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모영 감독 뒤에 영화 ‘올드마린보이’ 주인공인 박명호씨 가족 사진이 걸려 있다. ⓒphoto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진모영 감독 뒤에 영화 ‘올드마린보이’ 주인공인 박명호씨 가족 사진이 걸려 있다. ⓒphoto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지난 11월 2일 다큐멘터리영화 ‘올드마린보이’가 전국 70여개 스크린에서 관객을 맞았다. 그리고 2주째 ‘올드마린보이’는 스크린에서 하나둘 내려지고 있다. 흥행 참패다. 다큐영화가 관객 1만명을 넘기 어려운 현실을 감안하면 의외의 결과는 아니다. 그렇지만 진모영(47) 감독의 영화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그의 전작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2014)는 800개가 넘는 스크린에 올라 관객 480만여명을 불러모았다. 역대 다큐영화 흥행 1위를 기록하며 그해 겨울을 뜨겁게 달궜다. 그 기록은 아직도 깨지지 않고 있다. 그만큼 3년 만에 들고나온 그의 새 영화 ‘올드마린보이’는 개봉 전부터 관심을 모았다.

‘올드마린보이’는 생사의 경계를 넘어 바다로 뛰어드는 머구리의 이야기이다. 머구리는 수심 30~40m의 바다에서 물질을 하는 해남(海男)을 이른다. 10명 중 5명은 포기하고, 3명은 죽고, 1명은 아프고, 단 1명만이 살아남는다는 극한직업이다. 머구리가 가장 많이 남아 있는 곳이 대한민국 최북단 강원도 고성 대진항이다. 이곳에는 현재 7명의 머구리가 남아 있다. 그중 한 명인 박명호(52)씨가 영화의 주인공이다. 박명호씨는 2006년 황해남도 옹진에서 서해를 통해 남한으로 넘어왔다. 부인 김순희씨와 두 아들을 데리고 사선의 바다를 건너온 그는 그 바닷속으로 매일 몸을 던진다.

아버지의 이름으로 사선을 넘다

흥행 성적표와는 달리 영화의 감동은 묵직하다. 영화는 명호씨가 바다 깊숙이 잠수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청동 투구를 비롯해 쇠신발, 납덩이 등 장비만 60㎏이다. 몸무게까지 120㎏의 무게를 감당해야 한다. 가느다란 공기호스를 생명줄로 수심 30m 바닷속에서 대왕문어와 뒤엉킨 채 사투를 벌이는 장면은 아찔하다. 바닷속에는 죽음이 상존한다. 줄이 잘리거나 스크류에 공기호스가 말리는 날에는 바다 밖으로 탈출이 불가능하다. 해조류가 포자를 터뜨리는 시기엔 한 치 앞이 보이지 않을 만큼 바닷속이 뿌옇다. 잔잔한 수면 아래 바다는 소용돌이 치는 때도 있다. 짝을 잃은 문어가 뒤에서 덮칠 때도 있다. 한순간의 실수도 용납하지 않는 바다는 명호씨에게 전쟁터이고 공포다. 잠수일은 여전히 두렵다. 그럼에도 그 바다로 가는 것은 남편이고 아버지이기 때문이다. 영화가 보여주는 것은 그의 어깨를 누르는 납덩이만큼 무거운 아버지의 무게이다.

“재력, 지력, 권력 없는 우리가 믿을 것은 체력밖에 없다.” 명호씨는 매일 산에 오르고 근육을 단련한다. 몸에 좋다는 것은 닥치는 대로 먹는다. 명호씨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더 이상 일을 하지 못하는 순간이 오는 것이다. 명호씨는 북에서 군인이었다. 분단의 바다를 건넌 것은 두 아들이 자신과 다른 세상에서 살기를 바라서다. 탈북에 유리한 서쪽으로 근무지를 옮기면서 6~7년에 걸쳐 가족을 설득한다. 배를 몰아 남으로 향하던 날, 공포로 심장이 터지는 줄 알았다는 명호씨는 현재도 달라진 것은 없다고 한다. 늘 불안하고 여전히 위험하다.

