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K방역을 자랑한다. 하지만 우리뿐만이 아니다. 동아시아 국가들은 한결같이 서구보다 우수한 방역 성과를 보여주고 있다. 이 나라들이 서구보다 유능한 정부를 가지고 있거나 시민의식이 출중하다고 보기 어렵다. 과연 무엇이 그런 긍정적 차이를 만들어냈을까.

이 나라들이 벼농사 국가라는 공통점에서 그 답을 찾아보려는 독특한 시도가 있다. 바로 서강대 이철승 교수의 ‘쌀, 재난, 국가’(2021)이다. 물론 이 책은 코로나19 방역만을 다루지 않는다. 벼농사는 동아시아, 특히 한국의 뿌리깊은 유산이자 습속이다. 거기에 우리의 정신구조나 사회제도가 뿌리를 두고 있다. 그것이 오늘날 경제발전도 가져왔고 성공적인 방역도 가져왔다. 또한 그것이 우리 사회에 커다란 그늘도 드리우고 있다.

우리나라는 기후나 토양 조건이 다른 쌀재배 지역보다 불리하다. 그럼에도 좁은 땅에 많은 인구가 살다 보니 벼농사의 높은 생산성에 집착하여 쌀재배를 극단적으로 밀어붙였다. 심지어 만주나 중앙아시아에 가서도 쌀재배를 고집할 정도다. 한마디로 한국인은 쌀에 중독되고 쌀에 감금된 족속이다. 그만큼 우리에게 쌀재배 문화의 DNA가 강렬하게 각인되어 있다.

쌀재배(논농사)는 밀재배(밭농사)보다 생산력이 월등하다. 하지만 홍수, 가뭄, 역병 등 각종 재난에 취약하다. 따라서 치수(治水)를 담당하고 재난에 대처하는 대규모 조직, 즉 국가가 필요하다. 그래서 쌀재배 지역에서는 일찍이 강력한 국가가 탄생했다. 그것이 저자가 이 책에 ‘쌀, 재난, 국가’라는 제목을 붙인 이유다. 한편 밀재배 지역에서는 상대적으로 재난이 적고, 또한 국가의 필요성도 적다. 그런 지역에서는 아주 최근에야 강력한 국가가 탄생했다.

벼농사는 혼자 짓기 어렵다. 무엇보다 물을 공동으로 관리해야 했다. 또한 가뭄이나 홍수에 공동으로 대응해야 했다. 더구나 벼농사는 노동을 집약적으로 투하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다. 그래서 벼농사의 기본 틀은 씨족들이 모여 사는 마을 공동체다. 그 안에서 물 관리나 재난 대처는 물론 파종, 모내기, 잡초 제거, 수확 등 농삿일 전반이 공동으로 수행되었다.

이처럼 대부분의 농민은 ‘각자’ 소유하는 논을 ‘함께’ 경작했다. 여기에는 노동력의 표준화와 평준화가 요구되었다. 만약 누군가의 노동 품질이 미흡하면 그는 비난, 망신, 징계에 직면했다. 그래서 그들은 부모자식 간에, 또한 또래 세대 간에 다양한 방식으로 농사기술을 전수, 교환, 개선하려고 부단히 노력했다. 한마디로 자연스럽게 기술 튜닝(tuning)이 활발하게 이뤄졌다. 이런 과정을 통해 벼농사는 마을 공동체 단위의 ‘협업-관계 자본’을 창출했다.

하지만 그런 협력이 아름답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공동으로 일해도 수확은 같을 수 없다. 저절로 다른 사람과 비교하고 경쟁하게 되었다. 경우에 따라 극단적 질시도 벌어졌다. “사촌이 논을 사면 배가 아팠다.” 반면 밀재배는 전 과정을 대체로 혼자 담당한다. 거기서는 나와 자연(또는 신)의 관계가 중요할 뿐, 다른 사람과의 비교나 질시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하여 벼농사 지역의 협업은 자발적이라기보다 반(半)강제적이었다. 그래서 그것은 밀재배 지역의 솔직담백한 자유주의적 개인주의와는 달리, 복잡한 이중의 심리구조를 만들어냈다. 그들은 긴밀히 협력을 하면서도 날카롭게 경쟁을 벌였다. 이런 가운데 쌓아올린 ‘협업-관계 자본’이야말로 벼농사 국가의 정신적·문화적·제도적 DNA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최근에 동아시아 국가들은 비약적인 경제발전을 달성했다. 그들에게는 벼농사 경험이 전부였다. 그들은 불가피하게 또한 자연스럽게 벼농사 방식을 도시, 사무실, 공장으로 그대로 옮겨왔다. 그들은 서로 협력하고 경쟁하며, 또한 부단히 기술 튜닝에 나섰다. 이를 통해 단시간에 선진국을 모방하고 따라잡았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우리나라다. 삼성이나 BTS의 성공도 그 비결은 똑같다. 바로 협력-관계 자본의 정수인 ‘칼군무’인 것이다.

