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광택 ‘봄날 오후의 산골공부방’. 41×32㎝. 캔버스에 유채.
이광택 ‘봄날 오후의 산골공부방’. 41×32㎝. 캔버스에 유채.

“자왈 학이시습지면 불역열호아!”

아침 6시. 잠자리에서 일어나면 세수를 하고 컴퓨터를 켠다. 인터넷을 접속한 뒤 ‘한국고전종합DB’에 들어가 ‘경서성독’을 클릭하고 ‘논어’를 연다. 그리고 성독자의 목소리에 따라 30분 동안 ‘논어’를 따라 읽는다. 성독(聲讀)은 소리 내어 읽는 것이다. 훈장님의 리드미컬한 목소리에 맞춰 합창하듯 읽는 전통 서당 방식이다. 불교 경전을 읽는 독송(讀誦)과도 같은 맥락이다.

성독하는 동안 방 안에는 여러 사람들이 함께한다. 만세의 사표가 되어 가르침을 주는 공자님, 그리고 수천 년 동안 그 앞에 앉아 환희로움에 젖었던 제자들이다. 그 제자들은 공자님에게 직접 가르침을 받은 무릎제자 안회, 자공, 자로, 증자를 비롯해 윗대의 맥을 이은 자사, 맹자, 정호와 정이 형제, 주희 등의 중국 진유(眞儒)들, 그리고 동방에 유학의 등불을 밝힌 설총, 최치원, 안향, 김굉필, 정여창, 조광조, 이언적, 이황, 이율곡 등이다. 이들은 모두 의관을 정제하고 단정하게 앉아 진지한 눈빛으로 공자님의 가르침에 귀 기울인다. 그 어떤 유명인의 모임이나 소셜 커뮤니티가 이보다 더 화려할 수 있을까.

그 ‘도통(道統)의 라인’에 내가 앉아 있다. 시공간이 다르고 개성도 제각각인 거물들을 한자리에 모일 수 있게 해주는 연결고리는 경서를 성독하는 훈장님의 목소리다. 나는 기라성 같은 거물들에게 결코 주눅 들지 않고 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앉아 당당하게 ‘논어’를 성독한다. 그런 환희심이 매일 아침 6시면 솟구쳐 오른다. 성독 덕분이다. 성독은 요즘 말로 하면 ‘리딩(reading)’이다. 리딩은 눈으로만 읽는 목독(目讀)의 한계를 간단히 뛰어넘었다. 눈으로 보면서 소리 내어 읽는 데다 그 소리를 자기 귀로 들으니 단순히 눈으로만 하는 공부와는 차원이 다르다. 전천후 학습 방법 덕분에 리딩하는 학습자는 몸 전체로 공부하는 ‘올라운드 플레이어’로 거듭난다. 아침에 30분 동안 리딩한 ‘논어’의 문장은 익숙한 유행가 가사처럼 길거리를 걷다가도 느닷없이 흥얼거려질 때도 있다. 그토록 오랫동안 암송하고자 했던 ‘논어’가 드디어 나의 것이 된 것이다.

때를 가리지 않는 성독 공부

매화꽃보다는 불그스레하니 복숭아꽃이 틀림없다. 가로수가 아니라 과수원에 심는 나무이니 벚꽃이 아니라 복숭아꽃일 것이다. 복숭아꽃이 올해도 이 봄을 기어이 불태워버리겠다는 듯 작심하고 팍팍 핀 날이다. 공부방에 앉아 책을 보던 선비가 눈을 들어 잠시 바깥을 내다본다. 마당에서 놀던 강아지가 갑자기 벌떡 일어나더니 컹컹 짖으며 뒷마당으로 달려갔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저 마을 아래 슈퍼마켓에 갔던 아내가 양손에 먹거리를 사들고 부지런히 걸어오고 있다. 마침 출출하던 차에 강아지의 호들갑스러운 알림이 반갑기만 하다. 춘천에서 활동하고 있는 이광택의 ‘봄날 오후의 산골공부방’은 평범한 중년 남자가 ‘아무렇지도 않고 예쁠 것도 없는’ 아내와의 일상을 카메라로 클로즈업하듯 그린 풍속화다. 풍속화는 풍속화로되 사람보다 꽃과 나무가 더 많은 비중을 차지한 소경산수인물화(小景山水人物畵)다. 춘천에 살고 있는 이광택의 작품에는 꽃과 나무가 많이 등장한다. 어린 시절에 과수원에 살았던 기억이 세월이 흐른 지금까지도 지속적으로 붓을 들게 한 원천이다. 그런데 이 그림은 꽃을 보여주기 위해서 그린 작품이 아니다. 꽃 피는 봄날에도 공부방에 앉아 책을 읽는 선비의 자족함을 보여주기 위한 작품이다. 이광택은 공부방 시리즈를 지속적으로 그려왔다. 꽃이 지고 꽃이 피고, 낙엽이 떨어지고 눈이 내린 과수원에서의 생활 중에 공부가 가장 의미 있는 기억으로 남아 있다는 뜻이다. 그런데 공부방 그림에도 오랜 역사가 있다.

