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 제프 쿤스의 누드가 작년 휘트니미술관에서의 회고전을 앞두고 잡지 ‘베니티 페어’에 실렸다. (우) 캐논에 가장 잘 맞아떨어지는 남성 누드 ‘벨베데레의 아폴로’, 기원전 330년경, 바티칸, 로마.
(좌) 제프 쿤스의 누드가 작년 휘트니미술관에서의 회고전을 앞두고 잡지 ‘베니티 페어’에 실렸다. (우) 캐논에 가장 잘 맞아떨어지는 남성 누드 ‘벨베데레의 아폴로’, 기원전 330년경, 바티칸, 로마.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서 2013년 11월 ‘풍선 강아지’가 600억원이 넘게 거래돼 제프 쿤스는 최고가로 팔린 생존작가가 됐다. 쿤스는 지난해 미국 휘트니미술관에서 회고전을 가짐으로써 앤디 워홀 이후에 가장 유명한 미국 작가가 됐다. 그는 60세(55년생)인데도 당시 조각 같은 몸매를 대중에게 선사했다. 전시 직전 ‘베니티 페어’(미국 유명 여성잡지)를 위해 올 누드로 화보촬영을 한 것이다. 어쩌면 문화계는 그의 누드에 놀라지도 않았던 것 같다. 25년 전 이탈리아의 포르노배우 출신 국회의원 치치올리나와의 성교 사진을 찍어 세계를 깜짝 놀라게 했던 전력이 있으니 말이다. 그렇다고 해도 60대의 그의 누드는 센세이션이다. 그는 왜 그렇게 벗고 싶었을까?

어디 남자의 노출증이 그뿐인가? 요즘 아이돌은 사람들의 노출 제안에 못 이기는 척 자기 복근을 슬쩍 내비치고 쏟아지는 찬사에 약간의 수줍음을 보인다. 이것이 일종의 자기 소개의 최신 트렌드가 되었을 정도다. 아이돌의 초콜릿 복근을 보면 고대 그리스의 남성 조각과 오버랩된다. 헤라클레스처럼 울퉁불퉁한 근육이 아닌, 아폴론처럼 길고 잔근육을 지닌 요즘 아이돌의 몸 말이다. 위험을 무릅쓰고 말하자면, 아이돌의 몸과 고대 그리스 남성 조각은 모두 남성을 유혹하기 위한 몸이라고나 할까?!

고대 그리스 사회에서는 남성 누드가 누드의 전형이었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아네르(Aner·남성)’와 ‘안트로포스(Anthropos·인간)’의 개념을 구분했지만, 조각에서만큼은 그 둘을 동일시했다. 그리스 조각의 기본 단위는 남성 누드였다. 수많은 국가에서 성적 매력의 대상이었던 매혹적인 여성 누드는 프락시텔레스가 기원전 340년경 아프로디테 여신상을 조각하면서부터 뒤늦게 조각의 기본에 포함됐다. 남성 누드보다 100년쯤 늦게 탄생한 것이다.

미술사에서는 나체(naked)와 누드(nude)를 어떻게 구분할까? 벗은 몸이라고 해서 전부 누드는 아니다. 나체, 즉 알몸은 옷을 입지 않은 상태, 옷을 다 벗어버린 몸이다. 반면 누드는 단순히 옷을 모조리 벗어버린 상태가 아니라 건장하고 균형 잡힌 자신만만한 육체, 즉 재구성된 육체를 뜻한다. 원래 영어에는 ‘누드’라는 단어가 없었다. 누드는 18세기 초 비평가들이 예술적 교양이 없는 섬나라, 영국인에게 문화가 발달한 유럽 대륙에서 알몸이 예술의 중심 소재가 되고 있다는 것을 설득시키기 위해 영어 속에 억지로 추가한 것이다.

어떻게 고대 그리스에서 (남성) 누드의 원형이 생겨난 것일까. 먼저, 그리스인은 정신과 육체가 하나라고 생각했다. 그러니까 아름다운 육체야말로 아름다운 정신을 담을 수 있는 그릇이라고 여겼던 거다. 두 번째로, 그리스인은 아름다움을 수학적인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스인의 수에 대한 열정은 신앙에 가까운 것으로 회화와 조각에서 표현될 수밖에 없었다. 조각가 폴리클레이토스의 말처럼 “발톱 끝에서부터 머리카락 한 올까지, 모든 선은 철저히 준비된 계산에서 나온 것”이다. 따라서 그리스인은 인체를 측정하고 어떤 비례를 가진 인체가 가장 아름다운지를 수치화했다. 예컨대 여체 조각의 경우 두 유방 사이의 거리와 유방 아랫부분에서 배꼽까지의 거리, 배꼽에서 두 다리 사이가 갈라지는 곳까지의 거리가 같았을 때 가장 아름답다는 걸 밝혀낸 것. 이런 적절한 비례를 캐논(canon·규준)이라고 부른다. 우리가 알고 있는 팔등신이라는 미를 판별하는 기준 역시 이런 그리스적 전통과 맞닿아 있다.

