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설도 지난 추석에 이어 ‘언택트’ 명절이다. 부모님을 뵈러 가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 돼버렸다. 넘쳐나는 시간, 무엇을 해야 할까. 누구나 만족할 최선의 시간은 독서다. 설 명절에 읽을 만한 책들을 소개한다. <편집자 주>

김형석

백년을 살아보니

“나는 60이 되기 전에는 모든 면에서 미숙했다”

이런 제목은 아무나 감히 달 수가 없다. 바로 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1920년생)의 ‘백년을 살아보니’(2016)다. 이 책은 “직접 ‘백년을 살아보니’ 삶이 이렇더라”라는 저자의 담담한 고백이다. 저자의 다양한 체험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지지만, 그 밑바닥에는 저자의 가치관이 진하게 녹아 있다. 이를 통해 우리는 인생 백년의 정수를 살짝 맛보는 호사를 누리게 된다.

실향민 출신인 저자는 노모, 동생 둘, 자식 여섯을 부양해야 했다. 오랫동안 돈을 위해 살았다. 그러던 중에 서울 기업체 강연과 대구 중·고등학교 교사 강연이 겹쳤다. 당연히 강연료는 기업체 쪽이 두 배 이상 두둑했다. 더구나 당시만 해도 대구까지 오가는 교통편이 불편했다. 하지만 교사 수백 명을 만날 기회는 흔치 않아 보였다. 어렵사리 기업체 강연을 사양하고 대구로 강연을 갔다. 돌아와 서울역에 내리니 그렇게 기분이 좋을 수가 없었다.

그때부터 저자는 삶의 기준을 돈에서 보람으로 바꿨다. 즉 사회에 봉사하고 다른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삶이 무엇인가를 우선 생각했다. 그것은 어마어마한 일이 아니다. 위대한 업적은 아무나 남길 수 없지만, 이웃에 대한 사랑의 배려는 누구나 할 수 있다. 굳이 돈이 없더라도 가난하고 병든 이웃에게 따뜻한 정과 마음은 얼마든지 나눌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사랑을 나누려면 크든 작든 수고와 희생이 따른다. 그래서 저자는 그것을 ‘사랑이 있는 고난’이라고 부른다. 그런 고난이야말로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일이다. 그것을 최고로 실천한 분이 예수 그리스도다. 그래서 예수를 닮으려는 삶이 기독교의 핵심이다. 예수뿐만 아니다. 우리가 존경하는 위인들은 한결같이 타인을 위해 그런 고난을 즐겁게 실천한 분들이다. 그런 분들을 본받아 나를 키워준 사회에 작더라도 선한 도움을 주려고 노력해야 한다.

또한 저자는 ‘인생의 황금기는 60세에서 75세’라고 말한다. 자신도 “60이 되기 전에는 모든 면에서 미숙했다”고 고백한다. 그때부터 세상사를 두루 이해하며, 75세까지는 얼마든지 정신적으로 발전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노력만 하면 90세까지는 그 정신적 수준을 유지시킬 수 있다고 한다. 저자는 “우리 사회는 너무 일찍 성장을 포기하는 젊은 늙은이들이 많다”고 질책한다. 설사 젊은 사람일지라도 공부하지 않고 일하지 않으면 빨리 늙는다는 경고도 잊지 않는다.

저자는 60부터 인생의 황금기를 만드는 비법(?)도 소개한다. 우선, 일이나 공부를 계속하는 것이다. 둘째로, 취미생활이다. 늦게 시작한 취미활동이 젊어서 했던 일보다 더 큰 보람과 행복을 주는 경우가 적지 않다. 사업에 실패한 사람이 60이 넘어 글씨를 공부해 유명한 서예가가 되기도 한다. 셋째로, 봉사활동이다. 이것들을 유기적으로 섞어 하면 더 좋다.

80대 선배가 70대인 저자에게 나이를 물은 적이 있다. “70대 중반입니다”라고 하니까 “좋은 나이로구먼”이라며 부러워했다. 이렇듯 ‘좋은’ 나이는 따로 없다. 저자는 다시 한번 자신의 인생관이자 행복관을 피력하며 책을 마무리한다. “제가 ‘사랑이 있는 고생’이 행복이었다는 것을 깨닫는 데 90이 넘는 세월이 걸렸습니다.” 이것이 백년의 총결산인 셈이다.

이 책을 지그시 읽다 보면 어느 틈엔가 저자의 주름진 손이 우리의 등을 토닥이고 있다. “참 좋은 나이입니다.” 그의 격려는 따뜻하고 은근하다. 당장이라도 무언가를 새로 시작하며 주변에 조그만 정이라도 내놓고 싶다. 곧 설날이라 그런지 그런 마음이 한결 더 간절하다.

