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권기수. ‘Listen without prejudice-Green’. 194×117㎝. 캔버스에 아크릴. 2010. (오른쪽)김홍도. ‘마상청앵도’. 지본채색. 117.2×52㎝. 간송미술관.
(왼쪽)권기수. ‘Listen without prejudice-Green’. 194×117㎝. 캔버스에 아크릴. 2010. (오른쪽)김홍도. ‘마상청앵도’. 지본채색. 117.2×52㎝. 간송미술관.

바늘 가는 데 실 간다는 속담이 있다. 두 사람의 관계가 긴밀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교칠(膠漆)도 같은 뜻이다. 아교(阿膠)와 옻나무의 칠(漆)처럼 나누려 해도 나눌 수 없는 관계가 교칠이다. 아교는 본드(bond)가 나오기 전에 가장 널리 쓰인 천연접착제다. 아교는 갖풀이라고도 부르는데 소나 사슴 등의 동물 가죽, 뼈, 창자 등을 고아서 만든다. 흔히 아교로 알려진 부레풀은 동물 대신 물고기의 부레를 녹여 만든다. 그래서 부레풀을 어교(魚膠)라고 부른다.

아교든 어교든 접착제는 접착성이 강한 것이 특징이라서 옻나무의 칠 속에 넣으면 붙어서 떨어지지 않는다. 이런 불가분의 관계가 교칠이고, 이런 만남을 교칠지교(膠漆之交), 결여교칠(結如膠漆)이라고 한다. 특히 친구 간의 깊은 우정을 지칭할 때 많이 쓰인다. 교칠지교라는 단어가 생소하면 ‘껌딱지’나 ‘젖은 낙엽족’을 생각하면 비슷할 것이다. 교칠지교의 대표적인 사례로는 백아절현(伯牙絶絃)의 주인공인 ‘백아와 종자기(鍾子期)’를 들 수 있다. 백아는 거문고를 잘 연주했고 종자기는 백아의 거문고를 잘 이해했는데 종자기가 죽자 백아는 더 이상 자신을 알아주는 사람(知音)이 없음을 한탄하고 거문고의 줄을 끊어버렸다. 관포지교(管鮑之交)의 주인공인 관중(管仲)과 포숙(鮑叔)의 우정, 수어지교(水魚之交)의 주인공인 유비와 제갈량의 관계도 교칠지교에 해당한다.

그런데 교칠지교의 진짜 주인공은 따로 있다. 사마천의 ‘사기’에 실려 있는 내용이다. 중국 은(殷)나라 때였다. 은나라의 왕 고종(高宗)은 강력한 제국을 건설하기 위해 훌륭한 재상을 얻고 싶었으나 찾을 길이 없었다.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했던가. 여러 해를 간절히 기도한 결과 어느 날 예지몽을 꾸게 되는데 꿈속에서 한 인물을 보게 되었다. 고종은 꿈속에서 본 인물이 틀림없이 자신을 도와줄 현명한 재상이라 확신하고 그의 초상화를 그려 전국 방방곡곡에 뿌렸다. 그 결과 부암(傅巖)이라는 들판에서 예지몽의 인물과 똑같은 사람이 부역을 하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부열(傅說)이라는 사람이었다. 부열은 판축(板築)을 하는 노예였다. 판축은 널빤지를 대고 흙담을 쌓아 올리는 노역이다. 고종은 그를 불러 재상으로 삼아 국정을 맡겼고, 부열은 고종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고종과 부열의 만남은 ‘부열축암(傅說築巖)’이라는 제목으로 후대 화가들이 즐겨 그리는 단골 소재가 되었다. ‘부열축암’은 ‘부열이 바위를 쌓는다’라는 뜻이다.

