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번째 좌대’ 프로젝트 중 런던 트라팔가광장에 서 있던 마크 퀸의 ‘임신한 앨리슨 래퍼’, 2005년
‘네 번째 좌대’ 프로젝트 중 런던 트라팔가광장에 서 있던 마크 퀸의 ‘임신한 앨리슨 래퍼’, 2005년

서울 광화문에는 내가 적응하지 못하는 공공조형물이 있다. 이순신과 세종대왕 동상이다. 물론 나는 그들을 아주 존경한다. 그런데 꼭 그렇게 정치적인 영웅들만이 그 자리에 있어야 할까? 그곳에 있어야 한다면, 저런 모습이어야 할까? 정치적인 장소일수록 우리를 무장해제시키는 유머와 위트가 넘치는 조형물이 있으면 안 되나? 예술작품으로서 광화문의 영웅들이 주는 감동은 때론 교보빌딩 위 약간은 촌스러운 플래카드가 주는 감동보다 못할 때가 많다. 서글픈 일이다.

현대 공공조형물 중에서 눈에 띄는 스펙터클과 미학적 완성도를 보여준 나라는 영국이다. 영국의 청년작가군단(yBa)을 비롯해 영국이 현대미술에서 차지하는 위상은 최고조에 달했다. 퍼블릭아트 분야 역시 세계적으로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특히 ‘네 번째 좌대(The Fourth Plinth)’ 프로젝트는 영국 공공미술사의 새로운 장을 썼다.

‘네 번째 좌대’가 놓여진 곳은 런던 트라팔가광장이다. 우리의 광화문에 해당하는 이 광장은 1805년 나폴레옹과의 트라팔가 해전에서 승리한 뒤 전사한 넬슨 제독을 기념하기 위해 건설되었다. 당대 최고의 건축가인 존 내시(John Nash)와 찰스 베리(Charles Barry)가 1845년 완성한 이 광장은 빅토리아여왕 시대 대영제국의 긍지가 담겨 있다. 주인공 넬슨을 중심으로 광장의 사방 모서리에는 국가적으로 추앙받는 영웅들의 동상이 서있다. 인도 주둔 영국군 총사령관을 지낸 찰스 제임스 네이피어(남서쪽), 1857년 인도의 세포이항쟁을 진압한 헨리 해블록(남동쪽), 그리고 이 광장을 정초하였으나 완성을 보지 못하고 죽은 조지 4세 왕(북동쪽)이다. 북서쪽의 좌대는 원래 영국 국회의사당을 만든 찰스 베리 경의 기마상을 제작하기 위해 만든 것이지만 자금 확보에 실패하여 160여년간 텅 빈 채로 남아있었다.

텅 빈 좌대 위에 기마상이 아닌 현대미술 작품이 올라가게 되었다. 어떻게 된 일일까? 1995년 왕립예술및상공업진흥회(RSA)가 웨스트민스터 시당국의 인가를 받아 비어있는 좌대에 영국을 상징하는 아이콘을 올리는 계획에 착수했다. 무엇을 좌대에 올릴 것인지 여론조사를 실시했다. 마거릿 대처 전 총리, 비틀스, 축구스타 데이비드 베컴을 비롯 아기곰 푸, 복제양 돌리까지 거론되는 등 의견이 분분했다. 그러나 최종 낙점은 특정인물이나 상징물이 아닌 현대미술 작품이었다.

영국이 낳은 세계적 조각가 안토니 곰리의 ‘북방의 천사’, 1998년
영국이 낳은 세계적 조각가 안토니 곰리의 ‘북방의 천사’, 1998년

1998년 향후 3년간 좌대를 채울 3명의 작가를 선정하고 연차적으로 전시가 시작되었다. 마크 윌린저의 등신대 크기의 예수 조각상 ‘에케호모(이 사람을 보라·1999)’로 시작해, 빌 우드로의 책과 나무 뿌리로 형상화한 ‘역사와 무관한’(2000), 그리고 레이첼 화이트리드의 작품으로 빈 좌대와 똑같은 모양을 레진으로 본떠 원래 좌대 위에 엎어놓은 ‘모뉴멘트’(2001)가 선정되었다. 그 후 시 당국은 공공미술전문가, 건축가, 언론인, 문화재 전문가, 미술관장으로 커미셔너 그룹을 결성하고 2005년 ‘네 번째 좌대’라는 공식명칭으로 본격적인 프로젝트를 재개하였다. 그 결과 마크 퀸의 ‘임신한 앨리슨 래퍼’가 선정되자 세계는 경악했다. 2005년 9월부터 2년여에 걸쳐 전시된 이 작품은 지금까지의 공공조형물과는 거리가 멀다. 마크 퀸은 팔다리가 없는 장애인, 게다가 8개월 된 임신부를 선택했다. 주인공은 2006년 한국을 방문했던 구족화가 겸 가수 앨리슨 래퍼다. 작가는 이탈리아산 최고급 대리석을 가지고 고대 그리스 여신상을 연상시키는 래퍼의 실제 모습을 조각했다. 실제 인물의 3배 정도로 키워진 이 조각은 남성미를 과시하는 청동기마상과 대조되지만 매우 당당한 모습으로 세워져 있었다.