주제 사라마구

죽음의 중지

“1월 1일 0시부터 전국에서 사망자가 나오지 않는다면…”

불멸(不滅)은 인간의 오래된 비원(悲願)이다. 만약 그 비원이 실현된다면 과연 우리는 행복할까. 실제로 어떤 일들이 벌어질까. 이런 심각한 상황을 아주 기발한 상상력으로 유쾌하게 풍자한 소설이 있다. 바로 노벨상 수상 작가인 주제 사라마구의 ‘죽음의 중지’(2005)다.

이 소설은 ‘다음 날, 아무도 죽지 않았다’로 시작한다. 다음 날이란, 1월 1일이다. 즉 어느 나라에서 어느 해 1월 1일 0시부터 죽는 사람이 사라졌다. 그렇다고 아픈 사람이 나은 것은 아니다. 모든 것이 현재 상태를 유지한 채 죽음이 중지되었다. 아무튼 죽음이 사라졌다는 소식에 사람들은 환호하며 길거리로 뛰쳐나갔다. 드디어 불멸이 실현된 것이다.

하지만 곧바로 문제들이 튀어나왔다. 교회는 즉각적으로 위기를 느꼈다. 죽음이 없으면 부활도 없고 부활이 없으면 기독교 교리는 붕괴한다. 장의 업계는 일감이 사라질 것이다. 병원과 요양소는 넘쳐날 것이다. 보험 업계도 패닉에 빠졌다. 보험 취소 요청이 빗발쳤다. 나라 전체가 혼란에 빠져들었다. 이렇게 사느니 차라리 죽는 것이 낫다는 탄식이 터져나왔다.

그런데 이웃나라들에서는 여전히 죽음이 작동하고 있다. 그때 국경 인근 마을에 사는 어느 가난한 가족이 살아날 가망이 없는 쇠약한 노인을 한밤중에 국경 너머로 데리고 가서 죽게 한 다음 매장했다. 이 소식이 알음알음 알려져 많은 사람이 이 대열에 합류했다. 이웃나라들이 항의하자 정부는 군대와 민병대로 하여금 국경과 길목을 지키게 했다.

하지만 국경을 넘어가 죽는 방식은 사람들에게 매력적이었다. 수요가 있으면 공급이 있는 법이다. 마피아 조직이 나섰다. 정부도 그들의 개입을 묵인했다. 그래서 군대와 민병대를 적당히 빼돌리며 마피아의 사업을 비호했다. 이웃나라들의 항의가 거세지자 이번에는 그 나라들의 마피아 조직들이 나섰다. 그리하여 민관이 결탁한 국제적 이익 카르텔이 생겨났다.

일곱 달 후 방송국 사장 앞으로 정체불명의 보라색 편지가 배달되었다. ‘내가 죽음을 중단한 이유는 나를 증오하는 사람들에게 영원히 산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맛을 보여 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실험이 낳은 개탄할 만한 결과를 고려하여… 오늘밤 자정부터 사람들이 다시 죽기 시작할 것이다. 다만 앞으로는 죽기 7일 전에 미리 통보하겠다. ‘죽음(death)’으로부터.’ 저녁 뉴스 시간에 사장이 이 편지를 직접 공개했다.

그날 자정에 일곱 달 동안 죽지 않았던 사람들이 일시에 죽었다. 그리고 ‘죽음’은 당사자들에게 죽음을 차례로 예고했다. 7일 후부터 죽음은 다시 정상적으로 작동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단 한 사람이 예외다. ‘죽음’이 그에게 아무리 편지를 보내도 번번이 반송되었다. 그는 49살의 독신 첼리스트다. 급기야 ‘죽음’(즉 죽음이라는 여신)이 그를 직접 찾아갔다가 그와 사랑에 빠지며 소설은 막을 내린다. 이 황당한(?) 대목은 평단(評檀)에서도 논쟁적이다.

굳이 힌트를 찾아보면 ‘죽음’이라는 서명이 소문자라는 점이다. 그는 이 나라의 죽음만 관장한다. 즉 절대자가 아니다. 이를 통해 작가는 삶과 죽음이 하나로 이어져 있다고 말하려는 것이 아닐까 싶다. 아무튼 ‘죽음의 중지 및 재개’라는 작가의 상상력이 기발하다. 소설은 우리에게 삶이 소중하듯이 죽음도 절실하다는 점을 아주 특별한 방식으로 일깨워준다.