교칠지교의 두 번째 주인공은 주(周)나라를 세운 문왕(文王)과 여상(呂尙)의 만남이다. 어느 날 서백(西伯) 창(昌·후에 문왕으로 추존)이 사냥하러 나가면서 점을 쳤다. 이번 사냥에서 어떤 짐승이 잡힐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점괘가 묘했다. 점괘에 따르면 ‘잡는 것은 용도 아니고 이무기도 아니고 범도 아니고 곰도 아니요, 패왕(霸王)의 보좌일 것’이라고 했다. 서백이 위수(渭水)에 가보니 과연 한 노인네가 바늘 없는 낚시를 드리우고 있었다. 그가 바로 강태공(姜太公)이었다. 문왕과 그의 아들 무왕은 강태공의 지략으로 주나라를 건국하는 데 성공한다. 문왕과 강태공의 고사는 고종과 부열보다 더 많은 화가들의 그림 소재가 되었다. 후대 사람들이 낚시질하는 인물을 강태공이라고 부르는 것만 봐도 그들의 ‘티켓 파워’가 실로 대단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고종과 부열, 문왕과 여상의 만남은 역사 목록 ‘실검 순위’에서 항상 1, 2위를 다퉈서 그들의 얘기에서 몽복(夢卜)이란 단어가 탄생할 정도였다. 몽복은 꿈과 점이라는 뜻이다. 고종이 꿈 덕분에 부열을 얻었고, 문왕이 점을 쳐서 여상을 얻은 사건에서 파생된 단어로 이후 임금이 훌륭한 재상을 얻는다는 의미로 알려지게 되었다.

바로 이런 관계, 서로가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관계를 그림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그것이 바로 제화시(題畵詩)와 그림이다. 꿈을 꾸고 점을 쳐서 찾은 인물을 검증도 없이 덜컥 요직에 앉혀도 되는가. 그렇게 비판하고 싶어도 잠시만 꾹 참고 그림으로 넘어가기로 하자. 고대의 인물 발탁 기준을 우리 시대의 잣대로 판단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교칠지교와 같은 관계가 그림에서도 적용될 수 있어야 진짜 그림 읽는 맛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버드나무 위 꾀꼬리에 마음 빼앗긴 선비

매화꽃 피고 새 우는 따뜻한 봄날이다. 이렇게 좋은 봄날에는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무조건 밖에 나가고 싶은 법이다. 집에 있기가 갑갑했던 ‘동구리’가 말을 타고 집을 나섰다. 동구리도 귀엽지만 그가 탄 말은 당나귀와 분간하기 힘들 정도로 앙증맞은 동물이다. 타박타박 말이 걸음을 옮길 때마다 길바닥에 고여 있던 물에 잔물결이 인다. 그 모습이 재미있어 동구리는 더욱 더 말의 발길을 재촉한다. 권기수가 그린 ‘Listen without prejudice-Green’은 작품을 보는 순간 곧바로 사람 마음을 사로잡아버리는 사랑스러운 작품이다. 작품 제목을 굳이 해석하자면 ‘편견을 갖지 말고 들어라’가 된다. 영국 가수 조지 마이클(George Michael)이 1990년에 발매한 음반 앨범의 제목과 같다. 실제로 권기수의 작품을 본 어떤 외국인이 조지 마이클의 앨범 제목을 얘기해서 붙이게 되었다고 한다.

