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 조지 오웰. (우) ‘1984년’ 초판.
(좌) 조지 오웰. (우) ‘1984년’ 초판.

북한이 핵에 집착하는 이유는 딱 한 가지이다. 체제유지이다. 물론 어느 나라든 국체가 유지돼야 국민의 행복도 보장된다. 하지만 그들의 체제가 인민의 행복을 책임질 수 없다는 점은 이미 밝혀진 바이다. 그럼에도 오로지 체제 유지 그 자체를 위해 그런 가공할 만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이런 암울한 현실에 직면하여 저절로 눈길이 가는 고전적 소설이 있다. 바로 조지 오웰(1903~1950)의 ‘1984년’(Nineteen Eighty-Four·1949)이다. 이 소설은 당 중앙에 의해 철저히 통제되는 전체주의 사회의 종말적 양상을 그리고 있다. 그 체제의 궁극적 목표는 오로지 체제 유지, 곧 권력 장악이다. 거기서 권력은 수단이 아니라, 그 자체가 목적이 되어 있다.

오웰은 인도의 영국 식민지 관료의 아들로 태어났다. 1살 때 영국으로 보내져 사립명문 이튼스쿨까지 졸업했으나, 끝내 상류사회에 동화되지 못했다. 그는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경찰에 투신했다. 버마의 식민지 경찰로 5년간 근무했지만, 그런 생활에 환멸을 느꼈다. 그는 경찰을 그만두고, 여러 직업을 전전하며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그에게 명성을 안겨준 것은 1945년에 발표한 중편소설 ‘동물농장’이다. 그는 이 작품을 통해 스탈린주의를 신랄하게 풍자했다. 이 여세를 몰아 1948년 폐결핵과 사투를 벌이면서도 그의 대표작인 ‘1984년’을 완성했다. 84는 집필연도인 48을 거꾸로 한 상징적 숫자로 알려졌다. 그는 일당독재 전체주의의 구조와 특성을 흥미진진하게 묘사했다. 이 작품은 이듬해(1949년) 출간되어 커다란 성공을 거뒀다.

‘1984년’은 모두 3부로 구성되어 있다. 제1부는 주인공 윈스턴 스미스의 정신적 저항을 다룬다. 제2부는 남녀 간의 사랑을 통해 그러한 저항의 구체적 실천을 그린다. 제3부는 그가 비밀경찰에 체포되어 모진 고문과 세뇌를 받고 체제와 빅 브라더(Big Brother)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가운데 처형된다는 이야기이다. 빅 브라더는 당의 상징적 최고지도자이다.

1984년. 세계는 오세아니아, 유라시아, 이스트아시아라는 3대 제국에 의해 지배되고 있다. 이 초강대국들은 핵무기로 무장한 채 끊임없이 소규모 국경 충돌을 벌이지만 대대적인 전쟁은 회피한다. 오히려 그런 갈등이 국내적 체제 유지에 이용된다. 심지어 자주 도심에 떨어지는 포탄도 적국이 쏜 것이 아니라는 루머까지 나도는 실정이다.

소설의 무대는 오세아니아. 이 나라는 15%의 당원과 85%의 일반대중으로 구성된다. 당원은 내부당원과 외부당원으로 나뉜다. 내부당원은 말 그대로 극소수 핵심세력이고, 외부당원은 이들과 당을 위해 복무하는 일반당원이다. 그들은 당 핵심에 의해 철저히 통제받고 있다. 반면, 일반대중은 고되게 일하며 하루하루 그저 연명하는 존재들이다. 그들에게는 아무런 권리나 지위가 없다. 그들이 어떤 불평불만을 늘어놓아도 철저히 무시된다.

이 나라에서 당원은 집이든 사무실이든 어디를 가나 텔레스크린의 감시를 받는다. 텔레스크린이란, 당의 명령을 전하며 당원의 언동을 감지하는 전자감시장치이다. 또한 비밀경찰이 촘촘히 감시망을 펴고 곳곳에 비밀요원을 두고 있다. 눈길 가는 곳마다 빅 브라더의 커다란 포스터가 걸려 있다. “그 얼굴은 교묘하게 그려져 있어 사람이 움직일 때마다 그 눈초리도 따라 움직이는 것만 같다.” 하지만 그는 실존 여부조차 불확실한 존재이다.

