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토교통부에는 ‘고속도로 노선명 관리지침’이 있습니다. 고속도로 이름을 붙일 때 남쪽과 북쪽을 잇는 고속도로는 남북 방향으로, 서쪽과 동쪽을 연결하는 고속도로는 서동 방향으로 표기한다는 지침입니다. 이 지침만 기억하면 운전자는 고속도로 이름만 보고 대략적인 방향을 판단할 수 있습니다. 최근 신설된 고속도로도 모두 이 지침에 따라 명명됐습니다. 지난 6월 30일 동시 개통한 ‘서울양양고속도로’(서동 방향) ‘구리포천고속도로’(남북 방향)가 대표적입니다.

2015년 확장 개통한 ‘광주대구고속도로’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원래 ‘88올림픽고속도로’란 이름이 있었지만 지침에 따라 예외 없이 ‘광주대구고속도로’로 간판을 바꿔 달았습니다. 해당 지자체에서는 ‘광주대구고속도로’의 줄임말인 ‘광대고속도로’의 어감이 안 좋다며 ‘달빛고속도로’로 개명해달라고 지금도 요구 중입니다. 달구벌(대구)과 빛고을(광주)에서 한 글자씩 따온 말입니다. 하지만 국토부는 표기 일관성을 내세워 거부해왔습니다.

국토부의 노선명 관리지침은 문제가 많습니다. 국내 최초 고속도로인 ‘경인(京仁)고속도로’나 한국 고속성장의 상징인 ‘경부(京釜)고속도로’는 모두 이 지침과 어긋납니다. 지침대로라면 서쪽 인천과 동쪽 서울을 잇는 고속도로는 ‘인경고속도로’, 남쪽 부산과 북쪽 서울을 잇는 고속도로는 ‘부경고속도로’가 되어야 합니다. 하지만 이 고속도로들은 상징성이 커서 옛 이름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수도 서울을 기준으로 한 이름이 입에 더 잘 붙는 것도 사실입니다. 민자(民資)고속도로의 경우 표기법과 상관없이 뒤죽박죽 이름을 혼용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논산천안고속도로’는 ‘천안논산고속도로㈜’에서 운영합니다. ‘대구부산고속도로’는 ‘신(新)대구부산고속도로’에서 운영합니다. 표지판과 회사명 모두 지침과 어긋납니다. 한마디로 국토부의 노선명 관리지침은 ‘무원칙이 원칙’이란 것이 정확한 지적입니다.

정작 국토부 역시 ‘서울세종고속도로’의 재정사업 전환방침을 밝히면서 이 지침을 정면으로 위배했습니다. 지침대로라면 남쪽 세종시와 북쪽 서울을 연결하는 고속도로는 ‘세종서울고속도로’로 표기해야 합니다. ‘세종서울고속도로’는 향후 ‘구리포천고속도로’와 연결될 예정이기에 한국도로공사는 지침에 따라 자체적으로는 ‘세종포천고속도로’라는 이름으로 부릅니다. 지난주 ‘서울세종고속도로’를 기사로 다루면서 기존 지침에 따른 ‘세종서울고속도로’와 국토부가 밝힌 ‘서울세종고속도로’란 이름 사이에서 한참을 고민했습니다. 결국 당사자인 국토부가 ‘서울세종고속도로’로 표기했기에 기사에서는 ‘서울세종고속도로’로 통일했습니다. 국토부가 자기가 만든 지침을 알고 이름을 붙였는지 모르고 그랬는지 알 수 없습니다. 민자사업도 하루아침에 재정사업으로 뒤집는 국토부에 행정 일관성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일지도 모릅니다. 차제에 ‘누더기’로 변한 고속도로 노선명 관리지침도 재정비하는 것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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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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