권기수의 작품에는 동구리가 트레이드마크처럼 등장한다. 만화의 주인공 같은 동구리의 등장 때문에 권기수의 작품을 팝아트로 분류하려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동구리라는 아이콘은 이야기를 쉽게 풀어나가기 위한 기호로 설정했을 뿐이다. 동양화의 대관산수(大觀山水)에서는 산수를 그릴 때 화면 속에 산 전체를 그려넣어야 한다. 거대한 산을 표현하려다 보니 산은 크게 그리고 인물은 개미처럼 작게 그린다. 북송(北宋)의 곽희(郭熙)가 그린 ‘조춘도(早春圖)’, 범관(范寬)의 ‘계산행려도(溪山行旅圖)’, 그리고 조선 초기 안견의 ‘몽유도원도’가 대표적이다. 대관산수에서는 거대한 자연이 얼마나 위대한가를, 상대적으로 인간이라는 존재가 얼마나 미미한가를 생각한 동양사상이 반영되어 있다. 권기수가 그린 동구리는 대관산수의 전통을 이어받아 인물을 최소화했다. 얼굴은 표정을 확인할 수 있을 정도로 그린 반면 팔다리는 그저 사람이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을 정도로 간략한 것이 특징이다. 동구리는 항상 ‘스마일’을 하고 있다. 오랫동안 덕과 지혜의 상징으로 존경받아온 성인(聖人)이나 현자(賢者)의 모습을 개념화시킨 표정이다. 그런 점에서 권기수의 작품은 만화나 광고 등을 통해 대중성을 얻은 이미지를 차용한 팝아트와는 완전히 다르다. 권기수가 한국을 대표하는 블루칩 작가로 부상하게 된 비결도 전통을 현대화하면서 그 안에 우리의 미학을 담고자 한 노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자연과 조화롭게 살고자 했던 동양인의 정신과 사상, 평면적인 그림에서 나타내고자 했던 보편성의 원리 등을 오방색(五方色)이라는 화법으로 풀어내고자 했다. 오방색은 오행(五行)사상을 상징하는 청(靑)·적(赤)·황(黃)·백(白)·흑(黑)의 5가지 한국의 전통 색을 말하는데 목(木)·화(火)·토(土)·금(金)·수(水)의 오행을 다섯 가지 색으로 표현한 것이다. 동양철학에서는 오행의 운행으로 만물이 생성 소멸된다고 설명한다. 그러니 권기수가 작품에서 보여준 오방색은 단순한 색의 조합을 넘어 동양사상의 근저에 깔린 근원적인 미감의 세계를 이해하려는 시도라고 할 수 있다.

권기수가 모델로 삼은 그림은 김홍도(金弘道·1745~1806 이후)의 ‘마상청앵도(馬上聽鶯圖)’이다. ‘마상청앵도’는 ‘말 위에서 꾀꼬리 소리를 듣다’라는 뜻이다. 김홍도가 그림에 제목을 써 넣은 것은 아니고 후대의 감상자가 그림을 보고 작명한 것이다. 제목만 들어도 그림에 대한 ‘콘셉트’가 명료해질 만큼 잘 지은 작명이다. 봄이 천지에 쏟아지는 날, 선비가 말을 타고 언덕길을 내려가는데 어디선가 꾀꼬리 소리가 들린다. 선비가 부채를 펼친 것을 보면 봄도 하마 저물어 초여름의 더위가 느껴지는 시간일 것이다. 그 청량한 소리에 취해 선비는 말을 멈추고 고개를 돌린다. 저 고운 빛의 소리는 어디서 오는 걸까. 소리의 진원지를 찾아 눈으로 더듬어보니 버드나무 가지 사이로 꾀꼬리 두 마리가 왔다 갔다 한다. 하아, 고놈들이로구나. 그 작은 몸으로 어찌 그리 장엄한 소리를 만들어낼 수 있단 말이냐. 선비는 잠시 복잡한 세속사를 잊고 봄날의 정취에 한껏 취한다. 그 짧은 감동의 순간을 김홍도의 유려한 필선이 화폭에 담았다. 선비와 시동의 옷은 철선묘(鐵線描)로 그린 반면 말과 풀과 버드나무잎은 몰골법(沒骨法)으로 그렸다. 철선묘는 붓질을 할 때 큰 변화 없이 똑같은 굵기로 가늘게 긋는 기법이고, 몰골법은 윤곽선을 그리지 않고 색채나 수묵으로 그리는 기법이다. 선비의 옷선과 말의 다리를 비교해보면 그 차이를 확인할 수 있다.