이번 코로나19 팬데믹에서도 동아시아 국가들은 성공적인 방역 성과를 내고 있다. 이것도 벼농사 DNA로 충실하게 설명된다. 동아시아에서 국가는 애초에 재난대응 시스템으로 출발했다. 따라서 국가를 중심으로 재난에 대응하는 것이 몸에 배어 있다. 국가의 지시에 잘 따르고 공동체의 망신, 비난, 징계에 민감하다. 방역은 자연스럽게 좋은 효과를 발휘한다.

이런 문화에서 재난의 극복은 궁극적으로 국가의 책무다. 국가가 재난을 잘 극복하면 대중의 무한한 지지를 받는다. 그것이 지난 총선에서 여당이 압승한 최대 이유다. 반면 국가가 재난 대처에 미흡하면 대중은 차갑게 지지를 철회한다. 세월호 사태로 박근혜 정권은 휘청거리기 시작했다. 아마 이번 코로나19 사태가 어떻게 결말을 맺느냐가 다음 대통령 선거에도 큰 영향을 미칠 것이다. 이처럼 재난은 왕조시대나 오늘날에나 정치권력을 뒤흔든다.

한편 벼농사 DNA는 우리에게 깊은 그늘도 드리웠다. 벼농사 사회는 상호 비교에 시달리며 불평등에 민감하다. 즉 평등 심리가 강하다. 그런 벼농사 지역은 일찍부터 ‘강력한’ 국가를 출현시켰다. 따라서 국가권력에 연결되면 막대한 이권이 생겼다. 본래 왕권강화를 위해 출발한 과거제가 이런 접속 통로로 안성맞춤이었다. 과거 합격자를 배출하면 가문은 단기간 내에 융성했다. 이로 인한 신분상승 등 다양한 방법으로 끊임없이 차별화를 시도했다.

그리하여 벼농사 사회는 평등 심리와 차별 심리로 뒤엉켰다. 오늘날 그 양상은 더욱 격화되고 있다. 사람들은 가족주의에 매몰되고 땅과 자산 획득에 집착한다. 그것은 오로지 핏줄 안에서 대물림된다. 암암리에 국가권력과의 접속을 통해 이권을 모색한다. 이런 광풍 속에 불평등은 속절없이 심화되지만, 한편으로 평등 심리 역시 더욱 첨예화되고 있다. 그래서 공정성 문제는 사회적 뇌관이 되었다. 이런 독특한 불평등 메커니즘은 본질적으로 예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다. 그것이 이 책의 부제가 ‘한국인은 어떻게 불평등해졌는가’인 이유다.

특히 벼농사 사회의 유산인 연공제는 오늘날 심각한 문제다. 고도성장 시대에는 연공제가 그런대로 작동했다. 그러나 저성장 시대에는 부담이 크다. 특히 상위 직급은 오늘날 주류 세력인 586세대가 차지하고 있다. 더구나 전투적 노조가 그들의 기득권 강화를 뒷받침한다. 이는 서구의 노조가 임금 자제와 전반적인 근로조건 개선을 추구했던 것과는 정반대다.

우리나라는 30년 경력자와 최초 입직자의 임금 격차가 압도적으로 세계 최고(한국 3.3, 일본 2.3, 유럽 1.7)다. 심지어 4배가 넘는다는 통계도 있다. 이로 인해 청년실업과 비정규직이 양산된다. 이런 와중에 상층 정규직에 진입하려는 시험 경쟁은 살인적이다. 상층 정규직 중심의 연공제로 인한 소득불평등은 고스란히 사회경제적 불평등의 주요 근원이 되고 있다.

저자의 치밀한 통시적 진단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극단적 벼농사 족속인 우리는 눈부신 성공을 거뒀지만, 또한 심각한 문제로 신음하고 있다. 무엇보다 불평등 해소가 시급하다. 그 대책 중 하나가 연공제 개선이다. 나아가 국가 체계를 일시적 재난대응 시스템에서 상시적 민생지원 시스템으로 다시 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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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선 인문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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