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표메뉴 게장백반
대표메뉴 게장백반

부부의 고향은 전북 순창. 한동네에서 나고 자란 이들은 야문 손끝과 정직함으로 일 년을 하루같이 매일 게장을 담근다. 이 집 뒤란의 커다란 옹기 항아리들 속엔 시간의 마법 속에 간장게장이 숙성되고 있다. 항아리 뚜껑을 열어 보면 넓적한 다시마가 살포시 덮여 있다. “매번 담글 때마다 넣는 것은 아니고 며칠에 한 번씩 올려줘요.”

아하! 이러면 간장에 깨끗한 감칠맛이 녹아들겠다 싶다.

인천 석남동에서 오랜 세월 한자리를 지켜온 ‘삼백꽃게장’은 주인장 부부의 내공이 빛나는 게장 명가이다. 대표 김형태(65)씨가 열네 살부터 전주 한정식집에서 음식을 배웠으니 어느덧 그의 요리나이가 오십이 넘었다. 지금은 아내 김경순(59)씨에게 주방을 내주고 서빙을 하고 있지만 이 집 음식의 모든 레시피는 김씨의 손끝에서 나왔다. 그는 34년 전 인천 신흥동으로 올라와 한식집을 열었다. 그때는 반찬으로 게장을 냈었다. 그 후 숭의동을 거쳐 1988년 경인고속도로 가좌 IC에서 멀지 않은, 서구 홈플러스 근처의 이곳으로 이전할 때만 해도 낙지곱창전골을 주력 메뉴로 내세워 ‘삼백낙곱’이라고 간판을 주문했다. 그런데 간판집 실수로 ‘삼백낙곰’으로 잘못 온 것을 뉘앙스가 괜찮은 것 같아 내내 걸고 있다가 몇 해 전 ‘삼백꽃게장’으로 바꾸었다. 게장백반은 ‘삼백낙곰’으로 개업하면서부터 메뉴에 추가했는데 인기가 워낙 좋아 곧 대표메뉴가 되었다. 꽃게탕, 낙지볶음, 홍어회, 불낙 메뉴도 있지만 대부분의 손님들은 게장백반을 주문한다. 여럿이 와서 게장백반을 먹은 뒤 매콤한 낙지볶음 등으로 입가심하는 손님들이 간혹 보일 정도.

오랜 세월 사랑받아온 이곳 게장백반의 비결은 싱싱한 제철 꽃게를 구하는 것부터 시작된다. 꽃게가 산란하기 전 살과 알이 꽉 차오르는 4월에 수억원어치의 암꽃게를 한꺼번에 구입한다.

“살이 실하고 1㎏에 3마리 이하의 큰 꽃게로 맞춰주는 충남 보령수협에서 전량 구매합니다.”

대량 구매한 꽃게는 급랭해 인천 연안부두의 냉동고에 맡겨두고 매일 필요한 만큼씩 가져다 쓴다. 수십 마리의 꽃게를 해동해서 게장을 담그는 모든 손길 하나하나에는 오랜 세월의 노련함이 묻어난다. 이 집 게장의 비법 재료는 바로 맥주! 간장이 팔팔 끓을 때 맥주를 비율 맞춰 넣고 식힌 다음 해동한 꽃게에 가만히 따라 붓고 알맞게 숙성시킨다. 이렇게 하면 다른 양념을 넣지 않아도 특유의 비린내를 깔끔하게 잡을 수 있다. 파, 마늘, 한약재, 설탕과 같은 게 본연의 향을 해칠 수 있는 재료는 일절 넣지 않는다. 게를 건지고 남은 간장에 새 간장과 맥주를 보충해 끓여서 담그기 때문에 세월이 더해질수록 게장 맛도 깊어질 수밖에 없다.

짜지도 싱겁지도 않게 알맞게 숙성시키는 것도 오랜 내공이 필요하다. “한 시간만 늦게 건져도 짜고 일찍 건져내면 비려요.” 알맞게 간이 든 게장을 건져 냉장 보관했다가 손님상에 내기 한 시간 전쯤 꺼내어 먹기 좋은 온도로 준비한다. 게장이 너무 차도 맛이 덜하다는 것! 이렇게 정성스러운 손길을 거친 꽃게장은 한 접시에 한 마리씩 담아낸다. 여느 게장집에서 여러 마리를 큰 접시에 담아내 각자 덜어 먹게 하는 것과 다른 모습이다. “게가 크니까 한 마리씩 자신 있게 담아낼 수 있지요.” 테이블에서 딱딱한 집게다리를 자르고 게딱지의 알과 장도 먹기 좋게 싹싹 긁어 주는 주인장의 배려에 기분이 흐뭇해진다.

