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어느 인터넷기업 대표가 사람을 가혹하게 폭행하는 장면이 공개되어 사회적 공분을 불러일으켰다. 더구나 이 영상이 가해자의 지시로 촬영된 것으로 알려지면서 분노는 더욱 증폭되었다. 그런 지시를 한 것만으로도 그 기업인은 최악의 지탄을 받아 마땅하다.

그런데 이때 다소 곤혹스러운 질문이 뒤따른다. 그런 부당한 지시에 순순히 복종한 직원은 정당한 것일까. 다행히 이런 난제에 천착하여 상당한 실마리를 던져주는 문제작이 있다. 바로 리더십 전문가인 아이라 살레프의 ‘슬기로운 불복종’(Intelligent Disobedience·2015)이다. 우리말로 ‘똑똑한 불복종’(2018)으로 옮겨진 이 책은 전형적인 실용서다. 하지만 ‘실용서는 깊이가 없다’는 편견을 깨뜨리며 시종일관 묵직한 주제와 씨름을 벌인다.

이 책의 목적은 “연령대와 직종을 막론하고 각 개인이 ‘단순히 지시를 따름으로써’ 빠질 수 있는 함정을 알아차리고, 그것을 피할 수 있는 기술을 터득하는 데 도움을 주는 것”이다. 비록 윗사람이 시키는 대로 따랐더라도 우리는 자신이 한 행동에 대한 책임을 피할 수 없다. 따라서 자신의 입장을 명확히 하고, 명령이 틀렸을 때는 ‘슬기롭게’ 불복종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결국에는 이러한 대처가 자신은 물론 윗사람에게도 이득이 된다.

저자는 안내견 훈련에서 ‘슬기로운 불복종’을 착안한다. 안내견은 처음에는 기본적인 복종 훈련을 받는다. 이 훈련을 성공적으로 통과하고 나면 특별한 불복종 훈련에 돌입한다. 그것은 앞을 못 보는 주인의 지시가 잘못된 것일 경우 그 자리에 주저앉는 훈련이다. 한마디로 슬기롭게 불복종하는 훈련이다. 이런 능력은 끊임없는 반복 훈련을 통해 습득된다.

모든 사회는 구성원들을 기존의 권위와 질서에 순응시킨다. 그것이 곧 사회화다. 이런 복종이야말로 복잡한 인간 조직과 사회의 성장을 가능하게 하는 진화적 적응행동이다. 실제로 우리는 어려서부터 “말 잘 들으라”는 경고를 받으며 성장한다. 하지만 지시가 항상 옳은 것은 아니다. 잘못된 지시에 무조건 복종함으로써 많은 문제도 야기되고 있다.

2004년 어느날 미국 켄터키주 소도시의 맥도날드에 ‘스캇 경관’이 전화를 걸어왔다. 그는 부매니저에게 직원이 손님의 지갑을 훔쳤다고 말한다. 경찰이 알려온 인상착의에 따르면 그 직원은 오그번이었다. 그녀는 파트타임으로 일하는 열여덟 살의 착한 소녀였다. 경찰은 직원을 경찰서로 데려오든지, 아니면 자기 지시대로 현장에서 몸수색을 하든지 선택하라고 다그쳤다.

부매니저는 오그번을 창고로 데려가 경찰의 전화 지시에 따라 그녀의 옷을 벗기고 몸수색을 했다. 경관은 전화를 통해 알몸의 오그번에게 다양한 행동을 취하도록 지시했다. 점포 일이 바쁜 부매니저는 남자친구에게 이 일을 부탁했다. 이 가학적 상황이 2시간 동안이나 이어졌다. 그 끔찍한 장면은 창고의 CCTV에 고스란히 찍혔다. ‘스캇 경관’은 가짜였다.

부매니저와 그의 남자친구는 처음에는 마지못해 부당한 지시에 따르다가 어느덧 적극적인 동조자가 되었다. 이른바 ‘완장’ 효과다. 나중에 그들은 경찰을 사칭한 사람보다 몇 배 더 무거운 형벌을 받아야 했다. 오그번을 비롯해 사건에 연루된 사람들은 유난히 복종을 강조한 가정과 학교에서 성장했다. 이들은 무조건 복종만 강요하는 사회의 희생자인 것이다.

