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 이경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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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쿠나 여기있어요(드바데셋 오쌈쿠나, 이즈볼리테).”

“브라보! 브라보!”

얼마 전 크로아티아 자그레브 근교의 작은 도시 사모보르(Samobor)로 가는 길이었다. 중년의 버스 기사는 아시아인이 차에 오르자 자연스럽게 영어로 버스비가 얼마인지 알려줬다. 내가 현지어로 대답을 하자 그는 깜짝 놀라며 “브라보”를 연신 외쳤다. 몇 주의 시간이 흐른 뒤 한 번 더 오른 사모보르행 버스에서 이 버스 기사님은 여전히 나를 기억하고 반갑게 인사를 해줬다.

크로아티아에 짐을 푼 지 올해로 4년차. 어디에서나 해당 국가의 언어를 배우고 사용하는 게 그 나라 사람들을 존중하는 기본이다. 잠시 관광하러 머무는 게 아니라 이곳에서 일을 하고 생활하기로 마음먹었다면 현지 언어를 익히는 게 필수일테다.

하지만 크로아티아어는 어렵다. 영어나 라틴어와는 또 다른 느낌이다. 계열로 치면 서부 남슬라브어군으로 세르보크로아트어의 일종이라고 하는데, 어쨌든 영어도 간신히 익힌 ‘토종’ 한국인으로서 익히기 쉽지 않은 언어다.

 ⓒphoto 이경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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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관광업이 발달한 크로아티아에선 어디에서나 대체적으로 영어가 잘 통한다. 많은 크로아티아 사람들이 고유의 언어만 사용해선 경쟁력이 떨어진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어려서부터 영어나 독일어, 이탈리어 같은 제2외국어 공부를 시작한다. 이방인으로 생활을 하는 데 있어 그리 불편함을 느끼지 못하는 언어 환경이다.

그래서일까. 크로아티아 사람들은 자신들의 언어를 구사하는 외국인의 존재를 놀라워하고 격하게 반긴다. 시장에서 크로아티아로 말하자고 했을 때, 가게 주인이 주변 상인들에게 “이 여자 크로아티아 말을 해!”라고 말하자 주변 사람들이 내 주변으로 모여들어 이런 저런 질문을 퍼붓기도 했다.

자그레브 시장의 모습. ⓒphoto 이경민
자그레브 시장의 모습. ⓒphoto 이경민

얼마 전 아드리아해의 비스(Vis) 섬으로 여행을 갔을 때의 일이다. 식당에서 주문을 할 때 자연스럽게 크로아티아어를 사용했다. 종업원과 약간의 대화를 나누며 ‘아이스 브레이킹’이 되자, 종업원이 “당신의 크로아티아어 발음이 너무 좋아서 깜짝 놀랬다”며 신기해했다. 이후 그의 서비스가 한결 친절해진 건 기분 탓이었을까.

원래 이 맘 때의 비스 섬은 관광객들이 가득하다. 한국에 비해 장기간 주어지는 여름휴가를 만끽하기 위해 크로아티아를 찾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코로나19로 관광객이 대폭 줄면서, 관광지에서 특히 아시아 여행객을 만나는 일이 매우 드물어졌다.

아드리아해의 아름다운 섬 비스에서 만난 사람들. ⓒphoto 이경민
아드리아해의 아름다운 섬 비스에서 만난 사람들. ⓒphoto 이경민

비스 섬의 아이들. ⓒphoto 이경민
비스 섬의 아이들. ⓒphoto 이경민

현지의 언어를 구사할 줄 안다는 것은 내 앞에 매력적인 현지의 세계로 통하는 문이 더 많이 열린다는 것을 의미한다. 내가 크로아티아어를 배운 이유다. 이곳의 언어를 조금이라도 하면 크로아티아라는 나라에 대해 조금 더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단 생각이었다. 그것이 또 나의 다음 선택에 영향을 줄 것이란 막연한 느낌도 들었다.

크로아티아에서 머물며 본격적으로 일을 하기 시작하면서, 크로아티아어를 배우기 위해 1년짜리 어학 프로그램을 신청했다. 자그레브 대학교 인문학부에서 운영하는 어학코스였다. 이 어학원에는 유럽, 캐나다, 호주 등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이 많았는데 가족이나 배우자 중 하나가 크로아티아 사람인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간단한 인사말, 문법 등을 배울 수 있었다.

배 위에서 바라본 비스 섬. ⓒphoto 이경민
배 위에서 바라본 비스 섬. ⓒphoto 이경민

아직 많이 부족한 수준이지만 일상 속에서 크로아티아 어를 조금씩 쓰게 되면서 특별한 경험이 늘었다. 시장에서 장을 볼 때 자주 가는 단골 가게 상인들과, 또 골목길 어귀에서 만난 예쁜 소녀들과 나누는 소소한 대화들. 내가 현지 언어를 전혀 할 줄 몰랐다면 근처에도 가지 못했을 값진 경험들 아닐까!

※주간조선 온라인 기사입니다.

이경민 사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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