도대체 이 작품이 가진 의미는 무엇일까. 먼저 이 작품은 정상과 장애, 고급과 저급, 아름다움과 추함의 모든 경계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예전 같으면 불가능한 장소에 타자 중의 타자인 장애인 임신부가 있는 것이다. 그로써 이 작품은 구국수호의 영웅들만이 공공조각으로 세워진다는 기존방침을 어김없이 깬 기념비적 작품이 되었다. 상상해 보라! 우리로 치면 광화문 광장, 세종대왕이나 이순신 장군의 자리에 저 팔다리가 없는 여자가 2년 가까이 설치되어 있었던 거다.

‘네 번째 좌대’ 프로젝트는 더 진화해 자국민 예술가만을 선정하지 않는다. 2012년에는 노르웨이와 덴마크 출신의 엘름그린과 드래그세트의 ‘힘 없는 구조물’이 세워졌고, 2013년에는 독일 출신의 카타리나 프리취의 ‘수탁’이 선정되었다. 더불어 작가 선정 과정 또한 점점 투명해졌다. 2008년에는 후보작가를 선정하는 과정이 공개되었다. 런던시는 작가를 선정하기 전 약 6개월간 내셔널갤러리와 시청 복도에서 후보작가들의 제안서와 모형을 일반인에게 공개했다. 관람객들은 전시장과 인터넷을 통해서 자신이 지지하는 작품에 표를 던졌고 이렇게 수집된 여론은 심사위원들의 전문적 소견과 함께 최종 작가 선정의 근거가 되었다. 투표뿐만 아니라 공청회와 교육프로그램 등 시민들이 참여할 수 있는 기회가 마련되었다.

그리고 영국 공공미술계에 또 하나의 혁혁한 공을 세운 작품이 있다. 네 번째 좌대에 평범한 시민들로 하여금 자발적 퍼포먼스를 하게 했던 안토니 곰리의 조각 ‘북방의 천사’(1998)다. 영국의 탄광도시 게이츠헤드에 세워진 높이 20m, 날개 길이 54m, 무게 208t의 이 조형물은 영국인이 선정한 10대 문화아이콘이 되었다. 이 조형물을 보려고 세계에서 수십만 명 이상이 방문하고 있다.

현재 ‘북방의 천사’는 1970년대부터 탄광산업의 쇠락으로 장기적 경기침체에 빠진, 경제 순위 거의 꼴찌라는 불명예를 가진 도시의 가장 중요한 재정담당자가 되었다. 이 조형물은 처음에는 엄청난 반대에 부딪혔다. 영화 ‘빌리 엘리어트’에 나올 법한 낙후된 시골인 이곳 사람들의 80% 이상이 노골적으로 반대했다. 16억원이나 되는 막대한 예산이 드는 거대한 조형물을 원치 않았던 것이다. 그렇지만 작가와 시정부는 세금이 아닌 복권기금과 외부자본을 유치하며 모든 예산집행 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함으로써 주민들의 신뢰와 조형물에 대한 기대감을 상승시켰다. 중요한 건 게이츠헤드 공무원들과 작가의 위대한 설득 작전이 성공했다는 점이고, 이 하나의 조형물을 위해 8년 이상의 시간을 투자했다는 점이다. 당시 6000개 이상의 일자리가 생겨 지역경제를 살려내기도 했다. 이처럼 ‘북방의 천사’는 소외된 탄광촌을 예술도시로 거듭나게 했다. 그로써 ‘북방의 천사’는 단순한 관광상품이 아니라 희망의 증거물이 되었다. 이처럼 좋은 예술은 그 과정이 순탄치 않기에 훌륭한 다큐멘터리로 자리매김하는 것이다.

지난 8월 탄광을 개조해 예술공간으로 탈바꿈했다는 강원도 정선의 ‘삼탄아트마인’에 가보았다. 탄광이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호기심을 자극했던 공간은 그저 허탈한 실망만을 안겨주었다. 이 탄광에서 어려운 시절을 견뎠을 광부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 정도였다. 우리는 언제쯤 아름다운 공공미술을 보려는 순례객들로 줄을 선 광경을 목도할 수 있을까. 우리의 천사는 과연 어디에 있는 것일까.

유경희

홍익대 대학원 미학 석사. 연세대 커뮤니케이션대학원 박사. 뉴욕대 예술행정 전문가과정 수료. 홍익대 대학원 최고위과정 및 뮤지엄아카데미 강의. 저서 ‘예술가의 탄생’ ‘아트살롱’

유경희 미술평론가·예술처방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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