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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5억잔. 지난해 한국인이 1년 동안 마신 커피를 잔 수로 따진 수치다. 한국 인구를 약 5000만명이라고 가정했을 때 1인당 연간 약 530잔을 마신 셈이다. 지난해 국내 커피시장 규모는 약 11조7397억원에 달한다. 3조원대 중반이던 10년 전과 비교하면 3배 이상 커졌을 정도로 가파른 성장세다. 각성효과, 항암효과 등 커피의 효능이 알려지면서 소비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기 때문이다. 커피에는 항암물질인 폴리페놀이 다량 함유돼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최근 커피에서 ‘발암물질’이 검출됐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커피 애호가들에게 큰 충격을 주고 있다.

미국선 커피에 발암물질 경고문

지난 3월 29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 카운티 고등법원은 모든 커피 제품에 발암 경고문을 부착해야 한다는 판결을 내렸다. 캘리포니아 소재 독성물질 교육조사위원회(CERT)가 90개 커피회사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 원고 측 주장을 받아들인 것이다. 이번 소송의 피고에는 스타벅스, 그린마운틴 커피 로스터스 등 미국의 유명 커피 제조사들이 대부분 포함돼 있다. 당시 판결문에는 ‘커피를 볶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화학물질 아크릴아마이드가 발암의 가능성이 있다는 경고문을 커피 제조 및 판매업체들이 게시해야 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CERT는 지난 2010년 커피에 발암물질인 아크릴아마이드가 함유돼 있고, 커피회사들이 이 사실을 알려야 할 의무가 담긴 주 법률 개정 65항을 어겼다며 소송을 제기했다. 반면 스타벅스를 비롯한 커피회사들은 커피가 개정 65항의 적용을 받아서는 안 된다고 반박했다. 1986년 캘리포니아주 법률로 제정된 개정 65항은 ‘발암물질로 알려진 물질 목록을 만들고, 이 물질이 포함된 음료 판매자가 판매 시 이를 사전 고지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논란이 되고 있는 아크릴아마이드는 1990년부터 이 목록에 발암물질로 등재됐다. 이를 근거로 CERT는 커피회사들이 커피에 아크릴아마이드가 포함됐음에도 이를 고지하지 않았다고 주장했고 법원은 이를 받아들였다.

8년간이나 끌어온 이번 소송은 앞으로도 계속될 전망이다. 피고 측이 상소할 수 있고, 커피회사에 대한 손해배상액 등 구체적 처벌 내용도 결정돼야 하기 때문이다. 원고인 CERT는 커피업체들이 발암물질에 노출된 캘리포니아의 모든 성인에게 1인당 최대 2500달러(약 265만원)를 배상해야 한다는 소송까지 제기한 상태다. 캘리포니아 성인은 약 4000만명으로 소송 가액이 천문학적 규모다.

그렇다면 CERT가 제기한 커피의 발암물질인 아크릴아마이드란 무엇일까. 아크릴아마이드는 커피의 로스팅 과정에서 생성되는 백색·무취의 화학물질이다. 2002년 스웨덴 과학자들은 아크릴아마이드가 식품 속에도 존재한다는 것을 발견했다. 탄수화물 성분 함량이 높고 단백질 함량은 낮은 식물성 식품을 120도 이상 고온으로 가열할 때 발생한다. 이후 암을 일으킨다는 동물실험 연구결과들이 쏟아졌다. 현재 아크릴아마이드는 국제암연구소(IARC)에서 발암 가능성이 높은 물질인 2A군으로 분류된다. 주로 감자튀김, 비스킷 등에서 많이 검출된다.

참고로 IARC는 1969년부터 위험성에 따라 발암물질을 다섯 가지 범주로 분류하고 있다. 1군 물질은 ‘사람에게 암을 유발하는 물질’이고 2A군 물질은 ‘사람에게 암을 유발할 가능성이 높은 물질’이다. 이어 2B군은 ‘사람에게 암을 유발할 가능성이 있는 물질’이다. 3군 물질에 대한 IARC의 설명은 ‘사람에게 암을 일으킨다고 볼 수 없는 물질’이고 마지막으로 4군 물질은 ‘사람에게 아마도 암을 일으키지 않을 물질’이다. 4군 물질은 암을 유발하지 않는다는 강력한 증거가 있을 때 해당한다. 현재 한국은 아크릴아마이드에 대한 법적 규제는 없다. 곡류 등을 높은 온도에서 조리할 때 자연적으로 나오는 만큼 점차 줄여가는 것을 권장하는 수준이다.

식약처, 커피 논란에 실태조사 나서

지난해 식품의약안전처(이하 식약처)도 유해물질 위해 평가를 실시하면서 식품의 아크릴아마이드의 함량을 발표한 적이 있다. 당시 식약처의 자료를 보면 감자튀김, 비스킷류, 커피에서 검출된 아크릴아마이드는 감자튀김 1㎏당 0~1590㎍, 커피는 0~818㎍이었다. 식약처가 제시한 아크릴아마이드 허용 권고치는 1㎏당 1000㎍ 이하다. 이를 근거로 식약처는 “식품을 통한 아크릴아마이드 섭취의 경우 양이 미미해 인간이 암에 걸릴 가능성은 낮은 것으로 여겨지고 있으나, 식당에 조리법 변경을 권고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덕환 서강대 과학커뮤니케이션 교수(화학)는 아크릴아마이드의 유해성에 대해 “아크릴아마이드는 고온에서 조리를 하면 발생하는 물질”이라며 “미국 캘리포니아주가 대체 왜 그런 판결을 내렸는지 잘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문제는 얼마만큼 섭취하느냐인데, 사실 커피에 함유된 아크릴아마이드 때문에 암이 발생한다고 보는 것은 무리가 있다”고 했다.

이 교수의 말처럼 아크릴아마이드가 생각보다 유해하지 않다고 보는 전문가들의 견해가 대다수다. 2016년 WHO 산하 국제암연구소(IARC)는 커피와 방광암 간 상관관계가 입증되지 않아 2B군 발암물질에서 제외한다는 결정을 내리기도 했다. 앞서 IARC는 1990년 커피가 방광암을 유발할 수 있다며 ‘인체 암 유발 가능성이 있는 물질(possibly cacinogenic to human)’인 ‘2B군’ 물질로 분류한 바 있다. IARC에 따르면 아크릴아마이드는 2A군 발암물질이지만, 정작 아크릴아마이드가 검출됐다는 커피는 발암물질에서 제외된 상태다.

IARC는 또 커피가 다른 20여종의 암들을 인체에 유발할 가능성에 대해서도 전반적으로 증거가 불충분하다고 결론을 내린 상태다. 오히려 커피가 자궁암과 전립선암 등 일부 암에 걸릴 위험성을 줄여주는 것으로 평가했다. 미국 워싱턴포스트도 “아크릴아마이드가 동물실험처럼 인체에 암을 유발한다고 확언하기에는 표본이 많지 않다”고 보도한 바 있다.

하지만 커피에서 검출된 아크릴아마이드를 놓고 논란이 계속되자 식약처는 실태조사에 나선다는 방침이다. 식약처 측은 “커피의 경우 국내 섭취량이 늘어나고 있어 아크릴아마이드의 함유량과 유해성에 대해서 올해 안에 실태조사에 착수할 계획”이라며 “현재는 치명적인 수준으로 보고 있지 않지만, 많은 국민의 관심이 쏠려 있는 만큼 의혹이 해소될 수 있도록 조사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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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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