1960년부터 3년간 스탠리 밀그램(Stanley Milgram)은 이와 관련된 고전적 실험을 실시했다. 실험은 지휘자, 학생, 교사로 구성되었다. 지휘자는 교사를 통제하고, 교사는 문제를 내서 학생이 맞히지 못할 때마다 전기자극을 한 단계씩 높인다. 그러나 지휘자나 학생은 미리 실험 내용을 알고 있다. 학생들은 사전에 약속된 비명만 지를 뿐, 실제로 전기자극은 받지 않았다. 즉 이 실험은 교사의 반응을 보기 위한 것이다.

실험 결과 교사 역의 3분의 2가 학생의 비명소리에 불편함을 느끼면서도 지휘자의 요구에 따라 거의 치명적인 수준까지 전기자극을 올렸다. 이처럼 단지 실험 상황에서조차 정당한 권위(지휘자)의 지시 자체가 개인(교사)의 상황판단이나 이성적 분별능력보다 더 우선적으로 작용했다. 물론 3분의 1은 자신의 판단으로 도중에 실험을 포기했다. 즉 부당한 지시에 불응했다.

또한 밀그램은 다양한 변형 실험을 실시했다. 교사가 학생을 직접 보게도 하고, 단지 비명만 듣게 하기도 했다. 지휘자가 현장에서 지시를 내리기도 하고, 단지 전화로만 지시를 내리기도 했다. 예상대로 실험조건을 달리할 때마다 결과도 편차를 보였다. 그중에서도 가장 놀라운 것은 교사에게 실험 포기자(지시 불응자)를 일부러 보여준 경우다.

일단 다른 사람의 포기 사실을 알자 중도 포기자가 무려 90%에 이르렀다. 이때 첫 번째 포기자의 역할이 가장 결정적이었다. 어느 시인의 독백처럼 “모두가 입을 다물기로 공모한 방 안에서, 한마디 진실은 총성처럼 울린다.” 우리는 최근 미투운동(#MeToo)에서도 이런 현상을 생생하게 목격했다. 이처럼 진실은 그것이 사회적 결집을 이룰 때 더욱 빛난다.

레스콜라는 세계무역센터에 3700명의 직원을 둔 모건스탠리의 보안책임자였다. 그는 건물이 테러에 취약하므로 회사 이전이 필요하다고 건의했다. 당연히 경영진이 반대하자 그 대신에 정기적인 대피훈련을 관철시켰다. 9·11테러가 발생하자 건물관리기관(항만관리청)이 방송을 통해 제자리를 지키라고 지시했다. 그러나 레스콜라는 평소 훈련한 대로 지체 없이 전 직원을 대피시켰다. 모건스탠리 직원의 희생은 불과 13명에 그쳤다.

이런 다양한 사례와 실험으로부터 우리는 두 가지 결론을 얻을 수 있다. 하나는 밀그램 실험에서 드러난 것이다. 거기서 조건을 달리하면 결과도 달라진다. 이를 통해 우리는 슬기로운 불복종이 사회적 맥락에 크게 좌우된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다른 하나는 안내견 훈련을 비롯해 여러 사례에서 드러난 것이다. 그것들은 슬기로운 불복종이 ‘반복된’ 훈련의 결과라는 점을 보여준다. 그것은 결코 개인의 순간적인 기지(機智)로 얻어지지 않는다.

‘슬기로운 불복종’은 슬기로운 복종의 개념을 설명하고 그것을 훈련하는 구체적 사례와 방법을 예시한다. 무엇보다 부당한 지시를 분별하는 능력이 중요하다. 이를 위해 개인과 사회가 더불어 노력해야 한다. 또한 슬기로운 불복종은 권위 자체를 부정하는 시민 불복종과는 다르다. 따라서 자신의 생각을 지시자에게 원만하고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기술도 필요하다.

사회나 조직은 리더(leader)와 팔로어(follower)로 구성된다. 슬기로운 불복종은 팔로어뿐만 아니라 리더에게도 유익하다. 따라서 용감한 팔로어 못지않게 현명한 리더도 슬기로운 불복종에 적극적인 관심을 가져야 한다. 더구나 우리는 사회적 맥락에 따라 수시로 리더가 되기도 하고 팔로어가 되기도 한다. 따라서 이 문제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아무도 없다.

우리 사회는 여전히 과도한 복종 문화에 젖어 있다. 사장이 직원에게 폭행 장면을 촬영하라는 지시도 무조건적인 복종 문화가 낳은 극단적 일탈 사례다. 우리가 이런 부당한 지시에 분노를 쏟아내면서도 그것을 다시금 개인이 알아서 대처할 문제로 방치해서는 곤란하다. 이제는 가정교육, 학교교육, 직장교육 등에서 슬기로운 불복종을 적극적으로 가르쳐야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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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선 인문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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