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13 지방선거에서 보수정당은 참패했다. 심지어 보수적 유권자마저 그들에게 등을 돌렸다. 하지만 진짜 처참한 것은 패배 그 자체가 아니라 패배 이후다. 그러고도 그들은 별로 변화할 기색을 보이지 않고 있다. 한마디로 자정능력을 상실한 상태다.

그럼에도 누구나 보수는 바닥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것은 곧 기본으로 돌아가라는 요구다. 그동안 보수정당은 보수를 소리 높여 외쳐 왔지만 정작 보수에 대해 제대로 고민한 적이 없다. 따라서 ‘보수주의가 무엇인가?’부터 진지하게 살펴보아야 한다. 이어서 그것이 나에게 제대로 맞는지, 맞지 않다면 어떻게 보수(補修)해야 하는지, 또는 아예 옷 자체를 갈아입어야 하는지 등에 대해 처절한 성찰이 필요하다.

이런 재건 과정에 유익한 길잡이가 되고 무엇보다 누구나 어려움 없이 읽을 만한 참고서가 있다. 바로 박지향(서울대 교수)의 ‘정당의 생명력’(2017)이다. 이 책은 보수주의의 원칙을 이론적으로 검토한 다음, 200년이나 면면이 계승된 영국 보수당의 역사를 개관한다. 그것은 비록 멀리 떨어진 다른 나라의 사례지만 우리나라 보수정당도 충분히 참고해볼 만하다.

이데올로기는 철학이나 이론과는 다르다. 철학이나 이론이 논리적이고 체계적인 설명이라면, 이데올로기는 행동지침적인 신념 체계다. 보수주의 역시 엄정한 사상 체계를 갖춘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핵심 가치를 구성하는 개념들은 엄연히 존재한다. 그것은 인간의 본성과 이성의 한계, 역사와 전통에 대한 존중, 사회의 유기체적 인식, 자유와 책임 등이다.

우선 보수주의는 인간을 불완전한 존재로 본다. 따라서 한 개인의 생각이나 주장보다 역사적으로 증명된 원칙과 전통을 존중한다. 그렇다고 보수주의가 결코 변화를 거부하지 않는다. 에드먼드 버크는 “변화할 수단을 갖지 않은 국가는 보존을 위한 수단도 없다”고 설파했다. 이처럼 보수주의는 전통을 중시하되 경험적이고 실용적인 태도로 현실 문제를 다룬다.

또한 보수주의는 사회가 유기체적 성격을 가지며 위계질서에 입각해 작동한다고 생각한다. 그 체계 속에서 사회적·정치적 불평등은 불가피하고 더구나 적정한 수준에서 바람직하다. 다만 그로 인한 특권에는 철저한 의무가 지워진다. 그리하여 보수는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비롯해 도덕, 명예, 청렴, 희생 등을 소중한 가치로 삼는다.

한편 보수주의는 자유가 인간이 덕성을 발휘하기 위해 절대적 조건이 된다고 믿는다. 다만 자유와 선택에는 그에 상응하는 책임이 뒤따른다. 아울러 방종을 막고 자유를 보호하기 위해 엄격한 질서와 법이 필요하다. 그리고 인간은 자유에 입각해 본능적으로 사익을 추구하는 존재다. 따라서 보수주의는 인간의 이기적 본능을 존중하는 시장경제를 지지한다.

이처럼 보수주의가 표방하는 원칙 중에는 오늘날 시대흐름에 어울리지 않는 측면도 적지 않다. 그럼에도 영국의 보수당이 여전히 건재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답은 아무리 보수주의의 원칙을 들여다보아도 결코 찾아지지 않는다. 보수당이 역사 속에서 구체적으로 어떻게 했느냐를 살펴보아야만 한다.

영국은 17세기 후반에 국왕의 권위를 존중하고 국교회를 옹호하는 토리(Tory)와 그에 반대하는 휘그(Whig)로 분열되었다. 그러다 1830년대에 토리가 보수당으로 이름을 바꿨다. 보수당은 곧바로 의회개혁에 앞장서고 소득세를 도입하여 국가재정을 든든히 만들었다. 또한 공장법이라는 개혁입법을 단행해 살인적인 장시간 노동을 금지시켰다.