조선시대 그림 중에는 공부와 관련된 그림이 의외로 많다. 조선 후기의 도화서 화원이었던 김희겸(金喜謙·1710~1763 이후)의 ‘산가독서(山家讀書)’가 대표적이다. 김희겸은 호가 불염자(不染子) 또는 불염재(不染齋)로 김희성(金喜誠)이라는 다른 이름을 쓰기도 한다. 산수인물화와 초상화를 잘 그렸는데 그의 아들 김후신(金厚臣)도 화원을 지냈다. ‘산가독서’는 소박한 초가집 안에서 선비가 반듯하게 앉아 책을 읽고 있는 장면을 묘사한 작품이다. ‘산속 집에서의 독서’를 뜻하는 ‘산가독서’는 중국 남송(南宋) 때의 학자인 나대경(羅大經)의 산문집 ‘학림옥로(鶴林玉露)’를 그린 작품이다. ‘학림옥로’는 산속에서 은거하는 선비의 즐거움을 담은 책이다. 화제(畵題)에 ‘독주역국풍좌씨전(讀周易國風左氏傳)’이라고 적혀 있는 것을 보면 선비는 지금 ‘주역’ ‘국풍’ ‘좌씨전’ 중의 한 권을 읽고 있을 것이다. 연갈색으로 칠한 습윤한 붓질이 짙어지기 시작한 초여름을 보여준다. 자칫 밋밋할 수도 있는 화면은 서안, 탁자, 책꽂이에 칠한 붉은색으로 인해 생기가 돈다. 그림 속의 선비는 낭랑한 목소리로 서책을 성독하고 있을 것이다. 수목 사이로 떠다니는 바람을 타고 선비의 책 읽는 소리가 들려오는 듯하다. 그 소리에 의해 그와 나와 ‘봄날 오후의 산골공부방’의 주인공은 300년의 세월을 뛰어넘어 한자리에서 만나게 된다. 소리를 매개로 하여 맺어지는 일체감이다.

김희겸 ‘산가독서’. 29.5×37.2㎝. 종이에 연한색. 18세기. 간송미술관
김희겸 ‘산가독서’. 29.5×37.2㎝. 종이에 연한색. 18세기. 간송미술관

숙독하면서 100번까지 읽어라

조선시대 사람들은 어떤 식으로 공부했을까. 이식(李植)의 ‘택당집’에는 ‘자손들에게 준 글’이라는 제목의 흥미로운 내용이 들어 있다. 자손들이 읽어야 할 도서목록을 적어놓은 글이다. 도서목록은 다시 ‘가장 먼저 읽어야 할 책’과 ‘그 다음에 읽어야 할 책’, 그리고 ‘과거 공부에 필요한 책’ 등으로 분류해놓았다. 이식은 가장 먼저 읽어야 할 책으로 ‘시경’과 ‘서경’ ‘논어’ ‘맹자’ ‘중용’ ‘대학’, 그리고 ‘강목’ ‘송감’ 등을 강추했다. 유교 교육의 핵심적인 책인 ‘사서오경(四書五經)’을 가장 먼저 추천했는데 나머지 책은 모두 역사책이다. ‘그 다음에 읽어야 할 책’ 역시 ‘주역’ ‘근사록’ 등등의 유교서적이었고, ‘과거 공부에 필요한 책’은 한유(韓愈), 유종원(柳宗元), 소식(蘇軾)의 글 등 문학, 사학, 철학으로 그 범위가 넓어졌다.

