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바이러스 ⓒphoto 뉴시스
코로나19 바이러스 ⓒphoto 뉴시스

인천 목사 부부로 시작된 오미크론(omicron) 변이의 확산세가 무섭다. 현재의 감염 유행을 주도하고 있는 건 델타(delta) 변이지만, 질병청 등의 담당 기관에서는 곧 오미크론이 주된 감염의 원인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델타 변이가 한 사람에서 다른 사람으로 옮아가는 데 나흘 정도 걸리는 데 비해, 오미크론 변이는 이틀 정도면 확진자가 또 다른 확진자를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감염력이 기존 변이에 비해 월등히 높은 셈이다.

한동안 잠잠하던 코로나19 상황에서 이런 강력한 변이가 새로 나타나니 오랫동안 반복됐던 미신이 다시 소환됐다. 누가 말한 것인지도 불명확하고 과학자들 사이에서도 제대로 합의된 바가 없지만, 다수의 사람들이 당연하게 사실이라고 믿고 있는 ‘바이러스는 차츰 약해지는 방향으로 진화할 수밖에 없다’라는 주장 말이다. 일부에서는 진화적으로 그럴 수밖에 없다는 그럴듯해 보이는 설명을 덧붙이기도 하는데, 그 역시 틀린 말이기는 마찬가지다.

오미크론, 혹은 그 뒤에 등장할 수 있는 새로운 코로나 변이는 지금보다 더 감염력이 높고 더 치명적일 수 있다. 물론 미래에 어떤 변이가 나올지 예측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그렇지만 바이러스의 변이가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그리고 그렇게 만들어진 다양한 변이 바이러스 중에서 어떤 것이 더 우점종(優占種)이 되어 살아남는지의 과정을 살펴볼 수는 있다. 바이러스 진화의 과정을 최대한 쉽게, 찬찬히 살펴보자.

변이는 우연해도 진화는 방향성을 갖는다

바이러스 변이는 우연히 발생한다. 과거 사람이 손으로 책을 필사해야 했던 시기를 생각해보면 쉽다. 필사 과정에서 일부 내용이 누락되거나 오탈자가 생기는 것처럼, 바이러스도 복제 과정에서 유전자 일부에 오탈자, 즉 변이가 생겨 원본과는 조금씩 다른 바이러스가 계속 발생하게 된다. 오탈자가 썩 좋은 일이 아니듯 바이러스의 변이도 대부분은 바이러스에 해로운 방향으로 발생하지, 바이러스에 유익한 방향으로 일어나진 않는다. 그런데 바이러스에 해로운 방향으로의 변이가 발생한 바이러스는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 불구 상태가 되기 쉬우므로, 무작위적으로 일어나는 변이 중 실제 생존해서 관찰되는 건 주로 바이러스에 유리한 형태로 변이가 진행된 것들이다. 중국 우한에서 시작된 원본과는 많이 달라진 델타, 오미크론 같은 것들이 대표적 예다.

그렇다면 이런 생각에 빠지기 쉽다. 바이러스에 유리한 형태의 변이가 계속 누적된다면, 바이러스가 점점 더 악독해지는 형태로만 진화하는 게 아닐까. 그렇지만 이런 형태의 진화는 실제로 관찰하기 어렵다. 바이러스는 독자적으로 생활이 가능한 존재가 아니라 자기 몸을 의탁할 숙주(host)에 의존적인 존재이다. 가혹하게 수탈하는 사또를 만나면 농민들이 논밭을 버리고 야반도주해 화전민이 되듯, 바이러스의 독성이 지나치게 강하면 숙주는 금방 죽고 만다. 숙주가 오래오래 생존할수록 바이러스가 그 안에서 활개를 치며 계속 증식할 수 있으니 독성이 지나치게 강한 바이러스는 나올 수 없단 뜻이다.