생명을 저당 잡혀 이승을 산다는 머구리, 명호씨를 통해 영화는 이 시대의 아버지를 묻고 있다. 영화 포스터에는 제목 앞에 ‘가족에게 바치는 아버지의 단짠 로맨스’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평단과 관객의 호평도 흥행에 대한 기대를 갖기에 충분했다. 지난 11월 10일 서울 종로 피카디리극장에서 영화를 관람한 배영란(55)씨는 “전작인 ‘님아…’보다 훨씬 집중도가 높고 재미있다”고 말했다. 영화가 끝난 후에도 선뜻 자리에서 일어서지 못한 사람도 많았다. 가족을 위해 사선을 오가는 아버지의 메시지는 그만큼 강했다. 그런데 왜 관객 발길을 붙잡지 못한 걸까. 이대로라면 곧 개봉관에서 ‘올드마린보이’를 만나기는 어렵다. 개봉 2주 차인 11월 13일 서울 마포구 동교로에 있는 ‘영화사 님아’(대표 김혜경)에서 진모영 감독을 만났다.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저희도 당황스럽습니다.”

흥행부진의 이유를 묻자 진 감독이 대답했다. “사실 다큐영화의 현실을 생각하면 당연한 결과일 수 있습니다. ‘20~30대 여성들이 흥행의 키를 쥐고 있는데 그들이 잡을 수 있는 콘텐츠인가? 탈북자와 아버지, 키워드가 너무 복합적인가?’란 생각도 해보지만, 100억원씩 투자한 영화도 도대체 알 수 없는 이유로 망하는데 우리라고 피해갈 수 없겠죠. ‘님아’ 때 겪어야 할 일을 지금 겪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영화 자체의 문제도 있지만 객관적인 상황들도 있으니까요.”

영화 ‘올드마린보이’의 성적표는 이 시대 ‘올드보이’들의 현주소일 수 있다. 젊은 세대들은 더 이상 아버지의 책임감에 대해 궁금하지도, 알고 싶어하지도 않는다. 결혼보다 혼자의 여유를 즐기고 싶은 남성들에게 ‘아버지’의 이야기는 부담스럽기만 할 것이다. 개봉 시점도 좋지 않다. 영화판에서 수능 전 11월은 비수기이다. 다큐영화에 성수기 개봉관을 내주지는 않는다.

‘아버지’의 설 자리가 점점 사라져가는 시대, ‘올드마린보이’ 박명호씨의 목숨 건 삶의 투쟁은 그래서 더 안타깝다. 365일, 바다가 허락하는 한 명호씨는 기꺼이 잠수복을 입는다. 잠수 전 투구를 쓰는 순간 명호씨의 얼굴에선 웃음이 사라진다. 투구 속 명호씨의 눈은 마치 먹잇감을 눈앞에 둔 맹수처럼 매섭다.

“생존을 위해 투쟁하는 모습이 가장 아름다워. 부딪쳐야 해.”

“안 하고 싶다고 피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내가 아버지고 남편이니까.”

“머구리가 물속에서 죽으면 가장 큰 명예지. 보험금은 아내를 위한 마지막 서비스야.”

영화에서 명호씨는 단호한 목소리로 많은 어록을 남긴다. 명호씨를 투철하고 성실하게 만드는 것은 뭘까. 진 감독은 촬영기간이 3년을 넘기면서 명호씨와 가족처럼 가까워졌다. 명호씨를 ‘문어형님’이라고 부르는 진 감독의 평가다.

“목표가 정확한 사람입니다. 준비성이 철저하고 가족에게는 민주적입니다. 그의 캐릭터를 한마디로 설명하면 설계자죠.”

개봉 전 강원도 속초에 있는 한 영화관을 통째로 빌려 박명호씨 가족에게 가장 먼저 영화를 보여줬다. 첫째 아들 철준은 아버지의 ‘SOS’를 받고 ‘청진호’의 키를 쥐고 있다. 머구리로는 드물게 명호씨는 자신의 배를 가진 선주다. 머구리의 생명줄을 쥐고 있는 선장을 가장 믿을 수 있는 큰아들에게 맡긴 것이다. 북한 미인대회 출신인 부인 김순희씨는 머구리 횟집 ‘청진호’를 맡고 있다. 횟집은 자신의 부재 등 만일을 대비한 ‘보험용’으로 명호씨가 밀어붙인 것이다. 영화를 본 후 아들 철준씨가 달라졌단다. 아버지의 진심을 알게 된 것이다.

진 감독은 이 가족을 이어주는 키워드는 ‘연민’이라고 말했다. “서로를 애처롭고 짠하게 생각하는 연민이야말로 가족의 사랑을 일으키는 불꽃이라는 생각을 영화를 만드는 내내 생각했습니다. 어린 시절 새벽이면 아버지가 논의 물꼬를 둘러보고 오느라 항상 바짓단이 이슬에 젖어 있었습니다. 아버지의 그늘이 있었기에 제가 마음대로 까불 수 있었습니다. 이 시대 아버지들에 대한 연민이 생겼으면 좋겠다, 그런 사심이 영화 속에 들어 있습니다.”