그림에는 여백이 많다. 화면 오른쪽 상단 모서리에서 왼쪽 하단 모서리로 대각선을 그어보면 선비와 버드나무 등의 경물이 대략 오른쪽으로 치우쳐 있다. 아무것도 그리지 않은 왼쪽 여백에는 선비의 귀에 들리는 꾀꼬리 소리가 맴돌고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여백은 비었으되 빈 것이 아니라 소리로 가득 찬 진공묘유(眞空妙有)의 세계다. 여백은 여백이라는 것을 인식할 수 있는 장치를 해두어야 진짜 여백의 맛이 느껴진다. 이것이 바로 왼쪽 상단 모서리에 제시를 써 넣은 이유다. 제시는 여백이 화면 밖으로 빠져나가는 것을 막아줌으로써 여백에서 울리는 꾀꼬리 소리가 선비의 귀에 더욱 크게 울릴 수 있는 공명판 역할을 해준다. 조선시대 선비의 고아한 정취를 이보다 더 잘 보여줄 수 있는 작품이 있을까.

좋은 그림에는 좋은 시가

제시를 써 넣은 이유가 단지 여백을 강조하기 위한 것만은 아니다. 그림에서 못다 한 얘기를 시로 보충하기 위해서다. 먼저 제시를 살펴보기로 하자.

佳人花底簧千舌(가인화저황천설)

韻士樽前柑一雙(운사준전감일쌍)

歷亂金梭楊柳崖(역란금사양유애)

惹烟和雨織春江(야연화우직춘강)

-碁聲流水古松館道人 李文郁證(기성유수고송관도인 이문욱증)-

檀園寫(단원사)

어여쁜 여인이 꽃그늘서 부는 구성진 생황 소리요

시인의 술동이 앞에 놓인 감귤 두 개로구나

버드나무 강 언덕에 금북이 분분히 오가며

안개와 봄비로 봄강의 물결을 짜는구나

-기성유수고송관도인 이문욱이 감상하다-

이 그림을 감상했다고 제시 아래 이름을 밝힌 기성유수고송관도인(碁聲流水古松館道人) 이문욱(李文郁)은 당대 최고의 화원(畵員)이었던 이인문(李寅文·1745~1821)이다. 그는 자를 문욱, 호를 기성유수고송관도인 또는 고송유수관도인(古松流水館道人)이라 했다. 그는 김홍도와 동갑이자 같은 화원으로 두 사람이 아주 친했다. 김홍도가 시흥(詩興)에 취해 그림을 그리고 시를 쓴 다음 친구이자 지화자(知畵者)인 이인문에게 자랑을 했던 것 같다. 그림이라면 갑을을 다툴 만큼 빼어난 필력가인 이인문도 ‘마상청앵도’를 보고 한동안 입을 다물지 못했을 것이다. 그래서 김홍도가 쓴 7언 절구의 제시 아래 딱 한 문장을 추가했다. ‘나, 이인문이 김홍도의 그림이 명작임을 증명하노라.’

제시는 화폭의 여백에 그림과 관계된 내용을 담은 시를 말한다. 제화시(題畵詩) 또는 화제시(畵題詩)라고도 한다. 제시는 화가 본인이 직접 짓는 경우도 있지만 그림을 감상한 사람이 그림에서 받은 감흥을 시로 표현한 경우도 있다. ‘마상청앵도’에서는 김홍도가 그림을 그리고 제시도 함께 썼다. 어느 경우든 좋은 제시는 그림을 더 잘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는 보조역할을 한다. 그렇다면 ‘마상청앵도’에서는 제시가 어떤 역할을 했는지 살펴보기로 하자.