그런데 여기에서 재미있는 현상을 발견할 수 있다. 자신이 추천한 책 옆에는 그 책을 읽는 방법까지 세심하게 토를 달아놓았다. 자상한 어른이시다. 이를 테면 ‘시경’과 ‘서경’은 ‘대문 위주로 100번까지 읽도록’ 하였고 ‘논어’는 ‘장구(章句)와 함께 숙독(熟讀)하면서 100번까지 읽도록’ 했다. ‘맹자’는 ‘대문을 100번 읽도록’ 하고, ‘중용’과 ‘대학’은 ‘횟수를 제한하지 말고 아침저녁으로 돌려가면서 읽도록’ 했다. 여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다. ‘강목’과 ‘송감’은 ‘선생과 함께 한 번 강학한 뒤에 숙독’을 하고, 좋은 문자가 있거든 한두 권 정도 베껴 써서 ‘수십 번 읽도록’ 하라고 했다. 나머지 책들도 ‘좋은 글이 있거든 초록해서 읽어라’ ‘선생에게 배우고 나서 한 달에 한 번씩 읽어라’ ‘횟수를 정하지 말고 항상 읽어라’고 적어놓았다.

결론적으로 이식이 강조한 공부법의 포인트는 ‘무조건 100번을 읽어라’는 것이다. 기본이 100번이다. 긴 책은 한 번도 제대로 읽지 못하고 중도에 덮어버리는 우리 세태와는 완전히 다른 공부법이다. 이식이 강조한 ‘100번 읽기’는 중국 후한(後漢) 때의 인물 동우(董遇)가 얘기한 ‘독서백편의자현(讀書百遍義自見)’이다. 실제로 리딩을 하면 아무리 둔한 사람이라도 100번이 아니라 50번만 읽어도 난해한 고문(古文)의 봉인이 저절로 풀리는 것을 실감할 수 있다.

조선시대 선비들은 읽고 또 읽기를 반복해 결국은 외우는 것의 중요성을 거듭 강조했다. 조선 중기의 성리학자 기대승(奇大升)은 ‘고봉속집’에서 “학문을 하는 데는 모름지기 부지런해야 하고 또 반드시 외워야 하며 슬쩍 지나쳐버려서는 안 된다”고 했다. 리딩은 단지 젊은 사람들만을 위한 공부 방법이 아니다. 나이와 상관없이 선비들이 평생 공부하는 방법이다. 조선 후기 소론의 영수 윤증(尹拯)은 ‘명재유고’에서 ‘상주 목사 한공(韓公) 행장’을 쓰면서 그를 “아침저녁으로 ‘중용’과 ‘논어’의 장구를 암송하기를 늙도록 그만두지 않았다”고 칭찬했다. 사계(沙溪) 김장생(金長生)은 “매일 밤마다 ‘중용’ ‘대학’ ‘근사록’ 등을 반복해 익숙해지도록 외워 마치 자신의 말과 같이 암송할 수 있도록 하였다”고 전해진다. 조선시대 선비들이 리딩의 대상으로 선정한 책은 사서오경이 많지만, 마음에 빛을 비추어줄 성스러운 책이라면 다 좋을 것이다. 불자(佛子)들은 ‘금강경’이나 ‘반야심경’을 독송해도 좋고, 기독교 신자라면 ‘성경’도 좋다. 필자 또한 언니의 49재 기간 동안에는 ‘논어’ 대신 ‘지장경’을 읽었다.

클릭 한 번으로 스승 모시는 시대

“자왈 학이시습지면 불역열호아~.”

밤 10시. 잠자리에 들기 전에 다시 컴퓨터를 켠다. 인터넷을 접속한 뒤 ‘한국고전종합DB’에 들어가 ‘경서성독’을 클릭하고 ‘논어’를 연다. 그리고 성독자의 목소리에 따라 30분 동안 아침에 읽었던 부분을 다시 리딩한다. 잠들기 전에 성독한 내용은 잠재의식 속에 남아 잠자리에서도 계속될 것이다. 심혁주 박사는 ‘소리와 그 소리에 관한 기이한 이야기’에서 “반복적인 리딩을 하면 그 문장들은 뇌에 기억되지 않고 몸에 기억되고, 뼈에 각인된다”고 적고 있다. 그가 대만에서 티베트어 수업을 받을 때 한 학기 동안 ‘수업시간 내내 큰 소리로 반복해서 읽고 또 읽고’를 거듭한 결과 ‘매년 겨울이면 걸리던 기침감기도 사라지고 호흡이 길어져 기분이 좋아졌다’고 기억한다. 그의 스승은 “경전을 소리 내어 읽으면 몸과 뇌, 얼굴을 바꾸어버린다”고 가르쳤다고 한다. 밤 11시. 리딩을 끝낸 후 잠자리에 누워서 감탄한다. 우리는 정말 공부하기 좋은 시대에 살고 있구나. 마음만 먹으면 클릭 한 번으로 훌륭한 스승을 모시고 공부할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 시대인가. 이런 좋은 기회에 공부하지 않으면 언제 또 하겠는가.

조정육 미술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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