대표 김형태씨와 아내 김경순씨
대표 김형태씨와 아내 김경순씨

노란 알과 장이 가득 붙어 있는 게장은 보기만 해도 군침이 넘어간다. 한 조각 가져다 쪽 빨아 먹어 보니 짜지 않고 게살이 정말 탱글탱글하다. 잘 담근다는 게장집의 게도 살이 슬쩍 흐르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이 집 게장의 살은 똑똑 끊어지는 신선한 질감이 정말 최고다! 집게다리 속의 하얀 속살도 비린내가 전혀 나지 않고 게의 순수한 향긋함이 오롯이 전해진다. 한마디로 깔끔하고 담백해서 자꾸 먹어도 물리지가 않는다.

먹다 보면 어느새 밥 한 공기 뚝딱! 게장이 밥도둑이라는 옛말이 실감난다. 인심 좋은 주인장은 밥 한 공기쯤 덤으로 준다. 이 집 꽃게장이 유독 맛있는 이유는 밥에도 있다. “게장엔 쌀이 좋아야지요!” 25년째 거래하는 미곡상에서 제일 좋은 쌀을 가져와 수고스럽더라도 조그만 압력솥에 한 번에 10공기씩, 밥이 떨어지지 않도록 자주 짓는다.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갓 지은 쌀밥을 꽃게 뚜껑에 넣고 비벼 먹는 맛을 그 무엇에 비길 수 있으랴! 흰쌀밥의 찰진 단맛에 간장게장만의 고소하면서 몽글몽글한 식감이 어우러져 정말 한 숟갈 한 숟갈이 아쉽다.

게장을 먹다 보면 반찬에 젓가락이 가지 않는데 이 집은 예외다. 한식집을 했던 내력이 엿보인다고 할까. 직접 염지해 노릇하게 구운 조기부터 집에서 담근 막된장으로 끓인 된장찌개, 제철 나물, 젓갈, 김치 등이 맛깔스럽게 나온다. 주인장은 게장을 먹기 전 심심한 조기구이부터 먹으라고 귀띔한다. 식후엔 커피나 직접 담근 매실 진액을 시원한 차로 내온다. 식사를 마친 뒤 식당 한쪽에 마련된 세면대에서 손을 씻고 나오면 개운하다.

서울의 유명 게장집에 비하면 가격이 착한 편이다. 게장백반 1인분에 2만7000원. “가게 세를 내지 않으니 가능한 가격이에요.” 오래전 이 건물을 마련한 덕을 손님들이 톡톡히 보고 있는 셈이다. 꽃게 값이 많이 올랐지만 오랜 단골들 때문에 가격을 쉽게 올리지 못한다. 번화가도 아닌 변두리 주택가에 위치해 있는데도 오랜 세월 한자리에서 한결같은 맛을 유지하니 손님들이 늘 북적거린다. 손님 대부분은 단골들. 가족단위 손님이 많고 이 집 게장 맛을 못 잊어 멀리서 혼자 오는 미식가들도 꽤 있다. 집에 가서 더 먹고 싶은 마음일까? 아니면 선물용일까? 식사를 마친 손님들이 게장을 포장해가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다.

홀 16명과 방 28명, 총 44명 남짓 앉을 수 있는 작은 식당. 삼백꽃게장은 소박하지만 딱 기본을 지켜서 정성을 다해 운영하는 집이다. 명절을 제외하곤 연중무휴. 부부가 번갈아 쉬느라 함께 번듯한 외출 한번 하기도 어려웠던 세월, 어느덧 이들의 머리에도 시간의 흔적이 내려앉고 있다. 마침 가게에 나와 서빙을 돕고 있던 아들 김도윤(35)씨가 대물림받을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물었다.

“목돈 주고 사놓고 날마다 게장 담가 파는 일이 너무 힘들어서 대를 이으라는 말을 차마 못 하겠어요.”

말은 그렇게 하지만 아들을 바라보는 김씨의 눈빛엔 ‘평생 일궈온 가업을 아들이 이어주었으면’ 하는 기대가 엿보인다. 다음 세대가 누구든 삼백꽃게장의 맛과 정성이 오래오래 함께하길 기원해 본다.

정수정 음식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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