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 뉴시스
ⓒphoto 뉴시스

해맑은 얼굴을 한 캐리 멀리건(35)은 얼굴처럼 밝고 명랑했다. 영국 태생인 멀리건은 영국에서 영상 인터뷰에 응했는데 악센트가 있는 발음으로 질문에 차분하게 대답했다. 시종일관 미소를 짓는 모습이 어린 두 남매의 어머니라기보다 소녀 같은 인상이었다. 캐리 멀리건은 블랙코미디이자 스릴러영화인 ‘프라미싱 영 우먼(Promising Young Woman)’에서 의대생일 때 파티에서 성폭행당한 친구를 위해 남성들을 응징하는 인물인 캐시(카산드라)로 나온다. 남자들을 유혹해 복수극을 펼치는 캐시는 간교할 정도로 똘똘하다. 이 영화는 올해 아카데미 오리지널 각본상을 탔다.

‘프라미싱 영 우먼’ 촬영장에서 감독 에메랄드 펜넬(가운데)과 얘기를 나누는 캐리 멀리건(왼쪽). ⓒphoto 뉴시스
‘프라미싱 영 우먼’ 촬영장에서 감독 에메랄드 펜넬(가운데)과 얘기를 나누는 캐리 멀리건(왼쪽). ⓒphoto 뉴시스

- 이 영화는 ‘미투 운동’이 벌어진 요즘 시의에 맞는 것으로 보이는데 어떻게 생각하는가. “요즘 시의에 딱 떨어지게 맞는다고 생각한다. 이 영화로 감독 데뷔를 한 에메랄드 펜넬도 이 영화가 많은 사람이 자신의 아픈 경험을 밝히는 시점과 연결되었음을 토로한 바 있다. 우리는 성폭력의 생존자들과 그들의 용기로부터 큰 영감을 받았다. 그러나 이 영화는 성폭력을 우리들에게 익숙한 단순 흑백논리로 얘기하기보다 그런 폭력이 존재할 수 있는 우리 문화의 표피를 벗기려고 한다. 그런데 영화의 한 인물처럼 여자들 중에서도 성폭력을 별것 아닌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물론 영화 속의 모든 남자가 반드시 나쁜 사람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이 영화는 그런 의미에서 남자들이 과거 자신의 여성 관계를 반성해 보라는 초청장이라고 생각한다.”

- 코로나19로 인한 외출 자제령 속에서 어떻게 시간을 보냈는가. “영국 웨스트컨트리에 있는 집에서 보냈다. 다행히 정원 등 집에 두 아이가 놀 수 있는 넓은 공간이 있어 그리 답답하지 않게 지냈다. 남편이랑 아이들과 함께 있을 수 있다는 것만 해도 큰 행운이다. 간호사 등 환난 중에도 남을 돕는 봉사자들에게 박수를 보낸다. 힘든 시기에 자기보다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 것을 보면서 이 환난이 밝은 면도 지녔다는 것을 깨달았다.”

- 지금보다 젊었을 때 여자여서 무시당한 적이 있는가. “물론이다. 배우로서 나이가 들면서 과거보다 내 말이 무게를 지니게 됐지만, 지금보다 젊었을 때는 일할 때 남자들로부터 발언이 무시당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런데 그에 대해 반박하지 않고 모르는 척하고 말았다. 자신에 대해 신념을 가지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 영화 속 캐시는 어떤 여자인가. “감독인 에메랄드 펜넬과 나는 캐시의 보복 동기에 영화의 초점을 맞추려고 애썼다. 캐시는 밤에 바에 가서 술에 취한 척하고 남자들을 유혹해 한 수 가르쳐준다. 따라서 영화는 여성의 분노를 탐구한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펜넬은 캐시의 보복 행위를 영화의 끝 장면까지 폭력적으로 묘사하는 것은 거부했다. 그래서 펜넬은 각본을 쓸 때 자기가 캐시라면 남자들에게 어떤 보복 행위를 가할 것인가를 생각했다고 한다. 그 결과는 물리적 폭력 대신 심리적 게임으로 보복하자는 것이었다. 여자는 무력 다툼보다 말싸움에서 남자를 쉽게 이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영화는 여자의 분노보다는 캐시와 성폭력 피해자인 그의 친구와의 우정을 더욱 강조한 영화다. 캐시가 모든 면에서 과거에 머물기를 원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캐시의 친구에 대한 사랑이 영화의 핵심이라고 하겠다. 그런데 사람들은 영화의 결말을 보고 다소 실망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렇게 끝이 나야 보다 진실하다고 생각한다.”

