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 하나를 내겠습니다. 재벌 개혁을 위한 공약으로 일감 몰아주기 근절, 집단소송제·징벌적 손해배상제 도입, 재벌총수·경영진 사면·복권 금지 공약을 내건 후보가 있습니다. 노인을 위한 공약으로 75세 이상 입원 시 본인부담률 10%, 틀니 본인부담률 30%, 국립치매마을 시범 조성을 내건 후보가 있습니다. 각각 누구의 공약일까요?

공약만 보고 후보를 판단하기 쉽지 않을 겁니다. 재벌 개혁 공약의 주인공은 바른정당 유승민 후보이고, 노인 분야 공약은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의 것입니다.

지난주 주간조선은 ‘결정 못한 당신을 위한 핵심 공약 비교’ 기사를 썼습니다. 공약 대결이 아니라 이미지 대결과 네거티브 대결로 흘러가는 선거를 바로잡아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또 누구를 뽑을지 결정하지 못한 부동층 유권자들이 순수하게 공약만 보고 마음을 결정할 수 있게 도와주자는 의도였습니다.

그런데 막상 기사를 쓰는데 영 개운하지 않았습니다. 기사를 읽은 독자들이 “한눈에 공약을 비교해볼 수 있어서 좋았다” “이미지에 가려져 제대로 평가하지 못했던 공약을 읽어 본 기회였다”고 호의적인 반응을 보여줬지만 어딘가 찜찜했습니다. 그 감정의 이유를 저는, 이번 주 두 번에 걸쳐 진행된 대선후보 TV 토론회를 보고 깨달았습니다.

TV 토론회에서 대선후보들은 상대 후보가 예전에 이런저런 발언을 한 적 있는지, 후보의 과거 말과 행동이 사실인지에 대해 물었습니다. 공약에 대해 질의 응답을 주고받기도 했습니다만 주로 이런 식이었습니다. “XX는 어떻게 하실 겁니까?” “저는 집권하면 OO 하겠습니다.”

제가 궁금했던 것은 이런 것이 아니었습니다. 후보들의 공약이 어떤 국정 철학과 개인적 소신에서 비롯된 것인지 알고 싶었습니다. 예를 들어 재벌 개혁을 위해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한다면, 그 이유와 예상되는 결과에 대해 듣고 싶었습니다. 공약을 통해 후보가 그리는 대한민국은 어떤 나라인지, 국민들의 삶은 어떤 것인지 알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지난주 주간조선을 펼쳐 놓고 보면 후보들의 공약은 몇몇 분야를 빼놓고 대동소이(大同小異)합니다. 모두가 근로시간을 줄이겠다고 약속하고, 모두가 최저임금을 올리겠다고 약속합니다. 후보 이름을 가려놓고 보면 가끔 공약과 후보의 이름을 연결하기 헷갈릴 때가 있습니다.

철학을 가진 후보, 자신만의 청사진을 그려주는 후보를 바라는 것이 욕심일까요. 비록 일부 유권자의 반발을 사더라도 자신의 국정 철학과 신념에 따라 강력하게 주장하는 바가 있는 후보를 만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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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효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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