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 허인회
일러스트 허인회

대학생 유수연씨가 요즘 새로 만나는 사람들과 대화의 물꼬를 트는 방법은 MBTI다. 가장 널리 알려진 심리검사의 하나인 MBTI는 성격 유형을 16가지로 나누어 설명해준다. 외향적(E)인지 내향적(N)인지, 감각(S)이 먼저인지 직관(N)이 먼저인지, 사고(T)를 우선하는지 감정(F)을 우선하는지, 판단형(J)인지 인식형(P)인지를 따져 16가지 성격 유형 중 하나의 성격으로 개인을 설명하는 검사가 MBTI다. 유수연씨는 검사 결과 ‘ISFJ형’으로 내향적이고 현실적이며 인간관계를 중시하는 성향으로 나왔다.

“가장 친한 친구가 ESFJ가 나왔는데 두 유형이 원래 편안한 관계라고 해서 과연 그렇구나 납득했어요. 어쩐지 잘 안 맞는 사람과는 MBTI가 상극이더라고요.”

유씨만 유독 MBTI에 열중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요즘 MZ세대 중에는 MBTI에 빠져 있는 사람이 많다. 자신을 MBTI 유형으로 설명하는 것은 물론 다른 사람을 이해할 때도 MBTI 성격 유형을 활용한다. 35살 김혜림씨의 회사에서는 직원을 상대로 MBTI를 실시했다.

“팀원들끼리 결과를 공유하고 서로를 이해하라는 지시도 내려왔어요. 신기했던 것이 팀장급 직원들은 대부분 비슷한 유형이 나왔다는 거였어요. 리더십을 가진 사람은 대개 ESTJ형이었어요.”

간혹 MBTI가 완전히 신뢰할 만한 심리검사는 아니라는 반박이 과학적으로 제기되기도 한다. 그런데 그 지적은 MBTI 유행의 ‘본질’을 살짝 비껴간 것이다. 매우 과학적이고 합리적이기 때문에 MZ세대가 MBTI를 입에 달고 사는 것이 아니다. 왜 MZ세대는 MBTI에 빠지게 됐을까.

나와 타인을 이해하고 싶은 욕구

MBTI를 신뢰하는 MZ세대의 말버릇을 살펴보면 공통점이 보인다. 대학생 유수연씨는 MBTI를 맹신하는 편인데 “너는 아마 T인가 보다” “제 친구는 파워(매우) N인데”와 같은 말투를 사용한다. 그에게 왜 MBTI를 신뢰하는지 묻자 ‘이해하기 위해서’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특히 처음 만난 사람들끼리 MBTI를 공유하는 건 굉장히 재미있는 일이에요. 별다른 설명 없이도 그 사람을 금방 이해하게 되거든요.”

그러니까 MBTI 유행은 ‘이해하고 싶다’는 욕구가 이끌어낸 것이다. ‘이해’는 두 가지 차원에서 진행된다. 하나는 다른 사람을 이해하고 싶다는 바람이다. MZ세대는 그간 친하게 지냈던 사람들과도 MBTI 성격 유형을 나누며 ‘네가 이런 성격이었지’ 혹은 ‘내가 몰랐던 성격이 있네’ 하며 이해의 폭을 넓혀가려고 한다. 더 중요한 것은 자기 자신을 이해하는 방식으로 MBTI를 활용한다는 점이다.

성격은 16가지 유형으로 나누어 설명할 만큼 단순한 것이 아니다. 그러나 MBTI 성격 유형을 설명하는 텍스트들을 보면 장점과 단점, 한계점 등이 명확하게 설명돼 있다. MZ세대는 복잡하고 이해하기 어려운 자기 자신의 성격을 보다 명확하고 단호하게 설명해 주는 MBTI를 신뢰하고 좋아한다.

MBTI가 나와 타인에 대한 이해의 영역과 관련돼 있다는 점을 안다면 MZ세대 내에서 MBTI 유행은 좀 더 사회적으로 바라볼 수 있다. MBTI는 MZ세대의 ‘행복’과 관련이 있다. MZ세대의 MBTI 유행을 행복과 연관 짓기 위해서는 몇 가지 부가적인 설명이 필요하다. 우선 MZ세대의 낮은 행복도를 알아야 한다.

