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마돈나가 후원한 신디 셔먼 전시 관련 자료.
1997년 마돈나가 후원한 신디 셔먼 전시 관련 자료.

1997년 미국 뉴욕 체류 때 맨해튼의 뉴욕현대미술관(MoMA)에 갔다. 신디 셔먼의 초기 사진전을 보았는데 전시장 입구에 새겨진 전시 관련 소개문을 읽다가 깜짝 놀랐다. 후원 명단에 한 사람의 익숙한 이름을 발견했다. 마돈나였다. 팝가수인 그가 이 전시의 주요한 후원자였다.

마돈나는 신디 셔먼이 찍은 마릴린 먼로 사진을 좋아해 그에게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두 사람은 예술적 아이디어가 비슷하다는 이유로 서로의 팬이 되었던 것 같다. 마돈나의 미술상이었던 달렌 루츠가 이들을 중재했고, 모마(MoMA)의 사진 전문 큐레이터인 피터 갤라시가 전시기획을 맡았다. 뿐만 아니다. 마돈나는 20세기 전반기 전설적인 여류사진가였던 티나 모도티 전시를 후원하기도 했다.

마돈나는 오랫동안 제대로 된 컬렉션을 완성해 온 실력 있는 아트컬렉터이다. 그는 미술전문가를 고용해 전문적인 컬렉팅에 집중해 와, 그 질이나 규모가 미술관을 열 정도라고 한다. 마돈나는 젊은 시절에는 펜트하우스, 플레이보이 등 포르노 잡지의 모델 일을 했고, 미술대학 누드모델로 생계를 유지해야 할 만큼 어렵게 보냈다. 그러나 메트로폴리탄뮤지엄과 클로이스터 같은 무료 미술관에 자주 드나들 만큼 미술에 대한 관심은 컸다.

마돈나의 그림에 대한 취향은 검은 피카소로 알려져 있는 팝아트의 이단아 장 미셸 바스키아와 연애를 하면서 더욱 진화했던 것 같다. 당시 바스키아는 유명세를 타고 있었고 마돈나는 무명이었다. 짧은 연애가 끝나고 바스키아는 28세로 요절했다. 마돈나는 그 후 유명해졌다. 마돈나는 바스키아 덕분에 앤디 워홀과 같은 당대 유명 작가들과 교류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을 것이다.

마돈나가 가장 사랑하는 화가는 프리다 칼로다. 마돈나는 칼로의 작품 몇 점을 수백만달러나 주고 샀다. 그림이 도발적이고 영감을 준다는 이유였다. 칼로가 자신과 비슷한 자유연애주의자라는 이유도 한몫한다. 칼로를 멘토로 추앙했던 마돈나가 소장한 칼로의 작품 중 가장 드라마틱한 작품은 ‘나의 탄생’이다. 난산을 표현한 이 그림은 마돈나의 예전 뉴욕 아파트 출입구에 걸려 있었다고 한다. 들어오는 모든 이가 칼로의 피 흘리는 작품을 보고 출입해야만 했던 것이다. 마돈나는 또 프랑스로 망명한 폴란드 출신 여류화가 타마라 드 렘피카의 열혈 팬이다. 관능적인 외모와 도발적인 태도로 이름을 날린 렘피카는 마돈나의 얼터에고(Alter Ego·분신)처럼 느껴질 정도다.

배우이자 환경운동가로 알려져 있는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도 유명한 컬렉터다. 레오나르도라는 이름을 얻게 된 배경도 레오나르도 다빈치와 관련이 있다. 그의 어머니가 피렌체의 우피치미술관에서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그림을 보고 있을 때 뱃속에서 아이가 발길질하던 태동을 느꼈다. 옆에 있던 디카프리오의 아빠가 좋은 징조라며 레오나르도라는 이름을 지어줬다고 한다. 태생이 이러니 어찌 그가 미술에 관심을 가지지 않을 수 있겠는가. 디카프리오는 1998년 막대한 재산과 시간을 투자해 환경보호단체인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재단’을 설립했다. 그는 멸종 야생동물을 보호하고, 수소연료 자동차를 타고 다니고, 환경다큐멘터리 영화를 제작하기도 하는 등 지구 보존을 위한 삶을 실천하고 있다.

(좌) 2013년 크리스티 경매장에서의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우)스티븐 스필버그와 조지 루카스(오른쪽)가 자신들이 기획한 노먼 록웰 전시장에서 포즈를 취했다.
(좌) 2013년 크리스티 경매장에서의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우)스티븐 스필버그와 조지 루카스(오른쪽)가 자신들이 기획한 노먼 록웰 전시장에서 포즈를 취했다.

