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면에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 중엔 특정 소리를 들으며 숙면을 청하는 경우가 있다. 재즈 음악을 틀어놓기도 하고, 명상음악을 듣기도 한다. 백색소음을 틀어놓는 경우도 많다. 백색소음은 넓은 음폭을 가지고 있어 귀에 쉽게 익숙해지는 소음으로, 파도소리나 빗소리, 카페소음 등이다. 딱히 귀에 거슬리지는 않는 선에서 적막한 공기를 채우는 소리들이다.

백색소음 가운데서도 수면에 도움을 주는 소음으로 알려진 것이 핑크소음(pink noise)이다. 핑크소음은 주파수가 다른 소리들이 섞일 때 나는 백색소음의 변종격으로, 모든 옥타브에서 동일한 에너지를 갖는 잡음파다. 해변에서 파도가 부서지는 소리, 나무에서 바스락거리는 나뭇잎 소리, 빗방울이 떨어지는 소리 등이 대표적이다. 신경 이완과 깊은 수면에 도움이 된다고 알려져 있다.

핑크소음은 실제로 많은 환자들의 수면에 도움이 된다는 점에서 많은 수면센터에서 불면증 환자에게 핑크소음의 사용을 권하고 있지만, 그 효과에 대해선 과학적 설명이 부족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핑크소음이 긍정적 수면 효과를 부르는 이유에 대해선 여러 가지 설명이 있다. 미국 애리조나 의과대학 수면 및 건강 연구프로그램의 마이클 그래너 교수는 “핑크소음은 우리 귀에 ‘노이즈 마스킹’이라고 불리는 과정을 준다”며 “”시끄러운 도시 환경에서 소음을 덮는 ‘소리 담요’ 역할인 셈“이라고 말했다.

애착이불처럼 숙면을 위한 의식(ritual)적 차원의 역할을 하는 것이란 분석도 있다. 그래너 교수는 “핑크소음이 수면을 유도하는 건 이 소리를 듣는 것 자체가 뇌를 쉬게 하는 ‘수면 의식 습관’의 일부가 됐기 때문일 수 있다”고 말했다. “아이가 잠들기 위해 어릴 때부터 안고 자던 곰돌이 인형을 반드시 품에 안아야 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곰인형 자체엔 아무런 수면 효과가 없지만 사람들이 잠드는데 조건부 자극제가 된다.”

하지만 매일 밤 핑크소음에 의지해 잠드는 것의 효과에 대해서는 의문도 제기된다. 소음과학의 권위자 마샤스 배스너 미국 펜실베이니아 의과대학 수면 생물학과 교수는 “많은 사람들이 핑크소음을 사용하고 있지만, 이에 대한 연구는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다”며 “핑크소음은 수면에 이로울 수도 있고, 해로울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배스너 교수는 지속적인 소리의 청취가 우리 뇌를 쉬지 못하게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는 “뇌는 우리가 자는 동안 활발하게 활동한다. 몸을 고치고 회복하며, 면역 체계를 강화시킨다. 그런데 밤새도록 계속 소리를 들으면 우리 뇌는 쉬지 못 하고 끊임없이 신호를 인식하고 분석한다”고 말했다. 수면이 주는 뇌와 신체의 진정효과가 반감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핑크소음에 의존한 수면은 잠드는 데 도움을 줄 수는 있지만 ‘완벽한 숙면’을 위한 방식은 아닐 수 있다는 것이다.

더불어 핑크소음의 소리가 너무 크면 청력을 손상시킬 우려도 있다. 노스웨스턴 의대 생체리듬 및 수면센터 필리스 지 센터장은 “청각은 소음의 강도에 쉽게 적응하기 때문에 같은 효과를 얻기 위해 점점 더 소음의 강도를 높이게 될 것”이라며 “과도한 핑크소음은 확실히 건강에 해로울 수 있다”고 주의를 줬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의 소음 기준에 따르면, 똑딱거리는 시계는 20dB, 조용히 돌아가는 냉장고는 40dB, 일반적인 대화는 60dB 수준이다. CDC는 오랜 시간 동안 70dB 이상의 소음을 들으면 청력 손상이 일어난다고 경고한 바 있다.

한편, 핑크소음에 대한 가장 최근의 연구는 2017년 발표된 것으로, 13명의 노인들로 구성된 소규모 집단을 대상으로 핑크소음이 수면에 미치는 영향을 조사한 것이다. 이들이 자는 동안 핑크소음을 듣는 것이 숙면과 관련한 뇌파 활동을 증가시킨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2016년에 진행된 또 다른 연구에서도 핑크소음이 낮잠을 자는 젊은이들의 수면과 기억력을 향상시키는 것으로 나타났다. 앞서 2013년에 진행된 이와 비슷한 연구에서도 핑크소음에 노출되면 더 긴 시간 동안 숙면을 취해 기억력을 향상시킬 수 있다는 사실이 밝혀진 바 있다. 해당 연구 결과는 낮잠 뿐 아니라 밤 수면시간에도 유효했다.

※주간조선 온라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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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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