무엇보다 당시 최대 정국 현안이었던 곡물세를 폐지하여 자유 교역을 통한 국가 번영을 추구했다. 그런데 소득세 도입이나 곡물세 폐지는 보수당의 지지기반인 지주 계급의 반대를 무릅쓴 결정이었다. 이로 말미암아 당이 분열되자 이탈세력과 휘그가 손을 잡고 자유당을 출범시켰다. 그 여파로 보수당은 한동안 정권을 잃었다.

그러나 보수당은 선거법 개정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한편 ‘헌정질서의 유지, 제국의 수호, 국민 생활수준 향상’을 내세우며 ‘국민의 당’으로 발돋움했다. 즉 전 국민을 대상으로 사회통합을 지향하는 정당이라는 이미지를 구축했다. 이를 통해 대중에게 실현가능한 개혁을 기대할 곳은 보수당이라는 메시지를 지속적으로 전달했다.

20세기 전반에 자유당이 점차 소멸되며 노동당이 부상하여 결국 보수당과 노동당이 대결하는 정치체제가 확립되었다. 그러자 보수당은 신속하게 ‘산업헌장’을 제정하여 ‘혼합경제, 노조와의 상생, 복지에 대한 국가책임’을 약속했다. 이를 통해 상당수의 노동자 계층을 지지세력으로 끌어들였다. 그 과정에서 다양한 투쟁과 갈등이 벌어졌다. 그러나 이런 노선 투쟁을 바탕으로 오히려 장기적 집권과 국가 번영을 이끌었다.

보수당은 1970년대 중반에 또 한 차례 고비를 맞았다. 당시에 고도성장과 복지국가는 한계에 부딪혔다. 그러자 그동안 보수당이 지향해온 ‘국민의 당’ 노선이 도전을 받았다. 보수가 보다 원칙적으로 무장하지 않으면 당도 국가도 생존하기 어렵다는 새로운 주장이 대두되었다. 그것이 이른바 뉴라이트운동이고, 거기로부터 나온 것이 바로 신자유주의다.

이 운동의 지도자인 키스 조지프가 당 대표 선거에서 중도낙마하자 마거릿 대처가 급히 대타로 나서 당선되었다. 대처 정권 11년은 우리가 익히 아는 바다. 그는 비대한 공공 부문, 방만한 복지, 과도한 파업 등을 개혁했다. 또한 당의 인적 구성을 교체하여 귀족정당 체질을 불식시켰다. 나아가 노동당 노선의 변화를 촉발시켜 유럽 정치에서 좌우 수렴 시대를 열었다.

이처럼 영국 보수당은 보수주의의 커다란 원칙을 견지하되, 결코 거기에 교조적으로 얽매이지 않았다. 오히려 시대 변화를 재빠르게 받아들여 과감한 개혁을 앞장서서 주도했다. 아울러 일시적으로 지지층을 잃고 분열의 아픔을 겪더라도 일관되게 원칙과 국익을 고수한 끝에 다시금 권좌로 되돌아오곤 했다. 그리하여 오랫동안 경쟁자였던 자유당이 역사 속으로 사라진 것과는 달리 오늘날에도 굳건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다.

이제 눈길을 돌려보자. 우리나라 보수정당은 오랫동안 두 가지 가치를 전가의 보도로 내세웠다. 하나는 유능함을 바탕으로 하는 성장신화다. 다른 하나는 북한의 섬멸을 전제로 하는 적대적 반공이다. 10년 만에 정권을 탈환했던 최근의 보수정권 역시 9년 내내 이런 가치에 올인하다시피 했다. 하지만 시대의 변화에 실정(失政)이 더해져 그런 가치는 점점 빛을 잃었다. 그럼에도 그들은 세상과 담을 쌓고 끝내 과거의 향수를 떨쳐내지 못했다.

오늘날 보수정당은 윗대가 물려준 곶감을 모조리 빼먹고 무일푼으로 전락한 탕자나 마찬가지다. 더구나 이러고도 회개할 조짐조차 보이지 않고 있다. 그런 세력에 국민들 역시 아예 기대를 거둔 것이 이번 선거 결과다.

하지만 어떠한 경우에도 일당국가가 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누가 나서든 보수는 재건되어야 한다. 그런 모색을 할 때 ‘정당의 생명력’은 먼 나라 이야기이긴 해도 타산지석으로 손색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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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선 인문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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