디카프리오는 세계적 갤러리인 가고시안을 포함한 세계 주요 갤러리의 컬렉터이다. 그는 영화 ‘로미오와 줄리엣’(1996)으로 유명해진 직후부터 미술품을 수집하기 시작했으며 현재 장 미셸 바스키아, 앤디 워홀, 마크 라이든, 다카시 무라카미, 에드 루샤를 비롯해 현대미술의 스타작가들 위주로 수집한다고 알려져 있다. 환경운동과 미술작품에 대한 그의 관심은 자연스럽게 환경을 보호하기 위한 자선모금 행사로서 미술품 경매로 이어졌다. 그는 이 행사를 진행하기 위해 직접 작가들의 스튜디오와 갤러리스트들을 찾아 자선 행사에 참여해줄 것을 요구했다. 결국 2013년 5월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서 33점의 작품이 100% 판매 기록을 세웠다. 이 수익금은 멸종위기의 동물 보호활동에 전액 기부되었다고 한다.

또 한 사람의 유명 컬렉터는 영국 팝가수 엘튼 존이다. 2005년 엘튼 존은 중견사진가인 배병우의 소나무 사진을 런던에서 열린 국제사진페어에서 샀다. 이후 서구 미술계에서의 배병우의 입지는 공고해졌다. 배병우의 작품 가격이 올랐음은 물론이고 스위스 마드리드 티센미술관에서 개인전을 열게 되었다. 스페인 정부의 의뢰를 받아 세계문화유산인 알함브라 궁전을 2년 동안 촬영하기도 했다. 무엇보다 배병우의 작품이 더 승승장구할 수밖에 없었던 또 다른 이유가 있다. 그것은 엘튼 존이 세계적으로 유명한 사진 컬렉터이기 때문이다. 엘튼 존의 사진 컬렉션에 들어가게 되면 세계적 작가로 인정받는 거나 다름없다. 컬렉터도 이 정도면 비평가나 큐레이터와 동급 이상이지 않은가!

뿐만 아니다. 영화감독 스티븐 스필버그와 조지 루카스는 미국 일러스트레이터이자 화가인 노먼 록웰의 열혈 팬이다. 그들은 경제적 여유가 생긴 다음부터 록웰의 그림을 사들이기 시작했다. 두 사람은 서로 양보해가며 컬렉션을 하다가 2010년 마침내 미국 워싱턴 스미스소니언미술관에서 ‘텔링 스토리즈: 조지 루카스와 스티븐 스필버그의 노먼 록웰 컬렉션’이라는 전시를 공동기획하기도 했다. 두 거장이 록웰로부터 무척 많은 영감을 얻은 것에 대한 보답이었을 것이다. 록웰 또한 두 거장 덕분에 더욱 견고한 명성을 얻었을 테고.

이처럼 현대미술에서 컬렉터가 더욱 중요해졌다. 유명한 사람이 사면, 지명도 없었던 예술가가 부상하기도 한다. 인간의 욕망은 타인의 욕망을 욕망하는 메커니즘을 가졌기 때문일 것이다. 서구의 미술품 컬렉터들을 보면서 우리 연예인들을 생각했다. 성공한 연예인들 중 본격적으로 컬렉션을 한다거나 엘튼 존과 같은 수준급 심미안을 가졌다는 이야기를 들어보지 못했다. 물론 그림을 사기는 한다. 구색 갖추기 혹은 허영 혹은 투자를 위한 목적으로 말이다. 대체로 성공한 연예인들은 레스토랑 등 사업을 하거나, 어떤 사업체의 홍보이사로 일한다. 그들에게 배우 혹은 연기는 천직이나 예술이 아니라 그저 직업인 것이다. 시쳇말로 좀 뜨게 되면 광고모델이라는 수순을 밟는다. 인터뷰에서 광고가 더 많이 들어오길 바란다고 너무도 천연덕스럽게 말하기도 한다. 미국 TV 광고를 보면 유명한 배우들이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놀라게 된다. 유명배우들은 팬들의 사랑에 어긋나지 않기 위해서라도 최대한 상업광고로부터 자신들을 지킨다.

서구 유명인들의 미술품 수집을 보면서 그 목적이 투자든 허세든 상관없이 그들의 삶이 예술과 관련되었다는 사실에 놀라게 된다. 우리 연예인들이 크건 작건 젊은 작가·무명작가의 그림을 구입해주고 대안공간이나 미술관의 전시에 후원을 했다는 뉴스를 듣고 싶다.

유경희

홍익대 대학원 미학 석사. 연세대 커뮤니케이션대학원 박사. 뉴욕대 예술행정 전문가과정 수료. 홍익대 대학원 최고위과정 및 뮤지엄아카데미 강의. 저서 ‘예술가의 탄생’ ‘아트살롱’

유경희 미술평론가·예술처방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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