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 양수열 영상미디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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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대중가요인 K팝(pop)을 소재로 한 한 편의 뮤지컬이 미국 오프-브로드웨이(Off-Broadway) 극장가에서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9월 5일에서 10월 7일까지 약 한 달간 예정되었던 ‘KPOP(케이팝)’이라는 제목의 이 뮤지컬은 연일 매진되는 인기몰이로 10월 21일까지 연장되었다. 오프-브로드웨이는 뉴욕 맨해튼에 있는 500석 미만의 비교적 작은 극장을 가리키는 것으로 여기서 인기를 얻은 작품은 대규모 투자를 유치받아 브로드웨이 무대에 오르는 경우가 많다.

뮤지컬 ‘KPOP’은 최근 트렌드로 자리 잡고 있는 이머시브(Immersive·실감 혹은 체험적) 뮤지컬로 관객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출연진과 호흡하며 작품에 참여한다. 뮤지컬 ‘KPOP’은 한 부부가 운영하는 JTM엔터테인먼트라는 가상의 대형 연예기획사가 K팝 가수를 길러내는 과정과 이들이 팝의 본고장인 미국 시장에 진출하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관객들은 조를 나누어 2층짜리 극장을 옮겨 다니면서 기획사가 K팝 가수를 만들어내는 과정과 앨범을 만드는 과정, 미국 시장에 어필하기 위해 전략을 짜는 과정을 체험하게 된다.

이 뮤지컬의 음악을 작사·작곡한 헬렌 박(31) 작곡가를 서울의 한 호텔 커피숍에서 만났다. 미국 영주권자인 그는 “3년 반 동안 준비한 작품이 오프닝 무대에 오르는 것을 본 후 가족도 만나고 재충전의 시간을 가질 겸해서 한국에 머물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이 작품은 제이슨 김이라는 한국 이민자 2세가 극을 썼고, 맥스 버넌과 제가 공동으로 작사·작곡을 했다”며 “작곡한 45곡 중 35곡이 이 뮤지컬에 사용되었다”고 밝혔다.

“공연에는 세 팀의 K팝 가수가 등장합니다. 관객들은 조를 나누어 이동하면서 이 세 팀의 이야기를 모두 체험하게 됩니다. 첫째는 솔로아티스트, 둘째는 5인조 남성그룹, 마지막 하나는 6인조 걸그룹이에요. 관객들은 이 세 팀의 방을 옮겨가면서 K팝과 K팝 가수들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체험하게 됩니다. 이 작품은 비록 K팝을 소재로 하고 있지만, K팝을 선전하는 내용이 아닙니다. K팝을 매개로 미국 이민자와 2세들의 정체성 문제를 그리고 있습니다. 대형 기획사는 미국에 진출하기 위해 가수들이 가진 본래의 모습을 지우고, 미국화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입니다. 예컨대 컨설턴트는 동양인 악센트를 고치게 하고, 완벽한 보컬과 춤 동작을 요구합니다. 미국인에게 어필하기 위해 성형도 요구합니다. 이 과정에서 이민 2세 멤버들은 정체성에 혼란을 겪게 되며 갈등하게 되죠. 관객들은 이 뮤지컬을 보면서 자신이 미처 깨닫지 못했던 유색인종에 대한 선입견, 차별 같은 것을 마주하게 됩니다.”

헬렌 박씨는 “뮤지컬 ‘KPOP’의 출연진은 모두 19명인데 전원이 유색인종”이라며 “안무가로 등장하는 흑인 한 명을 제외한 18명이 한국인, 중국인, 필리핀 등 동양인”이라고 밝혔다.

“이 같은 출연진 구성은 뉴욕 극장가 전체에서도 매우 드문 경우입니다. 현재 K팝은 전 세계에서 인기를 얻고 있지만, 유독 미국에서는 진출이 느립니다. 뮤지컬 ‘KPOP’은 그 이유 중의 하나로 미국인의 동양인에 대한 선입견이나 유색인종에 대한 차별이 존재하기 때문이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뮤지컬을 본 많은 이들이 ‘그동안 동양인을 많이 접하지 못해 선입견을 가지고 있었는데 뮤지컬을 본 후 그런 선입견이 무너지고 K팝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는 후기를 소셜미디어에 올리고 있습니다.”