- 에메랄드 펜넬과 어떻게 함께 일하게 됐는가. 영화를 만들면서 서로 친구가 되었나. “우리가 만난 것은 오래되지 않는다. 친구 집에서 만난 지 두 달쯤 지나 펜넬이 내게 각본을 보내왔다. 그런데 사실 우린 이보다 훨씬 오래전에 만났었다. 둘 다 그것을 기억하지 못했을 뿐이다. 첫 번째 만난 것은 내가 배우 초년 시절 런던의 에이전시에서 계약서에 서명할 때로, 펜넬은 내 에이전트의 조수였다. 두 번째 만난 것은 우리 둘이 TV의 한 프로에 잠깐 나왔을 때다. 이번 영화를 찍던 중 둘이 얘기를 나누다가 우연히 알았다. 펜넬이 쓴 각본은 변화무쌍한 것이다. 코미디이자 로맨스 영화요 공포 영화이자 스릴러이며 또 매우 진지한 주제를 다룬 드라마이기도 하다. 펜넬과 제작진 앞에서 각본을 읽은 지 5분 만에 캐시 역은 반드시 내가 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그리고 즉시 우린 친구가 되었다. 펜넬은 아주 재미있는 사람으로 영화 촬영은 매우 힘들었지만 펜넬이 끝없이 웃겨 힘든 줄을 몰랐다.”

영화 ‘프라미싱 영 우먼’의 한 장면.
영화 ‘프라미싱 영 우먼’의 한 장면.

- 진정한 남녀평등이 언제나 올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그리고 이 문제에 대해 사람들의 자각을 일깨워주는 좋은 방법은 무엇이라고 보는가. 캐시와 같은 보복과 증오는 결코 좋은 방법이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먼저 남녀평등에 대해 말하자면 적어도 내가 일하는 분야에서는 변화가 일고 있어 희망적이다. 재주가 있어도 인정받지 못하던 여성들에게 보다 많은 기회가 주어지고 있다. 사람들로 하여금 남녀평등에 관한 자각심을 깨워주는 방법으로서 복수나 증오는 옳은 것이 못 된다. 사람들로 하여금 그 문제에 대해 끊임없이 토론하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 면에서 펜넬은 영화의 메시지를 교훈적으로 보여주는 대신 사람들로 하여금 캐시 행동의 옳고 그름을 토론하도록 유도하고 있다. 영화를 먼저 본 기자들 간에 이 문제를 놓고 격렬한 찬반 토론이 벌어졌다는 말을 들었는데, 이런 토론이야말로 문제의식을 깨닫게 하는 좋은 방법이다.”

- 성폭력을 당한 여성들이 가해자를 용서하기보다 복수를 하려고 생각하는 경우가 더 많다고 보는가. “환상적으로 생각하자면 복수를 하려고 할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피해자 한 사람 한 사람의 경우가 모두 독특한 개인적 경험이어서 그런 경우를 당해 보지 않은 나로선 뭐라고 말할 수가 없다.”

- 영화 촬영 하느라 쌓인 스트레스는 어떻게 해소하는가. 당신 자신만을 위한 휴식을 어떻게 취하나. “아이들을 낳고 2년이 지나서야 내가 그들과 늘 함께 있지 못한다는 죄의식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는 가장 친한 친구와 함께 있는 것으로 몸과 마음의 스트레스를 푼다. 얼마 전에도 런던에 사는 어릴 적 친구를 찾아가 하루 종일 함께 보내면서 즐겼다. 옷가게도 들러 보고 산책도 하면서 하루를 함께 즐겼다. 책임의식 없이 친구와 함께 하루를 보냈다. 두 달마다 다음에 할 일과 가족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 있다면 그것으로 날 재충전해 마음과 몸을 원동력으로 가득 채울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 캐시는 커서도 집을 나가지 않고 부모와 함께 사는데 당신의 부모는 당신을 어떻게 키웠는가. “부모님은 늘 나에 대해 큰 관심을 보여주셨다. 특히 내가 대학엘 안 가고 드라마 학교에 등록하자 대단히 걱정하셨다. 하지만 난 끝까지 저항하면서 드라마 공부를 했다. 이제 내 직업이 일이라기보다 휴가처럼 느껴지니 그때 부모님에게 저항한 것이 잘한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들은 매우 따스하게 날 돌보고 지원하면서 키우셨다. 특히 난 어머니와 매우 가깝다. 지금도 어머니는 부엌에서 내 아이들을 돌보고 계신다. 어머니는 내 생애 전반을 통해 날 적극적으로 응원하셨다. 난 매우 행복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박흥진 할리우드외신기자협회(HFPA) 회원
저작권자 © 주간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