진 감독은 전남 해남 출신이다. 그가 어린 시절 봤던 바다는 동해와는 달리 자궁 같은 바다였다. 전남대 법대에 들어가 운동권으로 대학생활을 보내고 할 일을 찾으니 아무것도 해본 것이 없더란다. 대학 때 불교학생회 활동한 것을 인연으로 불교방송국 기자를 해볼까, 방송전문아카데미에 발을 디딘 것이 시작이었다. 방송국 FD로 시작해 독립프로덕션에서 교양다큐를 만들었다. 한 주간의 시사·정보를 다루는 생방송 ‘KBS저널’에서 10분짜리 리포트를 맡아 2년여 TV에 얼굴을 비추기도 했다. 외주 제작 프로듀서를 맡다 보니 연출자로서의 정체성은 사라지고 방송국의 갑질에 간·쓸개 빼줘야 하는 ‘업자’로 살고 있더란다. 죽어라고 만들어도 저작권은 방송국이 가져갔다. 결정적으로 다큐멘터리영화 감독에 대한 도전의식에 불을 지른 것이 ‘워낭소리’였다.

“이충렬 감독의 성공을 보면서 저도 내 저작권을 가지고 승부를 걸고 싶었습니다. ‘워낭소리 키즈’인 거죠. 이제 다큐도 관객 100만을 바라보는 것이 가능한 시대가 됐습니다. ‘워낭소리’를 보고 ‘님아’를 만든 것처럼 후배들에게 길을 터주는 역할을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머구리는 슬슬 움직여요”

진 감독은 국제공동제작이라는 새로운 시도를 하고 있다. 국제영화제 등 시장에 나가 다자간 계약을 통해 투자를 받고 콘텐츠를 공유하는 것이다. 투자금에 따라 계약조건은 모두 다르다. ‘올드마린보이’는 핀란드 독립제작사, 일본의 NHK 등과 손을 잡았다. 북미·유럽의 경우 TV·영화 등 채널 간 경계가 사라지고 있는 반면 우리나라는 영역 간 장벽이 너무 견고하다. 그 벽을 깨고 싶은 것이 진 감독의 바람이다.

그의 작업실에는 ‘올드마린보이’ 박명호씨의 가족사진과 ‘님아’의 주인공 노부부의 사진이 걸려 있었다. 두 주인공 모두 진 감독에게는 가족 같은 존재들이다. ‘님아’의 강계열 할머니는 명절, 생신, 제사 등 1년에 네 번은 꼭 찾아뵙는다. 할머니는 촬영지인 강원도 횡성군 고시리 집을 떠나 횡성 읍내 아파트에서 살고 있다. 할머니는 횡성군에서는 유명인사다. 횡성군은 ‘님아’ 촬영지 주변을 둘레길로 만들고 군 행사 때는 군수 옆자리에 모신다고 한다. 진 감독이 “노인대학에도 열심히 나가시고 점점 세련된 도회지 할머니가 돼가고 있다”면서 웃었다.

‘올드마린보이’의 촬영시간은 500시간. 영화는 85분이다. 스크린 뒷이야기가 무궁무진하다. 영화에 등장했던 명호씨의 후배 머구리는 그새 고인이 됐다. 명호씨가 대진항에 자리를 잡은 후 매년 머구리 한 명씩 목숨을 잃었다고 한다. 박명호씨는 진 감독에게 영화 개봉과 함께 이런 응원 메시지를 보냈다.

“머구리는 슬슬 움직여요.”

이 말에는 영화 흥행 여부에 너무 조급해 하지 말라는 뜻이 담겨 있다. 이 메시지는 영화의 엔딩 장면이기도 하다. 깊은 바닷속에서 명호씨가 수면을 향해 천천히 올라온다. 청동투구를 쓰고 잠수복을 입은 그의 모습은 마치 우주 공간을 외롭게 유영하는 우주인 같다. 공기호스에 의지한 채 두 팔과 두 다리가 허우적거린다. 춤을 추는 듯, 몸부림을 치는 듯한 몸동작은 사실 균형을 잡기 위해서다. 투구 무게만 15㎏, 자칫하면 거꾸로 뒤집어질 수 있다. 서둘러 올라가다 몸속 질소를 배출하지 못하면 심각한 잠수병이 온다.

“머구리에게는 잠수병이 숙명이듯 뭔가를 얻기 위해 뭔가를 내줘야 하는 것이 우리 삶과 똑같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진 감독이 아주 느린 소리로 마지막 장면을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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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은순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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