애초에 국제적으로 보면 한국인의 행복도는 다른 나라 사람에 비해 많이 낮은 편이다. 여론조사업체 입소스코리아가 2019년 주간조선을 통해 밝힌 조사결과에 따르면, 28개국 국민을 대상으로 조사를 벌인 결과 한국인의 행복도는 21위에 그쳤다. ‘행복하다’고 답한 사람이 54%에 그쳤는데, 2011년 조사에서 71%였던 것과 비교해 보면 무척 떨어진 수치다.

그런데 이 중에서도 20~30대, 그러니까 MZ세대의 행복도는 유독 낮다. 2018년 서울대 행복연구센터가 조사한 바를 보면 삶의 만족도, 불안 정도를 종합해 만들어낸 ‘안녕 지수’가 20~30대에서 가장 낮게 나타났다. 10대가 59점, 60세 이상이 61점이었던 것에 비해 20대와 30대는 각각 52점으로 낮게 나온 것이다.

왜 MZ세대의 행복도가 낮은지는 여러 부문에서 설명 가능하다. 낮은 취업률과 치솟는 주거 비용 같은 경제적인 부문에서도 설명할 수 있지만 보다 본질적인 설명도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 ‘자기결정성 이론’이라는 심리학 이론을 알아보자.

타인과 비교하는 MZ세대의 삶

자기결정성 이론은 외적 동기, 즉 외부에서 주어진 압력에 의한 행동보다 내적 동기, 즉 자발적인 선택으로 이루어진 행동이 더 큰 힘을 발휘한다는 이론이다. 이 이론에 따르면 사람에게는 세 가지 중요한 심리적 욕구가 있는데 자율성(autonomy), 유능감(competence), 관계성(relatedness)이 그것이다. 자율성은 말 그대로 타인에 의한 압박 없이 스스로 자발적으로 행동을 결정하려는 욕구다. 유능감이란 과정을 즐기고 성취감을 느끼려는 욕구다. 관계성은 지속적이고 친밀한 관계를 맺으려는 욕구다. 이 욕구가 충족되면 삶은 만족스럽다. 행복하다는 감정은 세 가지 욕구를 충족시키는 데서 나온다.

그런데 한국의 MZ세대는 이 욕구를 충분히 충족시키지 못하고 있다. 구재선 중앙대 다빈치교양대학 교수의 논문 ‘왜 한국 대학생이 미국 대학생보다 불행한가?’에서 그 원인이 나온다. 구 교수는 논문에서 한국 대학생이 미국 대학생보다 외적 가치, 그러니까 경제적 성공이나 외모를 가꾸는 일, 사회적 인정 같은 것을 더 추구한다고 결론 내렸다. 문제는 외적 가치를 추구하는 일이 앞서 말한 세 가지 욕구를 충분히 충족시키지 못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경제적 성공을 추구하는 일은 그 자체로 만족감을 주는 일이 아니라 다른 목적을 위한 과정으로 이용될 뿐이다. 이런 경우 유능감을 충족시키기 어렵다. 대신 내적 가치, 즉 자기 자신을 이해하고 인정한다거나 더 나은 공동체를 위해 노력하는 일 같은 것은 자율적이고 성취감을 주며 친밀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게 한다. 그래서 내적 가치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미국 대학생이 한국 대학생보다 행복하다는 이야기다.

왜 한국 대학생은 미국 대학생보다 외적 가치를 중요하게 생각하게 되었을까. 그에 대한 답은 이종한 대구대 심리학과 명예교수의 논문 ‘내·외적 자기개념, 행복조건, 사회비교와 자기존중감의 관계’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 논문에 따르면 한국인은 중학생 때까지만 하더라도 내적 가치를 중시하는 경향을 보인다. 그러나 고등학생이 되면 달라진다. 외적 가치가 더 중요하게 인식되는데, 이 변화는 아마 ‘입시’와 관련이 있을 것이다.