당은 빅 브라더에 저항했던 골드스타인과 그의 추종집단인 형제단을 극도로 적대시한다. 당원들은 매일 그룹별로 모여 그들에 대해 ‘2분간 증오’를 쏟아내는 행사를 갖는다. 골드스타인도 실존 여부가 불확실하다. 또한 당은 대대적인 신어(新語)정책을 통해 언어를 단순하게 변형시킨다. 체제유지에 방해가 될 만한 말은 아예 없애기도 한다.

주인공 윈스턴 스미스는 진리성(문화와 교육을 담당하는 부서) 기록국의 말단관료이다. 즉 외부당원이다. 그는 당의 방침에 맞춰 일체의 과거 기록을 수정하는 작업을 담당하고 있다. 당의 방침이 바뀌면 과거 기록은 그때마다 반복해서 수정된다. 하지만 이러한 수정이 허위라는 것을 알면서도 또한 그것이 진리라고 믿어야 한다. 이것을 ‘이중사고’라고 한다. 이중사고는 당의 중요한 사상적 지침이기도 하다.

이처럼 이 나라에서는 오로지 무비판적 수용만 허용된다. 윈스턴은 이런 비인간성에 회의를 느끼며 몰래 일기를 쓰기 시작한다. 그것 자체가 이미 당이 금지하는 일이다. 또한 그는 진리성 창작국의 직원인 줄리아와 사랑에 빠진다. 그것도 당이 금지하는 일이다. 그들은 손바닥만 한 자유와 사랑을 만끽하면서도 그것이 언젠가 탄로가 나리라고 두려워한다.

그들은 그들에게 암묵적으로 호의를 보이는 진리성의 간부인 오브리언이 체제 저항세력인 형제단의 주요 인물일 것이라고 믿는다. 그들이 그를 찾아가자, 오브리언은 자신이 형제단원이라고 말한다. 그 앞에서 그들은 반국가단체인 형제단 가입의식을 거행한다. 하지만 그들의 꿈은 곧바로 산산조각난다. 오브리언은 일찌감치 그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던 비밀경찰 간부였다. 그들은 그의 올가미에 완벽하게 걸려들고 만 것이다.

이미 어떠한 저항도 무의미해졌다. 오브리언의 끈질기고 조직적인 고문과 세뇌공작을 통해 윈스턴은 당과 빅 브라더를 ‘진정으로’ 사랑하게 된다. 그의 완전한 전향이 확인되자, 그는 비로소 처형된다. 그는 자신의 일시적 저항이 ‘쓸데없는 오해’였다고 자책하며 죽는다. 이처럼 이 나라에서는 체제 도전자가 저항의식을 지닌 채 죽는 것마저 금지되어 있다.

1984년은 이미 30여년 전에 지나갔다. 1991년에는 전체주의의 상징인 소련도 붕괴했다. 그럼에도 ‘1984년’은 각종 정보기술이 난무하는 현대사회의 병폐를 예언한 책으로 여전히 주목받고 있다. 실제로 글로벌 테러시대를 맞아 세계 각국은 앞다퉈 사회통제를 강화하고 있다. 이런 세태로 말미암아 ‘1984년’은 요즘 서구에서 새삼 각광을 받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우리는 ‘1984년’을 그처럼 ‘한가하게’ 음미할 여유가 없다. 북한은 다른 모든 것을 희생해 가며 오로지 체제유지를 위해 핵무기를 만들고 있다. 그 모습이 영락없이 ‘1984년’ 그 자체이다. 이를 통해 우리는 북한이야말로 소설적 상상력이 실제로 구현된 극단적 체제임을 절감한다. 북한이 ‘1984년’에 머물러 있는 한, 우리도 마찬가지이다.

박종선 인문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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