애슐리 반스

일론 머스크, 미래의 설계자

“우리는 화성에 가서 살 준비를 해야 한다”

요즘 주식이 단연 화제다. 특히 미국 자동차 테슬라의 주가는 작년 한 해 동안 무려 7배나 뛰었다. 올해 들어서도 계속 오름세다. 더구나 올해는 전기차 원년(元年)이라 떠들썩하다. 우리나라 ‘서학개미’들도 테슬라 주식을 무려 100억달러 이상 보유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제 ‘테슬라 갑부’가 남의 나라 이야기만은 아닌 세상이 되었다.

그런데 전 세계 투자자들의 관심은 테슬라라는 회사보다 온통 일론 머스크(1971년생)라는 인물에 쏠려 있다. 왜 그런 일이 벌어지는지를 잘 보여주는 책이 있다. 바로 애슐리 반스의 ‘일론 머스크’(Elon Musk·2015)다. 이 책은 저자가 머스크와 주변인들을 두루 취재하여 치밀하게 구성한 그의 일대기다. 우리말에는 ‘미래의 설계자’라는 멋진 부제가 붙어 있다.

머스크의 가계(家系)는 특이하다. 모험심 많은 외할아버지는 미국에서 살다가 캐나다로 옮겨 갔다. 말년에는 가족을 이끌고 남아공으로 이주했다. 어머니는 남아공에서 아버지를 만났다. 머스크는 13세 때 비디오게임 소스코드를 설계해 전문잡지에 발표했다. 그만큼 천재성이 있었고 혼자 몽상에 잠기곤 했다. 그래서 정작 또래 사이에서는 잘 어울리지 못했다.

그는 고교 졸업 후 캐나다로 갔다가 다시 미국으로 옮겨 가서 공부했다. 외할아버지의 이주를 거꾸로 더듬은 셈이다. 그는 인터넷에 흥미를 느껴 ‘Zip2’라는 위치정보 회사를 차렸다. 그것이 팔리면서 받은 돈으로 온라인 은행을 준비하다가 유사업종인 페이팔과 합쳤다. 나중에 그것이 팔리면서 2억5000만달러를 쥐었다. 그와 함께 일했던 동료들은 “우리는 하루 20시간 일했는데 그는 23시간 일했다”고 회고했다. 그는 사업을 키우고 싶었으나 투자자들은 팔아서 이윤을 챙기려고 했다. 이런 충돌로 초창기 사업에서 두 번 다 CEO에서 쫓겨났다.

한편 그는 우주에 대한 어린 시절의 환상을 버리지 못했다. 틈틈이 많은 전문가와 교류하면서 “사람들을 화성에 가서 살게 하겠다”는 비전을 가다듬었다. 드디어 2002년 페이팔 매각 대금을 쏟아부어 ‘스페이스엑스(Space-X)’를 설립했다. 로켓 발사가 잇따라 실패하고 재정난에 빠졌으나 NASA 용역 수주 등으로 난관을 돌파했다. 지금 스페이스엑스는 정기적 로켓 발사, 로켓 재사용 등을 달성한 가장 성공적인 민간 우주항공회사로 자리 잡았다.

테슬라는 본래 2003년 에버하드라는 사람이 지구온난화를 막는다는 이념으로 세운 회사다. 다른 투자가들이 외면할 때 머스크는 이 회사의 장래성을 보고 과감하게 투자했다. 창업자와 충돌하다가 이번에는 자기가 창업자를 몰아내고 CEO가 되었다. 그의 주도로 테슬라는 수많은 시행착오와 재정난을 딛고 혁신을 거듭했다. 테슬라는 고장이 나도 연구실에서 엔지니어들이 온라인으로 정비를 한다. 운영 소프트웨어도 온라인으로 업데이트해 준다.

그는 사촌들에게 태양광 사업을 조언하고 투자하여 ‘솔라시티’를 세우게 했다. 이 태양광 회사도 엄청난 성공을 거뒀다. 지금은 테슬라에 합병되어 있다. 그는 앞으로 태양광을 활용한 전기차 무료 충전소를 미국 전역에 세우겠다고 공언하고 있다. 또한 그는 인공위성을 여러 개 띄워 지구 어디에서나, 나아가 행성 어디에서나 인터넷 연결이 가능한 우주 인터넷 사업을 추진 중이다. 아울러 진공튜브 초고속 열차 사업인 하이퍼루프(Hyperloop)도 구상 중이다.

