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고기를 배경으로 한 프랜시스 베이컨, 그는 중학교 중퇴의 학력으로 여러 직업을 전전했다.<br></div>2  기이한 행동으로 학교에서 퇴학당한 살바도르 달리.<br>3  예술창조의 전제조건이 삶의 파탄이라는 지그문트 프로이트.
1 고기를 배경으로 한 프랜시스 베이컨, 그는 중학교 중퇴의 학력으로 여러 직업을 전전했다.
2 기이한 행동으로 학교에서 퇴학당한 살바도르 달리.
3 예술창조의 전제조건이 삶의 파탄이라는 지그문트 프로이트.

창의력 얘기가 연일 들린다. 창의경영, 창의교육, 창의기업…, 창의와 혁신만이 살길이라고 언론이 목소리를 높인다. 캐나다 토론토대학 연구진은 창조성을 결정하는 세 요소로 기술(technoloy), 재능(talent), 관용(tolerance)을 꼽았다. 관용은 곧 다양성을 의미하는데, 생각이나 가치관이 다른 사람을 사회적으로 얼마나 포용해주느냐를 나타내는 지표다. 창조성을 기르는 방법에 대해 전문가들은 교육이 바뀌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학생들이 몰입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고, 다양성을 인정하는 사회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단다. 결론은 국가가 나서서 창의력 교육을 해야 한다는 것! 피렌체 공국의 메디치 가문이 수십 년 동안 백 년에 한 번 나올까말까한 천재들을 배출했던 것처럼 말이다.

정말 그런가? 창의력을 국가와 공교육이 책임질 수 있을까? 창의력이 교육한다고 향상되나? 어디에 쓰는 창의력이냐에 따라서 다를 수 있겠다. 예술에 관한 창의력은 다르다. 뛰어난 예술가, 천재 예술가 중에는 공적 교육을 받지 않은 사람이 많았다. 적어도 20세기 전반까지는 말이다. 천재 화가들은 학교라는 공교육과는 인연이 좀 없는 편이었다. 그들은 천재가 아니라 둔재였고, 말썽쟁이였고, 기이한 행동으로 눈밖에 났다든지, 전혀 눈에 띄지 않을 정도로 소심한 학생들이었다.

피카소는 뛰어난 그림 실력을 발휘해 월반으로 빨리 학교를 마쳤지만(언어과목은 형편없었다), 학교생활에는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살바도르 달리 역시 왕립미술학교에 입학했지만, 파행적인 행동으로 정학 처분을 받고 반정부활동 혐의로 감옥생활을 하다가 결국 퇴학을 당했다. 미술학교 문턱에도 못 간 예술가도 많다. 18세기 스페인이 낳은 걸출한 화가 프란시스코 고야도 아카데미에 수차례 낙방했고, 로댕과 뒤샹도 에콜보자르, 즉 유명 국립미술대에 번번이 낙방했다. 로댕이 낙방한 이유는 전통적 데생의 기법을 답습하고 있었던 에콜보자르의 관례와 경향을 따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는 어쩔 수 없이 실내장식, 건축조각, 도기에 그림 그리기 등의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유지하면서, 루브르미술관을 학교 삼아 스케치를 하러 다녔다. 고독한 환경 속에서 홀로 자신의 미술을 개척해 나갈 수밖에 없었다.

현재까지도 예술가들에게 가장 강력한 영향력을 끼치고 있는 개념미술의 아버지 뒤샹 역시 에콜보자르에 떨어지고, 돈만 내면 아무나 갈 수 있는 줄리앙아카데미라고 하는 사설미술학원에 다녔다. 나중엔 도서관 사서로 취직해 도서관의 온갖 책(그중에서도 노장 사상)을 독파했고, 그 경험이 체스로 소일했던 그의 삶 자체를 예술이 되게 만들었다. 그뿐 아니다. 현대 영국회화사의 거목이자 현재 옥션 최고가를 경신하는 화가인 프랜시스 베이컨은 중학교 중퇴다. 그가 술집종업원, 디자이너, 요리사, 전화받는 직업, 잡부 등 여러 직업을 전전했던 게 오히려 그의 예술을 직관적이고 감각적이게 만들었다.

사실 마스터급 화가들은 처음부터 정규교육을 받고 싶지 않아서라기보다는, 여러 사정상(가난, 신분, 낙방, 가출, 기회박탈과 같은 불운 등) 그렇게 된 경우가 많았다. 그들은 출신성분이 비천하고, 학력이 미천할수록 결핍감과 열등감을 느꼈을 것이고, 그런 헝그리 정신은 더욱 더 빛나는 예술로 승화하는 계기가 되었다. ‘모난 돌이 정 맞는 것이 아니라, 모난 돌이 빛 발한다’는 말이 있는데, 정말 맞는 말이다.