이런 이유를 들어 ‘바이러스는 점차 약해지는 방향으로 진화해간다’라는 말이 나오지만 아쉽게도 현실은 그렇지 않다. 바이러스의 감염과 바이러스로 나타나는 유해한 반응이 시차를 두고 발생하기 때문이다. 감염 뒤 유해 반응이 나타나는 데 걸리는 시간이 충분히 길면 유해 반응이 아무리 악독하다고 해도 바이러스가 다른 사람을 다시 감염시킬 수 있기 때문에 바이러스의 독성이 떨어져야 할 필요성이 낮다. 대표적인 예가 B형 간염 바이러스이다. B형 간염은 바이러스 감염부터 유해한 작용을 일으키기까지 굉장히 오래 걸린다. 종국에는 목숨을 위협할 수 있는 간경화나 간암 같은 치명적인 결과를 낳지만 감염에서 발병까지 기간이 길다. 이 때문에 바이러스가 숙주를 죽이지 않는 수준으로 약화되는 진화적 압력은 거의 받지 않는다. 에이즈를 일으키는 바이러스인 HIV(인체면역결핍 바이러스)라든가, 자궁경부암을 유발하는 HPV(인유두종 바이러스) 같은 바이러스도 마찬가지다. 이들 바이러스는 출현한 지 아주 긴 시간이 지나도 약화되지 않았다.

토착화된 신종플루처럼 되길 기대해야

급성 감염을 일으키는 코로나19 바이러스는 다행히도 이들보단 사정이 낫다. 길어도 열흘 남짓한 기간 동안 앓으면 나으니, 그 기간 내에 아주 심각한 중증을 유발하는 바이러스는 다른 사람에게 옮겨 가지 못하고 사라질 가능성이 크다. 다만 감염된 뒤 중증으로 가기까지의 시차가 아주 짧은 것도 아니므로, 그 기간 내 감염된지 모르고 다른 사람들을 만나면 바이러스는 금세 다른 사람에게 이동할 수 있다. 확진자가 며칠 뒤에 앓아누워 사망하더라도 바이러스 전파가 충분히 가능하다는 얘기이다. 델타보다 더 심각한 증상을 유발하는 악독한 변이가 나오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없지만 델타보다 더 ‘빠르게’ 중증으로 악화하는 형태의 변이는 등장하기 힘들단 거다.

반면에 오미크론 변이의 사례처럼 감염력이 더 높은 변이가 등장하는 데는 크게 한계가 없다. 다른 변이보다 더 감염력이 높은 변이는 기존 변이를 대체하고 우점종이 되는데,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유전자의 변이는 우연히 일어난다. 극도로 확산이 잘되는 변이가 생기려면 바이러스 입장에서는 꽤 여러 번의 행운이 있어야만 한다. 그것만으로도 확률이 꽤 낮은데 해당 변이의 독성이 아주 강해진다는 건 로또에 당첨되는 수준으로 드문 일이다. 따라서 델타보다 빠르게 확산되는 바이러스는 델타보다는 덜 치명적일 개연성이 높다. 걸리더라도 죽지 않는, 아주 심한 독감 정도가 되는 것이다.

이런 경로를 걸은 게 바로 2009년 즈음 대유행을 일으켰던 신종플루다. 신종플루는 사라진 게 아니라 독성이 줄어든 형태로 바뀌어 현재도 활발하게 사람들을 감염시키고 있다. 다행히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이런 경로를 걷는다면 감기 같은 모습으로 우리 곁에 남을 수 있다. 그렇지만 완전히 낙관할 순 없다. 평범한 사람이 로또에 연달아 당첨되긴 힘들겠지만, 회차마다 로또 1억장씩 산다면 그런 기적이 불가능한 일도 아니다. 정확히 같은 논리가 바이러스에도 적용된다. 수억 명의 인구를 감염시키면 바이러스 복제 과정에서 아무리 드문 일이라도 위험한 진화가 이뤄질 가능성이 커진다. 시간이 지나면 바이러스가 자연스레 약해질 거라고 낙관할 게 아니라 추가 감염을 최대한 줄이기 위해서라도 세계적 백신 불평등을 해소해야 하는 이유다.

박한슬 약사·‘오늘도 약을 먹었습니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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