칠언절구로 된 이 제시는 버드나무에서 왔다 갔다 하는 꾀꼬리를 묘사했다. 그런데 시 어느 구절에도 꾀꼬리를 뜻하는 ‘앵(鶯)’ 자는 보이지 않는다. 꾀꼬리라는 단어를 한 번도 쓰지 않으면서 시 전체가 꾀꼬리를 가리키는 상황이다. 첫 구에서는 꾀꼬리 소리를 생황(笙簧) 소리에 비유했다. 황(簧)은 관악기의 주둥이에 딸린 떨림판이면서 또한 아악기의 하나인 생황도 의미한다. 꾀꼬리 소리를 생황에 비유한 것은 그 소리가 매우 유사하기 때문이다. 2구에서 시인의 술동이 앞에 놓인 감귤 두 개는 꾀꼬리의 노란 빛깔이 마치 황금빛 귤 같다는 뜻이다. 꾀꼬리는 흔히 황조(黃鳥)라 부르는데 모두 그 색깔 때문이다. 꾀꼬리를 귤 두 개에 비유한 표현은 오랜 전거가 있다. 유송(劉宋·420~479)의 은사(隱士)인 대옹(戴顒)이 어느 봄날에 감귤 두 개와 술 한 말(雙柑斗酒)을 가지고 밖으로 나갔다. 어떤 사람이 그를 보고 어디 가느냐고 묻자 그는 ‘꾀꼬리 소리를 들으러 간다’고 대답했다. 꾀꼬리 소리가 시상을 고취시켜 주기 때문이다. 이때부터 감귤과 술은 봄날의 흥겨운 놀이의 뜻으로 쓰였다. 김홍도가 이미 대옹의 고사를 알고 있었다는 뜻이다. 3, 4구에서 ‘버드나무 강 언덕에 금북이 분분히 오가며/안개와 봄비로 봄강의 물결을 짜는구나’라는 구절은 직접적으로 꾀꼬리를 묘사했다. 중국에서는 꾀꼬리를 금사(金梭), 즉 금빛 나는 베틀 북이라고 한다. 황금빛 꾀꼬리가 버드나무 사이를 재빠르게 왔다 갔다 하는 모습이 마치 베틀에서 금북이 왔다 갔다 하는 모습 같아서 비유한 말이다. 옛 시에 묘사된 꾀꼬리를 보면 특히 버드나무가 자주 언급된다. 그래서 버드나무를 앵수(鶯樹)라고 부른다. 꾀꼬리가 노는 나무라는 뜻이다.

솥 안의 음식은 조리에 따라 맛이 달라진다

그런데 이렇게 멋진 제시임에도 불구하고 한자가 익숙지 않은 현대인들에게는 그다지 큰 감흥을 주지 못한다. 이 난관을 권기수는 색채로 대신했다. 그는 김홍도가 제시를 쓴 부분에 여러 가지 색채를 막대 모양으로 늘어뜨려 넣었다. ‘마상청앵도’의 제시의 느낌을 색채로 표현해 감상자에게 전달한 것이다. 막대 모양의 색채에는 청·적·황·백·흑의 오방색이 전부 들어 있다. 그 오방색의 막대 모습이 마치 베틀 북 같은 황금빛 꾀꼬리가 버드나무 사이를 부지런히 오가며 봄 강의 물결을 짜는 듯하다. 권기수는 한자를 모르는 감상자를 탓하는 대신 한자를 몰라도 감상할 수 있는 길을 터주었다. 부열을 얻은 고종은 그를 정승으로 삼고 나서 이렇게 부탁한다. “내가 술을 만들면 그대가 누룩이 되어주고, 내가 국을 끓이면 그대가 소금과 식초 역할을 해주시오.” 누룩이 되어주고 조미료가 되어준 부열 덕분에 은나라가 강대국이 되었다. 전설에 따르면 부열은 죽어서 하늘의 별이 되었다고 한다. 그 별의 이름은 부열성(傅說星)이다. 조선의 하늘에도, 한국의 하늘에도 수많은 부열성이 반짝거린다. 다만 하늘이 흐려 보이지 않을 뿐이다.

조정육 미술칼럼니스트
저작권자 © 주간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