세 번째로, 고대 그리스인은 ‘보는 것’을 가장 중요시 여겼다. 그들이 시각적으로 완벽한 조각을 제작할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이 ‘산다는 것’을 ‘본다는 것’과 일치시켰기 때문이다. 죽음관을 보면 알 수 있다. 누군가가 죽으면 그들은 ‘눈길을 거두었다’라고 표현한다. 그리스인은 죽은 사람이 더 이상 이 세상을 볼 수 없다는 사실에 슬퍼했다. 이집트인과는 달리 그리스인은 내세를 믿지 않았던 거다. 그들은 지상에서의 현실적 삶을 철저히 긍정했다. 사물이 아주 명료하게 인식되는 자연환경에서 ‘보는 것’이 곧 ‘산다는 것’과 동일시되고, ‘보는 것’이 곧 ‘생각한다는 것’과 동일시되었다. 바로 그리스인이 ‘seeing is believing’, 즉 ‘백문이 불여일견’이라는 인식론으로 서구의 역사를 지배했던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리스 조각은 분명 이러한 우월한 시각적 전통 위에 서 있다.

사실 그리스인이 벌거벗은 남성 조각상을 수많이 제작할 수 있었던 근본적 이유가 또 있다. 그들이 벌거벗은 일에 대한 죄책감이나 수치심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벌거벗음은 야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완전히 편안하고 자유로운 것, 즉 일종의 문명적인 상태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반대로 여자와 노예들은 거칠고 치렁치렁하며 우중충한 옷을 입었다. 그녀들은 도시에서 나체로 자신을 드러내지 않았고 집안에서 갇혀 지내야만 했다.

이런 실생활처럼 예술품에서도 여자의 몸이 거의 존재하지 않다가 기원전 6세기가 지나 겨우 제작된다. 그것도 완전한 누드가 아닌 대개 하체가 얇은 베일에 감싸여 있는 모습으로 말이다. 파르테논 신전 옆 에레크테이온 신전의 여성 조각상을 보라. 착의의 여성 조각상들은 단독상이 아닌 신전의 기둥을 떠받치고 있는 카리야티드(Caryatids·여성 입상)가 아닌가! 당시 여자의 몸은 완벽한 누드의 대상이 아니라 후세를 생산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했기 때문에 여성 누드가 만들어지려면 시간이 좀 걸렸던 것이다. 오히려 남자의 몸이 다른 남자들의 유혹의 대상이었다.

이처럼 그리스인은 남자와는 사랑을, 여자와는 아이를 생산하는 조력자로서 관계를 맺었다. 이 시대의 동성애는 매우 자연스럽고 일반적인 문화현상이었다. 나이 든 남성과 어린 남성이 사랑을 나누는 것이고, 오히려 성인 남성 간의 동성애는 사회적 비난의 대상으로 금지되었다. 그러니까 그들의 사랑은 페도필리아(pedophila), 즉 ‘소년애’다. 예를 들어 플라톤의 ‘향연’을 보면 소크라테스가 미소년들을 대동하고 지혜를 산출하는 장면을 목격할 수 있다. 당시 능력 있는 귀족 성인들은 잘생기고 활기 있는 귀족 소년들이 지적인 교양을 섭렵할 수 있게 도왔을 뿐 아니라 용기와 담력을 훈련시켜 도시의 핵심세력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왔다. 그들의 동성애는 도시국가를 철학적으로 이끌어갈 인재 양성 차원의 스폰서십에 가까운 것이었다.

이렇듯 벌거벗은 남성의 수려하고 영웅적인 몸매를 조형적으로 표현한다는 것은 성인 남성이 보기에 좋은, 그들이 거느리고 사랑하고 싶은 어린 남성을 표현하는 것과 더불어 육체와 영혼의 균형을 겸비한 이상적인 인간형의 구현에 다름 아니었다. 그래서 그리스 시대에 다른 어떤 시대보다 남성 누드가 훨씬 더 많이 제작되었던 것이다.

유경희

홍익대 대학원 미학 석사. 연세대 커뮤니케이션대학원 박사. 뉴욕대 예술행정 전문가과정 수료. 홍익대 대학원 최고위과정 및 뮤지엄아카데미 강의. 저서 ‘예술가의 탄생’ ‘아트살롱’

유경희 미술평론가·예술처방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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