그의 사업들은 하나의 커다란 비전에 뿌리박고 있다. 그것은 ‘지구온난화를 막고 화성에까지 사람을 보내 살게 해야 한다’는 비전이다. 그 자신도 “화성에 가서 죽고 싶다”고 말한다. 그의 사업은 한마디로 미래 구원 프로젝트다. 이런저런 우려도 없지 않지만 오늘날 수많은 사람이 그의 거침없는 질주에 열광하고 있다. 우리나라 ‘서학개미’들도 그 대열에 기꺼이 동참한 것이다. 테슬라 주가는 회사 주가가 아니라 머스크 주가라고 해도 무방하다.

오세라비·김소연·나연준

페미니즘은 어떻게 괴물이 되었나

“여성운동도 운동권 논리에 사로잡혀 있다”

명절마다 여전히 여성의 고단함이 회자된다. 어떤 경우라도 양성평등은 절실한 과제다. 그래서 우리도 오랫동안 페미니즘의 주장에 무조건 끄덕이며 비판은 감히 생각하지도 못했다. 하지만 무엇이든 비판을 받지 않고 주장만 하는 성역은 반드시 타락하게 마련이다.

그런 문제가 한국 여성운동에 만연되어 있다는 신랄한 비판이 있다. 바로 오세라비(필명) 등의 ‘페미니즘은 어떻게 괴물이 되었나’(2020)이다. 저자들에 따르면, 오늘날 K-페미니즘은 1970년대 미국의 급진적 이데올로기 및 운동을 답습, 반복하며 실질적인 양성평등에 기여하지 못하고 있다. 이런 와중에 기득권을 향유하며 정치화, 권력화, 진영화로 치닫고 있다.

오늘날 영미권 페미니즘은 단순한 남녀 대결 구도를 넘어 다양한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다. 반면 K-페미니즘은 ‘여성은 약자·피해자·희생자, 남성은 강자·가해자·범죄자’라는 기계적 프레임에 갇혀 단 한 발자국도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한마디로 말해 K-페미니즘은 ‘남성지배문화를 전복시키자’고 외치던 1970년대식 급진적 이데올로기요, 운동에 불과하다.

그런 특정 이데올로기나 운동이 우리 사회에서는 보편 룰로 강요되고 있다. 그것은 시대착오적이다. 단적인 예로, 요즘 청소년 가운데 마초적 남성은 거의 없다. 이런 세대에 기성세대의 마초적 남성관을 씌우는 것은 부당하다. K-페미니즘이 이런 공허한 투쟁에 골몰하는 사이에 정작 힘없는 여성들의 삶을 실질적으로 개선하는 일은 철저히 외면받고 있다.

가장 큰 문제는 대부분 NL 운동권 출신인 K-페미니즘의 상층 구성원들이 학벌 등을 중심으로 거의 족벌화되었다는 점이다. 그들은 시민단체는 물론이고 공직사회와 정치권까지 두루 망라하는 거대한 이익 공동체를 구축했다. 한마디로 페미니즘운동 자체가 족벌화, 권력화, 진영화되었다. 그리하여 박원순 성추행 사건 때처럼 여성 대표로 국회의원이 된 여성이 정작 피해여성보다 권력자인 가해남성의 편에 서는 기막힌 일도 종종 벌어진다.

이런 K-페미니즘의 문제를 극단적으로 드러내는 것이 윤미향 의원 사건이다. 그는 1990년 민족주의, 특히 반일주의의 맥락에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제기했다고 회고한다. 식민지 트라우마가 각인된 민주화 세력은 민족의 고난을 최대한 비극적으로 재현하려는 욕망이 있다. 이런 ‘자학적’ 역사인식의 틀로 바라보면 위안부 문제는 더없이 훌륭한 소재인 것이다.

무엇보다 반일주의와 성노예의 결합은 휘발성을 발휘한다. 여기에 위안부 출신 할머니들이 일본에 대항하여 승리를 이끌어내야 한다는 민족적 염원이 덧붙여져 정대협(정신대대책협의회) 활동은 거의 성역화되었다. 그러다 보니 피해여성들이 오히려 이 성스러운 민족운동의 들러리로 전락하고 말았다. 그것은 한마디로 민족주의와 페미니즘의 잘못된 만남이다.

K-페미니즘에 대한 저자들의 비판은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신랄하다. 그러나 비판받지 않는 이데올로기나 운동은 타락할 수밖에 없다. 특히 K-페미니즘이 NL 운동권식 급진적 이데올로기요, 운동일 뿐이라는 저자들의 주장은 곱씹어 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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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선 인문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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