그 ‘모난 돌’은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예술가 탄생설과 맞물린다. ‘예술가는 태어나는가 만들어지는가’에 대해 오랫동안 주목했던 프로이트는 마침내 “예술창조의 전제조건이 삶의 파탄”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삶에든 사람에게든, 뭔가 억울하게 당했다는 느낌 없이, 모든 것을 빼앗겼다는 감정 없이 예술을 창조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예술은 삶에서 잃어버린 시간과 빼앗긴 행복에 대한 하나의 보상으로서 주어지며, 자신만의 상상의 세계에서 그러한 보상을 찾는 예술가는 현실과 화해하지 못하는 망상적 돈키호테라는 것이다. 세상에서 인정받고, 사람들한테 사랑받는다면 굳이 예술을 할 필요가 있냐고 했다. 인정받고 사랑받기 위해서 하는 것이라는 말씀이다. 예술사가인 아놀드 하우저(‘예술사의 철학’)의 말을 빌리자면, 모든 예술은 정확하게 말해서 일종의 ‘돈키호테주의’다. 이런 돈키호테주의가 예술사에서 전면화되는 것은 낭만주의 시대 이후다. 요컨대 낭만주의 이후의 예술은 삶의 상실을 전제로 하며, 그것에 대한 대가로 지불된다.

우리가 아는 예술가상의 전형은 200년밖에 안 되었다. 이때 생겨난 순수예술(가)이라는 개념 때문에 예술가-천재, 예술가-광기, 예술가-열정이라는 등식을 스테레오타입화하기 시작했다. 어쩌면 지금, 예술가상의 원형이 바뀌는 시대가 도래했는지 모른다. 예술가 하면 떠오르는 이런 예술가들은 태어나지도 만들어지지도 않는 시대가 온 것 같다. 예술가 하면 자꾸 피카소나 반 고흐나 뒤샹 같은 사람을 떠올리게 되는 일이 진부한 일이 되어버릴지도 모른다는 말이다.

문제는 낭만주의적 예술가상은 멸종했고, 이제 기획상품처럼 부모가 만든 예술가들이 탄생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중산층 이상의 부유한 자제들이 예술고등학교와 명문미술대, 해외 유명미대를 졸업하는 등 충분한(?) 예술교육을 받은 사람이 아주 많다. 그런데 정작 인간의 마음을 움직이는 작품을 하는 작가들은 좀처럼 보기 힘들다. 왠지 작품은 점점 더 이해하기 어려워졌고(사실 더 무식해진 것 같은데), 디자인처럼 세련되고, 여전히 그들만의 리그라는 사실만을 목도하게 된다. 젊어서 반짝이며 등장했다가, 교수가 되면 슬쩍 없어져 버리는 예술가들이 그들 중 한 부류이다. 그뿐 아니다. 그들은 너무 정상적인 삶을 산다.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고, 예술도 한다. 이때 예술은 액세서리가 된다. 이런 삶에서 ‘타자의식’이란 찾아보기 힘들다. 즉 예술가는 언제나 타자(즉 자신을 주류사회로부터 배제시키고 소외시켜 스스로가 이방인이 되는 것)로서의 삶을 모토로 해야하는데, 그래야 주체(주류)가 되지 못한 객체(비주류)를 배려하고 감정이입할 수 있는 힘이 생기는데, 언제 그런 감정을 맛볼 것이며, 어떻게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작품을 하겠는가!

20세기 초반 피에르 보나르는 “내가 끌렸던 것은 예술 자체보다는 예술가들의 삶이었다”며 자신이 화가가 된 이유를 밝히고 있다. 어쩌면 이런 말들이 더 이상 합당하지 않은 세상이 온 것 같다. 그런 예술가는 실종 혹은 멸종되었기 때문이다. 진짜 예술가는 멸종되었는데, 자꾸만 자신이 예술가라고 지칭하는 사람들은 많아졌다. 진짜 예술이 하나도 없는 세상이 된 것 같다. 세상이 이렇게 흉흉한 것도 진정한 예술가가 부재한 탓이 아닌가 싶다. 창의경영, 창의교육 이런 것보다 먼저 예술가가 다른 직업으로 전업하지 않고, 가난에도 불구하고 작업을 할 수 있는 시대가 다시 왔으면 좋겠다. 수년 전 우연이라도 마주쳤던 예술가들이 지금은 보이지 않는다. 그들은 다 어디로 숨어버린 것일까?

유경희

홍익대 대학원 미학 석사. 연세대 커뮤니케이션대학원 박사. 뉴욕대 예술행정 전문가과정 수료. 홍익대 대학원 최고위과정 및 뮤지엄아카데미 강의. 저서 ‘예술가의 탄생’ ‘아트살롱’

유경희 미술평론가·예술처방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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