일반인이 알아채기 어려운 미세한 얼굴의 움직임, 손동작, 말의 속도, 몸짓, 체온, 목소리, 동공 크기의 순으로 단서가 나타난다. 레비 교수팀은 이들 여러 후보 영역 중에서 단지 두 가지만을 찾아낸 것이다.

연구팀의 이번 실험에서 거짓말 탐지는 매우 간단한 단어로 진행됐다. 하지만 실생활에서 사람들이 거짓말을 할 때는 거짓과 진실을 섞어가며 장황하게 말하기 때문에 거짓말을 가려내기가 훨씬 더 어렵다. 미국 캘리포니아대 에드워드 가이젤먼 교수는 진실을 말하는 사람은 말하는 속도가 변하지 않고 항상 일정한 데 반해 거짓을 말하는 사람은 꾸며낼 이야기를 생각해야 하기 때문에 처음엔 천천히 말하다가 뒤로 갈수록 빠르게 말한다는 사실을 밝혀낸 바 있다. 레비 교수는 이처럼 능숙한 거짓말도 근육 반응으로 가려낼 수 있을지 추가로 연구할 계획이다. 만약 여기서도 유사한 반응이 나타난다면 거짓말쟁이를 잡아내는 건 시간문제이다.

레비 교수의 다음 목표는 전극 없이 카메라만으로 안면근육의 움직임을 감지해 거짓말을 식별해내는 것이다. 연구팀은 이 기술이 앞으로 국경을 보안하거나 보험금 청구, 공항 출입, 취업 면접 등에서 유용하게 쓰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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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자 과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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