그는 “한국인 이민가정에서 태어난 2세(제리)가 미국 진출을 시도하는 K팝 스타들에게 ‘미국은 너희를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신기하게만 쳐다보고 결국 웃음거리가 될 것이다’라고 말하는데 이 뮤지컬을 통해서 등장 캐릭터와 사랑에 빠지게 된 관객들이 결국 제리의 이 말이 틀렸다는 것을 목격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어떻게 보면 세상의 선입견이 틀렸다는 것을 관객들이 뮤지컬을 보는 과정에서 증명하게 되는 거죠. 결국 우리 작품은 ‘자기 자신의 다름을 받아들이고 자랑스러워하라’는 메시지를 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저는 지금처럼 세상이 서로에 대해 공격적이고 긴장이 고조되는 시기에 K팝이라는 음악이 세상을 이어주고 더 밝고 희망찬 세상을 만들어주는 다리 역할을 한다고 보고 있어요. 실제로 많은 관객이 K팝 주인공들의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듣고, 마지막에는 그들을 응원하고 스스로 선입견을 떨쳐내는 변화된 모습을 보고 제 스스로 큰 감동을 받고 있습니다.”

“완벽정신이 K팝 완성도 높여”

헬렌 박씨는 중학교 3학년 때 캐나다로 유학을 가 그곳에서 대학을 졸업했다. 의대에 진학하기 위해 공부를 하던 중 당시 유행하던 K팝에 빠져 1년간 휴학을 하고 한국을 찾았다고 한다.

“그때가 2007년 무렵이었어요. 제가 부전공으로 음악을 했는데, 한국에 와서 큰 연예기획사와 연결이 되어 데뷔 목적으로 K팝을 많이 작곡했습니다. 하지만 데뷔하지는 못하고, 학업을 마치기 위해 캐나다로 돌아갔습니다. 대학 졸업 후에는 진로를 음악 쪽으로 바꾸어 뉴욕대학원 뮤지컬 작곡과에 입학했습니다. 제가 대학생 때 작곡한 곡이 이번 뮤지컬에 사용되면서 빛을 보고 있습니다.”

헬렌 박씨가 쓴 뮤지컬 ‘베이크드 굿즈(Baked Goods)’는 2016년 뉴욕의 사운드바이츠 페스티벌과 2017년 마이애미의 시티극장에서 공연되었고, 2017년 미국 전국 단편 연극대회에서 1등을 수상했다. 이후 그는 ‘넥스트노멀’로 유명한 작곡가 톰 키트(Tom Kitt)의 음악 조수로 활동하면서 브로드웨이 뮤지컬 작업에 참여하기도 했다. 그에게 “2012년을 정점으로 K팝 열풍이 한풀 꺾인 것이 아니냐”고 말하자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그렇지 않아요. 미국에서 방탄소년단(BTS)이 K팝 가수로는 처음으로 빌보드 10위 안에 들었잖아요. K팝은 미국 팝에 비해 하모니가 복잡하고, 멜로디가 중독성이 있으며, 멋진 안무와 어울려 전 세계 젊은이들을 사로잡고 있습니다. 충분히 세계적인 경쟁력이 있는 우리 문화의 한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미국에는 한류와 K팝이 덜 알려져 있는데, 이번 우리 작품을 통해 K팝의 매력과 장르의 다양성을 알리고 싶었습니다. 저는 미국인들이 K팝을 알고 나면 금방 빠져들 것이라고 생각해요.”

헬렌 박씨는 “우리 뮤지컬에서 보여주는 것 중의 하나가 K팝 가수를 만들어내기 위해 기획사가 완벽을 추구하고 가수들을 혹독하게 훈련하는 모습”이라며 “이러한 것들이 미국 사람들 눈에 비인간적인 모습으로 비칠 수 있지만, 완벽을 추구하는 우리나라의 문화에서는 단정적으로 대답하기 쉽지 않은 질문”이라고 말했다.

“완벽을 추구하는 게 비록 힘든 과정이긴 하지만 힘든 과정을 이겨내고 성취를 이루기 위한 기쁨의 과정일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추구해온 완벽정신이 결국 K팝의 완성도를 높였고 결국 어느 나라도 따라오지 못하는 경쟁력을 갖추게 한 측면이 있습니다. 이것을 무조건 나쁘다고만 할 수는 없는 거죠.”

헬렌 박씨가 느끼는 미국과 한국의 뮤지컬 제작 시스템의 가장 큰 차이점은 무엇일까.

“한국 뮤지컬 제작 환경에 대해 자세히 알지는 못하지만, 창작뮤지컬에 대한 지원(투자)이 많이 부족한 거 같아요. 미국은 창작 작품에 대한 투자가 활발해요. 그래서인지 한국 뮤지컬시장은 검증된 작품의 판권을 수입하려는 경향이 있는 거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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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흔 인터넷뉴스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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