한국의 입시교육은 그 자체로 세 가지 심리적 욕구를 모두 박탈시키는 역할을 한다. 특히 시간이 지날수록 한국의 입시교육은 자율성을 박탈하는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다. 학종은 학교 생활의 작은 부분까지도 입시와 연관 지어 ‘설계’하도록 만든다. 다른 나라의 학생들처럼 입시와는 관계없이 동아리 활동을 즐기거나, 이전 세대의 어른들처럼 본격적으로 입시에 들어가기 전에는 즐겁게 학교 생활을 즐기는 일은 점점 불가능해지고 있다. 스스로 탐구하는 공부가 아니라 답이 정해져 있는 문제를 풀어내며 성취감을 느끼기도 쉽지 않은 일이다. 친밀하고 지속적인 관계 역시 입시를 거치면서 상실되기는 마찬가지다.

자율성을 잃어버린 MZ세대는 그 대신 ‘비교’를 한다. 조병희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가 참여한 논문 ‘단체참여의 양면성과 우울’을 보면 눈에 띄는 부분이 있다. 교육수준이 낮은 노년층은 사회비교 스트레스가 적지만 젊은 층은 높은 사회비교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다는 부분이다. 이 결과는 MZ세대가 놓인 사회 환경이 결코 자유롭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소셜미디어가 MZ세대에서 널리 사용된다는 점에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 인스타그램이나 페이스북 같은 소셜미디어는 자유로운 소통을 가능하게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부정적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도구다. 에드슨 탠독 주니어 싱가포르 난양공대 교수는 페이스북을 하는 사람은 페이스북을 하지 않는 사람보다 더 많은 우울감을 느낀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하기도 했다. 소셜미디어는 그 구조상 실제 삶의 모습을 편집해 전시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소셜미디어 이용자들은 편집된 삶과 자신의 삶을 비교하면서 우울감을 느끼게 된다는 것이다.

타인의 직업보다 성격에 주목하는 MZ세대

종합해 보면 MZ세대는 자율성을 잃어버린 학창 시절에 남과 비교하기 쉬운 환경에 놓이면서 행복감을 점점 잃어가고 있다. 이 행복감은 단순히 감정적인 부분을 떠나 나 자신과 타인을 이해하고 공동체의 이익을 증진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려는 심리적 욕구이기도 하다. 이제 MZ세대는 심리적 욕구를 충족시키며 행복해지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시도하고 있다.

한동안 MZ세대에게서 유행했던 삶의 방식인 욜로(YOLO·You Only Live Once)는 외적 가치를 중시하던 삶에서 벗어나려는 움직임이었다. 욜로는 말 그대로 ‘한 번뿐인 삶’을 마음껏 누리겠다는 삶의 방식으로 오로지 현재의 즐거움에 집중한다. 또는 살롱문화가 MZ세대를 중심으로 부활한 것도 행복을 찾으려는 새로운 움직임이었다. 취향과 관심사가 같은 사람들끼리 모여 모임을 갖는 살롱문화는 독서 모임, 운동 모임 같은 형태로 진행되면서 자발적이고 내면적인 자아 계발에 초점을 맞추곤 한다.

MBTI는 이 같은 맥락이다. 단순히 지나가는 유행으로 보기에는 의미가 있다. 사실 MBTI는 비판의 여지가 많은 도구다. 심리학자들은 오히려 MBTI를 맹신하지 말 것을 경고한다. MBTI가 성격을 지나치게 단순화한다는 점에서 한때 유행했던 혈액형 성격설과 같은 수준이라고 비판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MBTI를 신뢰하는 MZ세대는 이 같은 비판을 귀담아듣지 않는다. MBTI만큼 자신과 타인에 대해 명쾌하게 설명해 주는 도구를 찾기 어렵기 때문이다.

MBTI를 활용하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타인을 이해하는 방법은 직업, 외모, 경제적 능력 같은 외적 가치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MBTI는 그보다 내면의, 더 ‘본질’에 가까워보이는 것으로 상대를 이해하게 만든다. 이는 MZ세대가 잃어버린 관계성을 되찾는 방법이기도 하다. 내적인 가치를 더 중시하게 만들고 관계성을 강화하는 것, 다시 말하면 MBTI는 MZ세대에게 행복감을 찾아가는 과정인 것이다.

김서윤 하위문화연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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